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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 원전 끼고 사는 마음을 아는겨?



노후 원전 고리 1호기·월성 1호기 인접 마을 주민들, 만성이 된 불안과 싸우는 목소리를 듣다…

원전 직원보다 원자로에 가까이 살며 생업의 터전 어장도 잃은 이들의 쇳소리 섞인 하소연
등록 2012-11-30 11:25 수정 2020-05-03 04:27

‘후쿠시마 쇼크’는 생각보다 컸다. ‘원자력 선진국’을 자처해온 나라들이 원전에 대한 미련을 속속 거둬들였다. 20~30년 안에 원전 의존도를 ‘0’으로 떨어뜨리겠다는 탈핵 로드맵도 곳곳에서 구체화했다. 한국은 예외였다. 어떤 불안과 불확실성도 ‘우리는 안전하다’를 주문처럼 되뇌는 불통 정권의 무모함을 흔들어놓지 못했다. 고리와 월성, 울진, 영광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르는데도 요지부동이었다. 시민의 합리적 의심을 확률이론의 폭력으로 억누르는 전도된 과학주의는 4년 전 미국 쇠고기 수입 파동 때의 오만함을 무섭도록 빼닮았다. 패거리의 확실한 이익을 공동체 전체의 불확실한 위험과 교환하는 섬뜩함에선 수치심을 모르는 외눈박이 권력의 야만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인류의 가장 위험한 발명품이라는 원전이 정권에 의해 ‘저탄소 녹색성장의 핵심 동력’이자 ‘수출 효자품목’으로 떠받들어지는 기막힌 현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은 원전의 단계적 가동 중단과 에너지 정책의 근본적 전환을 촉구하는 시민사회의 움직임에 공감하며 4회에 걸쳐 ‘탈핵’ 시리즈 기획을 싣는다. 첫 순서에서는 노후 원전의 현황과 문제점을 짚고, 재앙과 파국의 길로 치달아가는 이 정권의 원전 정책을 고발한다. _편집자

“인터뷰할라꼬? 우린 그런 거 안 한다.” 할머니의 첫 반응이 싸늘했다. “너그한테 말한다꼬 달라지나? 치아라 마.” 할아버지 말투에선 일말의 적의마저 느껴졌다. 잠자코 지켜보기로 했다. 2t이 갓 넘을 법한 소형 유자망 어선이었다. 할머니가 정박된 배 위로 그물을 차곡차곡 쌓아올리면 할아버지는 고리 모양의 그물추를 긴 뱃전의 쇠막대기에 끼워넣는 단순 작업을 5분 남짓 이어갔다. 우두커니 서 있는 기자가 안쓰러웠던지, 부러 들으라는 듯 노부부끼리 짧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11월20일 부산 기장군 장안읍 길천마을 해안가에서 바라 본 고리 원자력발전소의 모습. 고리 1호기는 국내에서 가장 먼저 건설된 원전이기도 하다. 한겨레 정용일 기자

11월20일 부산 기장군 장안읍 길천마을 해안가에서 바라 본 고리 원자력발전소의 모습. 고리 1호기는 국내에서 가장 먼저 건설된 원전이기도 하다. 한겨레 정용일 기자

후쿠시마처럼 원자로 녹을 뻔한

“점마들이 우리한테 해준 기 머 있나.” “신문사다 방송사다 왔다 가도 달라지는 거 없다.” “소련 체르노빌 안 봤나? 원자력 터지면 다 디지뿐다(죽는다).” 이따금 정부와 원전 당국을 겨냥한 듯한 거친 육두문자가 튀어나오기도 했다. “어장 다 망치(망쳐)놓고. 쌔리직일(때려죽일) 놈들.” 그물에 얽힌 꽃게 한 마리를 할머니가 신경질적으로 잡아떼더니 냅다 배 밖으로 집어던졌다. “잡것, 잽히라는 삼치는 안 잽히고.”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게딱지 뒤편으로 고리 원전 1·2호기의 콘크리트돔이 잡힐 듯 시야에 들어왔다.

