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명을 바꿨다. 당의 상징색도 붉은색으로 갈아치웠다. 경제민주화를 당의 정강정책으로 명시했다. 논란 끝에 그냥 두기로 했지만 정강에서 ‘보수’를 삭제하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런 갖은 몸부림 끝에 새누리당은 4·11 총선에서 대승을 거뒀다. 또다시 당을 벼랑 끝 위기에서 구해낸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대선 가도는 그 어느 때보다 탄탄해 보였다.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았다. 여당의 국회의원이 5·16 군사 쿠데타를 ‘구국의 혁명’ 따위로 미화하고, 측근에 의해 살해된 대통령의 뒤를 이어 군대를 동원해 권력을 찬탈한 5공 세력이 다시 준동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육군사관학교를 방문해 사열을 하고, 국가보훈처가 소유한 골프장에서 호화 골프를 즐겼다. 이 과정에서 공권력은 5·17 쿠데타 ‘반란 수괴’인 그를 밀착 경호했다. 현대사 연구자의 노트에서나 의미 있을 줄 알았던 인물들이 하나의 정치적 실존으로서 현실에 다시 얼굴을 내밀고 있다. 입을 모아 ‘미래’를 이야기하며, 자신이 걸어나온 추악한 과거에 ‘영광’의 이름을 덧칠하고 있다. 이건 퇴행인가, 아니면 차라리 솔직한 고백인가.
‘신군부의 막내’를 국회의장에 내정
군부 세력의 부활은 단순한 레토릭를 넘어선 실체가 되고 있다. 새누리당이 국회의장 후보로 내정한 강창희 의원은 자타가 공인하는 ‘(전두환) 신군부의 막내’다. 역시 친박계로 이번 총선에서 3선에 성공한 새누리당 황진하 의원과는 육사 25기 동기생으로, 두 사람 모두 5공을 탄생시킨 사조직 ‘하나회’ 멤버들이다. 강 의원의 에세이집 를 보면, 그가 전두환 전 대통령과 처음으로 조우한 시점은 19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축구 연습을 하던 육사 생도들에게 어떤 중령이 찾아와 빵 2개씩을 나눠줬다고 한다. 강 의원은 “속에 하얀 크림을 넣은 빵이 입에서 살살 녹았다”고 썼다. 그는 매주 토요일마다 빵을 사왔고, 두 달에 한 번씩 생도들을 서울 청계천에 있는 식당으로 데려가 불고기를 먹였다. 그가 바로 전두환이다. 강 의원은 자연스럽게 하나회의 일원이 됐다.
강 의원이 쿠데타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다. 12·12 쿠데타 당시 그는 육군대학 교수로 경남 진해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러나 크림빵과 불고기의 맛으로 우선 기억되는 사조직 하나회와 전두환 정권에 대한 평가는 우호적일 수밖에 없다. 강 의원은 “하나회는 어느 사회나 조직에 존재하게 마련인 일종의 리딩그룹”이라고 주장했다. “하나회가 처음부터 쿠데타를 일으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고 본다. 다만 박정희 대통령이 전두환이라는 후배를 남달리 신임하며 키웠고, 전두환 대통령에게는 현직 대통령이 시해당하는 10·26이라는 우발적 사건이 권력을 잡을 동기와 일종의 기회를 준 측면이 컸다는 게 나의 시각이다. 5·16과 12·12는 근본적 동기에서 다르다고 생각한다. 나라를 어떻게 만들겠다는 확고한 구상과 계획을 갖고 군사혁명을 일으켰던 박정희 대통령과 달리, 전두환 대통령의 경우는 예상하지 못한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이 계기가 되었다는 게 내 개인적 판단이다.” 5공 실세인 허화평씨의 천거로 정계에 입문한 강창희 의원은 민주정의당 창당 과정에 참여하게 되고, 당 조직국장을 거쳐 11대 국회 전국구 의원으로 배지를 단다. 그리고 이번 총선으로 6선에 성공해 국회의장 후보로 내정됐다.
