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내년이면 출범 10돌을 맞는다. 하지만 안팎에서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거칠게 쏟아진다. 주요 시국 사안들에 대해 인권위의 직권조사·권고 등을 결정하는 전원위원회 회의는 ‘봉숭아학당’이란 자조가 파다하다. 일부 인권위원의 저급한 인권의식과 함량 미달 발언들 탓이다. 내부에선 사직·해직·휴직·유학 등 조직원들의 ‘엑소더스’가 이어진다. 한국 선진화·민주화의 ‘깃대종’이던 인권위는 지금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가. 내부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듣고 볼수록 처참하다. _편집자
위기란 표현은 옳지 않다. 2010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신뢰 수준은 ‘적의’로 관통된다. 그 온정조차 사라진 이는 ‘경멸’로 수식한다. 인권 전문가들의 평가다. 시민들은 미처 내막을 모른다. 이 학계·법조계·시민사회의 인권 전문가 26명을 대상으로 ‘인권위 9년’을 평가하는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설문 대상에는 전직 인원위원은 물론, 현직에 있는 인권위 사무처 간부도 포함돼 있다. 특히 2001년 인권위의 ‘산파’ 구실을 한 설립기획단의 구성원도 포함했다. 그해 4월 국가인권위법이 통과된 뒤 8명의 민간 전문가로 구성됐던 인권위 설립기획단은 인권위의 미래를 설계한, 상징적 모임이다.
‘최악’ 현병철 위원장, 지식·의지 부족
우선, 역대 인권위원장 가운데 ‘최악’으로 현병철 위원장이 꼽혔다. 지나치게 압도적이다. 26명의 응답자 가운데 24명(92.3%)이 현 위원장을 지목했다. 한 명은 “모른다”고 답했고, 다른 한 명은 조영황 전 위원장을 꼽았다.
2001년 11월 출범한 인권위는 지금까지 모두 5명의 인권위원장을 배출했다. 김창국 1대 위원장(~2004년 12월), 최영도 2대 위원장(2004년 12월~2005년 3월), 조영황 3대 위원장(2005년 4월~2006년 10월), 안경환 4대 위원장(2006년 10월~2009년 7월)에 이어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7월 임명한 현병철 위원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실 현 위원장은 인선 과정 때부터 각계의 반발에 직면했다. 대학 행정에 정통한 보직교수 출신이란 점 말고는 알려진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1년여간 직을 수행한 뒤의 평가는 어떨까?
설문조사 결과가 일단을 보여준다. 역대 위원장 가운데 현 위원장을 가장 낮게 평가하는 이유(복수응답)로, 가장 많은 22명이 ‘조직의 정치적 독립성 부족’을 꼽았다. 현 위원장으로선 억울할지 모른다. 당초 인권기구의 정치적 독립성을 옹호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현 위원장은 지난해 9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인권위가 독립기구인지, 행정부에 속하는지’ 묻는 한나라당 의원의 질문에 “후자”라고 답했다.
독립성의 당위만큼 인권 전문가들 사이에서 폭넓게 합의된 요소는 없다. 설문조사에서도 ‘인권위가 정치적으로 독립해야 하는가’란 질문에 25명이 ‘매우 동의한다’, 1명이 ‘동의하는 편’이라고 밝혔다. 이는 현 인권위의 독립성을 묻는 질문에 25명이 ‘지난 정부보다 아주 독립적이지 못하다’, 1명이 ‘독립적이지 못한 편’이라고 평가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국가인권위법이 “위원회는 그 권한에 속하는 업무를 독립하여 수행한다”(3조 2항)고 명시한 배경과도 통할 것이다.
현 위원장의 이런 태도는, 설문 응답자 20명이 현 인권위에 대한 평가가 낮은 이유로 ‘인권 개선 의지 및 지식 부족’을 탓하는 배경에도 가닿는 것 같다. 9명은 ‘시민사회단체와의 협업 부족’을 꼽았고, 9명은 ‘상징성 및 국민 신뢰도 부족’을 지적했다. ‘조직 운영 및 리더십 문제’를 꼽은 이도 5명이었다(표1 참조).
현 체제의 인권위가 제구실을 못한다는 절규가 뒤따른다. 응답자 19명(73%)은 ‘매우 못한다’고 말했고, 6명은 ‘전반적으로 못하는 편’이라고 지적했다. ‘보통이다’ ‘(매우) 잘한다’고 평가한 이는 전무했다. 응답하지 않은 1명에게 이유를 따로 물었다. “평가할 가치가 없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100점 만점의 점수로 평가해달라는 질문에는 5명이 40점, 4명이 50점을 줬지만 평균은 29.4점에 머물렀다. 20점, 30점을 준 이가 각각 4명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3명에겐 ‘빵점’짜리 인권위였다. 기실 존재의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표2 참조).
정치적 독립성에 부여한 점수는 더 짜다. 평균 18.3점이다. 10점, 20점, 30점을 준 이가 각각 6명이었다. 0점을 준 이도 5명이나 됐다.
