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을 넘어 전율이었다.”
지난 7월9일 ‘희망의 버스’를 타고 부산 영도를 다녀온 강내희 중앙대 교수는 “뭐라고 규정할 순 없지만, 거대한 변화를 향한 움직임이 막 시작된 듯한 느낌”이라고 했다. 일찍부터 서구 신좌파 운동에 관심을 가져온 강 교수에게 복수의 지역에서 버스를 이용해 동시다발적으로 캠페인성 원정 시위를 떠나는 것은 낯선 모습이 아니다. 5년 전 미국을 방문했을 때는 현지 시민단체가 마련한 전세버스 편으로 뉴욕을 출발해 이라크전 반대시위가 열리는 워싱턴을 다녀오기도 했다. 버스 타는 시간만 왕복 14시간이 넘게 소요되는 장거리 여행이었다. 이런 그에게도 희망의 버스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강 교수는 “참가자 대부분이 직업 운동가가 아닌 평범한 시민들이란 점은 서구의 캐러밴(Caravan) 시위에선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라며 “부단히 새로운 형식을 추구해온 한국의 사회운동이 희망의 버스를 계기로 새 국면에 접어든 것 같다”고 했다.
사회·정치·문화·종교적 사건
희망의 버스를 바라보는 정부와 주류 언론의 프레임은 ‘원만한 타결을 앞둔 장기 분규 사업장에 정치적 목적을 지닌 외부 세력이 조직적으로 난입한 사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사회운동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희망의 버스라는 사건의 의미는 가볍지 않다. 이들에게 희망의 버스는 사회적이면서 문화적이고, 정치적이면서 종교적인 사건이다. 이것은 희망의 버스가 운동의 형식과 양상, 의제, 참가자의 면모 등에서 과거의 사회운동과는 질적으로 구분되는 특징들을 보여주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희망의 버스를 “온라인 소셜네트워크의 영향력이 오프라인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건”으로 규정한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 사회운동의 핵심적 매체이자 상징이던 촛불이 ‘모바일화’한 것이 희망의 버스라는 것이다. 심 교수는 “희망이라는 언어의 윤리성과 버스라는 운송수단의 친근함을 결합시킨 아이디어가 돋보였다”며 “진보적 문화정치를 위한 새로운 매개와 네트워크를 희망의 버스가 제공한 셈”이라고 말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운동의 유목화’를 드러내는 징후적 사건으로 해석했다. 정보사회의 진전에 따라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 활동이 활발해져 사회운동의 동원 양식에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과거엔 언론의 사전 보도나 시민단체의 공지 활동을 통해 가능했던 사회적 동원이 지금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대중과 대중, 대중과 전문가의 직접 소통에 의해 가능해졌다”고 진단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도 SNS의 역할에 주목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반발해 6개월 넘게 크레인 농성을 벌이던 김진숙을 ‘보이지 않던 존재’에서 ‘보이는 존재’로 만들어낸 주인공은 언론도 정치인도 아닌 트위터였다는 것이다. 그는 “‘노동자 역시 사람이며 시민’이라는 근대적 윤리가 소셜네트워크라는 기술적 민주주의를 통해 비로소 제도화되기 시작하는 징조를 이 사건을 통해 읽을 수 있다”고 했다.
새로운 것은 운동의 형식만이 아니었다. 의제의 ‘의외성’ 역시 희망의 버스를 돋보이게 한 요인이었다. 희망의 버스에 탑승한 시민들이 찾아간 곳은 정리해고 문제로 노사가 첨예하게 대치 중인 분규 현장이었다.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는 1만 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파업 현장을 찾아 연대와 지원 활동을 펼친 것은 골리앗 농성이 벌어진 1990년 울산 현대중공업 파업이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당시 지원세력의 중심은 사회 변혁이란 명확한 목적의식을 갖고 조직적으로 결합한 대학생들이었다.
김홍중 서울대 교수는 “시민들이 해결을 요구한 것이 2000년대 이후 이슈가 되어온 생활정치적 의제가 아니라, 전통적 의미의 노동문제라는 점에서 의외의 사건인 것만은 분명하다”며 “10년 이상 지속된 신자유주의적 구조 변동의 결과 안정된 삶의 가능성이 축소되고, 누구라도 좌절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엄혹한 사실을 사람들이 자각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런 진단에는 신진욱 중앙대 교수도 공감했다. 노조나 상급단체, 진보적 사회단체 말고는 거의 목소리를 내지 않던 노동 현안에 대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관심을 표명하고 연대하는 모습은 2008년 촛불에서도 찾아볼 수 없던, 희망의 버스만의 특징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는 “복지·고용·임금 같은 먹고사는 이슈들이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른 지 오래지만, 이에 대한 해결 수단으로 우리 사회는 집단적인 것보다 개인화된 방식을 추구해왔다”며 “이명박 정부 3년을 넘기며 사람들의 의식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그 근거로 신 교수는 쌍용자동차와 유성기업,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에서 보여준 시민들의 우호적 여론을 꼽았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투쟁에 보여주는 냉담한 반응과 달리, 정리해고나 비정규직화 등 고용문제와 관련해서는 광범위한 공감과 연대의식이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운동의 형식이나 의제만큼이나 시선을 끄는 것은 참가 시민들의 면면이다. 눈에 띄는 것은 개인 자격으로 참가한 시민들이 단체에 소속된 참가자들 못지않게 많았다는 점이다. 희망의 버스를 기획한 문화연대 활동가 신유아씨는 “규모가 컸던 2차 희망의 버스는 개인과 단체 참가자가 5 대 5 정도로 비슷했지만, 750명 정도가 다녀온 1차 버스에는 개인 참가자 비율이 70%를 넘었다”며 “먹을거리나 등록금 등 생활 이슈가 아닌 사안에 이 정도의 개인 참가자가 모이는 건 드문 일”이라고 했다. 20~40대가 주류였던 참가자들 가운데는 초등학생이나 중고생 자녀를 동반한 가족 단위 참가자도 적지 않았다. 고립된 노동자들의 투쟁에 힘을 실어주려고 참가한 것만은 아니었다는 방증이다. 신씨 역시 “투쟁하고 연대한다는 차원보다 함께할 수 있는 무언가를 나누려고 간다는 참가자가 많았다”고 전했다.
