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이제야’. 이집트 등 아랍권을 휩쓰는 민주화 열풍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튀니지에서는 ‘재스민 혁명’이 일어난 뒤에야 23년째 집권한 독재자가 쫓겨났다. 이집트는 전통요리의 이름을 딴 ‘코샤리 혁명’이 타오를 때까지, 공화제인 이 나라에서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은 30년간 철권통치를 해왔다. 바야흐로 21세기에 살고 있는 지금까지, 어떻게 그토록 권위주의적 정권은 공고했던 것일까? 아랍권은 1974~90년 남·동유럽, 라틴아메리카, 동아시아 30여 개국에서 권위주의 체제를 무너뜨린 민주화 물결을 비켜갔다. 아랍권의 권위주의 정권은 그처럼 난공불락으로 보였지만, 지금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이번 시위는 이슬람교를 믿고 아랍어를 쓰는 아랍권과 민주주의라는 화두를 곱씹게 만든다.
권위에 대한 저항 터부시한 전통
아랍 유목민족에게 우물과 오아시스는 생사를 가르는 생명의 젖줄이었다. 생명줄을 지키려 유목민들은 수천 년 동안 무장해왔다. 산악지역인 예멘은 그 특징을 잘 보여준다. 남자들이 기백의 상징으로 반달형 전통 단검 ‘잠비야’를 아랫배에 차고 다니는 투쟁 전통이 남아 있다. 우물과 오아시스를 지키기 위한 전투는 가장 힘센 가문의 수장이 지휘했고 그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서정민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중동·아프리카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이슬람은 유목민의 전통을 기반으로 피어났다. 이슬람은 아랍어로 ‘복종’을 뜻한다. (이슬람교의 유일신) 알라에 대한 복종이지만, 이슬람 공동체의 종교지도자이자 정치지도자였던 무함마드에 대한 복종이다. 이슬람의 전통이 강한 아랍에서 강력한 물리력에 대한 저항은 터부시돼왔다.” 코란 4장 59절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믿는 자들이여, 알라 하나님께 복종하고 사도와 그리고 너희 가운데 책임이 있는 자들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이집트 고대 중앙집권 왕조를 시작으로 아랍 5천 년 역사에서 권위주의 독재정권이 시민혁명을 통해 바뀐 적이 없는 이유 중 하나라는 것이다. 아랍권이 그 어느 지역보다 정부의 정통성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믿는 자들이여, 알라 하나님께 복종하고 사도와 그리고 너희 가운데 책임이 있는 자들에게 순종하라.”-코란 4장 59절‘유목민의 전통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말인가?’라는 질문도 있다. 하지만 아랍권은 사회 전반에 이슬람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 코란, 하디스 등 이슬람 경전에 대한 존중의식이 강하다. 우리가 더러 이상하게 여기지만, 무슬림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하루 5번 메카를 향해 기도를 올린다. 일생에 적어도 한 번은 이슬람 성지인 메카를 순례하는 게 의무여서, 해마다 250만 명의 무슬림이 사우디아라비아 메카 성지순례(하지)에 나서 거대한 행렬을 이뤄왔다. 이슬람력 9월은 코란이 내려진 신성한 달로 여겨, 한 달 동안 일출에서 일몰까지 매일 단식한다. 유럽에 이민간 무슬림들이 온몸을 가리는 부르카나 니캅 등의 의상을 착용해 사회적 논란이 되는 데서도 뿌리 깊은 이슬람문화를 알 수 있다. 이처럼 아랍권 국가 상당수는 세속 정권이지만 사회를 이슬람문화가 지배해, 근대사회의 기본이라는 종교와 정치의 분리가 완벽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곧 이슬람은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생활이며 가치체계의 중심이다.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것 자체가 이슬람 세계를 악으로 간주하는 기독교 세계관의 반영이자,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서구 시스템의 우월의식을 드러낸다는 지적도 받는다.이슬람 칼리프(최고 통치자) 문화에서는 지도자가 알라의 지지를 받는 자로 간주되고, 쿠데타 세력도 이슬람 체제를 유지하면 정통성을 인정받아 권위주의 압제자에 대한 저항의식이 약하다. 이집트는 21세기 공화정이지만 최고지도자에게 대한 충성서약 ‘바이야’가 행해진다. 예언자 무함마드에게 보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최고지도자에게 절대로 반기를 들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이집트에서 60년 동안 군부 권위주의 정권이 지속된 데는 이런 전통이 작용했다.