이처럼 획일적이면서도 조롱에 가까운 평을 받는 배경은 무엇일까? 검찰 수사까지 받은 민간인 사찰 건이 인권위 내부에서 처리되는 과정을 톺아본다.
김종익씨에 대한 총리실 사찰 건을 두고, 지난 7월 초 상임위원들(인권위원 중 3명)이 사무처에 기초 조사 및 모니터링을 해 상임위 안건으로 보고하도록 요청한다. 현 위원장은 “상임위원들이 어떤 안건을 사무처에 올리라고 할 권한이 있냐”며 따졌다. 논쟁이 거듭됐다. 이제 조사관의 조사가 진행 중이다. 인권위가 해당 사안에 개입할 시점은 사라졌다. 인권위의 한 간부는 “사실상 상임위의 무력화”라고 잘라 말한다. 상임위원 3명은 모두 위원장과 대립각을 세워왔다.
반면 전원위는 현 위원장과 뜻을 같이하는 이가 다수다. 인권위원은 인권위원장을 포함해 모두 11명으로 구성된다. 대통령이 4명을 임명하고 대법원장이 3명을 지명하며 국회가 4명을 선출한다. 이들이 참석한 전원위 회의를 통해 6명이 찬성할 때 결정(의견 제출, 직권조사, 권고 등)이 이뤄진다.
지난 8월 국회의원 3명에 대한 국정원 사찰 건이 전원위에 상정된다. 전원위 회의에서 한 인권위원이 한 말은 “사실관계를 잘 알려주지 않아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다”였다. 다른 인권위원들이 따졌다. “한 달 넘게 민간인 사찰 문제로 나라가 시끄러웠는데 뉴스도 안 보느냐.” “ 뿐 아니라 와 한국방송(KBS)에서도 다 보도했다.” 전원위를 1년여간 모니터링해온 한 인권단체 활동가는 “(위원들) 말하는 걸 듣다 보면 봉숭아학당보다 웃기다”고 쓴 농담을 던진다. 한 위원은 “(준비 안 된 인권위원들의) 회의 과정을 보면 역겹다”고까지 말했다. 사안은 결국 부결됐다.
일부 인권위원의 자질 논란이 증폭한 배경이다. 이들의 자질이야 사실상 초지일관이었다. 그 결과가 문화방송 <pd> 사건 재판부에 대한 의견 제출 건 부결(2009년 12월), 집시법상 야간시위 규정에 대한 헌재 의견 제출 건 부결(2010년 2월), 박원순 사건 재판부에 대한 의견 제출 건 부결(2010년 4월), 공직선거법 93조 1항에 근거한 4대강·무상급식 선거공약 활용 금지에 대한 헌재 의견 제출 건 부결(2010년 8월)이다.
김창국 초대 위원장은 "인권위법에서 말하는 인권은 헌법의 규정을 넘어 우리가 가입, 비준한 국제 인권조약과 국제 관습법에서 인정하는 인권까지를 지칭하고 그를 판단의 준칙으로 삼는 것"이라며 "그래서 인권위는 한쪽 발은 현실 세계를, 한쪽은 이상 세계를 딛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 인권위, 특히 (일부) 인권위원의 태도는 이런 기대나 국제적 지침을 크게 벗어난다. 특히 올 2월 보수 쪽 인권위원이 6명으로 다수(위원장 포함)를 차지하면서 경향성이 짙어졌다. 변화든 변질이든 지나치게 뚜렷하고 노골적이다.
마지막 설립기획단 멤버의 사직
실제 설문조사 결과, 야간시위 규정 건에 대해선 26명 전원이 ‘의견 제출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문화방송 <pd> 건은 25명이 ‘의견 제출’에 손을 들었다. 1명만 ‘상정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반대했다. 민간인 사찰 건도 1명의 기권을 제외한 전원이 인권위의 ‘직권조사’가 타당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박원순 사건의 경우 24명이 ‘의견 제출’ 편을 들었다. 1명은 ‘의견 제출 반대’, 1명은 ‘상정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인권운동사랑방의 명숙 활동가는 “인권위원들이 행정공무원이나 경찰에서 근거로 낼 법한 하위법을 기준으로 주요 인권 사안을 기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인권위 내부에서도 “판결을 하듯 법리만 따지려 한다”는 지적이 많다. 한 인권위원은 “인권위가 민원기구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권위 조직원의 자조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그 분위기를 한 장의 사직서가 전한다. “직무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어 사직합니다.” 지난 8월 김형완 인권정책과장이 인권위에 마지막으로 던진 말이다. 2001년 8월 가동된 인권위 설립기획단의 8명 가운데 한 명이다. 더덜없이 9년 만의 이별이다. 이로써 ‘태초’의 멤버는 모두 사라지는, 인권위 한 시대의 종언이기도 하다.