현장의 증인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들이 나누려고 했던 것은 무엇일까. 참가자들이 남긴 다양한 후기에서 확인되는 것은 분노와 안타까움, 미안함, 부끄러움이다. 이택광 교수는 이를 “재난 상황에 몰린 약자를 외면해선 안 된다는 인도주의 논리”라고 정리한다. “기저에 흐르는 논리는 단순하다. 삶의 막장에 내몰린 사람들, 그들이 저렇게 오랫동안 높은 곳에 올라가서 절규하는데, 우리라도 달려가 그 인간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약자를 위로하고 힘을 북돋우려고 버스에 오른 사람들이 오히려 그 약자에게서 위안받고 에너지를 충전해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1차 희망 버스를 타고 한진중공업에 다녀온 뒤 자신의 부산행을 “개체성이 깨지고 공통성이 만들어지는 우정과 사랑의 체험”이라고 표현한 시인 심보선씨도 그런 경우다. 그는 인쇄물로 나온 참가 후기를 통해 “그날 밤, 우리 모두는 높은 곳(크레인)에서 울려퍼지는 (김진숙의) 위대한 말들에 귀기울이고, 낮은 곳에서 재잘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밤새 웃고 울면서 조금씩 위대해졌고 그렇게 가까스로 인간일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이를 두고 엄기호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은 “사회학적 설명보다 종교적 설명이 필요한 사건”이라고 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구차하고 비루한 삶을 꾸려나가던 범속한 개인들이, 190일 넘게 고공농성을 이어온 김진숙이란 여인의 희생적 삶에서 이 시대에도 존엄을 지키는 인간의 삶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발견하고 온다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희망의 버스는 자기 정화를 위해 성지로 떠나는 순례자의 행렬에 비견할 만한 사건이다.
하지만 희망의 버스에서 표출되는 영성적 분위기는 2000년대 후반부터 대규모 집회 현장에서 어김없이 관찰돼온 양상이란 분석도 있다. 신진욱 교수는 “집회가 낳을 정치적 효과를 의식하기보다, 의미 있는 사건이 벌어지는 현장을 직접 체험하고 싶다는 욕망에서 집회에 참여하는 행위자들이 늘고 있다”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의 대규모 추모 행렬도 이런 체험에 대한 욕망을 빼놓고선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 집회나 시위 같은 집합행동 참여자들에게, 집회가 표방하는 목표나 가치보다 참여 자체가 가져다주는 쾌락과 만족감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은 집합행동 연구자들이 내놓는 공통된 분석이기도 하다.
2011년 사회운동을 상징하는 사건희망의 버스가 신자유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연대와 저항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낼지에 대해, 전문가들의 전망은 조심스럽다. 김홍중 교수는 “넓은 의미에서 ‘반신자유주의’라고 일컬을 만한, 무언가에 반하는 정서가 실체를 드러내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희망의 버스가 그것을 대표한다고 결론 내리는 건 성급한 것 같다”고 했다. 일각에선 목표로 삼는 변화의 범위를 법질서의 경계, 체제의 테두리 안으로 제한하려는 경향이 뚜렷하다는 점을 들어 희망의 버스가 갖는 근원적 한계를 꼬집기도 한다. 중간계급이 주도하고, 보수적 가치인 휴머니즘에 호소하는 운동이라는 점에서 체제를 비판하면서 넘어서려 했던 과거의 급진운동과는 차이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각자의 분석과 진단이야 어떻든, 희망의 버스는 2011년 한국의 사회운동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기억될 것 같다는 게 연구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정권과 보수 진영이 느끼는 위기의식도 상당하다. 2차 희망 버스가 몰려오기 전 노사의 교섭 타결을 압박한 것이나, 행사 당일 1만 명에 가까운 경찰과 용역을 동원해 시민들의 한진행을 무리하게 봉쇄한 데서도 확인된다. 7월30일 버스는 다시 떠난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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