정상률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아랍권의 부족주의 가부장제 문화가 국가 통치자에게도 투사된다고 분석한다. 사우디아라비아·요르단·카타르·오만·쿠웨이트 등은 특정 가문 중심의 국가로, 세속적인 권위주의 독재체제에도 부족주의 문화가 강하게 남아 있다. 중세적인 지대추구국가(rentier state) 성격을 갖고 있어, 특정 가문이나 정치 엘리트가 석유수입, 국외원조, 관광수입 등을 독점한 채 재원을 분배하면서 권위를 유지한다. 정상률 교수는 “특정 부족이 정권을 차지한 뒤 자기 부족 중심으로 정권을 유지하고, 많은 독재자가 이런 부족주의를 이용해왔다. 공화제를 채택한 나라에서도 부자 세습을 하는 등 이슬람의 특성이 나타난다”고 밝혔다. 시리아는 부자 세습을 이뤘고, 예멘·리비아·이집트가 부자 세습을 추진해왔다.
민주주의를 막은 종교 이외의 요인들이런 특성이 반영돼 아랍권의 국가 성격은 △사우디아라비아처럼 봉건체제를 유지하는 이슬람 봉건국가 △서구 공화제를 도입했지만 부족적·가부장적인 근대 권위주의 국가 △레바논처럼 종파 간 연합으로 권력을 균점하는 입헌공화국 등으로 나뉜다. 폐쇄적 독재국가, 위압적 권위주의 국가, 보수적 군주국가, 조건적 민주주의 국가로 구분하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랍의 가부장적 권위주의 특성 등은 ‘동양은 서양보다 열등하다’는 편견에 따른 오리엔탈리즘에 기반해, ‘아랍과 민주주의는 양립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빌미가 됐다. 아랍의 상황은 ‘오리엔탈 폭정’이라고 표현되기도 했고, 아랍권은 시민사회가 취약하기 때문에 민주주의 발전이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코란, 이슬람 전통, 이슬람법 등 이슬람 요소들이 정치발전을 지연시키고, 권위주의·전제군주제·신정체제 정권이 득세하게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반면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것 자체가 이슬람 세계를 악으로 간주하는 기독교 세계관의 반영이자,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서구 시스템의 우월의식을 드러낸다는 지적도 받는다. 이 때문에 이슬람 학자들은 민주화 대신 ‘정치발전’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아랍 전문가들은 아랍문화의 특성 못잖게 서구 제국주의의 결과인 아랍 민족의 분열, 독재정치, 경제 잉여 착취, 갈등과 전쟁, 시민사회 발전 지체, 내부 분열 등 이슬람 종교 자체와는 큰 관련이 없는 요인들이 아랍의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했다고 지적한다. 이런 측면은 서구와 같은 아래로부터의 시민혁명이 아니라, 쿠데타와 폭동 등에 의해 급격히 정권이 바뀌는 원인이 됐다.
역사 속에서 아랍권은 식민지를 거치면서 부패하고 반이슬람적 친서방 정권이 장기 집권했다. 황병하 조선대 아랍어과 교수는 2월8일 한국중동학회 등이 공동 주최한 세미나에서 “아랍 이슬람권의 현실정치에서 군부세력은 세속적 기득권 세력의 편으로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근본으로 하는 이슬람 국가를 표방하는 정권의 등장을 거부했는데, 그 뒤에는 영국과 프랑스, 미국 등 강대국이 배후세력으로 존재했다. 가장 대표적 사례가 알제리의 민주화 과정이다”라고 지적했다. 1962년 독립한 알제리는 1991년 총선에서 이슬람 원리주의 정당인 이슬람구국전선(FIS)이 압승했다. 그러나 군부가 총선을 무효화하고 정권을 장악하면서 1992년부터 8년간 내전이 벌어졌고, 프랑스 등 강대국은 이슬람 세력의 득세를 우려해 군사정권을 지원했다.