박근혜 전 위원장의 멘토 그룹을 자처해 파문을 부른 ‘7인회’에도 강창희 의원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를 포함해 김용환 새누리당 상임고문,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안병훈 전 발행인, 김용갑 전 의원,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 현경대 전 의원 등으로 구성된 7인회 멤버들은 모두 5공의 탄생에 기여했거나, 당시 승승장구하던 인물들이다. 좌장 격인 김용환 고문은 유신 시절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과 재무부 장관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는 동서 지간으로, 이번 원내대표 경선에서도 김 고문은 적지 않은 입김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논란이 일자 박 전 위원장은 ‘7인회’의 존재에 대해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반응을 측근을 통해 내놨다. 친박계 인사들은 “1년에 한 번 식사하는 모임일 뿐”이라며 선을 그었다. 앞서 “4·11 총선이 끝난 후에도 박근혜 전 위원장과 모였다”고 밝혔던 김용환 고문은 파문이 일자 “박 전 위원장에게 누를 끼치게 된 점에 대해선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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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 세력의 부활 과정에 색깔론이 빠질 수 없다. 그 중심에는 물론 박근혜 전 위원장이 있다. 통합진보당의 부정 경선 사태와 함께 불거지고 있는 ‘종북 논란’이 발화점이 됐다. 박 전 위원장은 6월1일 “기본적인 국가관을 의심받고 국민들도 불안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되어선 안 된다”며 통합진보당 이석기·김재연 의원의 사퇴를 촉구했다. 박 전 위원장이 밝힌 사퇴의 근거는 이들이 부정 경선 논란의 중심에 서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주사파 국회의원’을 용인해선 안 된다는 논리였다. 그의 ‘국가관’ 발언 이후 새누리당은 기다렸다는 듯 색깔 공세에 팔을 걷었다. 이한구 원내대표는 “정치권에서는 종북주의자나 심지어 간첩 출신들까지도 국회의원의 되겠다고 나서고 있다”고 했다. 새누리당은 통합진보당 의원들뿐 아니라 일부 민주통합당 인사들에게도 ‘종북주의자’ 딱지를 붙이기 시작했다.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색깔 공세와 함께 어두운 과거를 미화하려는 시도도 확장되고 있다. 육사 31기로 5군단장을 지낸 새누리당 한기호 의원은 6월11일 언론 인터뷰에서 “5·16 쿠데타는 역사적으로 시간이 흐른 뒤에 결론적으로는 구국의 혁명일 수 있다”고 말해 논란을 불렀다. 한 의원의 발언을 두고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사실 ‘구국의 혁명 5·16’이라는 규정은 박근혜 전 위원장의 인식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박 전 위원장은 2007년 대선 후보 검증을 위한 당내 청문회에서 “그때 상황이 너무나 혼란스러웠고 남북 대치 상황에서 잘못하면 (남한이) 북한에 흡수될 수도 있었다”며 “5·16은 구국의 혁명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해 인민혁명당 피해자들이 대법원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일과 관련한 질문이 나오자 “나에 대한 정치 공세”라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일도 있다.
박근혜 전 위원장에게 ‘아버지 박정희’의 존재는 절대선에 가깝다. “공과를 함께 인정하자”는 식의 절충도 용인될 틈을 보이지 않는다. 과거의 발언과 행적을 종합하면 윤곽이 드러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측근이던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손에 1979년 10월26일 사망한 직후부터 박 전 위원장이 정계에 입문한 1997년까지 박 전 위원장의 행적은 대체로 희미하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은 ‘박근혜의 잃어버린 18년’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박 전 위원장은 2007년 자신의 자서전에서 “청와대를 나온 이후 정권 차원에서 아버지에 대한 매도가 계속됐다”고 썼다. “우리 삼남매는 부모님의 기일을 포함한 어떤 공식적인 행사도 엄두를 낼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결국 6년 동안 아버지의 추도식을 공개적으로 치를 수 없어 집에서 조용히 동생들과 제사를 지낼 수밖에 없었다.” 이후 영남대학교 이사장, 육영재단 이사장,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거치는 동안 박근혜 전 위원장의 모든 활동은 ‘아버지의 복권’에 맞춰졌다. ‘박정희·육영수 기념사업회’를 발족하고 기념관 건립사업에 힘을 쏟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미화한 영화 을 제작했고, 그의 업적을 담은 발간사업도 주도했다.
