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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황소개구리’, 추억과 역사를 잡아먹다

2002년 이후 10년간 홍대거리·대학로 주변 상점 창·폐업 분석… 대기업 프랜차이즈의 지역경제 점령과 경제생태계 파괴 현상 심화
등록 2012-02-08 18:53 수정 2020-05-03 04:26
» 리치몬드과자점 홍대점이 30여 년 만에 문을 닫았다. 대신 그 자리에는 대기업 계열의 커피 프랜차이즈 지점이 들어설 예정이다. 지난 1월31일 마지막 영업을 하고 있는 리치몬드과자점 홍대점. <한겨레21> 정용일

» 리치몬드과자점 홍대점이 30여 년 만에 문을 닫았다. 대신 그 자리에는 대기업 계열의 커피 프랜차이즈 지점이 들어설 예정이다. 지난 1월31일 마지막 영업을 하고 있는 리치몬드과자점 홍대점. <한겨레21> 정용일

리치몬드과자점 홍대점이 30여 년 만에 문을 닫았다. 대신 그 자리에는 대기업 계열의 커피 프랜차이즈 지점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 이 사건을 계기로 자영업의 오늘과 내일을 분석했다. 비즈니스 지리정보 전문업체 ‘오픈메이트’와 함께 2002년 이후 10년간 서울 홍익대·혜화동 주변 상점의 창·폐업을 분석했다. 자영업자가 사라진 자리에 재벌이 거느린 커피숍을 비롯해 제과·패스트푸드점이 들어서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_편집자

1979년도 다사다난했다. 한국현대사의 1970년대는 늘, 사건과 역사로 빼곡했다. 한 해 전 가수 심수봉이 부른 은 1979년에 더 인기를 끌었다. 버스나 다방 어디서든, 한국 최초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기록되는 그의 비음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신문은 기록하지 않았지만 역사로 부를 만한 다른 사건도 그해 9월4일 벌어졌다. 리치몬드과자점이 서울 서대문구 동교동 홍익대 근처 사거리에 문을 열었다. 그날 홍대거리 라디오에서도 이 흘러나왔을 게다.

리치몬드, 한국 제과제빵 1세대의 퇴장

» <한겨레21> 정용일

» <한겨레21> 정용일

서른네 살의 파티셰(제과·제빵 요리사)는 패기만만했다. 1972년부터 일한 나폴레옹제과에서 잔뼈가 굵었다. 1975년 일본 동경제과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나폴레옹제과 공장장으로 일했다. 제빵업체 삼립식품이 1966년 창업됐고, 샤니가 1972년 문 열었다. 박정희 정부는 분식장려운동을 했다. 인위적으로 저가의 밀가루를 공급했다. 1970년대 후반 국민소득이 오르며 입맛이 다양해졌다. 고품질과 개성을 추구하는 ‘윈도 베이커리’(개인 빵집)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권상범 명장의 리치몬드과자점은 맛으로 금방 유명세를 탔

≫ 이화여대 후문에 위치한 윈도 베이커리(개인 빵집) ‘이화당’ 바로 옆에는 파리바게뜨 지점이 새로 입점했다(위). 대학로에서도 커피·제과 등의 업종에서 재벌은 ‘황소개구리’처럼 자영업자들을 몰아내며 지역경제 생태계를 무자비하게 파괴하고 있다(아래).  정용일

≫ 이화여대 후문에 위치한 윈도 베이커리(개인 빵집) ‘이화당’ 바로 옆에는 파리바게뜨 지점이 새로 입점했다(위). 대학로에서도 커피·제과 등의 업종에서 재벌은 ‘황소개구리’처럼 자영업자들을 몰아내며 지역경제 생태계를 무자비하게 파괴하고 있다(아래). 정용일

다. 권상범 명장의 이름은 김영모 명장과 함께 ‘한국 제과·제빵 1세대’로 불린다. 2002년 노동부가 선정하는 제과명장에 뽑혔다. 제과명장은 아직까지 10명도 안 된다. 젊은 남자와 여자는 데이트할 때 “홍대 리치몬드 앞에서 만나자”라고 말했다. 2012년 1월31일 리치몬드 홍대점 폐점을 끝으로 이제 사람들은 다른 랜드마크를 찾아야 한다. 대신 롯데리아의 커피 프랜차이즈 ‘엔제리너스’가 입점한다.

