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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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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시대로 가는 작은 길



서울 상도동·전북 부안·경남 통영 등 에너지 자립 꿈꾸는 공동체들… 핵발전 의존하는 경성에너지시스템 극복 대안들
등록 2012-12-28 13:22 수정 2020-05-02 19:27
도시민의 일상에는 피하고 싶은 불편한 진실이 가득하다. 한겨울 밤 TV를 보며 뒹굴뒹굴할 수 있는 ‘에너지원’은 무엇인가. 석유·석탄 등 화석연료이거나 원자력이거나. 화석연료가 기후변화의 원흉이라는 사실쯤은 이제 초등학생도 아는 상식이다. 석유 생산량 감소가 예측됨에 따라 유가는 더 치솟을 터. 화석연료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을 것처럼 포장된 ‘원자력 신화’도 깨지고 있다. 사고의 위험성, 방사성폐기물 처분은 당면 과제다. 불편한 진실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대규모 발전소 건설을 둘러싼 갈등으로 지역 공동체가 파괴되는 모습을 수없이 목도했다. 해안 일대에 설치된 발전소 안전사고 위험은 인근 주민들에게 전가된다. 전력을 인구 밀집 지역인 수도권으로 배달하려면 송전탑이 필요하다. 올해 초, 경남 밀양시 산외면에 살던 74살 이치우 어르신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국전력이 자신의 밭에 송전탑을 세우려고 굴착기를 가져온 날이었다. 그가 그렇게 반대하던 송전탑은 부산 기장군 신고리 원전의 전력을 경남 창녕군에 위치한 북경남변전소까지 보내는 시설이었다.
미국 비영리 자원정책센터 로키마운틴연구소 소장인 에이머리 로빈스는 화석연료나 원자력 의존 구조를 ‘경성에너지시스템’이라 부른다. 경제 논리를 앞세워 중앙정부가 대규모 발전소를 지어 전력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반민주적 경향이 강하다. 이 반대편에는 중소 규모 신재생에너지에 기반한 ‘연성에너지시스템’이 있다. 지역 공동체에서 적합한 에너지원을 직접 선택하고 생산하는 분산형 구조다. 소비를 줄이고 생산을 늘려 에너지 자립도가 높아지면, 위기 상황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고 에너지 불평등 문제도 덜 수 있다. 정부는 여전히 경성에너지시스템을 고수하지만, 가지 않던 길로 발걸음을 뗀 이들이 있다. 전국 곳곳에서 에너지 자립마을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사람들의 고군분투기를 들어봤다. _편집자
2007년부터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한 ‘에코아일랜드’(생태섬) 만들기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 경남 통영의 연대도에는 150kW의 태양광발전 시설이 설치돼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2007년부터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한 ‘에코아일랜드’(생태섬) 만들기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 경남 통영의 연대도에는 150kW의 태양광발전 시설이 설치돼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서울 동작구 장승배기와 신대방삼거리 사이에 위치한 성대시장을 따라 쭉 걸어 올라가면 주택가가 펼쳐진다. 상도3·4동을 아우르는 이 지역은 옛날엔 ‘성대골’로 불렸다. 2009년 주부들이 싹을 틔운 ‘성대골’ 마을공동체 운동이 활발히 진행되는 곳이다.

지난 4월 상도3동 주택가 건물 2층에 문을 연 99㎡(약 30평) 규모의 생활공부방 ‘성대골마을학교’에서는 올겨울 특별한 도전이 시작됐다. 화석연료나 전기 없이 지속 가능한 대체에너지로 난방을 해결하려고 나선 것이다. 겨울나기 준비는 지난여름부터 시작됐다. 공동 출자한 주민 15명과 녹색연합 및 적정기술 장인, 신재생에너지 관련 업체 등이 머리를 맞댔다. 단열 공사가 우선이었다. 발열 기능이 있는 페인트를 구해 벽에 칠했다. 무엇보다 귀농·귀촌인들 사이에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적정기술(에너지 사용이 적고 누구나 쉽게 배워서 쓸 수 있는 기술)을 도시형으로 개조해 활용한 부분이 눈에 띈다. 입구에서 오른쪽 벽을 보면 ‘환풍기’ 같은 장치가 설치돼 있는데, 햇빛으로 따뜻하게 데운 공기를 난방에 활용하는 햇빛온풍기다. 건물 외벽엔 햇볕을 모으는 집열판이 설치돼 있다. 햇빛온풍기만으로도 낮 실내 온도가 10℃ 안팎으로 유지된다. 집열판을 늘리면 온도를 올릴 수 있지만, 비용 문제에 부닥쳐 효율이 좋은 화목난로를 설치했다. 주민들이 눈여겨본 햇빛온풍기·화목난로 등 적정기술 보급에 정부는 무관심하다. 햇빛온풍기를 설치한 팜텍의 김용태 대표는 “KS 규격 등 국가적인 검증 기준이 없다. 검증을 받아야 정부 지원을 받는데, 그 길이 아예 막혀 있다”라고 말했다.

