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승승장구냐, 천덕꾸러기냐

온갖 정치적 특혜 업고 태어난 종편 출생의 비밀… 권력 지형 변화 따라 지상파 진출 혹은 흡수·합병 등 소멸로 갈릴 듯
등록 2011-12-07 16:17 수정 2020-05-03 04:26
» 지난 11월18일 오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TV조선 채널 설명회’에 참석한 광고주들에게 오지철 대표이사를 비롯한 TV조선 임직원들이 인사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 지난 11월18일 오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TV조선 채널 설명회’에 참석한 광고주들에게 오지철 대표이사를 비롯한 TV조선 임직원들이 인사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조·중·동 방송’이 개국 아닌 개국을 하는 12월1일 내내 내 머릿속엔 ‘오래된 진실’ 한 구절이 어른거렸다. “자본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피와 오물을 뒤집어쓰고 태어난다”는 말이다. 수구·보수 정권의 장기 집권을 위한 여론시장 재편의 임무를 띠고 온갖 규제 공백과 특혜의 지원을 받고 태어난 종합편성채널(종편)의 시작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어울리는 표현은 없을 듯하다.

종편의 허접스러운 3개월치 편성 목록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채찍질과 당근 속에서 10번대 황금 채널 진입이라는 목표까지 이룬 종편으로서는 원하는 건 다 얻은 모양새다. 아 참, ‘옥의 티’가 있기는 하다. 조·중·동 방송 개국이 된 지금까지도 방통위는 방송통신발전기금 납부를 종편에는 유예하겠다는 결정을 내리지 않는 ‘직무유기’를 저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살은 활시위를 떠났다. 떠난 화살은 돌아오지 않는다. 목표물을 맞히든가, 중간에 떨어져야 한다. 게다가 종편의 탯줄에는 온갖 정치적 특혜를 등에 업고 태어난 출생의 비밀이 고스란히 간직돼 있다. 그러니 새로 태어난 방송치고는 지켜야 할 게 너무 많다. 게다가 그동안은 언론의 탈을 썼다는 시늉이라도 냈지만, 이 정권 아래에서는 아예 발가벗은 채 활보한 데 따른 후유증이 어느 정도나 될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니 의회권력이나 행정권력의 지형이 바뀌는 게 이들에게는 가장 큰 두려움이다. 종편을 공영방송 취급하는 ‘의무송신’을 비롯해 가차 없이 폐지해야 할 특혜 목록들도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외주 제작사와 외주 프로듀서들을 유인하려고 내건 지상파 방송보다 나은 조건, 곧 제작비 현실화와 저작권 공유는 몇 개월 안에 천덕꾸러기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제작비를 대는데 저작권 공유가 웬 말이냐?’고 목소리를 높일 것이고, 제작비 현실화 약속이 노골적인 제작비 삭감 압력으로 둔갑하는 건 시간문제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조·중·동 방송’이 내놓은 3개월치 편성 목록을 보면 허접스럽기 짝이 없다. 어차피 광고영업에 보도를 십분 활용하겠다는 ‘협박 저널리즘’이 중심을 이룰 것이라고 봤지만, 편성표의 목록을 보면 어떻게 이런 계획과 내용을 가지고 개국하겠다고 그 난리를 쳤는지 헛웃음이 나올 정도다.

어쨌든 ‘조·중·동 방송’은 생명을 유지해갈 것이다. 그렇기에 한국의 방송체제는 본격적인 ‘다공영·다민영’ 시대를 맞을 것이다. 생명 유지의 길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보수·수구 정권이 의회권력과 행정권력을 지금처럼 재창출하는 경우다. 이들은 지상파 방송에까지 진출할 것이고, 종편에 대한 특혜 폐지는 영원히 불가능해진다. 최시중식 방송통신위원회 체제가 계속된다고 가정해보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권력 지형이 바뀌는 경우다. 그 경우 ‘조·중·동 방송’은 분화할 것이다. 이들 중 일부는 보도전문 채널로 축소 재편되거나, 다른 종편에 흡수 합병되는 운명을 맞을 것이다.



생명 유지의 길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보수·수구 정권이 의회권력과 행정권력을 지금처럼 재창출하는 경우이다. ‘조·중·동 방송’은 지상파방송에까지 진출할 것이고, 종편에 대한 특혜 폐지는 영원히 불가능해진다. 다른 하나는 권력 지형이 바뀌는 경우다. 일부는 보도전문 채널로 축소 재편되거나, 다른 종편에 흡수 합병되는 운명을 맞을 것이다.

지상파의 하향 평준화 가능성

하지만 종편의 미래라는 측면에서 권력 지형이라는 변수 이외에 다른 변수가 있다. 그것은 지상파 방송이 종편으로 하향 평준화하는 경우다. 저널리즘이 종편과 다를 게 하나도 없고, 심지어 종편보다 못하다고 체감되는가 하면, 직접 광고영업을 못해 안달을 피우며, 중간광고나 광고총량제까지 종편과 똑같이 해달라고 아우성치는 지상파 방송이 있는 한, 종편은 또 다른 생존의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옥석을 가릴 수 없는 난장판이 되면, 종편은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탯줄을 이 속에 슬그머니 묻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준상 공공미디어연구소 소장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