지난 1월31일 오후 6시30분께 이미 땅거미가 깔렸다. 이날 서울의 최저기온은 영하 8.5℃였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체감온도는 훨씬 낮았다. 밖에는 “30여 년간 리치몬드 홍대점을 사랑해주신 고객님께 감사 말씀 올립니다. 저희 리치몬드 홍대점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하여 2012년 1월31일 마지막으로 폐점을 하게 되었습니다. …갑작스럽게 알려드린 점 머리 숙여 사과드리며…”라고 쓰인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였다. 빨간색 벽돌로 지어진 오래된 4층 건물 주변은 여전히 북적였다. 추위를 뚫고 빵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파티셰와 직원들은 잇단 주문에 신용카드 단말기의 종이를 연신 바꿔끼워야 했다. 조가비 모양으로 과일잼이 들어간 ‘셸’ 쿠키 한 상자가 1만2천원이었다. 가운데 딸기와 체리가 각각 한 개씩 올려진 생크림 케이크는 2만8천원이었다. 프랜차이즈 빵집에 비해 고가였지만 사람들은 지갑을 여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트위터와 인터넷 블로그에는 ‘아쉽다’는 의견과 리치몬드 홍대점 자리에 들어설 프랜차이즈를 성토하는 글이 많았다.

롯데리아 쪽은 ‘밀어내기’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롯데리아 쪽은 “(2011년에) 부동산 물권이 나와 있었고, 우리가 홍대 상권이 없다 보니 점포개발팀에서 우연찮게 발견하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롯데리아 쪽은 임대료를 밝히지 않았다. 기존에 리치몬드과자점이 수억원의 보증금을 제외하고 월 임대료만 수천만원을 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리아는 “리치몬드가 그 전에 얼마를 내왔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임대료를 더 내겠다고 건물주에게 말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은 비즈니스 지리정보 전문업체 ‘오픈메이트’와 함께 2002년 이후 10년간 서울 시내 음식업, 식료품점 등 주요 자영업의 창·폐업 현황을 살펴봤다. 리치몬드과자점이 홍익대 주변 핵심 상권에서 30여 년 버틴 것이 기적처럼 보일 만큼, 재벌의 불공정 경쟁이 심했다.

이화당 바로 옆에 문을 연 파리바게뜨

그러나 정황은 이런 해명을 믿기 어렵게 만든다. 리치몬드과자점 홍대점은 제과·제빵 매출에는 문제가 전혀 없었다. 문제는 부동산 임대료였다. 건물주 황아무개씨는 계속 임대료를 올렸다. 리치몬드과자점은 늘 그래왔듯 재계약을 예상하고 지난해 초 내부 인테리어를 새로 꾸몄다. 갑자기 여름께 건물주로부터 내용증명이 날아왔다. 임대료를 더 내지 않으면 계약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건물주는 대신 롯데리아와 계약했다. 등기부등본을 보면, 롯데리아는 지난해 8월 1층 99.174㎡(약 30평)와 2층 165.29㎡(약 50평)를 빌리는 전세계약을 건물주와 체결했다. 등기부등본에 나온 전세금은 20억원이었다. 롯데리아는 지난해 10월 추가로 2층 595.044㎡(약 180평)를 빌렸다. 전세금은 15억원이었다. 4층 건물 전체의 매매 가격은 수십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리치몬드과자점의 경영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권상범 명장에게도 홍익대 주변 핵심 상권의 4층 건물을 구매할 수십억원은 없었다. 그는 지난 1월31일 폐점을 알리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가업을 이으려고 동경제과학교를 다녀온 권형준(37) 총괄팀장은 아버지와 함께 저녁까지 홍대점을 지켰다. 리치몬드과자점은 당분간 성산본점과 이화여대 ECC지점 운영에 집중할 계획이다.

윈도 베이커리 업계 안에서 놀라움과 아쉬움이 함께 나온다. 김영모과자점의 한 간부는 “아쉽다. (리치몬드는) 제과·제빵업에 큰 의미가 됐던 브랜드다”라며 “물론 리치몬드가 완전히 마무리되는 건 아니지만 (홍대점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있던 빵집이다. 그런 부분이 아쉽다”라고 말했다. 리치몬드과자점은 박물관도, 사적도, 문화재도 아니다. 한국의 토건 자본주의는 그렇게 오래된 빵집 하나를 거리에서 지워냈다. 그와 함께 30년 넘게 제과점에 켜켜이 쌓인 추억도 사라졌다.

이화여대 후문에 위치한 ‘이화당’을 둘러싸고도 비슷한 논란이 나온다. 이화당은 1979년 3월 리치몬드보다 조금 더 일찍 문을 열었다. 한때 매장이 넓었지만, 지금은 더 줄었다. 박성은(74) 사장은 아직도 직접 매장에서 전화를 받고 계산을 한다. 부인 신현주(70)씨는 수십 년째 그랬던 것처럼 직접 빗자루를 든다. 지난 1월 이화당 바로 옆에 파리바게뜨 신촌연대점이 문 열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로 붙어 있다. 박성은 사장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프랜차이즈가) 이렇게 옆에 개업한 경우가 어딨나. 아무리 그래도 건너편에 열거나 해야지…. 30여 년 동안 빵집 프랜차이즈가 들어온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여기가 상권이 좀 약해. 우리 같은 빵집은 어떻게 하나.”

