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자 소득세 납부 논의가 법원 판결로 다시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재판장 안철상)는 이 ‘한겨레신문’ 이름으로 국세청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 청구소송에서 “성직자의 최근 2년간 소득세 납부 현황 자료 등을 공개하라”며 지난 8월16일 원고일부승소 판결했다. 이는 성직자 소득세 부과와 관련한 국내 첫 판결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3월 원칙적 과세 방침을 밝히는 등 정부의 태도 변화가 감지되는 상황이라 판결이 더욱 주목된다.
과감하게 국세청에 자료 요구해
판결문을 보면, 국세청과 기획재정부의 ‘직무유기’에 대한 재판부의 비판이 먼저 눈에 띈다. 쟁점은 두 가지였다. 성직자 소득세 관련 정보 공개의 필요성 여부, 국세청이 실제로 성직자 소득세 자료를 갖고 있는지 여부다. 재판부는 첫째 쟁점과 관련해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먼저 거론했다. “사회적으로 종교인에 대하여 소득세를 과세할 것인지 여부에 관하여 많은 논란이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논란과 관련해 국세청은 2006년 4월경 기획재정부(옛 재정경제부)에 종교인에 대한 소득세 과세에 관하여 유권해석을 의뢰하였으나 아직 그 회신은 국세청에 도달하지 아니하고 있다.”
이어 재판부는 성직자 소득세 부과 논의가 정부와 종교계 안에서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판단 근거로 대형 교회 목사 등 고소득 성직자들이 소득세를 납부하지 않는 현실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일부 종교인은 상당한 정도의 보수와 사택, 가족에 대한 지원금, 활동비 등을 제공받고 있음에도 소득세 납부 의무를 전혀 이행하지 아니하여 사회적 비난이 높아지고 정부는 건국 이후 현재까지 종교인에 대하여 소득세를 과세할 것인지 여부조차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한 국민적인 불만과 비판이 증가하고 있으며, 오히려 이 때문에 사회적 모범을 보이고 윤리적·정신적 지도자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종교인에 대한 비난이 증가하고 종교계가 부당한 비난과 오해를 받을 우려도 늘고 있다.” 이런 견해를 근거로 재판부는 이미 자발적으로 소득세를 납부하고 있는 성직자들의 세금 납부 자료를 공개하는 것이 정당하고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국세청은 정보공개 청구 과정, 행정심판에 이어 행정소송 과정에서도 이 요구한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계속 주장했다. 세무정보는 지극히 민감한 개인정보라 평소 사법부는 물론 다른 국가기관이 마음대로 접근할 수 없다. 재판부는 과감하게 국세청에 자료를 요구했다. ‘국세통합시스템’(TIS)과 ‘국세정보관리시스템’(TIMS) 등의 전산시스템이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는지 화면 등을 문서로 출력받아 꼼꼼히 검토했다. 대신 민감한 기밀임을 고려해 이 볼 수 없도록 ‘비공개 정보 검증’ 절차로 진행했다.
이미 종교별로 납세 ‘코드’ 있어
국세청 주장과 달리 자료가 존재할 개연성이 드러났다. 재판부는 전산시스템을 통해 국세청이 개인·법인 인적 사항, 납세 신고 현황, 조사 실적은 물론 체납자 성향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전산시스템에 주민등록번호만 입력하면 개인 소득과 재산 상황을 손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국세청은 종교단체가 사업자등록을 신청할 때 불교(94911), 기독교(94912) 등 종교별로 ‘코드’를 부여해 전산 입력한다. 비법인 종교단체의 경우 사업자등록번호로 ‘89코드’를 부여한다.
재판부는 이런 현실을 근거로 “전산시스템에 기초해 최근 2년간 소득세를 납부한 종교인 납부 현황 자료를 생성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시간적·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발생하지 않는다”며 “종교인의 최근 2년간 소득세 납부 현황 등은 국세청이 보유·관리하고 있을 상당한 개연성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이는 국가기관이 자료를 손쉽게 편집할 수 있다면 사실상 자료가 존재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따른 결론이다.
재판부가 국세청에 공개하라고 지시한 정보는 ‘종교인의 최근 2년간 소득세 납부 현황’과 ‘최근 2년간 국세청에 소득신고한 종교인 가운데 연소득 1억원 이상 종교인 정보’ 등 두 가지다. 성직자 성명, 소속 교회나 절 이름 등 개인정보를 제외하고 소속 종교, 소득신고액, 세율, 납부세액 등 통계정보는 공개돼야 한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재판부는 순복음교회 목사들의 납세 정보 등 이 요구한 나머지 5가지 정보는 사생활 등에 해당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행정법원 조병구 공보판사는 “이 요구한 정보는 모든 종교인의 소득세 자료가 아니라 이미 자발적으로 납부하고 있는 종교인의 납세정보를 요구한 것이라 일부 정당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통신·신문·방송 등 모두 21개 언론사가 이 이끌어낸 이번 재판 결과를 보도했다.
교회와 절의 재정이 투명해지는 효과
이번 판결로 종교계 내부에서 꾸준히 지속돼온 성직자 소득세 납부 운동이 탄력을 받게 됐다. 교회개혁실천연대 최호윤 회계사는 “사적 정보가 아닌 통계자료는 당연히 공개할 의무가 있다”며 “통계자료가 공개되면 지금까지 추상적 논의에 그쳤던 종교인 소득세 논의가 객관적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직자 소득세와 관련해 핵심은 목사, 승려 등의 급여에 부과되는 근로소득세다. 일부 대형 교회 목사가 받는 거액의 강연료 등은 세법상 ‘기타소득’으로 분류되며 역시 과세 대상이다. 천주교는 1994년 주교회의 이후 자발적으로 성직자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하고 있다.
정부가 실제로 성직자에게 소득세를 부과할 경우 교회와 절 등의 재정이 투명해지는 부수 효과도 있다. 국세청이 세금을 거두려면 먼저 성직자의 실제 소득과 종교단체의 재정 상황을 투명하게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대형 교회와 절 등에서 성직자 소득세 부과를 반대해온 속내도 여기 있다. 국세청은 “항소할 계획이며, 1심 판결에 대한 입장은 2심 법정에서 밝히겠다”고 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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