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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DNA를 타고?

스위스 업체에서 한국 결혼정보 회사까지 확대된 ‘유전자 짝짓기’… 정말 다른 면역체계 가진 이에게 호감 느끼나
등록 2013-03-02 12:26 수정 2020-05-03 04:27

‘사랑은 우연이 아니랍니다.’
스위스의 유전자 검사 업체 ‘진파트너’(GenePartner·www.genepartner.com)의 인터넷 사이트 첫 화면에는 이런 문구가 나온다. 2008년 문을 연 이곳은 개인이나 스위스의 인터넷 만남 사이트 회원 등을 대상으로 유전자 검사를 해서 가장 호감도가 높은 짝을 찾아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는 생식적인 면에서, 그리고 사회적인 면에서 잘 맞는 짝이 있습니다. 개인들마다 서로 치열하게 비교하고 판단하죠. 그러나 생식적인 부분은 남녀 관계를 젊고 열정적으로 유지해준다는 점에서 생각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이 업체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타마라 브라운(36) 박사는 2010년 영국 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위치한 서울가정법원 인근에서 찾아볼 수 있는 ‘친자확인 유전자 검사’ 홍보 문구. 유전자 검사 기관에 친자확인을 의뢰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한겨레 탁기형 기자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위치한 서울가정법원 인근에서 찾아볼 수 있는 ‘친자확인 유전자 검사’ 홍보 문구. 유전자 검사 기관에 친자확인을 의뢰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한겨레 탁기형 기자

나의 감정을 DNA 검사로 확인?

검사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인터넷으로 249달러를 결제하면 우편으로 ‘유전자 채취 키트’를 보내준다. 여기에 들어 있는 면봉으로 자신과 호감도를 알고 싶은 상대방의 뺨 안쪽(구강상피세포)을 긁어낸 뒤 이 업체로 다시 보내면 된다. 진파트너는 “약 2주 정도 걸리는 검사를 거치면 상대방에게 얼마나 호감을 느끼는지, 내가 느끼고 있는 관심의 종류가 어떤 것인지, 그리고 상대방과의 성공적인 임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지를 분석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진파트너가 설립 당시 해외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상당히 저렴한 값(당시 99달러)으로 유전자 검사를 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유전자 검사 기술이 보편화하며 나타난 현상이기도 하다. 이들이 내세우는 이론적 근거는 클라우스 베데킨트 스위스 베른대 교수가 1995년 진행한 이른바 ‘티셔츠 실험’이다. 생물학계에서 유명한 이 실험은 여학생들에게 땀에 젖은 여러 남학생의 티셔츠 냄새를 맡게 한 뒤 호감도를 측정했다. 베데킨트 교수는 실험을 통해 사람은 자신의 면역력을 지키기 위해 면역체계가 다른 이성의 냄새를 선호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진파트너는 고객에게서 받은 유전자 샘플에서 면역력 정보를 담고 있는 ‘조직적합성항원’(HLA)을 분석한 뒤, 가능하면 다른 면역체계를 가진 상대방을 찾아주는 작업을 해준다. 애초에 다른 면역체계를 가진 이성에게 더 끌리고, 그런 이성과 결합해야 좀더 우월한 유전자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슈퍼베이비’ 탄생이 궁극 목표?

이른바 ‘유전자 데이트’(DNA Dating)는 아직까지는 흔히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만남의 불확실성 탓에 유전자에 기대 만남의 성공 확률을 높이려는 시도는 끊이지 않는다. 국내에서도 한 결혼정보업체가 유전자 검사를 도입해 짝 찾는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이 업체가 지난해 7월 특허청에 제출한 출원신청서를 보면, 회원들의 유전자에서 뽑아낸 단백질 물질인 ‘주조직적합성 복합체’(MHC)를 분석한 뒤 유전적으로 가장 먼 이성을 선택하도록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MHC가 개인의 체취를 만들어내고 유전적으로 다른 이성의 체취에 강한 끌림을 받는다는 브라질 파라나대 마리아 비카료 교수진의 2009년 연구 결과를 근거로 만든 모델이란다. 이 업체 관계자는 “아직 연구 단계지만 상용화에 성공한다면 유전자 검사를 통해 개인마다 나타나는 질병이나 식습관 등의 차이를 극복하고 궁극적으로는 이른바 ‘슈퍼베이비’를 만드는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유전자 검사 앞에서 사랑은 우연이 아닌 확률이 되는 셈이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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