이화당 옆 파리바게뜨 가맹점주 김아무개(43)씨는 에 “나도 (바로 옆에 내는 것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다니던 회사에서 퇴직을 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처음 창업을 하다 보니 아무거나 손댈 수 없어서 파리바게뜨 쪽으로 하게 됐다”고 김씨는 말했다. 가맹점 개설 상담 때 파리바게뜨는 서울의 다른 지역 매장 인수도 제시했다. 김씨에게는 권리금을 낼 돈이 부족했다. 이화여대 신촌 주변에는 이미 여러 개의 파리바게뜨 지점이 있었다. 파리바게뜨 본사에서는 이화당 주변에 이대부속고등학교와 이화여대 등 학교가 많아 길목이 괜찮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주민과 학생 중에 빵집이 새로 생겨 좋다는 분도 적지 않다”며 “(이화당과 파리바게뜨) 둘 다 잘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프랜차이즈만 살아남아

프랜차이즈는 단순한 빵맛뿐 아니라 빵의 디자인, 편안한 좌석, 세련된 조명도 모두 상품의 경쟁력을 이룬다고 항변한다. 이화여대 주변에는 이미 파리바게뜨 점포가 많다. 이화여대 안에 ‘이화사랑점’이 있다. 신촌민자역사 옆에 ‘이대점’이 있다. 지하철 2호선 이대역 근처에 ‘카페이대점’이 있다. 다른 프랜차이즈를 포함하면 그 수는 더 증가한다. 프랜차이즈 지점끼리 무한경쟁하는 제과·제빵 시장에서 김씨는 이화당과 공생을 꿈꾸고 있다. 자영업자들끼리 경쟁하는 동안 가맹비, 개설 상담 및 컨설트 비용 등은 프랜차이즈 본사가 이익으로 가져간다.

과 비즈니스 지리정보 전문업체 ‘오픈메이트’의 분석 결과를 보면, 공생의 꿈은 몽상에 가까운 것 같다. 대기업과 프랜차이즈가 ‘황소개구리’처럼 경제생태계를 잠식하는 현상이 다시 확인됐다. 2002년 이후 10년간 서울 시내의 음식업·식료품점 등 주요 자영업의 창·폐업 현황을 살펴봤다. 특히 홍익대·혜화동(대학로) 등의 주변 상권을 면밀히 분석했다. 리치몬드과자점이 홍익대 주변 핵심 상권에서 30여 년 버틴 것이 기적처럼 보일 만큼, 재벌의 불공정 경쟁이 심했다.

홍익대 앞 거리 주요 상점의 평균 운영 기간은 5.95년에 그쳤다. 홍익대 앞 거리는 1월 현재 283곳이 생존 경쟁을 펼치고 있다. 업종별로는 맥주·소주 등 주류를 판매하는 유흥주점과 삼겹살·곱창·해장국을 파는 한식이 각각 98곳(34.6%)과 62곳(21.9%)으로 절반을 넘는다. 이어 양식(29곳·10.2%), 분식(23곳·8.1%), 커피숍·카페(16곳·5.7%), 닭·오리요리(13곳·4.6%), 패스트푸드와 일식·수산물(12곳·4.2%), 제과·제빵·케이크(9곳·3.2%), 별식·퓨전요리(4곳·1.4%), 중식(3곳·1.1%) 순서다.

리치몬드과자점 홍대점 위쪽에 스타벅스가 있고, 건너편에 카페베네가 있었다. 곧 엔젤리너스가 들어설 리치몬드과자점 홍대점 자리는 재벌 커피 프랜차이즈의 무한경쟁을 상징하는 장소가 된 셈이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외식업이나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주로 살아남았다. 특히 커피숍이나 패스트푸드, 제과점 등 다양한 영역에서 계열사를 거느린 재벌들은 상권 요지 곳곳에 여러 개의 점포를 소유했다. 롯데그룹이 단연 눈에 띈다. 롯데리아 홍대점과 카페 칸타타가 이미 자리잡았고, 리치몬드과자점 자리에 들어설 엔제리너스까지 포함하면 롯데 계열 점포는 모두 3곳에 이른다. 또 신세계와 스타벅스가 절반씩 지분을 소유한 스타벅스코리아가 2곳, GS그룹의 미스터도넛도 등장한다. 아울러 외국계 회사인 서브웨이, 엠투지타코벨 등이 행인들을 유혹한다. 프랜차이즈 업계의 최강자 SPC그룹의 파리바게뜨도 한몫 차지한다. 대기업 계열 점포들은 2000년대 후반에 자리잡았다. 해가 갈수록 자영업은 밀려나고 대기업끼리 각축을 벌이는 장소가 돼가는 셈이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주변 상권 임대료 끌어올려