맞은편 월내 방파제에선 숭어낚시가 한창이었다. 울산에서 왔다는 정아무개(47)씨가 다가서는 기자의 행색을 훑더니 먼저 말을 걸었다. “원전 취재 왔나 보죠? 사실 난 불안하긴 한데 만성이 됐어요. 울산 사람들은 고리 것이 터지나, 월성 게 터지나 매한가지거든요.” 안정적인 에너지 수급을 위해 원자력발전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던 그도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뒤로는 원전 반대론으로 기울었다고 했다. “고리든 월성이든,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연장이든 중단이든 결정 나지 않겠어요?”

11월20일 부산 기장군 장안읍 고리 원전 주변에서 만난 주민들은 대체로 원자력발전에 부정적이었다. 국내 최고령 원전인 고리 1호기의 안전성을 둘러싸고 시민단체와 원자력 당국 간 논란이 가열돼온 탓이었다. 고리 1호기는 1978년 상업 운전에 들어가 2007년 설계수명 30년이 만료됐다. 하지만 당국은 ‘전력난’을 이유로 주민과 환경단체의 폐쇄 요구를 물리쳤다. 부실 공방이 일었던 연장 심사를 거쳐 원전 수명을 10년 더 늘린 것이다.

부산 기장군 장안읍 길천마을 가로수에 고리 1호기 가동 중단을 촉구하는 리본이 걸려 있다. 한겨레 정용일 기자

부산 기장군 장안읍 길천마을 가로수에 고리 1호기 가동 중단을 촉구하는 리본이 걸려 있다. 한겨레 정용일 기자

최근 논란의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 2월9일 발생한 정전 사고(블랙 아웃)였다. 정비 도중 발전기의 보호계전기를 조작하다 12분간 전력 공급이 중단됐다. 원자로를 냉각하는 용수 공급이 끊겨 후쿠시마처럼 원자로가 녹아내릴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사고 사실을 한 달가량 숨기다 3월에야 원자력안전위원회에 보고했다. 가뜩이나 고리 1호기는 국내 전체 원전 고장·사고의 20%가 집중될 만큼 ‘고물 원전’으로 찍혀 있던 터였다.

5개월 동안 가동을 중단했다 8월 초 재개하는 과정에서도 불신을 자초했다. 당시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은 “균열 위험이 제기된 원자로 압력용기에 대해 주민이 추천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TF(태스크포스)가 심도 있는 조사를 벌여 ‘건전성이 확보됐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TF 조사는 현장 실사가 아닌, 2007년 수명 연장을 앞두고 한국원자력연구원이 낸 ‘안전성 평가 보고서’의 적절성을 서류상으로 검토하는 데 그쳐, 노후화에 따른 사고 우려를 잠재우기엔 역부족이란 비판이 뒤따랐다.


“어장 다 망치(망쳐)놓고. 쌔리직일(때려죽일) 놈들.” 그물에 얽힌 꽃게 한 마리를 할머니가 신경질적으로 잡아떼더니 냅다 배 밖으로 집어던졌다. “잡것, 잽히라는 삼치는 안 잽히고.”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게딱지 뒤편으로 고리 원전 1·2호기의 콘크리트돔이 잡힐 듯 시야에 들어왔다.

충격실험이 준 충격 가시지 않아

고리원전민간환경감시위원으로 활동해온 박갑용씨도 이런 지적을 수긍했다. 고리에 살다 7살 때 살던 집이 철거돼 길천리로 이주해온 그는 올해 초까지 이 마을 이장을 지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원자로 내부의 금속시편을 꺼내 공개적으로 테스트하는 거였죠. 정부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티니 할 수 없이 자료 검토만 하게 된 겁니다.”

