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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민만 시민이고 여긴…”



두 번의 준공일 연기로 안전성 논란 불붙은 경주 방폐장 공사… 연약 지반과 지하수 침수 우려에도 이미 방폐물 경주로
등록 2012-12-07 22:31 수정 2020-05-03 04:27

농사만 알던 주민들이 머리에 띠를 둘렀다. 시내 한복판을 막아선 전경버스가 불타고, 고속도로가 시위대로 가득 찼다. ‘매향노’라고 주민들에게 손가락질받던 군수는 주먹질까지 당했다. 시위에 나선 거리의 주민을 향해 경찰이 방패를 휘둘렀고, 경찰도 성난 주민에게 맞았다.

경북시 경주 양북면 봉길리에 있는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공사 현장의 3번 저장 공간(사일로). 완공되면50m 깊이로 파낸 저장 공간 안에 폐기물을 담은 뒤 봉인 작업을 하게 된다. 김명진 기자

경북시 경주 양북면 봉길리에 있는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공사 현장의 3번 저장 공간(사일로). 완공되면50m 깊이로 파낸 저장 공간 안에 폐기물을 담은 뒤 봉인 작업을 하게 된다. 김명진 기자

“전체 공정 91% 정도 진행”

2003년 여름, 전북 부안의 민심은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타올랐다. 2003년의 부안을 1980년 광주에 빗대는 이도 있었다. 당시 김종규 부안군수는 주민 동의 없이 부안 위도에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핵폐기장·이하 방폐장) 유치를 추진했다. 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이어진 ‘부안 사태’는 1년 뒤 정부가 건설 계획 포기를 선언해 일단락됐다. 9번째 방폐장 건설 계획 백지화였다.

20년 가까이 표류하던 방폐장 사업 부지는 우여곡절 끝에 2005년 11월 경북 경주로 낙점됐다. 정부는 전북 군산과 경북 포항·경주·영덕 등 4곳의 후보지에서 방폐장 유치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를 동시에 진행해서 가장 높은 찬성률을 보인 경주를 최종 건설지로 선정했다. 경주에는 특별지원금 3천억원과 매해 평균 85억원 규모의 방사성폐기물 반입 수수료,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의 본사 이전 등 ‘인센티브’를 약속했다. 한수원은 2008년 펴낸 자료집 에서 “경주가 방폐장을 유치함으로써 한국에서는 과학에 근거하지 않은 맹목적인 반원전은 더 이상 일어나기 어려워졌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한수원의 평가와 달리, 경주에서는 방폐장의 안전성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방폐장 공사 현장을 찾은 11월26일 오전, 경주 양북면 봉길리 방폐장 입구 해변에는 북소리가 울려퍼졌다. 유명 관광지인 문무대왕릉과 맞닿아 있어 ‘신기’가 세다고 알려진 이곳 해변에서는 돗자리를 펴고 굿판이 펼쳐지는 장면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곳은 신기뿐만 아니라 ‘방사능’도 세다. 방폐장 공사 현장과 맞닿은 해변을 따라 남쪽으로 신월성 1호기와 월성 1~4호기 등 모두 5기의 핵발전소가 나란히 맞붙어 있기 때문이다. 방폐장 부지도 원래 신월성 3·4호기의 건설 예정지였다. 방폐장 공사를 시작하자 양북면 봉길리와 월성 원전 입구가 있는 양남면 나아리를 잇는 길이 막히고, 그 대신 마을을 돌아가는 긴 터널이 뚫렸다.

바리케이드로 겹겹이 막아놓은 방폐장 출입구를 지나 고개를 넘으면 방폐장 공사 현장이 나온다. 현장은 고속도로 터널 공사장을 닮았다. 왼쪽에는 ‘운영 동굴’, 오른쪽에는 ‘건설 동굴’이 있다. 현재 공사를 진행하는 곳은 운영 동굴이다. 앞서 한수원이 진행하던 방폐장 사업은 공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며 지식경제부 산하기관인 한국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이하 공단)이 맡고 있다. 공단은 이날 제한 구역인 건설 현장을 에 어렵사리 공개했다.