도심에서 화석연료•전기 없이 겨울나기?

인구 5만여 명이 거주하는 상도3·4동엔 초등학교가 부족하고, 맞벌이 가정이 많다. 아이들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주민과 지역단체가 힘을 모아 2010년 10월 ‘성대골어린이도서관’을 만들었다. 이듬해 3월 일본의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를 계기로, 주민들은 에너지 문제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여러 단체에 특강을 요청했고, 녹색연합이 이에 응했다. 2011년 9월 어린이도서관에서 주민 15명이 모여 후쿠시마에 다녀온 녹색연합 신근정 녹색에너지디자인국장의 특강을 들었다. 오전 10시에 시작한 강의가 오후 4시께 끝날 만큼 반응은 뜨거웠다. 주민들은 녹색연합과 함께 기후변화, 에너지 절약 및 단열 등 특강과 워크숍을 진행했다. 그해 12월 ‘에너지 절약이 곧 생산’이라는 철학을 담은 성대골 절전소 운동이 시작됐다. 어린이도서관 한쪽 벽에는 주민들이 절전한 양만큼 전기가 생산됐다고 표현하는 대형 막대그래프가 붙어 있다. 절전소에는 50여 가구 및 동네 가게 10여 곳이 참여해 매달 5천kWh가량을 아끼고 있다.

한 동네에 수천 가구가 사는 도시에서 에너지 자립을 일구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성대골어린이도서관 김소영 관장은 공동체가 답이라고 했다. “우리 동네에 햇볕을 쬐지 못하는 집이 30%가량이다. 태양광으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없는 경우인데, 일조량은 주택 가격이나 빈부 격차와 연관이 있다. 그래서 마을공동체 단위로 에너지 생산과 절약을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설비나 목수 일을 할 수 있는 주민들 간에 네트워크가 구성되면 단열 공사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성대골은 서울 하늘 아래 첫 에너지 자립 마을을 꿈꾸고 있다. 지난 8월 서울시에서 에너지 자립 시범마을로 선정돼 마을학교 단열 공사 비용을 지원받았다.

성대골 주민들은 에너지 특강을 들으며 ‘어두운 미래’에 좌절하기도 했다. 에너지 자립을 고민하는 다른 지역 주민이나 활동가들을 만나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자그만 ‘희망’을 찾아 답사를 떠난 지역 중 한 곳은 전북 부안의 등용마을이다. 공교롭게도 김소영 관장의 고향이 부안이다. 등용마을에서 에너지 자립 고민이 시작된 건, 방사성폐기물처분장(이하 방폐장) 건설 반대운동이 일단락된 이후다. 2003~2004년 방폐장 반대운동을 이끈 문규현 신부와 지역 활동가들이 2005년 주민 출자를 받아 부안시민발전소를 연 게 시초다. 방폐장 투쟁 당시 ‘부안 사람들은 전기 안 쓰고 살 거냐’는 비난에 시달렸던 이들은 ‘핵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전기를 만들어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싶었다.

942 기획연재

942 기획연재

에너지 자립 향한 부안 주민들의 7년 노력

마을에서 이용하는 에너지원은 태양광(열)·지열·풍력·목재 펠릭 등 5가지. 핵심 에너지원은 태양광이다. 마을에 설치된 44kW 규모의 태양광발전기에서 연간 5만6210kWh의 전력을 생산한다. 마을에서 사용하는 전력의 70% 수준이다. 이 가운데 86%에 해당하는 4만8545kWh를 한전에 판매하는데, 이렇게 거둬들이는 수익이 연간 3390만원 정도다. 수익금은 출자자들에게 분배된다.

