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2010년, 21세기 첫 10년을 100명의 전문가에게 물었다. 정치·경제·문화 등을 망라한 100명이 뽑은 10년의 인물은 노무현, 사건은 9·11 테러, 사물은 인터넷, 열쇳말은 양극화였다. 전자우편을 통해 이루어진 설문에는 ‘반전’의 문항도 있었다. ‘웃게 한 사람’(1위 이명박), ‘과대평가된 사건’(1위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 ‘부숴버리고 싶었던 사물’(1위 휴대전화), ‘이후 10년의 열쇳말’(1위 양극화)도 함께 물은 것이다. 긍정과 부정의 뜻을 담은 질문의 결과를 나란히 세우면 묘한 호응이 생긴다. 인물에서는 대비되는 한국 대통령들, 사건에서는 미국에서 벌어진 상반된 일들, 사물은 네트워크와 관련된 두 가지 것들이란 공통점이 있다.
평화에서 출발해 공포에 다다랐다
이번 설문을 이렇게 종합할 수도 있겠다. 21세기 첫 10년은 ‘2001년 9·11 테러’로 시작해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끝났다. 지난 10년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해를 묻는 질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2009년이 2위(21명), 9·11 테러가 일어난 2001년이 4위(10명)를 차지한 것을 인물·사건 1위와 더해서 나온 말이다. 여기에 가장 인상 깊은 해로 꼽힌 2008년(24명)과 세 번째로 꼽힌 2002년을 더하면 처음(2001~2002년)과 끝(2008~2009년)이 특히 ‘드라마틱한’ 10년으로 정리된다. 돌아보면, 2008년은 글로벌 경제위기(사건 2위)가 시작된 해이고, 2002년은 “월드컵, 반미, 노무현의 해”(정희준 동아대 스포츠과학부 교수)였다.
이렇게 2002년은 이동근 대한상의 상근부회장(“행복한 월드컵”), 유시민 국민참여당 참여정책연구원장(“노무현 당선”) 등 개혁과 보수를 막론한 한국인에게 좋은 기억을 주는 해였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처럼 “보수 정당이 위기를 맞고 진보 정당이 등장했다”는 이유로 민주노동당이 10석을 얻어 국회로 진출한 2004년을 인상적인 해로 꼽는 견해(5명)도 있다. 2008년은 희망과 절망이 교차한 해였다. 여름엔 촛불집회(미국산 쇠고기 반대)가 타오른 반면 가을엔 글로벌 경제위기가 시작됐다. 다른 의미의 교차도 있었다. 정건화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는 “절망(글로벌 경제위기)과 희망(오바마 당선)의 교차”라고 썼다. 그러나 해피엔딩은 아니었다. 10년의 꼬리엔 “대통령의 자살, 용산 철거민의 사망 등 절망의 나락이었던 한 해(2009년)”(백준 제이앤케이도시정비 사장), 전쟁의 불안이 감도는 2010년이 버티고 있다.
임현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용두사미”라는 사자성어로 10년을 요약했다. 김기식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의 “국내적으론 좋았다가 나빠지고 국제적으로 나빠지다 반전되는 듯”이란 평가를 더하면 용두사미의 의미가 선명하게 살아난다. 김종배 시사평론가 역시 “반전의 연속”이라고 요약했는데, 임근준 미술·디자인 평론가의 “팍스아메리카나의 종언과 지리멸렬한 G20의 시대”라는 평가를 더하면 반전의 의미가 실감난다. 세계사적으로 이라크 전쟁 같은 ‘몸부림’에도 미국이 저물고 중국이 떠오르는 변곡점의 10년이란 전문가 상당수의 공통된 평가가 있었다. 2002년 노무현 당선, 2007년 이명박 당선을 더하면 국내에도 변곡점은 선명하다. 2000년을 포함하면 남북 정상회담의 평화 무드로 시작해 2010년 연평도 포격의 전쟁 공포로 끝나는 아찔한 출렁임도 있었다. 지난 10년이 1990년대에 견줘 어떠했느냐는 질문에 ‘좋았다’(35명)와 ‘나빴다’(35명)가 팽팽히 맞선 것은 우연이 아니다(표2 참고).
지난 10년을 요약한 20자평도 들었다. 여기엔 불안, 혼돈, 실패 같은 단어가 흔했다. 황진미 영화평론가는 “금융은 거품, 권력은 허풍, 다중은 풍 맞은 세월”이라는 촌철살인의 표현을 썼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진보는 실패해서 배웠고, 보수는 집권해서 망했다”고 평가했다. 이렇게 좌우가 부딪히는 가운데 ‘국민국가’ 혹은 ‘정상국가’ 만들기라는 저변의 흐름이 있었다. 그래서 하종문 한신대 일본지역학과 교수는 “대한민국의 테두리가 무엇인지를 더듬고 선긋기”라고 요약했다.
공동체의 미래를 꿈꾸다
어두운 기억을 넘어 대안적 미래를 보는 말들도 나왔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 활동가와 박근서 대구가톨릭대학 교수는 공히 다음 10년의 키워드로 네트워크가 만들어낸 “공동체”에 주목한다. 이것은 지난 10년을 대표하는 사물로 꼽힌 다섯 가지(인터넷, 휴대전화, 트위터, 구글, 네이버)가 모두 네트워크와 관련된 것이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렇게 지구촌 속 한국의 과거, 현재, 미래를 지난 10년의 인물과 사건과 사물과 키워드로 나누어 분석한 기사가 이어진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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