2001년 8월29일이었다. 설립기획단 단장을 맡았던 조용환 변호사가 전화를 했다. 독일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날이다. “국가인권위가 출범하게 됐으니 준비 연구모임에 참여해달라”는 제안이었다. 망설이지 못했다.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며칠 가족과 재회한 뒤, 서울 역삼동의 4평 남짓한 사무실로 출퇴근했다. 3개월가량 무보수로 일했다.
“유엔이 제시한 국가인권기구의 가장 기본적 소명은 국가권력으로부터 인권침해를 예방하고 국민의 인권을 보호·증진하는 것이라, 정치권력으로부터 위원회가 어떻게 독립성을 확립할 것인지가 기획단의 핵심 화두였어요. 완전히 백지에서 시작했습니다. 서구는 주로 인종·종교·성 등 차별 문제에 치중하는 상황이고 우린 50여 년 군사·권위주의 정부에 의해 당한 인권침해가 견고했으니까요. 조사·감시 대상인 정부 부처·시설과 인권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 국가인권위법 시행령에 무슨 내용을 담을지, 정책과 조사·교육 등 주요 업무는 어떻게 분장할지 끊임없이 토론하고 정리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아침 7시부터 이튿날 새벽 1~2시까지 일을 했다. “그때만큼 몰두해서 열정적으로 일했던 기억이 없다.” 그리고 국가인권위원법이 발효된 그해 11월25일 사무처 준비단(단장 김창국 초대 인권위원장)으로 흡수돼 실무적 토대를 다졌다.
지난 8년보다 최근 1년이 더 길었다. 지독했다. 특히 인권정책과를 무력화하는 과정이 노골적으로 진행됐다. 인권정책과는 인권위의 상징적 부서다. 용산 무력 진압, 문화방송 <pd> 기소부터 최근의 민간인 사찰까지 주요 시국 사안에 대한 조사, 의견 정리 등을 담당해 안건을 보고했다. 시구를 빌리자면 “인권위가 어디로 가는지 보려면 정책과를 보라” 격이지만, 정권엔 눈엣가시다.
“폐지하라, 그러나 지켜라”
올 4월 현병철 위원장은 팀제 개편을 명분으로 인권정책과가 맡던 이주인권·여성인권 분야를 각각 침해조사과와 차별조사과로 넘겼다. 그리고 과장 아래 북한인권팀장과 법제개선팀장을 새로 배치한다. 올 5월엔 이성훈 인권정책본부장이 사퇴를 종용받아 나간다. 김 과장은 “현병철 위원장-새 정책본부장-정책과 팀장의 측근 직보 라인이 형성”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고립이라기보다 역할을 거세한 꼴이다.
지난해 4월 남규선 시민교육팀장이 행정안전부 직제령(21% 인력축소안)에 따라 쫓겨났다. 별정직 공무원으로, 해당 팀이 사라진 탓이다. 이명재 홍보협력과장도 직권면직됐다. 민간 출신 직원들에 대한 이른바 ‘숙청’이 이어져온 셈이다.
김 과장은 “혈세를 받아먹으면서 국민으로부터 부여된 소명을 할 수 없으면 당연히 물러나는 게 정상”이라며 “개인적 치욕보다, 주변에서 내게 부여한 소명과 상징성이 있는데 그 가치집단이 더 모욕되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결정이 쉬울 리 없다. 동료들로부터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있었다. 함께 나가겠다는 이도 있었다. 모두 뿌리쳤다. 결정은 결코 쉬울 리 없다. 6개월만 더 일하면 공무원 연금 대상자가 된다.
사직서 제출이 보고된 이튿날 김 과장은 현병철 위원장과 단둘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친다. “차라도 한잔 하자, 빈말이라도 함직한데, 한마디 말도 없이 눈길을 외면하더라”며 김 과장은 혀를 찼다. 지난 9월3일 현 위원장은 그의 사표를 수리했다.
지난 8월24일 저녁 제주에서 열린 제주인권회의에선 ‘국가인권위원회 10년 돌아보고 내다보기’라는 제목의 특별세션이 열렸다. 안경환 전 국가위원장을 포함한 전·현직 인권위원, 여러 인권활동가들이 참석했다. ‘내다보기’는 많지 않았다. 현 체제에 대한 성토가 낮고 굵게 이어졌다. 안 전 위원장은 “조금 더 낙관하며 기다리자”며 허탈하게 웃었다. 그러나 성토의 한 축은 “이럴 바엔 인권위가 없어져야 하지 않나”였다. 실제 김형완 과장은 시민사회 진영의 ‘대안적 인권위’를 모색하고, 인권위 10년사를 가감없이 정리하는 작업을 하려고 한다.
설립기획단의 일원이던 정영선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어렵게 출범한 인권위가 너무 황망하게도, 기억 속에 사라지려 하는 이 즈음, 그래도 인권위를 지켜내야 한다”고 말했다. 오가는 말을 줄이면 ‘인권위를 폐지하라, 그러나 인권위를 지켜라’다. 모순의 시대, 결국 시민의 인권만 침해받는다. 10돌은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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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택 기자 imit@hani.co.kr</pd></pd></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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