마을의 명물 가운데 하나는 전력 계량기다. 볕이 좋은 낮에는 마을에서 생산되는 전력량이, 전봇대를 타고 공급되는 한전 전력량보다 많아 계량기가 거꾸로 돈다. 12월18일 기자가 마을을 방문했을 땐 오전부터 눈발이 날렸다. “어쩌죠? 계량기가 안 돌아가네요. 구름이 저렇게 잔뜩 끼었으니.” 시민발전소 이현민 소장이 좋은 구경거릴 못 보여줘 아쉽다는 듯 너털웃음을 지었다. 20여 년 전 농민운동을 하러 부안에 내려왔다는 그는 방폐장 투쟁 당시 범군민대책위 정책실장으로 일했다.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있었다. “집집마다 태양광 전지판만 올리면 될 줄 알았죠. 근데 아니더라고요. 시설비가 워낙 비싼데다, 가옥의 방향이나 구조가 설비를 올리기에 적합하지 않은 곳이 많았거든요.” 결국 방향을 틀었다. 소비를 줄이는 게 먼저라는 판단에서였다. 집집마다 전등을 고효율형으로 교환하고 대기전력 차단장치를 설치했다. 겨울철 전기장판 사용에 따른 전력 과소비를 막으려고 집수리 사업도 병행했다. 전력 사용량이 해마다 10%씩 줄었다. 에너지 생산 방식도 지열과 목재 펠릿 등으로 다양화했다. 우선 지하 150m에 순환 파이프를 설치하고 사시사철 14~15℃를 유지하는 지하수를 이용해 991~1322㎡(약 300~400평)의 교육관과 가정집 등 건물 4채에 냉난방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전기와 등유를 절약했다. 하지만 지열 시스템은 초기 설치비와 운전에 필요한 전력 소비량이 많다는 문제점이 노출돼 일부 설비를 철거하기도 했다.

깨알 같은 노력이 이루어지는 동안, 정부 정책은 되레 후퇴했다. 태양광으로 생산된 전기를 시장 거래가보다 높은 가격에 매입해주는 발전차액지원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주민 출자를 늘려 마을의 발전 용량을 확대하려던 계획이 차질을 빚게 된 것이다. 지난해 정부의 그린빌리지 사업(마을 단위 신재생에너지 설치 지원사업)에 응모해 가정용 전기를 100% 자립 생산하려던 계획도 좌절됐다. 이 소장은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지원이 대규모 설비 사업 위주로 진행돼, 마을에서 시도되는 크고 작은 실험의 싹을 잘라낸다고 꼬집는다. “섬이나 산을 깎아서 만드는 대규모 신재생에너지 단지는 소규모 원전이나 다를 게 없어요. 300kW짜리 태양광 단지 하나를 만드는 것보다 3kW짜리 소규모 발전시설을 100군데 설치하는 쪽으로 가야죠.”

12월18일 전북 부안군 하서면 등용마을에서 부안시민발전소 이현민 소장이 태양광발전기 등 마을에 설치된 재생에너지 설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왼쪽). 서울 동작구 상도3·4동 성대골 주민들은 ‘에너지 절약이 곧 생산’이라는 철학을 담아 절전소 운동을 시작했다. 주민들의 주도로 설립된 ‘성대골어린이도서관’ 벽에 각 가정이 절약한 에너지양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그래프가 붙어 있다(오른쪽). 한겨레 이세영 기자, 한겨레 박현정 기자

12월18일 전북 부안군 하서면 등용마을에서 부안시민발전소 이현민 소장이 태양광발전기 등 마을에 설치된 재생에너지 설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왼쪽). 서울 동작구 상도3·4동 성대골 주민들은 ‘에너지 절약이 곧 생산’이라는 철학을 담아 절전소 운동을 시작했다. 주민들의 주도로 설립된 ‘성대골어린이도서관’ 벽에 각 가정이 절약한 에너지양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그래프가 붙어 있다(오른쪽). 한겨레 이세영 기자, 한겨레 박현정 기자

