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물었다. “바다 한가운데 이런 걸 왜 짓는 거야?”
엄마가 답했다. “욕심이 많은 사람들 때문에 그런 거야.”
아이가 다시 말했다. “지금이라도 멈출 수 있잖아. 저런 거 안 해도 살 수 있잖아.”
차마 꺼내지 못한 말이 입안에 맴돌았다. ‘우리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아이의 손을 잡은 엄마가 해변에 섰다. 가는 모래가 펼쳐져 있어야 할 해변에 진흙도, 모래도 아닌 공사장 흙 같은 것이 들어차 있었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포클레인이 보였고, 오른쪽엔 수백 개의 테트라포드가 놓여 있었다. 한때 푸른빛을 띠었던 바다는 파도가 칠 때마다 검은색의 펄을 토해냈다. 바다 위엔 기다란 띠 형태의 구조물이 보였다. 수없이 많은 기계가 떠 있었다. 아이는 그 기계가 이해되지 않았다.
2024년 4월20일 강원도 삼척 맹방해변은 황량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해변에 150여 명이 모였다. 기후위기비상행동 등에서 삼척 석탄화력발전소 중단 집회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마이크를 잡은 성원기 강원대 명예교수(삼척석탄화력반대투쟁위원회 공동대표)가 “함께 끄자”고 선창했다. 나머지 사람들이 “삼척 화력”이라고 외쳤다. 이들 뒤로 보이는 시설은 삼척 석탄화력발전소를 위한 항만이다. 수입한 석탄을 바다 위에서 내려 내륙 쪽에 있는 발전소로 옮기기 위해 만들어졌다. 바다 위에서 시작한 컨베이어벨트가 산을 넘어 이어진다. 그 끝에 한국의 마지막 석탄화력발전소, 삼척블루파워가 있다.
‘정치하는엄마들’에서 활동하는 김정덕(45)씨는 아이와 배우자의 손을 잡고 처음 삼척에 왔다. 주말에 아이와 함께 키즈카페를 가거나 나들이하는 남들과 달리 이곳에 온 이유는 기후위기 때문이다. 삼척 석탄화력발전소를 막기 위해 그간 탈석탄법(석탄발전사업의 철회 및 신규 허가 금지를 위한 특별조치법안) 제정 운동 등에 참여했지만 결국 상업 가동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고, 하루빨리 멈추길 바라는 마음으로 참석했어요.” 김씨가 말했다.
서율이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진 것도 벌써 2년 전이다. 기후위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 종종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느냐”고 물었다. 그 다큐멘터리에선 지금 추세라면 지구 온도가 2015년 파리기후협정을 통해 정한 목표인 1.5도를 넘게 되고, 그 시간이 7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저희가 2년 전에 탈석탄법 제정 피켓 시위도 했어요. 그 후로 (아이가) 계속 물어봐요. 석탄발전소가 멈췄냐고. 계속 그렇게 얘기하다 가동을 시작했다고 듣고, 멈추라고 이야기할 건데 같이 가겠느냐 물었어요. 같이 가겠다고 하더라고요.” 엄마는 10살 아이를 박서율 활동가라고 불렀다.
포스코의 자회사인 삼척블루파워는 2019년부터 맹방해변 인근 동양시멘트가 운영하던 석회석 광산이 있던 자리에 2100MW(메가와트) 규모의 석탄화력발전소를 지었다. 1호기는 2023년 10월부터 상업 운전을 시작하려고 했지만, 맹방해변의 항만 공사 과정에 해안침식 문제로 환경부의 공사 중단 요청이 떨어지면서 한 차례 연기했다. 2차 상업 가동 예정일은 2024년 4월19일인데 또다시 5월로 연기됐다. 2호기는 2024년 하반기 가동 예정이다. 이곳이 가동되면 연간 약 1300만t의 온실가스를 배출할 것이라고 환경단체는 보고 있다. 2021년 기준 국가 전체 배출량의 약 2%에 이르는 양이다.
삼척을 제외하고 전국에서 가동 중인 석탄화력발전소는 모두 59기다. 문재인 정부는 점차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지하는 전력수급계획을 세우고 2019년 충남 보령을 시작으로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지해왔지만, 새로 건설되는 석탄화력발전소를 막진 못했다. 2021년 이후 새로 가동된 석탄화력발전소만 5기에 이른다. “처음 이명박 정부 때 (삼척 석탄화력발전소) 계획이 시작됐고, 이후 포스코가 사업권을 따냈어요. 최종 허가는 문재인 정부 때 났어요. 환경영향평가가 그때 통과됐거든요. 문 정부 초기였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한 문제의식이 크지 않았어요. (그래서인지) 당시 환경부가 적극적인 의지를 안 보였던 거죠.” 녹색연합 황인철 기후에너지팀장이 말했다.