그가 정치에 직접 뛰어들게 된 계기도 바로 ‘아버지’였다. 박 전 위원장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온 나라가 휘청거리던 1997년 한나라당 이회창 당시 대선 후보를 경북 구미의 박정희 생가로 초청한 자리에서 입당을 공식 선언한다. 박 전 위원장은 “국민이 피땀 흘려 일으킨 나라가 오늘 같은 난국에 처한 것을 보면 돌아가신 아버님이 생각나 목이 멜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며 “이러한 때 정치에 참여해 국가를 위해 기여하는 것이 부모님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서전을 통해서도 박 전 위원장은 “IMF 이후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며 ‘나라가 이렇게 흔들리는데 나 혼자만 편하게 산다면 훗날 스스로에게 당당할 수 있을까? 죽어서 부모님을 떳떳하게 뵐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고 말했다. 과거사에 대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박 전 위원장은 “민주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은 분들께 사과드린다”는 모호한 언급만을 되풀이했다. 이런 그에게 5·16과 유신, 군사독재에 대한 견해를 거듭 묻는 일이 과연 의미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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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논란 일면 상처 더 커”
치열한 쇄신 노력으로 유권자의 선택을 받았던 새누리당은 총선이 끝나자마자 어색한 화장기를 지우고 과거로 돌아갔다. 역풍은 거세게 일고 있다. 민주통합당 이해찬 대표는 “박근혜 전 위원장의 색깔 공세는 히틀러와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통합진보당 강기갑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은 “사라진 줄 알았던 군부독재의 좀비들이 무덤에서 나와 활보하고 있다”며 “어이없음을 넘어 섬뜩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박 전 위원장의 편향적 행보는 “100%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본인의 선언과도 배치된다. 6월8일 가 보도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유권자들은 박근혜 전 위원장의 이념 성향을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보다도 보수적으로 평가했다. 같은 기관의 1년 전 조사에선 이회창 전 대표가 박 전 위원장보다 더 보수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1년 만에 순위가 바뀐 셈이다.
대선은 중원을 놓고 벌이는 싸움이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박근혜 전 위원장은 현재 선두주자이기 때문에 정체성 논란이 불거지면 다른 주자들보다 더 큰 상처를 받을 수 있다”며 “보수 진영의 결집이라는 득보다 논란의 확산으로 잃는 부분이 더 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군부 출신 인사들의 부활과 여권이 제기하는 색깔 공세가 스스로의 입지를 축소시키는 동시에 ‘유신공주’ 박근혜 전 위원장의 국가관에 물음표를 남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논란이 일자 여권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옛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지낸 인명진 목사는 “종북몰이는 전략적으로 잘 다듬어지지 않은 유치한 전략”이라고 지적했다. 홍일표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통합진보당 이석기·김재연 의원은 당내 부정선거 문제로 제명되어야 한다는 것이지 국가관이나 사상 문제로 제명하겠다는 게 아니다”라며 “(새누리당을) 매카시즘이라고 공격하는데, 종북 논란을 확대할 생각이 없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는 “당이 종북 논란의 중심에 서지 말고 이젠 좀 자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난 주말(6월8~9일) 의원연찬회에서도 나왔다”고 전했다. 그는 “종북 논란이라는 것이 하다 보면 사태의 실체에 대한 정확한 문제제기를 넘어 과대한 표현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며 “중립지대에 있는 유권자랄지 젊은 층의 표심에도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새누리당의 당론이나 지도부의 공식 지침은 아니라고 홍 대변인은 덧붙였다. 다급한 진화는 결국 정치적 이해타산을 고려한 결과물이라는 뜻이다. 박 전 위원장의 대변인으로 통하는 이정현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박근혜 전 위원장은 색깔론의 ‘색’자도 꺼내지 않았다”며 “국가관 언급을 박 전 위원장이 했기 때문에 논란이 되는 것일 뿐 그것을 어떻게 색깔론에 불을 붙인다는 식으로 해석하느냐”고 말했다.
근본적인 문제는 여권 전반의 인식이 바뀌기 어렵다는 데 있다. 색깔 공세는 계속되고 있다. 정우택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나는 종북 논쟁을 자제하자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통합진보당의 경선 부정도 문제지만 종북 문제 자체를 우리 당이 놓쳐서도 안 된다고 본다”고 했다. 김영우 새누리당 대변인은 6월14일 논평에서 “통합진보당 주사파 출신 의원들의 과거 종북 행적은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위협하기에 충분하다”며 “나랏돈으로 나라를 지켜야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종북 행적이나 일삼는 정당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색깔론 공세를 이어갔다. ‘때려잡자 공산당’ 수준의 상황 인식은 계파를 가리지 않는다. 친이계인 심재철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연일 지도부 회의에서 ‘간첩’과 ‘종북’을 언급하며 공세를 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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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위원장이 변하지 않는 한 새누리당은 6월14일 “안응모 당 국책자문위원장을 유임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안응모 위원장은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1년 ‘강경대씨 구타 치사사건’이 발생했을 때 경찰 지휘 책임이 있는 내무부 장관을 지냈고, 결국 사태의 책임을 지고 경질된 인사다. “일본의 식민 지배는 축복”이라는 망언으로 파문을 불렀던 한승조 전 고려대 교수와 함께 극우단체인 ‘자유시민연대’ 공동의장을 지내기도 했다. 박근혜 전 위원장이 변하지 않는 한 ‘과거와의 조우’는 끊임없이 반복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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