경쟁은 자본주의의 본질이다. 문제는 맛과 서비스라는 서비스업의 본질이 아닌 영역에서 경쟁이 벌어진다는 데 있다. 대기업 가맹점들은 가게를 내며 주변 가게의 손님들을 끌어오는 것은 물론, 임대료 상승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황소개구리’ 역할을 한다. 이곳에서 10년 넘게 한식집을 운영해온 김아무개씨는 “대기업이 직영하거나 가맹점이 들어오면 손님을 빼앗기는 것도 두렵지만, 비싼 값에 입점해 주변 가게에 임대료 상승을 불러와 더 큰 어려움을 가져온다”며 “장사는 어려워지는데 임대료가 올라가면 자영업자는 버틸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 사이 많은 가게가 조용히 홍익대 앞 거리를 떠났다. 지난 10년 동안 192곳이 사라졌다. 폐업 업종은 한식이 해마다 1~8곳씩 문을 닫아 총 46곳(24%)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유흥주점(39곳·20.3%), 분식(29곳·15.1%), 양식(22곳·11.5%), 패스트푸드(16곳·8.3%), 커피숍·카페(15곳·7.8%) 등으로 나타났다. 특히 가게 폐업은 대기업들이 커피·도너츠 등 외식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2000년대 후반 이후에 많았다. 연도별로는 2002년 23곳이 문을 닫았고, 이후 계속 줄어들다가 2007년부터 다시 늘었다. 2007년에는 25곳, 2008년 20곳, 2009년 26곳, 2010년 26곳, 2011년 16곳이 폐업했다.

그럼에도 문을 닫는 수보다 여는 수가 많았다. 같은 기간 306곳이 ‘대박’의 꿈을 안고 창업했다. 유흥주점은 95곳(31%)이 문을 열었다. 이어 한식이 해마다 2~11곳씩 문을 열어 60곳(19.6%)이 창업했고 분식(28곳·9.2%), 커피숍·카페(27곳·8.8%), 양식(25곳·8.2%), 패스트푸드(24곳, 7.8%) 등이 뒤를 이었다.

혜화동의 대학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곳 업체의 평균수명은 7.6년이었으며, 10년간 169곳이 생겨났고 131곳이 사라졌다. 현재 남아 있는 210곳은 업종별로는 한식이 56곳(26.7%)으로 가장 많고 양식(34곳·16.2%), 분식(23곳·11%)이 뒤를 이었다. 패스트푸드와 유흥주점이 각각 18곳(8.6%)이고, 커피숍·카페(15곳·7.1%), 제과·제빵·케이크(11곳·5.2%) 등으로 분포돼 있다.

대기업 계열 점포의 간판이 홍익대 거리에 비해 다양한 업종에서 훨씬 더 자주 고개를 내밀고 있다. 가장 많은 곳은 CJ였다. 제과점 뚜레쥬르 3곳과 중식당 차이나팩토리, 커피숍 투썸플레이스 등 모두 5곳이었다. SPC그룹은 배스킨라빈스 2곳을 비롯해 파리바게뜨, 파리크라상 등 4곳이 자리잡았다. 롯데는 패밀리레스토랑 TGIF를 비롯해 롯데리아, 크리스피크림 등 3곳을 지녔다. 이 밖에 신세계의 스타벅스가 2곳, 범LG 계열인 아워홈이 보유한 사보텐, 두산의 KFC, 국순당의 백세주마을 등이 있다. 외국계인 하겐다즈, 맥도날드 등도 한 자리씩 차지한다. 이들 점포는 23곳에 달해, 11%를 차지했다.

대기업 피해 쫓겨간 곳에서 ‘출혈경쟁’

지난 10년 동안에는 131곳이 문을 닫았다. 업종별로는 가장 많은 점포가 있는 한식이 28곳(21.4%)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양식(24곳·18.3%), 분식(16곳·12.2%), 패스트푸드(12곳·9.2%), 커피숍·카페와 패스트푸드(10곳·7.6%) 등으로 나타났다. 창업도 비슷한 분포를 보였다. 한식과 양식은 각각 45곳(26.6%), 19곳(11.2%)이 문을 열었다. 이어 커피숍·카페와 패스트푸드가 각각 17곳(10.1%)씩 새롭게 등장했다. 이 밖에 분식(16곳·9.5%), 유흥주점(14곳·8.3%) 등으로 나타났다.