한 설계업체 “안정성 확보 불가능”

차량으로 약 1.6km의 내리막길을 내려가니, 해수면 기준 지하 80m 깊이에 다다랐다. 터널 곳곳에서는 흰색 방수제를 설치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현재 지하시설 공사만 88% 진행됐습니다. 전체 공정으로는 91% 정도 됐고요.” 공단 관계자는 “콘크리트를 입히는 작업을 마친 뒤에도 크레인 설치와 시운전 등의 과정이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터널의 끝 양옆에는 모두 6곳의 저장 공간(사일로)이 있다. 터널 안에서 50m 깊이로 파낸 저장고에 핵연료 같은 방사능이 센 이른바 고준위폐기물을 뺀 방사능에 노출된 장갑·작업복 등 각종 오염 물건을 보관한다. 폐기물이 다 차면 봉인 작업을 한다. 공단은 현재 공사 중인 운영 동굴에는 중·저준위 폐기물 10만 드럼을 보관할 수 있으며, 건설 동굴 쪽으로 저장 공간을 만들면 이 일대에 모두 80만 드럼을 보관할 수 있다고 했다. 작업자들은 3번 사일로 한가운데에 세운 철골 지지대를 오르내리며 방수제 설치 작업을 하고 있었다.

노란색 미니버스가 터널을 돌며 작업자들을 태우기 시작했다. 다른 작업을 하려면 작업자들이 모두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했다. 공단 관계자는 “공사 기간을 맞추려고 현장이 빡빡한 일정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원래 방폐장 공사는 2010년 6월 완공이 목표였다. 그러나 2009년 6월 공단은 “진입 동굴의 암질 등급이 예상보다 낮아 파들어가는 속도가 느려지고 보강 작업을 해야 한다”며 준공 목표를 2012년 12월로 늦췄다. 사전조사에서는 이 지역이 화강암대였으나 시공 과정에서 암반이 갈라지는 현상 등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준공 목표는 올해 1월에도 한 차례 더 미뤄졌다. 공단은 “1·2번 사일로의 공사 기간이 7개월 더 걸리고, 지하수 발생량 증가로 진입 동굴 굴착 공사에 5개월이 더 드는 등 18개월의 연장이 불가피하다”며 2014년 6월로 준공일을 미뤘다.

그러나 두 번의 준공일 연기는 ‘안전성 논란’에 불을 지폈다. 경주 지역의 환경단체 등은 “정부가 오랜 기간 사전조사를 해 방폐장을 세워도 안전하다고 했는데, 이제 와서 공사 기간을 연장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안전성 확보 대책을 요구했다. 안전성에 의혹을 제기할 만한 정황도 제기됐다. 2010년 8월, 한 설계업체가 방폐장 사업 발주처인 한국전력기술(주)에 제출한 보고서에는 “현재 방폐장 부지에 대한 암반 분석결과 부지의 안정성 확보가 불가능하므로 사일로의 규모와 형태 등 ‘기본계획’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불가피하다”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당시 공단은 “해당 업체가 종합적인 자료를 보고 판단해 쓴 보고서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연약한 지반 탓에 공사 기간이 미뤄지자, 지하수와 바닷물이 스며들 가능성도 제기됐다. 2010년 경주시의원·시민대표·공단이 공동으로 벌인 안전성 검사 결과 보고서에는 하루 1천~3500t의 지하수가 나오고 해수가 침수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경주 지역 환경단체들은 “완공된다 하더라도 사일로가 물속에 잠겨 주변 지역의 식수원인 지하수를 오염시킬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공단은 “처분용기, 콘크리트 사일로, 뒤채움재 등 공학적인 방벽 등을 설치해서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방폐장 입구 모습. 완공되면 왼쪽 ‘운영 동굴’을 통해 폐기물을 운반하게 된다(위). 방폐장 공사 현장 안에 살고 있는 봉길리 이장 최병천씨가 공사 현장 너머로 보이는 신월성 1·2호기를 가리키고 있다. 김명진 기자