시편은 원자로의 압력용기와 동일한 재질·두께로 제작된 금속조각으로, 원자로를 만들 때 내부에 여러 개를 집어넣고 일정 기간이 흐른 뒤 하나씩 꺼내 고열과 고압, 방사능 노출에 따른 손상 여부를 측정하려는 용도로 사용된다. 고리 1호기에는 시편이 1개 남아 있는데, 2014년 꺼내 안전성을 시험하게 된다. 2007년 수명 연장 심사를 앞두고 벌인 충격실험에선 시편이 깨져 원자로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으나 당국은 더 정밀한 검사 방법이라며 ‘비충격실험’을 통해 압력용기의 내구성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박씨의 안내로 길천리 노인정을 찾았다. 고리 1호기가 만들어질 당시 상황을 생생히 기억하는 주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길천마을에서만 60년 넘게 살았다는 이재연(80)씨가 입을 열었다. “전기 맹그는 공장이라 카데. 생기면 좋아진다 캐서 그런 줄만 알았지. 발전소 지으면서 여그 할매들 농사 그만두고 전부 가서 일했어. 구덩이를 크게 파더니 솔로 닦아내고 공구리(콘크리트)를 들이붓더라고. 한칸한칸 (원자로돔이) 올라가는디 대단했지.”

이씨는 1호기가 완공된 뒤에도 10년 남짓 더 발전소를 나갔다. “메루치(멸치)도 안 잽히고, 운단(성게알)도 안 나는디 우짜겠노. 하는 수 없이 저기 나가 사무실 청소 같은 거를 했지.” 발전소에서 일하며 아들 둘, 딸 하나를 교육한 이씨였지만, 원전에 대한 생각은 극히 부정적이었다. “원자력 없었으모 더 잘살았을 기라. 옛날에는 배 두 척이 그물 싣고 나가 메루치 떼 몰아오면 육지에서 스무 명쯤 달라붙어 그물을 당기는 기라. 그라모 그물 가득 메루치가 바글바글했지. 지금은 배 타고 나가야 겨우 한 소쿠리 떠온다.”

듣고 있던 또 다른 80대 여성이 끼어들었다. “우리들 몸 아픈 기는 우짜고. 무릎·어깨 안 아픈 디가 없다.” 이씨도 거들었다. “저그 철탑 세워논 거 봐라. 사방으로 고압전기 흘러다니지, 원자로에서는 또 뭐가 흘러나오는지 어찌 아노? 일본 발전소 터진 뒤로는 가심(가슴)이 벌렁벌렁한다. 여그는 일본보다 (발전소가) 더 가깝다. 을매나 불안하겠나. 코앞이다.”

마을에서 원자로돔까지, 700m
원전에서 반경 30km 직접영향권에 거주하는 주민(체르노빌 사고지역 통제구역 및 후쿠시마 주민 소개 범위), 자료 : 환경운동연합 환경보건시민센터

원전에서 반경 30km 직접영향권에 거주하는 주민(체르노빌 사고지역 통제구역 및 후쿠시마 주민 소개 범위), 자료 : 환경운동연합 환경보건시민센터

위성지도를 통해 확인해본 마을과 고리 1호기 원자로돔의 거리는 가장 가까운 곳이 700m 정도밖에 안 됐다. 원전 직원 사택과 원자로의 거리가 3km 정도 이격돼 있는 것과도 묘한 대조를 이뤘다. 정부와 한수원이 길천마을 920가구의 집단이주 요청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게 된 것도 이런 저간의 사정 때문이라고 했다. 박갑용씨는 “원자로 주변에는 제한구역경계거리(EAB)를 두게 돼 있는데, 고리 1호기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사고가 나면 원전 직원이나 우리나 다를 게 없다”고 했다.

