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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계약 해지 안 돼~

- 대법원, 정당한 사유없는 근로계약 갱신 거절 부당해고 판결… 장애인콜택시 등 계약직 노동자에게 새 희망 줘
등록 2011-12-22 14:14 수정 2020-05-03 04:26

정광서(55)씨는 8년 만에 장애인콜택시 운전대를 다시 잡았다. 길고 길었던 부당해고 소송에서 이긴 정씨는 당당하게 일터로 돌아왔다. 세월이 흘러 정씨의 눈가에는 주름이 늘고 머리도 더 하얗게 변했지만, 설레는 마음만은 그대로다. 정씨는 몸이 불편한 장애인을 안전하게 원하는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이 일이 참 좋다고 했다.

노동자 인정과 4대보험 가입요구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2003년, 서울시가 장애인 복지를 확대하겠다며 장애인콜택시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100대의 차량으로 시작한 이 사업은 부족하나마 장애인들의 이동에 도움이 됐다. 100명의 콜택시 운전사들은 서울시 시설관리공단과 1년짜리 계약을 맺었다.
어느 날 같이 일하던 동료가 장애인을 업다가 다쳐 12주 진단이 나왔는데 산재 처리가 되지 않았다. 노동자가 아니라는 것이 이유였다. 공단은 콜택시 운전사들의 일을 ‘봉사’라 불렀고, 위탁계약을 했으니 독립된 사업자라고 주장했다. 동료들 사이에서 “이건 아니지 않느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하루 10시간 이상 일했지만 보람이 커서 꿋꿋하게 버텼는데 다쳤을 때 보호도 받지 못하는 자신들의 처지가 억울했다. 결국 2003년 8월 노조를 만들었고 고용노동부도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해 노조 설립 필증을 줬다. 이들의 요구는 간단했다. 노동자로 인정하고 4대 보험에 가입시켜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건 해고였다. 공단은 같은 해 11월 장애인콜택시 노동자 100여 명 가운데 11명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공단은 재계약 여부를 심사했는데 11명의 점수가 가장 낮았다고 설명했다. 11명 중 6명이 노조 간부였고, 1명은 조합원이었다. 누가 봐도 ‘표적 해고’였다. 해고 통보를 받은 노동자들은 계약 기간이 끝나는 12월까지 한 달 동안 시위를 하며 재계약을 요구했다. 공단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법적 싸움이 시작됐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장애인콜택시 운전사들이 낸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기각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이들이 노동자는 맞지만, 1년 동안 계약을 한 것으로 시설공단이 반드시 재계약할 의무는 없다며 부당해고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중앙노동위원회도 재계약 연장 과정에서 공정성이나 객관성이 결여된 사실이 인정되지만 기간이 다해 계약관계가 끝났고 재계약을 거부한 것이 해고에 해당된다고 볼 수 없다고 결정했다. 노동자들은 절망했지만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2005년 7월7일, 부당해고 소송에 나선 7명의 콜택시 노동자들은 조용히 울었다. 기쁨의 눈물이었다. 서울행정법원은 이들의 손을 들어줬다. 1년7개월 동안의 고생이 눈 녹듯 녹았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였다. 고등법원은 2006년 12월 “원고는 계약을 연장·갱신한 적이 없는 만큼 재임용될 것이라는 기대가 없었고, 사 측이 계약을 거절한 ‘기준 점수 미달’이란 사유도 있었다”며 부당해고를 인정한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정씨는 “해고자들 모두 충격에 빠졌다”며 “상급심에서 뒤집히니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그래도 다시한번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에 대법원에 상고했고, 4년5개월 만인 지난 4월 대법원은 또다시 2심 판결을 뒤집고 부당해고라고 판결했다.

