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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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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주둥이를 믿어라!

더 파격적이고 편파적일수록 좋다는 이들은 누구인가… 김어준·서해성에게서 구라에 대한 철학과 비법을 듣고 가상 대담을 엮다
등록 2011-09-28 09:45 수정 2020-05-02 19:26
»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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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행복 유예하지 말고, 누군가로부터 덕 볼 생각 말고, 어떤 상대에게도 쫄지 말고, 인간에 대한 예의를 한계선으로, 혹시 내일 할 일을 오늘 하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주의하며, 현재를 닥치는 대로 살아야 한다. 자기 콘텐츠는 결국 자기 삶의 태도에서 나온다.”
-김어준( 총수)



“세상을 살면서 경기가 끝난 뒤에 말하는 걸 비겁이라고 한다. 삶을 다 깨달으려 하지 말아야 한다. 반쯤은 오랑캐, 양아치로 살아가는 게 즐겁지 않나. 평소에 구어체가 아닌데 어떻게 구어체가 나오겠나. 세상을 이기는 힘이 거기서 나온다. 제 주둥이를 믿어라!”
-서해성(소설가)

‘나는 꼼수다’(나꼼수) 열풍을 계기로 ‘개념 구라’의 전성시대 기사를 기획하며 구라들의 대담을 추진했다. 하지만 구라의 달인들이 워낙 바쁘셨다. 총수 김어준씨는 팟캐스트 정치·뉴스 분야 1·2위를 달리는 나꼼수와 의 ‘뉴욕타임스’를 녹음·녹화하느라, 그리고 정치 분야에서 메인 스트림이 돼버린 각종 콘서트와 토크를 진행하거나 게스트로 출연하느라 일정이 빡빡했다. ‘잡학의 대가’로 꼽히는 소설가 서해성씨는 밤새워 자기 공부를 하거나 남 공부 시키는 강의 때문에 김씨와 시간을 맞추기 힘들었다. 어느 한쪽을 쪼아서 시간을 만들면 다른 쪽이 어긋났다. 혹시 서로 만나기 싫었을까.
마감 시간에 임박해 각자의 생각을 들었다. 구라에 대한 철학부터, 구라 잘 푸는 비법까지. 그리고 가상 대담으로 엮었다. ‘허공에서 만난 구라들’ 정도 되시겠다. 직접 만났더라면 더 재밌을 뻔했다. -편집자

사회 MB 시대의 두 구라, 참 모시기 힘들다.

서해성(이하 서) 나야 뭐 바쁜가. 김 총수가 바쁘지. ‘나꼼수’ 인기 대단하더라. 그거 듣느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많다.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시나.

김어준(이하 김) 프레임을 유포하는 메시지 유통 구조를 보수에게 거의 장악당한 현 시점에서 최소 인력과 비용으로 가장 효과적인 대항 프레임 생산과 메시지 유통 채널을 구축해가는 중이다.

서 내가 보기에 나꼼수의 장점은 정작 꼼수를 두지 않는 데 있다. 꼼수 시대는 꼼수 아닌 걸로 돌파해야 하는 법이다. 그런 대목이 ‘직설’과 닮았다. 유쾌하다는 점도 그렇고. 직설이 문자로 나눈 꼼수였다면, 꼼수는 말로 하는 직설이다. 형식과 내용에서 두루 그렇다. 단, 꼼수는 상대가 링에 함께 올라가는 구조가 아니다. 바깥에다 ‘묶어놓고 패기’라고나 할까.

MB 시대, 위로가 필요한 시대

사회 서해성 구라는 평소 나꼼수를 즐겨 들으시나.

동업자가 비슷한 혀로 말하는 것을 오래 듣는 건 청각에도, 상도의에도 맞지 않다.

사회 김어준 구라는 열심히 읽으시잖나. 최근 책으로 나온 보셨나.

직설이 출판까지 될 내용인가.

사회 워워, 아직 갈 길이 멀다. 진정하시고. 나꼼수 좋은 얘기는 요 앞 기사에 많이 썼다. 부작용도 있지 않을까.