현재 길천마을에선 한수원과 기장군이 부산대 핵과학연구소에 의뢰해 ‘이주방안 마련을 위한 용역조사’를 진행 중이다. 마을에서 만난 조사팀 관계자는 “모든 세대를 상대로 전수 설문을 받은 뒤 100여 명에 대한 심층면접을 거쳐 내년 상반기 최종 보고서를 낼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주민들 대부분 원전 때문에 재산 피해를 입었다는 의식이 강하고, 노령층 다수는 신체적 불편도 원전 탓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물론 고리 원전 주변에 사는 모든 주민이 불안을 호소하는 것은 아니었다. 인근 월내리에서 밥집을 하는 김아무개(52)씨는 담담했다. “하나도 안 불안해요. 여가 위험하믄 원전서는 어째 일한답니까? 집값 안 올라, 원전 땜에 공장 안 들어오니 공기 맑고 물 좋아. 외지서 놀러온 사람들은 불안해서 어째 사냐 물어오는데, 저거 터지면 우리만 죽는답니까?” 이런 김씨의 태도는 꾸미거나 과장한 것이라기보다, 오랜 기간 속절없는 위험과 함께 살아가며 체득한 생존술에 가까워 보였다.

같은 시각 고리 원전에서 북동쪽으로 45km 남짓 떨어진 경북 경주시 양남면 읍천리 포구에는 관광객을 실은 차량이 심심찮게 들어왔다. 경주 시내에서 토함산을 굽이돌아 승용차로 1시간 정도 걸리는 이곳에는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이 있다. 남쪽 하서항까지 이어진 바닷가 절벽길을 산책하는 코스로 지난여름 개통됐다.

파도소리길이 시작하는 읍천 방파제에 올라 북쪽 해안을 바라봤다. 남쪽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굽은 해안선을 따라 거대한 돔형 콘크리트 구조물이 빽빽하게 들어선 그곳은 국내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월성 원자력발전소(월성 원전)다. 거기서 더 북쪽으로 구릉을 넘으면 ‘대왕암’으로 불리는 문무대왕릉이 나온다.

월성 원전에는 1982년 완공된 월성 1호기를 시작으로 모두 5기의 원전이 들어서 있다. 내년 1월 신월성 2호기가 완공되면 6기가 된다. 월성 원전이 자리잡은 곳은 원래 수애마을이 있던 자리다. 원전이 들어서자 마을 사람들은 고향땅을 내주고 양남면 나아리로 옮겨왔다. 원전을 품고 있는 나아리 주민들의 삶 역시 원전과는 떼려야 뗄 수 없다. 주민 대부분이 외지에서 들어온 원전 종사자들을 상대로 장사를 한다. 마을 입구의 원전 홍보관부터 큰길을 따라 치킨집·빵집·편의점 등이 오밀조밀 들어서 있다. 마을 안쪽에는 월성 원전을 운영하는 한수원 직원 사택이 있다.



“저그 철탑 세워논 거 봐라. 사방으로 고압전기 흘러다니지, 원자로에서는 또 뭐가 흘러나오는지 어찌 아노? 일본 발전소 터진 뒤로는 가심(가슴)이 벌렁벌렁한다. 여그는 일본보다 (발전소가) 더 가깝다. 을매나 불안하겠나? 코앞이다.” -길천마을 주민 이재연씨

“여그는 답이 없다, 이주·철거밖에 없다”

나아리를 찾은 이날은 월성 1호기의 30년 설계수명이 끝나는 날이었다. 그러나 월성 1호기는 10월29일 고장으로 이미 20일 넘게 가동을 중지한 상태였다. 새로 온 직원의 조작 미숙이 원인이었다. 전원을 켜지 못한 월성 1호기는 현재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의 수명 연장 심사를 앞두고 있다. 그러나 월성 1호기가 안전성 확보가 까다로운 가압중수로이며, 세계적으로 연장 운전 사례가 드물다는 지적이 나와 폐쇄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에 있는 월성 원자력발전소 입구의 모습. 10월29일 고장으로 멈춰선 월성 1호기는 11월20일 30년의 설계수명이 끝났다. 한겨레 정용일 기자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에 있는 월성 원자력발전소 입구의 모습. 10월29일 고장으로 멈춰선 월성 1호기는 11월20일 30년의 설계수명이 끝났다. 한겨레 정용일 기자