한국의 현재 국가온실가스감축(NDC) 목표는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를 줄이는 것이다.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석탄화력발전소를 줄이지 않고는 달성하기 어렵다. 일단 삼척 석탄화력발전소가 가동되면 향후 30년간 온실가스 3억6000만t을 배출하게 된다. 이미 공사를 시작한 민자 발전소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래서 시작한 운동이 김씨도 참여했던 ‘탈석탄법’ 제정운동이었다. 국민 5만 명의 동의를 얻어 입법청원된 이 법안은 현재 건설 중인 석탄발전사업을 중단하고, 이에 따라 손해를 보게 될 사업자 보상과 노동자 지원 등의 내용을 담은 법이다. 이 법안은 2023년 8월 발의됐지만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계류돼 있다.
삼척 시내 삼척블루파워 본사 앞에 사람들이 다시 모였다. 빗줄기가 좀더 굵어졌지만 비옷을 입고, 우산을 쓰고 거리에 앉았다. 청소년기후행동에서 활동하는 김서연(25)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삼척은 과거 시멘트 산업과 탄광에서 생산된 석탄을 수도권에 보내며 발전했습니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엘엔지(LNG) 터미널, 석탄발전소, 핵발전소 등 다양한 에너지 시설을 유치했지만 일부 기업의 이익으로만 이어졌습니다. 그러는 사이 인구는 줄고 경제는 침체됐습니다.”
서울에 사는 김씨가 삼척이라는 도시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역시 기후위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환경에 관심이 많던 그는 개인의 실천이 중요하다는 교육을 받고 실천에 옮겼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매년 기후위기는 더 심각해졌다. 2019년 기후파업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청소년기후행동에 합류했다. 개인의 실천보다는 사회 구조적 변화를 위한 일에 뛰어든 것이었다. 지금은 화석연료와 함께 이어져온 삼척의 역사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 중이다.
“삼척에 지어지고 있는 삼척블루파워는 정의로운 전환에 실패한 지역사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기후위기 시대에도 다시 석탄 발전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발전소 하나 지어준다고 지역이 살아나는 건 그냥 생색입니다. 언제까지고 이런 허술한 변명을 들어줘서는 안 됩니다.”
삼척 시민들도 공감을 표했다. 평생 맹방해변 인근에서 살아온 김덕년(62)씨는 “(삼척 석탄화력발전소 가동으로) 주민들이 받는 경제적 도움은 아무것도 없다. 결국 도움이 되는 건 인근의 시멘트나 석회석 공장에 들어가는 전기뿐”이라며 “지금까지 정부가 석탄화력 용사들이라며 삼척을 추켜세웠지만, 결국 남은 건 환경파괴밖에 없다”고 말했다.
석탄화력발전소가 본격 가동을 시작하기도 전이지만 환경파괴는 현재진행형이다. 곱고 부드러운 모래가 10리에 걸쳐 펼쳐진다 해서 ‘명사십리’라는 이름이 붙은 맹방해변에서 본격적으로 해안침식이 시작된 것이다. 성원기 교수는 “항만공사를 위해 케이슨 제작장을 만들었는데, 그 제작장을 운용하기 위해 바다에 제방을 쌓으면서 침식이 일어났다”고 했다. 실제 환경부에서 해안침식을 막기 위해 공사를 잠시 중단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시공사에선 모래사장을 다시 채우는 ‘양빈 작업’을 진행했지만, 주민들과 환경단체에선 이전에 있던 고운 모래가 아닌 외양 방파제 해저에 쌓인 퇴적토를 가져와 쏟아놨다고 주장한다. “처음엔 냄새도 엄청났어요. 방파제가 있는 곳이 오십천 하구가 합류하는 지점이에요. 거길 막아놨으니 하천에서 내려온 것들이 쌓인 거죠. 그걸 퍼다 모래사장에 뒀는데 또 침식이 일어나고, 다시 그걸 쌓고 반복한 거예요.”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맹방해변 바닷물은 점점 어두운색으로 물들었다. 발에 밟힐 정도로 많던 명주조개도 점차 씨가 말랐다.
아이와 함께 집회에 참여한 정치하는엄마들의 장하나 전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기후위기 이야기를 어떻게 많은 사람에게 잘 전달하고 설득할까 고민을 했어요. 사실은 저도 먼 미래라고만 여겼는데, 최근에 장을 보면서 제 생애 이렇게 고물가인 적이 있었나 생각이 들었어요. 호박이며 알배추, 집지를 못했어요. 쳐다보지도 않았고요. 저는 이게 미래가 될 줄 알았던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당장 밥해 먹는 건 오늘이잖아요. 오늘의 위기예요.” 이들은 삼척블루파워 앞에서 집회를 마친 뒤 삼척 시내를 돌며 석탄화력발전소 반대를 외쳤다. 비를 맞으며 1시간 내내 어른들과 함께 걷는 아이들도 많았다.