특히 미국은 중동 지역에서의 지정학적 국익을 우선해 권위주의 친미 정권과 손잡았다.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무장정파 하마스가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를 거쳐 집권하자, 이스라엘은 적대적인 하마스가 장악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봉쇄했다. 이때 미국은 중동에서 이슬람 급진세력의 득세를 우려해 이스라엘을 지원했다. 민주주의와 관련해 미국이 이중 잣대를 들이댄다는 논란을 불러일으킨 까닭이다.
터키를 시작으로 한 세속화 물결서정민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아랍권이 민주주의를 할 수 있느냐고 의문을 갖는 것은 우문에 가깝다. 더딜 뿐이지, 나름의 특성을 반영하면서 나아가고 있다.” 그동안 아랍 세계는 전통을 유지하려는 이슬람 세력, 권력을 유지하려는 세속주의 세력, 전통 가치를 지키며 개혁하려는 세력 사이에서 갈등을 빚으면서도 나름의 정치발전을 이뤄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터키의 아버지’로 불리는 무스타파 케말의 정치와 종교 분리정책에 따라 터키는 국가제도와 정책에서 이슬람적 요소가 거의 사라지고 서구 유형의 세속화 정책을 추구했다. 이슬람 제국의 대부였던 터키를 시작으로 중동에서 세속 정부가 등장해, 나라별로 다르지만 빠르게 세속화되면서 전통적 요소와 근대적 요소가 혼합되고 있다. 아랍은 이슬람권에서 정교분리를 이루며 서구 제도를 안착시킨 ‘터키 모델’를 뒤따르고 있다. 최근 아랍 7개국 2천여 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66%가 터키를 ‘이슬람과 민주주의 혼합의 성공적 사례’로 꼽았다. 튀니지와 이집트도 국가 시스템이 이슬람법이 아니라 대부분 유럽의 법체계를 쓰고 있다. 경제 시스템 역시 전통적인 이슬람 금융 등은 5% 미만이다. 미국의 외교전문지 는 2월4일 서구적 기준에는 못 미치지만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등 걸프만 국가들이 아랍에서 나름의 민주주의를 실현해왔고, 이는 아랍권의 시위에도 이들 나라가 상대적으로 조용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지배 가문이 국부를 국민에게 고루 나눠준 덕택이자, 다른 군부독재와 달리 왕이 사우드 가문의 수장으로 ‘디반’이라는 제도 등을 통해 아버지처럼 국민과 소통해왔다는 것이다. 최소한 국민과의 접촉 면에서는 미국 연방의원보다 자주 의견을 듣고 있다고 는 전했다. 인권 등의 면에서 서구 민주주의 기준을 크게 밑돌지만, 그래도 ‘들을 줄 아는 권위주의’라고 평가받는 이유다. 물론 부패방지와 정치참여 등 국민의 커지는 요구에 부응하는 건 여전한 과제다.
아랍권은 아니지만 중동 이슬람 국가인 이란도 제한적 민주주의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이슬람식 민주주의를 시도해왔다.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 당시 이슬람은 부패한 팔레비 왕조의 축출과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고리였다. 혁명 과정에서 이슬람과 공화제의 요소를 모두 포함하는 헌법을 만들었다. 하지만 시아파 이슬람인 이란 이슬람공화국은 제도적으로 공화제보다 이슬람이 중심이다. 이 때문에 이란 ‘신정체제’는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종신제 최고 종교지도자 아래 종속되고, 의회의 입법 기능도 성직자로 구성된 헌법수호위원회에 종속되는 형태를 띠고 있다.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버리지는 않을 것이고 서구 사회에서 기독교와 정치가 분리됐듯,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면서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정치발전을 이뤄갈 것이다.” -정상률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이란 혁명의 정신인 이슬람 원리주의에는 이슬람식 민주주의 실현 요구가 반영돼 있다. 이슬람의 원칙으로 돌아가 이슬람을 부흥함으로써, 왕정이나 군부독재, 부패 전제정치의 타락과 같은 위기에서 벗어나 정통 이슬람식 민주주의로 회귀하려는 것이다. 경제난과 실업자 증가, 전통문화에 닥친 서구화의 충격 등도 정당이나 이슬람 운동체를 통해 표출된다. 이집트에서 주목받고 있는 무슬림형제단은 ‘이슬람이 해결책이다’라고 주장해왔다. 곧 ‘서구의 여러 방식을 해봤지만 타락하지 않았느냐. 이슬람 원리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과거 이슬람 공동체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숨진 뒤 혈통에 따라 계승하지 않고 ‘슈라’라는 부족 대표자 회의에서 만장일치라는 이슬람식 대의민주주의 방식으로 후계자를 뽑았다. 이희수 한양대 교수(중동학)는 지난해 12월 쓴 칼럼에서 “역설적이게도 이슬람이야말로 인류 역사상 가장 이른 시기에 민주주의를 경험한 종교체제였다”고 평가했다.