공공장소에서의 돌발적 파안대소로 인한 사회적 지위 추락과 격리 조치의 위험성. 가카(각하)에 대한 꼼꼼한 이해로 자칫 가카를 흠모해버리게 되는 정신과적 카오스 유발. 다음회를 기다리는 동안의 과도한 반복 청취로 울부짖는 에어컨조차 ‘이빨 3’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금단증상.

그런 부작용이라면 직설도 있다. 어떤 독자가 편지를 보냈는데 우리에게 ‘금요일의 독재자들’이란다. 직설 나오는 금요일엔 다른 기사나 칼럼을 못 읽는다는 얘기지. 신문을 읽는데 배설하는 즐거움까지 주는 일 좋은 거다. 쾌변은 쾌식을 불러오니까.

사회 두 분 다 자뻑 모드로 쭈욱 가시려나. 나꼼수의 인기 비결은 뭔가?

가카.

사회 그럼 방송 전에 꼭 준비할 게 있겠네.

가카에 대한 존경심?

사회 나꼼수만큼은 아니지만 직설도 나름 파격을 시도했고, 초반에 설화·필화도 입었다. 그때 접는 줄 알았다.

우리 인기 비결은 직설에 있는데 솔직히 직설을 다하지 못했다. 잘 알지 않나. ‘관장사’. 큰 스윙, 어퍼컷을 날려야 하는데 그 뒤로는 자꾸 배려하는 게임을 하게 됐다. “살살 패라” “봐가면서 패라” 하니까. 그렇다고 ‘짜고 붙은’ 건 아니었지만, 그럴 때 하는 말이 있다. 니기미.

사회 좀 심해지면 모자이크 처리되는 수가 있다. 나꼼수는 대놓고 편파 방송을 하는 데 부담 없나.

있지만, 없다.

조·중·동 시대에는 편파적일수록 좋은 거다. 생존 차원에서 그렇다. 우리도 더 나가고 싶었는데, 종이때기 신문이란 게 그럴 수 없는 구조다. 종이가 죄다. 인터넷 방송은 좋겠다.

사회 김어준 총수의 표현을 따라하면 가카께서 정치를 조금 더 잘하셨거나,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대가 조금 늦게 왔다면 나꼼수가 시들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애티튜드(태도 혹은 자세)부터 콘텐츠다. 구걸하지 말자. 덕 볼 생각 말자. 쫄지 말자. 이런 애티튜드는 이 시대에, 그 자체로 위로다. 위로가 필요한 시대다.

사회 위로가 필요한 시대라, 맞다.

직설은 광대를 자임했다. 지식광대. ‘후까시’ 빼고! 광대란 대중이 건네주는 밥을 먹고 산다. 이 광대놀음이 때론 총칼보다 강하다.

전달력 없는 구라는 구라가 아니다

사회 직설은 링 위에 올라가기 전에 무엇을 준비하는가.

종이 한 장? 홍구 성(한홍구 교수)과 나랑 늘 투닥거렸다. 너무 준비가 없다고 매번 서로 타박하는 거지. 그런데 예습을 하면 그대로 하려는 관성이 생긴다. 대강 “오늘 뭐하지?” 정도 얘기한다. 그러면 “조져!” 드립을 친다. 직설은 ‘절제 안 한 형식미’가 중요하다. 고상하고 거룩해지면 끝이다. 사람도 벗고 내용도 벗어야 한다.

사회 그래서 벗거나 벗긴 적 있나. 나꼼수는 대본 없나.

없다. 작가를 쓸 돈도 없지만 이런 내용을 커버할 작가는 세상에 없다. 존재하는 건 각자의 전문 영역과 생겨먹은 대로의 캐릭터. 주제는 만나서 방송 5분 전에 정할 때도 있고 그 전주의 토크 중에 정해지기도 한다. 자료나 생각은 각자 준비해서 올 수 있겠지만 서로 무슨 말을 할지는 전혀 모른다. 각자 너무 바빠 따로 회의할 시간도 없지만, 난 일부러라도 그렇게 유지하려고 한다. 그래야 긴장감이 유지된다. 대화는 완전히 실시간으로 이뤄진다. 믿지 못하던데 과장 없는 사실이다. 오세훈 서울시장 사퇴처럼 특별한 사건이 있을 때는 미리 간단히 통화하고 불시에 만날 때도 있다.