방폐장 입구 모습. 완공되면 왼쪽 ‘운영 동굴’을 통해 폐기물을 운반하게 된다(위). 방폐장 공사 현장 안에 살고 있는 봉길리 이장 최병천씨가 공사 현장 너머로 보이는 신월성 1·2호기를 가리키고 있다. 김명진 기자

“신뢰가 없는 게 가장 큰 문제”

이처럼 안전성을 둘러싸고 진실게임이 끊이지 않는 것은 공단과 지역 주민, 환경단체 사이에 ‘신뢰’가 깨진 탓이 크다. 지역 환경단체는 “공단이 주도하는 폐쇄적인 안전성 검증 작업을 믿기 힘들며, 안전성에 의혹이 인 사안에 대해 설득하기보다는 논리를 끼워맞추기 급급하다”고 비판한다.

방폐장을 바라보는 주변 주민들의 시선도 싸늘하다. 최근에는 방폐장 특별지원금을 둘러싸고 경주 시내와 방폐장이 있는 동경주 지역 사이의 갈등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경주 시내와 차량으로 1시간 가까이 떨어진 방폐장 주변에서는 방폐장 유치 효과가 생각보다 높지 않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방폐장 부지에 살던 봉길리 주민들과 공단 사이의 갈등도 남아 있다. 봉길리 이장을 맡고 있는 최병천(55)씨의 경우가 그렇다. 그는 방폐장 공사 현장 안에 있는 아직 철거되지 않은 집에서 생활한다. 방폐장 공사가 시작되기 전 이 근처에는 봉길리 마을 주민 20여 가구가 살았다. 그는 감포읍으로 이사한 가족과 떨어져 공사 현장 입구 왼편에 덩그러니 남은 이곳에서 잠을 자고 생활한다. 그는 “삶의 터전을 잃은 봉길리 주민들에게 정부가 턱없는 보상금 말고 이주단지를 제공해야 한다”며 집단이주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다. “가장 큰 문제가 뭔지 아십니꺼? 바로 신뢰가 없다는 겁니더. 공단이 우리 동네로 오면서 거짓말 엄청 많이 했어요. 이주민 대책도 없고, 주민들한테 해준다는 사업도 마침표를 찍은 게 하나도 없습니다.”

이 와중에 방사성폐기물은 이미 경주로 향하고 있다. 2010년 12월 경북 울진 원전에서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1천 드럼이 경주 방폐장 지상 인수저장시설로 옮겨왔다. 공사 현장 부근에 있는 지상 건물인 인수저장시설에는 완공 이전까지 폐기물을 보관한다. 11월13일에는 서울 노원구의 아스팔트 폐기물이 들어왔다. 지난해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뒤, 국내에서 방사능 물질이 검출돼 논란이 일었던 그 아스팔트다. 최씨는 이를 두고 “서울 시민들만 시민이고 여기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니냐”고 되묻는다. 그러나 공단 쪽은 “인수저장시설은 원전 내부에 있는 폐기물 저장고보다 안전하며 법적으로도 하자가 없다”고 말했다.

동굴을 뚫고 땅을 파서 만드는 방폐장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50년 전 원전이 처음 등장했을 때, 미국·영국 등 대부분의 원전 국가는 폐기물을 바다에 내던졌다. 핵폐기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낮고 위험성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탓이다. 1994년에 이르러서야 ‘런던협약’에서 정한 처리 기준에 따른 처리시설의 중요성이 대두됐다. 안전성에 대한 경험은 여전히 부족하다. 경주 방폐장의 안전성 여부에 전문가들과 주민들이 민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세계 유일 고준위 폐기장 추진

그러나 국내에서는 아직 처리 정책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용후 핵연료 등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시설을 만들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교육과학기술부는 239억원을 들여 한국원자력연구원에 ‘고준위 폐기물 장기관리 기술개발’ 연구용역을 맡겨, 고준위 폐기물 처리 연구용 후보지로 전북 부안, 부산 기장, 강원 양양, 충남 서천이 언급되기도 했다. 중·저준위 방폐장도 20년이 걸려 추진했지만 여전히 불안하고 파열음을 내고 있는데 말이다. 결국 불안감에 시달리는 건 오롯이 주민들의 몫인 걸까.

경주=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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