서구식 민주주의만이 해법인가모든 민주주의가 개별 국가의 역사와 문화를 무시한 채 반드시 서구식 자유민주주의를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과 한국 등도 전통문화는 유지하면서 서구적 제도를 도입했다. 아랍권도 이슬람문화에 기반한 제도, 정치체제, 국가·사회 관계가 형성됐다. 이처럼 아랍이든 아시아든 고유한 사상과 전통에 서구적 틀을 결합해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왔다. 이슬람 안에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해석이 제각각이다. ‘서구화=민주주의’ ‘비서구=비민주주의’라는 식으로 단순하게 재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미약하고 느렸지만, 아랍의 민주화가 앞으로 어떤 궤도를 그릴지는 알라만이 아는 일일 수도 있다.
아랍권도 이제는 변화의 길목에 들어섰다. 국민은 궁핍한 삶에 귀기울이고 대책을 내놓기를 요구하고 있다. 가부장적 권위주의 전통 속에서도 굶어죽어가는 자식을 외면한 채 수 십 년째 자신들의 뱃속만 채우는 절대권력자 ‘아버지’에 대한 도전은 시작됐다. 이번 반정부 시위의 불길을 댕긴 튀니지의 과일 노점상 청년의 분신도, 이집트 시위 초기의 분신도 생활고가 원인이었다. 는 2월4일 튀니지와 이집트의 국민이 원하는 것은 서구식 민주주의가 아니라 생활고 등에 대처할 수 있는 정부라며,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경제가 중국처럼 성장하고 삶의 수준이 올라갔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졌겠느냐”고 묻기도 했다. 이제 아랍권의 교육 수준 향상으로 대중의 정치·사회 의식이 익어가고,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권위주의 정권의 정보 통제를 뚫고 정보 공유를 통한 시민혁명의 수단을 제공하고 있다. 서정민 교수는 “아랍권 국민 다수는 21세기는 이슬람의 틀로만 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랍 젊은이들은 하루 5번 예배하는 게 고민이 아니라, 어떻게 일자리를 얻고 살아가느냐가 고민이다”라고 말했다.
정교 분리되며 보편 가치 추구할 듯이 때문에 이집트에서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인 무슬림형제단이 단기간에 집권할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많다. 이란 혁명 뒤 이슬람 세계는 시아파 이슬람의 세력 확산을 경계해왔다. 전세계 무슬림 인구의 90%인 이집트와 같은 수니파 이슬람에서는 종교집단이 권력 위에 올라서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지금껏 그런 사례도 없다. 권력을 추구하다 권력이 무너지면 종교도 무너지기 때문이다. 정상률 교수는 “이란이 이슬람 혁명 뒤 서방과 갈등을 빚는 것을 본 학습효과 때문에 이슬람주의 세력 중심의 국가 건설은 이집트에서 크게 지지받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랍의 민주화 물결은 아랍권에서 가부장적 권위주의 전통을 깨뜨리는 계기가 됐다. 이번 시민혁명이 단순한 독재 타도 혁명이 아니라,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인식 체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아랍의 사상혁명이라는 게 서정민 교수의 주장이다. 서 교수는 “아랍권에 내려오는 가부장적 전통을 깨뜨렸다는 점에서 상당한 변화다. 반권위주의 의식이 중·장기적으로 왕정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정상률 교수는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버리지는 않을 것이고, 서구 사회에서 기독교와 정치가 분리됐듯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면서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정치발전을 이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집트에서 보듯, 군부에 대한 도전이나 군부 배제보다는 군부가 주도하거나 군부와 타협해 점진적 개혁을 이룰 가능성이 크다. 민주화로 가는 길목에선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아랍식 정치발전을 이뤄낼지는 이제는 아랍인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 느린 듯해도, 나일강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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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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