민관 협치로 성공한 경남 통영 연대도

성대골이나 등용마을은 주민 주도로 에너지 자립이 추진되는 경우다. 드물지만 민관이 협력해 성과를 거두는 사례도 있다. 경남 통영시 남단에서 18km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섬 연대도가 그렇다. 연대도에서는 2007년부터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한 ‘에코아일랜드’(생태섬) 만들기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데, 계획 수립부터 집행까지 모든 과정에 주민 참여가 보장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연대마을에는 150kW의 태양광발전 시설이 설치돼 있다. 바닷바람이 너무 센 탓에 지붕마다 태양광 전지판을 올릴 수가 없다. 지식경제부의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비 13억5천만원으로 설치된 태양광발전 시설에서 생산된 전력은 주민 50가구 및 마을회관 등 공공건물에 들어간다. 주민 80여 명 대부분이 태양광 전기를 사용하는 셈이다.

비가 거세게 내리던 12월14일 오전 통영시 산양읍 달아선착장에서 ‘섬나들이호’에 올라탔다. 연대도 등 인근 5개 섬으로 향하는 배였다. 20여 분쯤 지나 연대도에 발을 디디자 산뜻한 모양새의 마을회관과 경로당 ‘구들’이 눈에 들어온다. 공공시설로는 국내 첫 패시브하우스 건축물이다. 화석연료가 사용되지 않는다. 패시브하우스란, 건물 내부에서 발생되는 열과 태양광·지열 등 자연에너지를 최대한 활용하고, 첨단 단열 공법 등으로 열 손실을 줄여 화석연료 없이 냉난방을 할 수 있는 친환경 건축물이다. 마을회관과 경로당 신축에 2억5천만원이 들어갔지만, 기름값 등으로 해마다 3천만원의 세금을 지원했던 점을 고려하면 경제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경로당은 어르신들이 지내기에 불편함이 없을 만큼 따뜻했다. 연대도에서 태어났다는 81살 이순아 어르신은 “여름에는 경로당이 시원하다”며 “태양광 덕분에 전기요금이 줄었다”고 말했다. 폐교됐던 조양분교는 패시브하우스로 신축돼 숙박 시설을 겸한 에코아일랜드체험센터로 거듭났다. 센터에서 거두는 수익은 마을 주민들에게 돌아간다.

연대도 변화의 견인차 구실을 한 건 ‘푸른통영21 추진협의회’(이하 푸른통영21)였다. 1992년 6월 유엔환경개발회의에서 채택된 ‘의제21’에 기반을 둔 민관 협치 기구다. 지속 가능한 발전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행동 계획 등을 수립하고 있다. 통영에 위치한 수많은 섬이 외지인에게 팔려나가고 무분별하게 개발되는 상황에서, 지속 가능한 섬 모델을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푸른통영21은 통영시와 함께 ‘에코아일랜드’ 조성 계획을 세우고, 250여 개 섬 가운데 연대도를 사업 적합지로 선정했다. 그런데 주민들이 사업에 반대하고 나섰다. 살아온 방식대로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주민의 34%는 70살이 넘은 어르신들이었다. 계속 주민들을 만나 설득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에코아일랜드 추진위가 결성되는데, 구성원 16명 중 주민이 6명, 공무원은 1명뿐이었다. 푸른통영21 주민들이 마을을 이끌어나갈 수 있도록 역량 강화 교육 등을 진행했다.

에너지는 곧 ‘복지’다

윤미숙 푸른통영21 사무국장은 연대도 사업 진행 과정이 독립운동을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협조가 필요한 한전에선 대놓고 태양광발전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2010년 태양광발전 시설 공사를 앞두고 ‘전봇대의 난’ 같은 황당한 사건을 겪기도 했다. 태양광으로 생산한 전기를 각 가구에 전달하려면 송전선로가 필요한데, 이를 빌미로 전봇대를 무려 28개나 설치하겠다는 최종 설계가 나온 것이다. 사업 취지와 맞지 않았고, 주민들도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최소한의 전봇대만 설치하고 나머지는 모두 지하에 묻는 것으로 설계가 변경됐다. 윤 국장이 보기에 에너지는 곧 ‘복지’다. “옛날엔 끼니를 굶었지만 지금은 다들 밥은 먹는다. 그러나 기름 한 방울 사용하지 않고 전기장판으로 추위를 견디는 이들이 시골엔 굉장히 많다. 신재생에너지 생산 설비는 농어촌 사회 복지를 위한 기반시설이라고 본다.”

연대도(경남)=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부안(전북)=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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