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의 인구는 2천만 명. 모두 어떤 식으로든 일제의 규율과 제도 밑에서 살아갔다. 독립운동의 길을 택한 것은 소수다. 패가망신을 각오한 일이었다. 독립운동가를 빼면, 어디서 어떻게 일했느냐에 따라 친일이냐 아니냐를 규정해왔다. 대동아 공영권을 찬양하는 글을 남긴 언론인을 친일파로 삼는 식이다. 그 경계는 모호하다. 예를 들어 독립운동가를 잡는 고등계 형사로 일한 조선인의 경우는 친일파로 쉽게 말한다. 하지만 당시 경찰서의 경무나 금전관리를 맡은, 말하자면 고등계 형사의 잡무를 대신한 동료는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올해의 판결 ‘친일반민족행위해당자결정처분취소’에는 친일을 가르는 실체적 진실을 넘어서는 실존적 고민이 담겼다.
독립운동가 54명에게 유죄 선고
서울고법 행정7부(재판장 곽종훈)는 “일제강점기에 판사가 독립운동가들에게 실형을 선고한 행위도 친일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는 애초 “친일이 아니다”라는 1심 판결을 뒤집은 것으로, 당시 실정법을 따랐더라도 반대의견 등을 내지 않았다면 적극적인 친일 행위로 봐야 한다는 판단이다. 일제강점기 판사의 재판이 친일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상급심에서 하급심과 달리 ‘친일’이라고 정리한 것이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일제강점기인 1920년부터 판사로 재직하며 독립운동가 수십 명에게 유죄를 선고한 행위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친일·반민족 행위자로 결정한 유영(1950년 사망·당시 68)의 손자가 이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 항소심에서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대한민국 헌법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일제강점기에 시행된 법령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에, 당시 독립운동가에게 실형을 선고한 것은 무고한 우리 민족 구성원에 대한 탄압 행위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일제강점기 당시 유 판사의 판결을 보자. 그가 실형을 선고한 독립운동가는 54명이다. 이 정도는 일제시대에 판검사로 재직한 208명의 독립운동 사건 처리 건수에서 상위 10% 안에 들어가는 수다. 특히 유 판사가 실형을 선고한 독립운동가들이 복역 중에 심한 고문후유증으로 사망한 사실도 판결문은 적시하고 있다. 재판부는 “직접적 대가가 아니더라도 25년 동안 판사로 재직하며 조선총독부의 재판소 운영 정책에 적극 호응하였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유족들은 ‘훈4등 서보장’ 등 일본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은 것이 친일의 증거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이 또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등을 보면, 유 판사는 일제강점 중반기의 대표적 무장 독립투쟁 단체인 의열단 사건 관련자 이수택 선생에게 실형을 선고하는 등 독립운동가 60여 명에게 유죄판결을 했다. 이수택 선생의 독립운동에 대해 유영 판사는 “다수가 공동으로 안녕·질서를 방해한 행위”라며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고, 결국 이수택 선생은 복역 중에 고문 후유증으로 숨졌다.
1심 판결 바로잡은 고법
물론 논란이 끝난 것은 아니다. 친일이 아니라고 판단한 1심 재판부의 판결문을 보자. 1심 재판부는 “판사는 검사가 기소한 적용 법령과 공소사실을 기초로 유무죄와 형량을 결정하는 역할만을 한다”며 “판사가 항일운동 관련 사안을 재판했다는 것만으로는 무고한 우리 민족 구성원을 탄압하는 데 적극 앞장섰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논란은 한 세기를 넘어 계속된다. 판결도 계속된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촛불시위, 그리고 희망버스. 100년 뒤 우리 자손은 그 판결을 내린 판사들에게 어떤 판단을 내릴까.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font color="#C21A1A">심사위원 20자평</font>
이상원 순간은 역사를 만들고 역사는 순간을 만든다
장서연 판사라는 자리에 그 시대적·역사적 책임을 묻다
최재홍 판사의 판결도 역사 앞에 자유로울 수 없다</td></tr></table></td></tr><tr><td height="23px"></td></tr></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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