사회 나꼼수 구라가 보기에 직설 구라는 어떻던가.

서해성의 구라는 클래스가 있다. 한홍구는 한마디로 지식인이다.

사회 직설 구라가 보기에 나꼼수 구라는.

디지털은 매개일 뿐 김어준은 가장 아날로그적인 인간이다. 글뿐 아니라 말도 중요한데 거룩한 지식인들 다수는 청각을 포기한 자다. 문자가 혀의 역할을 얕잡아보게 만든 지 오래다. 구비(口碑)문학을 복원하는 데 한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어준의 언설은 가카 시대에 귀로 먹는 약이다.

사회 두 분께 구라의 정의를 들어보자. 요새는 ‘개념 있는 구라’라는 표현도 쓰는데.

구라의 필요충분은 전달력이다. 전달력 없는 구라는, 개념 유무 이전에 이미 구라가 아니다. 대화의 상대를 일순간 관객으로 만들어버리는 게 구라의 마땅한 임무다. 개념 구라는 구라의 등급 중 하나일 뿐이다. 개념 없는 구라도 앞에 얘기한 조건을 갖춘다면 구라다. 다만 개념 구라는 순간의 유희를 넘어 지적 자극을 남기는, 상위 등급이다. 최상위 등급은 감동 구라. 논리는 정서를 이길 수 없다.

1970~ 80년대 장안의 고수들은 거의 요즘 말로 치면 ‘개념 구라’였다. 제대로 된 대거리란 상대가 서로에게 청중이 되는 일이다. 안 그럴 때 말은 고문이다. 진짜는 연기자와 관객의 구분이 없어야 한다. 그 밖의 것은 에다 이미 다 말했다.

사회 예전엔 ‘조선의 3대 구라’라는 말이 있었다. 서해성 구라, 김어준 구라 모두 ‘MB 시대 신(新) 3대 구라’에 들 것 같은데, 두 분이 인정하는 구라가 있는가.

자꾸 책장사 하는 것 같아 거시기한데 ‘구라 열전’에 써놨다. 책을 보거나, 사기 싫으면 인터넷으로 거기만 긁어서라도 보길 권한다. 나는 그들과 직설이 아니어도 여러 해 동안 구라로 세월을 보내왔다. 저마다 검법에 차이가 있다. 그 미세한 차이가 구라의 전부다. 구라에 대한 ‘무예도보통지’를 누군가 정리할 필요가 있다.

황석영. 앉은 자리에서 정치·경제·사회·문화·여자를 넘나들며 8시간을 내리 달리는 충격적인 현장을 직접 목격한 바 있다.

“잘 노는 게 잘 싸우는 거다”

사회 말 잘하는 사람이, 구라를 잘 푸는 사람이 인기 있는 세상이다. 두 분의 구라를 들은 사람들이 나도 김어준처럼, 서해성처럼 구라를 잘 풀면 좋겠다는 말을 한다. 타고나는 것인가, 단련되는 것인가. 두 분의 비법을 알려달라.

잘 노는 게 잘 싸우는 거다. ‘진 놈이 이길 때까지’란 비관을 낙관으로 만드는 힘이다. 세상을 살면서 경기가 끝난 뒤에 말하는 걸 비겁이라고 한다. 삶을 다 깨달으려 하지 말아야 한다. 반쯤은 오랑캐, 양아치로 살아가는 게 즐겁지 않나. 평소에 구어체가 아닌데 어떻게 구어체가 나오겠나. 세상을 이기는 힘이 거기서 나온다. 제 주둥이를 믿어라!

자기 행복 유예하지 말고, 누군가로부터 덕 볼 생각 말고, 어떤 상대에게도 쫄지 말고, 인간에 대한 예의를 한계선으로, 혹시 내일 할 일을 오늘 하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주의하며, 현재를 닥치는 대로 살아야 한다. 자기 콘텐츠는 결국 자기 삶의 태도에서 나온다.

정리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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