사흘 뒤, 서울 종로구 재동에 이들이 다시 모였다. 또다시 기후위기 때문이다. 4월23일 오후 헌법재판소 앞엔 갓난아이부터 환경단체와 시민단체 활동가, 정당 당직자들과 변호사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이제는 위기가 아닌 판결의 시간’이라는 펼침막 뒤엔 나흘 전 만났던 김정덕씨와 장하나 전 의원, 청소년기후행동의 김서연 활동가 등이 대부분 있었다.
이날 헌재에선 기후소송 공개변론이 열렸다. 그간 헌재에는 2020년부터 4차례에 걸쳐 기후 관련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탄소중립기본법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목표 등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이 위헌이라는 취지다. 2020년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19명이 처음으로 헌법소원을 냈고 2021~2023년 잇따라 시민들이 참여한 기후소송이 제기됐다. 2022년엔 영유아 62명이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다.
2022년 영유아 헌법소원에 참여한 초등학교 3학년 김한나 어린이 활동가가 마이크를 잡았다. “기후소송 이후에도 삼척에 석탄발전소를 세웠습니다. 삼척블루파워에선 어마어마한 온실가스가 나와요. 1년 동안 플라스틱 컵과 유리병을 만드는 데 나오는 온실가스의 80배가 석탄발전소 하나에서 나옵니다. 이 발전소를 멈춰달라고 외쳐도 왜 어른들은 듣지도 않나요?”
고등학생 시절이던 2020년 청소년기후행동 소속으로 헌법소원에 참여한 김서경(23)씨는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리기엔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서 주류가 되기까지 기다리다간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당장 청소년이라도 할 수 있는 활동을 하자, 사실 청소년이 할 수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들이잖아요. 처음엔 시위만 해도 세상이 바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전혀 안 바뀌더라고요. 이런 활동만으로는 지금 기후위기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았어요. (정부에) 강제성을 부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 헌법소원까지 하게 된 거예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에서 기후위기 대응의 적정성을 묻는 헌법소원이 제기된 것도, 공개변론이 열리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헌재에서 공개변론을 여는 것 자체도 이례적인 일이다.
이날 공개변론에서는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을 목표로 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과 시행령, 기본계획 등이 헌법상 환경권과 생명권 등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놓고 양측이 맞섰다. 청구인 쪽은 정부가 정한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파리기후협약이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보고서가 정한 탄소예산 관점에서도 불충분하다고 주장했다. 또 미국이나 유럽연합(EU) 등 우리와 온실가스 배출량이 비슷한 수준의 주요 국가들보다 감축률이 낮다고 설명했다. 반면 정부 쪽은 파리협약이 우리 헌법적 가치보다 상위에 있지 않고, 나라가 처한 사정에 따라 목표를 설정하는 게 맞다고 반박했다. 또 한국이 제조업 비중이 높아 즉각적 감축이 힘들고 나라마다 산업구조와 감축을 시작한 시기 등이 다르기 때문에 실정에 맞게 감축 기준을 정해야 한다고 맞섰다.
이종석 헌재소장은 공개변론을 시작하며 “최근 유럽인권재판소가 스위스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책이 불충분해 국민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결정을 내려 국내 언론에 크게 보도되면서 국민적 관심도 높아졌다”며 “재판부도 사건의 중요성과 국민적 관심을 인식해 충실히 심리하겠다”고 설명했다. 이 소장이 언급한 사건은 2020년 64살 이상의 스위스 여성들로 구성된 ‘기후보호를 위한 여성 시니어 클럽’이 스위스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을 말한다. 이 사건에서 유럽인권재판소는 스위스가 온실가스 배출 억제 등 기후정책을 소홀히 해 고령자 인권을 침해했다고 판결했다. 한국과 동일하게 헌법재판소를 운영하는 독일에선 2021년 연방헌법재판소에서 독일 정부의 기후보호법 감축목표가 헌법에 위반한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기후소송 공동대리인단 윤세종 변호사는 공개변론을 마친 뒤 “재판부에서 이 사건을 대단히 상세하게 검토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국제협정에 관한 다음 변론기일의 심리를 통해 긍정적인 결론에 이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헌재는 공개변론을 한 차례 더 열고 참고인들의 의견을 들은 뒤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헌법재판소 홈페이지에서 배웠어요. 헌법재판이란 건 잘못된 법을 고쳐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죠. 헌법이 정해둔 권리를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게 헌법재판소 재판관님들께서 우리의 기본권을 지켜주세요. 그것이 바로 재판관님들이 하시는 일이잖아요.” 김한나 활동가의 말이다.
삼척·서울=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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