월성 1호기에 대한 나아리 주민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올 들어 4번이나 벌어진 운행 정지 사고 탓에 불안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도 큰 영향을 끼쳤다. 월성 원전 앞 상가에서 12년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최종림(53)씨 생각도 그렇다. 그는 월성 원전에서 벌어진 사고 내용을 상세히 알고 있었다. “불안해서 살 수 있겠습니까. 발전소도 처음 완공될 때만 반짝 경제가 살고 그랬지, 다 완공되면 별 도움 주는 게 없다 아입니까. 교통이 편리해지니 직원들이 경주·울산 같은 대도시에 가서 돈을 써요. 그러니 경제적으로 마을에 득 될 게 있겠어요? 원전 땜에 마을이 침체된 기라예.” 주민들은 월성 1호기 건설 당시엔 공사 기간 7년 동안 건설 인력이 마을에 머물며 소비를 해 지역 경제 발전에 도움을 줬지만, 최근 완공된 신월성 1호기는 1년6개월 만에 공사가 끝나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수명 연장을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는 아랫마을인 양남면 읍천리도 마찬가지였다. 미역·전복 양식을 주로 하던 이 마을에서는 언제부턴가 양식업을 하지 않는다. 주민들은 월성 원전에서 나온, 약품이 섞인 온배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그는 답 없다. 이주·철거밖에 없다.” 읍천리에서 평생을 산 김만수(75)씨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원전이 들어설 당시에도 누구보다 반대 집회에 열심히 참석했던 그다. “마을 사람들, 머리 아프고 허리 아프고 죄다 아픈 사람투성이다. 그래도 국가가 하는 일을 요 쪼매한 마을이 우찌 이길 수 있겠나?”

원전 직원들의 퇴근 시간이 임박했지만, 나아리 상가거리는 여전히 을씨년스러웠다. “오늘도 직원들한테 저녁에 나가지 말라 지침을 내렸다 카데예.” 한 분식집 주인이 푸념했다. 최근 원전 내 사고가 잦아지자 한수원이 직원들에게 회식 금지령을 내렸다고 그는 귀띔했다. 장사로 생계를 이어가는 다른 주민들도 울상이었다. 원전의 안전 문제와 함께 경기 불황에 따른 불안까지 겹치자 주민들 사이에선 “차라리 삼척·영덕에 들어설 새 원전을 이곳으로 들여오고, 우리를 아예 먼 곳으로 이주시켜달라”는 요구까지 나오는 형편이다.

경주 환경운동연합 등이 11월20일 저녁 경북 경주 시내 KT 지사 앞에서 월성 1호기 설계수명 종료를 기념하는 문화제를 열었다. 한겨레 정용일 기자

경주 환경운동연합 등이 11월20일 저녁 경북 경주 시내 KT 지사 앞에서 월성 1호기 설계수명 종료를 기념하는 문화제를 열었다. 한겨레 정용일 기자

부디 “잘 가라, 월성 1호기”

이날 저녁, 한수원 사무소가 있는 경주 시내 KT 지사 건물 앞에선 경주 환경운동연합 주최로 월성 1호기 설계수명 종료를 기념하는 문화제가 열렸다. 지난 100일간 1호기 수명 연장에 반대하는 릴레이 1인시위에 참여했던 지역 활동가 등 50여 명이 모였다. 참석자들이 입을 모아 구호를 외쳤다. “잘 가라, 월성 1호기.” 그러나 월성 1호기의 운명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2007년 수명 연장 결정으로 36년째 운전 중인 고리 1호기처럼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심폐소생술’을 받아 깨어날지 모른다. 월성 1호기가 영원히 잠들지 않는 한, 원전과 이웃해 살아가는 주민들의 불안은 계속될 것 같다.

글 부산=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경주=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사진 부산·경주=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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