특히 혜화동에서는 임대료가 비싼 곳에 입점하지 못한 영세업자들이 북상하는 양상을 보였다. 서울대병원이 있는 대학로는 이미 대기업 계열 점포들이 포진했고, 대로에서 동떨어진 곳도 임대료가 상당해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이를 피해 유동인구가 상대적으로 적은 혜화동로터리 위쪽으로 향하는 것이다. 기업형슈퍼마켓(SSM) 홈플러스가 들어오자 폐업한 소규모 슈퍼마켓이나 떡집, 제과점 자리에 커피, 피자 등 다른 업종이 들어섰다. 지난해 피자가게를 연 정일교(37)씨는 “애초 대학로 쪽을 알아봤지만 후미진 곳이라도 임대료만 월 150만∼180만원이고, 권리금도 6천만~7천만원에 달해 이곳에 문을 열었다”고 말했다.

대기업을 피했다고 해서 운영이 쉬운 것은 아니다. ㄱ커피숍 주인은 “작은 상권을 두고 커피숍이 지난해 여름 3곳이 동시에 생겨 나눠먹는 식이 돼, 개업 뒤 수개월간 적자를 보았다”며 “지금은 흑자로 돌아섰지만 월 100만원이 채 안 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새 가게의 출현은 주변에도 영향을 줬다. ㄴ분식집 주인은 “이곳에서 10년 넘게 해와 단골이 있기는 하지만, 떡볶이와 순대 대신 커피나 샌드위치를 사먹는 손님이 늘어 매출이 줄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대기업을 피해 쫓겨간 곳에서 소규모 자영업자들끼리 다시 ‘출혈경쟁’을 펼치는 셈이다.

점포 폐점 성향은 대기업이 진출한 업종과 그렇지 않은 업종 사이에 뚜렷이 구별된다. 대기업이 적극적으로 진출하지 않은 중식은 2002년 368곳이 문을 열고 437곳이 문을 닫아 폐업이 69곳 더 많았다. 이후 지난해까지 폐업한 점포가 창업한 점포보다 늘 많았다. 분식도 마찬가지다. 2002년 2567곳이 문을 열고 3631곳이 문을 닫았다. 2009년과 2010년 창업이 폐업보다 각각 414곳과 571곳으로 많은 것을 제외하면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아울러 한식은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겪으며 창업인구가 늘어 2004년까지 꾸준히 문을 여는 가게가 폐업하는 곳보다 많았다. 하지만 2005년 폐업이 창업보다 680곳이 더 많은 것을 시작으로 계속 문 닫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영세) 자영업자들의 몰락 징후가 뚜렷하다.

반면 대기업이 진출한 제과·제빵·케이크와 커피숍·카페는 2000년대 후반 들어 창업 수가 폐업 수보다 많았다. 제과·제빵·케이크는 2002년 폐업이 창업보다 159곳이 많았지만 점점 줄어 2007년부터 창업이 더 많은 모습을 줄곧 보였다. 다방·커피·카페 역시 2002년 폐업이 770곳으로 창업(599곳)보다 171곳 많았지만 2007년부터 역전됐다. 특히 지난해에는 1521곳이 문을 열어 폐업한 675곳보다 2배 이상 많았다.



경쟁은 자본주의의 본질이다. 문제는 맛과 서비스라는 서비스업의 본질이 아닌 영역에서 경쟁이 벌어진다는 데 있다. 대기업 가맹점들은 가게를 내며 주변 가게의 손님들을 끌어오는 것은 물론, 임대료 상승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황소개구리’ 역할을 한다.

자영업자 사장님 자리 비정규직이 채워

이에 대해 중소기업연구원의 남윤형 박사는 “안정적인 일자리가 줄어들어 많은 사람들이 자영업에 뛰어들고 있지만, 절반 이상이 실패를 경험한다”며 “최근에는 대기업들이 커피·제과는 물론 떡볶이·순대 등 과거 소상공인 영역으로 여겨지던 업종에까지 뛰어들어 경쟁을 심화하고 자본력이 약한 영세업자를 고사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남 박사는 “서울 시내에서 카페나 빵집 수가 늘었지만 대기업 계열사들이 영역을 넓힌 측면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며 “대기업들은 직영점을 열어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등 일자리 창출에도 큰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자영업자 사장님이 쫓겨난 자리를 비정규직이 채우고 있는 셈이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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