» 대법원 판결로 8년 만에 장애인콜택시 운전대를 다시 잡은 전광서씨. 1년짜리 계약 인생이었지만, 이제는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받게 됐다. <한겨레21> 탁기형 선임기자

» 대법원 판결로 8년 만에 장애인콜택시 운전대를 다시 잡은 전광서씨. 1년짜리 계약 인생이었지만, 이제는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받게 됐다. <한겨레21> 탁기형 선임기자

요건 충족되면 근로계약 갱신 기대권 인정

대법원의 판결은 콜택시 해고자뿐만 아니라 늘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계약직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던져줬다. 대법원은 한 번도 계약을 갱신한 적이 없거나 문서로 된 갱신 규정이 없는 노동자에게도 사용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계약 갱신을 거절할 경우 부당해고로 봤다. 1년 동안 일한 비정규직도 함부로 계약을 종료할 수 없다는 얘기다. 대법원은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근로계약이 갱신된다는 규정이 있거나 반복적으로 갱신된 경우는 물론, 그러한 규정이 없더라도 근로관계를 둘러싼 사정을 종합해 일정 요건이 충족되면 근로계약 갱신 기대권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또 “기대권이 있으면 기간 만료 후에도 종전 근로계약이 갱신된 것과 마찬가지인 만큼, 부당하게 근로계약 갱신을 거절하는 것은 부당해고”라고 판결했다. 획기적인 내용이다.

사건을 맡은 당시 민주노총 법률원 권두섭 변호사(현재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장)는 “앞으로는 갱신 절차 규정이 따로 없더라도, 예를 들어 계약직 업무가 상시적이고 계속적 업무거나, 갱신이 된 다른 노동자들의 사례와 그 방식 등을 실질적으로 고려해 갱신 기대권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권 변호사는 또 “반복적으로 계약을 갱신했다면 갱신 기대권을 인정받는 데 유리한 요소지만, 장애인콜택시 운전사처럼 이전에 반복 갱신해온 사실(1년 계약)이 없더라도 갱신 기대권을 인정할 수 있다는 점을 법원이 명확히 했다”고 설명했다.

소송에서 이긴 7명 모두 지난 12월1일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에 출근을 했다. 정씨는 “복직자 가운데 1명은 12월26일이 정년(60살)이고 1명은 중풍에 걸렸지만, 상징적 의미에서 첫날에 모두 출근했다”며 “감격스러웠다”고 말했다. 2명은 병가 등으로 쉬고 지금은 5명이 장애인콜택시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8년 동안 정씨는 택시 운전을 했다. 언젠가 꼭 복직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비슷한 직종을 선택했다. 정씨는 “8년 동안 택시 운전을 했더니 길이 훤해 일하기 수월하다”고 말했다. 다른 해고자들도 택시·트럭 운전을 하거나 아파트 경비원, 건설일용 노동자 등을 하며 해고 시절을 버텼다. 각각 흩어져 다른 삶을 살았지만 복직을 하리라는 믿음은 같았다.

그동안 직장은 어떻게 변했을까?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 4대 보험도 안 됐던 장애인콜택시 노동자들은 지금 시설관리공단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돼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받게 됐다. 월급도 많이 오르고, 콜택시 수도 300대로 늘었다. 정씨는 “무엇보다 예전에 관계가 어려웠던 시설관리공단 사무직 직원들이 요즘 주말에 자원봉사로 장애인콜택시 운전을 하며 우리의 어려움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 무척 기쁘다”며 “내 자신이 공단 직원이라는 것을 조금씩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고자들 투쟁 힘입어 노동조건 크게 개선

몇몇 직원들은 장애인콜택시 운전사들의 노동조건이 이만큼 좋아진 것은 당시 노조를 만들어 노동자로 인정받은 해고자들의 ‘투쟁’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고마워한다고 했다.

정씨는 가방에 항상 두툼한 자료를 갖고 다닌다. 거기에는 노동위원회 결정문부터 법원 판결문, 계약 종료 통지서와 복직 안내문까지 8년 동안의 역사가 생생히 담겨 있다. 정씨는 “누가 물어보면 자료를 보여주며 설명한다”며 “그냥 이 자료들을 보면 뿌듯한 마음에 힘이 생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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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기자 사회정책팀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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