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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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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이란 자연의 순리, 삶의 법칙”

수행·생태·나눔의 지역공동체를 지향하는 마곡사 주지 원혜 스님… 흙 속에서 공생하며 대안의 작은 발걸음을 떼다
등록 2012-01-18 17:12 수정 2020-05-03 04:26

“선방에 가부좌 틀고 앉아 참선하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생활 속에서 한시도 화두를 놓지 않고 참구(參究)하는 것, 예컨대 풀을 매고 수확을 하며 땅의 고마움을 생각하고, 공양을 할 때면 생산자들이 흘린 땀의 가치를 되새기는 것이 수행자의 참다운 자세입니다.”

» 원혜 스님. <한겨레> 조현

» 원혜 스님. <한겨레> 조현

생태주의 밑줄 치며 연구해

충남 공주에 있는 ‘천년고찰’ 마곡사는 ‘수행·생태·나눔의 지역공동체’를 지향한다. 1999년부터 2007년까지 서울 봉은사 주지를 지내며 종단 개혁을 선도했던 원혜(59) 스님이 3년전 부임하면서부터다. 그는 시작부터 남달랐다. 화려하기 마련인 주지 취임식(진산식)을 배추김치 5천 포기와 10kg 쌀 1천 포대를 독거노인과 소년소녀 가장 등에게 전달하는 ‘자비의 김장 나눔 한마당’으로 대체했다. 김장 나누기는 마곡사의 연례행사로 자리잡았다. 김장에 사용된 배추는 경내의 생태농장에서 스님과 신도들,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유기농법으로 기른 것이다.

“인생 자체가 나눔 아닙니까. 한순간도 몸뚱아리 하나만 갖고 살 수 없는 것이 자연의 순리, 삶의 법칙인데, 다른 존재들로부터 나눔의 혜택을 받았으니 사람이라면 응당 나눔을 베풀며 살아야지요.”

그는 불교계에서 생태주의와 에너지 문제에 가장 학식이 깊은 승려로 통한다. 에너지 전문가인 박승옥 전 시민발전 대표조차 “밑줄 긋고 공부하는 치열함에 기가 질렸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다. 주지에 취임한 뒤 가장 먼저 단행한 불사가 경내 전각들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려는 단열 시공이었다. 흙과 볏짚을 이용해 외벽을 보강하고, 전각 내부의 틈새를 메워 외풍을 차단하자 겨울철 난방비가 60% 수준으로 줄었다. 선방 승려가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연유부터 물었다.

“생각을 하고 살아온 지는 15년이 넘지요. 사실 국가간 전쟁이나 다툼 대부분이 화석에너지 때문에 벌어집니다. 어느 순간 이대로 방치하면 인류가 망할 수도 있겠구나 싶더군요. 그때부터 관련 서적을 탐독하며 관심을 키워오게 됐습니다.”

봉은사 주지를 그만둔 뒤엔 공동체 운동 쪽으로 관심 영역을 확장했다. 사찰이 가진 자원을 활용하며 에너지 문제 해결에 접근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생태공동체라는 데 생각이 미쳤던 까닭이다.

“어렸을 때 농촌서 살았으니 공동체 방식을 떠올리는 건 자연스러웠지요. 절이란 것도 하나의 수행 공동체 아닙니까. 마침 절이 가진 재산 가운데 놀고 있는 땅이 많으니 시골에 내려와 살기를 희망하는 분들께 땅을 내어드려 생태적 방식으로 농사를 짓게 하면, 인류의 문명적 대안을 마을 단위부터 차근차근 마련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 거지요.”

절과 지역과 도시인이 공생하는 공간

봉은사 주지 시절부터 가깝게 교류하던 박승옥 전 대표에게 도움을 구했다. 박 전 대표와 함께 오래 전부터 가톨릭계를 중심으로 지역공동체 운동이 활발했던 강원도 원주와 의료생협운동이 큰 호응을 얻고 있는 대전 등을 찾아다녔다. 차츰 마곡사 마을에 적용할 공동체 모델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절과 지역과 도시인이 흙 속에서 나누고 공생하는 생태순환형 자립·자치 지역공동체였다. 물론 그 역시 마곡사 모델이 모든 산사에 적용될 수 있는 유일한 정답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뜻이 좋다고 모두에게 강요할 순 없는 겁니다. 우린 그저 할 일을 할 뿐이고, 우리 하는 게 보기에 좋으면 다른 데서 따라할 수도 있겠죠.”원혜 스님이 바라는 것은 “마곡사보다 더 창의적인 모델이 여기저기서 다양하게 실험되는 것”이다.

공주=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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