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1항이 ‘뻥’이라는 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경영권을 편법으로 승계하고도 집행유예만 받고, 그나마도 대통령 특별사면을 받을 때만 확인되는 게 아니다. 이성애 남녀의 결혼과 그로 인한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만 가족으로 인정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결혼 여부는 이미 그 자체가 사회적 신분으로 기능한다. 이 사회적 신분은 비혼을 차별하는 제도와 관행을 ‘당연히’ 수반한다.
‘하꼬방’에 갇힌 1인 가구
연말연시가 되면 ‘유리지갑’ 월급쟁이들은 연말정산에서 100원이라도 더 돌려받으려고 분주하다. 얼른 주택청약종합저축이나 연금에 가입하라는 등 ‘세테크 요령’ 따위의 기사도 쏟아진다. 그런데 연말정산제도가 ‘유도’하는 대로 따라가면 결혼해 아이를 2명 이상 낳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대표적인 게 다자녀 가정 추가 공제다. 정부는 급격히 떨어지는 출산율 대책으로 2007년 이 제도를 도입했다. 아이가 둘일 땐 50만원을 공제하고, 그 이상일 땐 1명당 100만원씩 추가 공제해주는 것이다. 이 제도의 도입 자체를 놓고도 출산 장려 대책이 왜 ‘법적 가족’을 중심으로 마련되느냐는 논란이 무성했지만, 더욱 가시적인 차별은 소수자공제를 폐지한 것이었다. 그 전까지 1~2인 가구에 50만원씩 공제해주던 것을 없애버렸다. 풍선 한쪽을 누르면 반대편이 더 크게 부풀어오르는 것처럼, 다자녀 가정 추가 공제로 더욱 부족해진 세수를 메우려고 ‘만만한’ 소수자공제를 폐지한 셈이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정부는 다자녀 가정 추가 공제 금액을 각각 2배로 늘렸다. 가령 결혼해 아이를 셋 키우는 집이라면 다자녀 추가 공제만 300만원을 받는다. 출산율이 낮아지는 원인이 연말정산에서 공제를 적게 받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면 이는 진단이 틀린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대책이 틀린 것이라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결혼한 여성이라면 무조건 50만원을 공제해주는 부녀자공제도 비혼을 차별하는 황당한 제도다. 비혼이 이 혜택을 받으려면 세대주여야 하고, 법적으로 인정받는 부양가족이 있어야 한다. 동거 커플은 이 제도 바깥의 존재다. 결혼한 ‘배우자’로 연소득이 100만원 이하인 사람의 경우 150만원을 공제하는 배우자공제도 마찬가지다. 제도가, 나아가 이 제도를 설계한 국가가 결혼을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봐야 ‘쪼잔하게 몇십만~백만원 차이 갖고 그러느냐’고 생각한다면, 몇천만원짜리 차별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박미형(32·가명)씨가 서울살이를 시작한 건 5년 전이다. 취업한 회사가 서울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전엔 고향인 부산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청년백수가 차고 넘치는 시절에 용케 직장을 잡은 건 다행이었지만, 문제가 있었다. 살 집을 마련할 길이 막막했던 것이다.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 때문에 원룸 하나 구할 전셋돈을 부모님께 융통할 수는 없었다. 한국주택금융공사의 전세자금대출을 알아봤다. ‘만 20살 이상’이되 ‘부양가족이 있는 세대주’여야 했다. 박씨 같은 1인 가구는 만 35살 이상만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결혼하지 않았고, 만 35살이 되지 않았다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연 4%라는 저금리의 행운은 그녀를 비켜갔다. 일반 대출 역시 같은 이유로 엄두를 낼 수 없었다. 결국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20만원짜리 ‘하꼬방’ 같은 방 한 칸을 구했다. 직장생활 5년 동안 전셋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지금 박씨는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45만원짜리 집에 산다. 그가 결혼을 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전세자금 대출을 받으려면 3년을 더 월세를 내야 한다.
비혼자의 권리 요구하는 움직임
비혼이라고 해서 살 곳을 마련해야 하는 절실함이 결코 덜할 수 없는데, 정부의 주거 지원 대책은 이렇게 비혼을 ‘투명인간’ 취급한다. 임대주택이나 장기전세, 주택청약종합저축을 통한 분양 등의 우선순위에서도 밀린다. 의지할 곳이라곤 제 몸 하나밖에 없는 비혼들을, ‘법적 가족’ 중심으로 짠 사회적 안전망 바깥으로 밀어내는 형국이다.
정현희 언니네트워크 운영위원은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제도적으로 지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혈연이나 혼인 가족 안에 포함되지 않으면 어떤 복지 혜택도 받지 못한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며 “젊고 살 만하니 비혼을 택한다는 사회적 인식, 언젠가는 결혼을 할 것이라거나 결혼으로 유인해야 하는 상황 때문에 비혼의 복지는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비혼 차별에 관한 지적은 하루이틀 된 게 아니다. 도 비혼을 삶의 한 형태로 인정하고, 차별적인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을 2008년 3월 공론화한 바 있다(701호 표지이야기 ‘비혼이 행복해야 사회가 행복하다’ 참조). 그러나 지난 4년 동안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호주제를 폐지하는 것도 본격적으로 운동을 벌이고서 10여 년이 걸린 사실과 비교하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닐 터. 그러나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를 기초로 지난해 서울시가 발표한 ‘2010 서울 가구구조 변화분석’에서 드러나듯, 차별 대상이 되는 비혼 인구는 급속도로 늘고 있다. 서울시에서 1인 가구는 24.4%(2000년 16.3%, 2005년 20.4%)로 1990년대 이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4인 가구를 앞질렀다. 2000년 32.1%를 차지한 4인 가구는 10년 만에 23.1%로 크게 줄었다.
제도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면, 문제가 된 제도를 개선하는 일 역시 서둘러야 한다. 서울 마포에선 4·11 총선을 앞두고 비혼을 사회적으로 인정하고 이들의 권리를 보장할 제도 마련을 적극적으로 요구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비혼여성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독립생활자 등이 모인 ‘마포 레인보우 주민연대’는 마포 지역에 출마하는 정치인들에게 주택·입양·낙태 등과 관련한 제도 개선을 요구할 계획이다. 유권자가 원하는 공약을 요구하고, 이를 이행하는지 감시하는 매니페스토 운동의 일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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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밖 가족의 형태 인정해야”
정현희 운영위원은 “결혼이라는 제도가 아니어도 주거와 안정적 생활 공동체는 중요한 문제이며, 비혼이 다양한 형태로 모여서 살고 싶은 욕망은 존중받아야 한다”며 “제도가 인정하지 않은 가족의 형태가 많다는 사실을 인식·인정하는 데서 이들을 지원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가 생겨날 수 있다”고 말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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