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독립은 새 기구의 생명이었다”

김창국 초대 국가인권위원장에게 듣는 인권위 9년,
그리고 독립성이 특히 강조되는 이유
등록 2010-09-08 10:08 수정 2020-05-03 04:26
김창국. 사진 한겨레 류우종 기자

김창국. 사진 한겨레 류우종 기자

김창국 초대 국가인권위원장은 ‘인권위 9년사’에서 유일하게 임기(3년)를 채운 위원장이다. ‘위원장’이 정부로부터 독립적이기가 얼마나 고단한지 말한다. 그가 설문조사에서 ‘조직의 독립성’을 자질 삼아, 가장 높이 평가받는 위원장으로 꼽힌 배경일 것이다. 그를 만나기로 한 날 서울은 태풍으로 찢겼다. 서면 인터뷰를 했다. 인권위는 더 모진 ‘곤파스’를 기다리고 있다. 10돌이 되는 2011년 초 인권위원이 대폭 교체된다.

- 초대 인권위원장으로 가장 역점을 둔 사항이 뭔가.

= 인권위는 독립기구라는 점을 알리고 인식시키는 일이었다. 새 기구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국민이나 언론은 물론 국회의원이나 청와대까지 ‘행정부 소속 또는 대통령 직속기구’로 오해하니까. 위원장과 간부들이 신문·방송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알렸다. 또 일상생활에서의 인권 감수성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9년 만에 상황은 역전됐다. 시민은 독립기구라 외치고, 인권위원장은 뒷짐만 진다.)

- 재임시 가장 힘들었던 점은.

= 사무처 인원 확보였다. 인권위는 250명을 제시했는데, 행정자치부는 129명을 넘을 수 없다고 했다. 위원장을 관두겠다고 했다. 청와대 민정수석, 행자부 장관, 나 셋이 호텔방에서 조율한 끝에 216명(정원 180명, 파견 20명, 전문계약직 16명)으로 결론지었다. 그때부터 직원 모집을 해, 위원회 출범 4개월 만에 사무처를 구성할 수 있었다.

- 인권위는 왜 있어야 하는가.

= 인권침해는 공권력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고, 공권력에 의할 때 가장 치명적이다. 국가인권기구가 아니더라도 인권 보호를 담당하는 국가기구는 많다. 법무부,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등. 그러나 팔은 안으로 굽고, 자신의 수족은 쉽게 자르지 못한다. 각 부서에 자체 감사기구가 있지만 감사원이 필요한 이유도 똑같다. 그래서 다시금 국가인권기구의 자격 요건으로 독립성이 강조된다.

- 독립성을 담보하는 방안은.

= 인권위원들의 사명감과 전문성이 중요하다. 정부와 국민을 설득하는 진지한 자세도 필요하다. 내가 위원장직을 수행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정부 쪽의 간섭을 받아본 적이 없다. 김대중 정부 시절, 장관급은 해외 출장 때 대통령의 사전 재가를 받아야 하는데, 인권위는 위원장의 해외 출장은 그 대상이 아니라고 맞서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때도 유엔에 보고할 국가의 중·장기 인권정책안을 누가 작성할지를 놓고 법무부와 대립했는데, 이때도 대통령 독대 신청을 해 인권위가 하는 방안을 관철했다.

- 현 정권 들어 정부에 의해 인권위가 축소됐고, 대통령 직속기구화 논란도 야기됐다.

= 인권위 업무량은 늘어났는데 인원을 증원 대신 축소한 것은 잘못이다. 대통령 직속기구가 되면 국가인권기구의 생명인 독립성은 크게 훼손된다. 무엇보다 지금의 인권위는 인적 구성에 문제가 있다. 인권위법은 인권위원의 자격 요건으로 ‘인권 문제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고 인권의 보장과 향상을 위한 업무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자’라고 규정하고 있다.

- 시민사회단체와 인권위가 적대적으로 돌아서고 있다.

= 인권위법은 ‘인권의 옹호와 신장을 위하여 활동하는 단체 및 개인과의 협력’을 인권위 업무 중 하나로 명시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의 지지와 협력은 인권위의 독립성 확보에도 필수적이다.

- 정권에 따라 인권위의 방향과 성격이 바뀌는 건 당연한가.

=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인권위가 독립기구라 해도 정권이 바뀜에 따라 영향을 받지 않을 순 없다. 인권위 정원 등 조직에 대한 결정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돼 있고, 예산 편성도 정부의 권한이다. 그래서 정부의 부당한 간섭에 맞서려면 인권위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시민사회단체의 지원이 절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위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인권위의 독립성을 확보해 국제사회에서도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인권 의식이 투철한 두 전직 대통령 덕분이다. (9년 만에 상황은 역전됐다. 한 인권위원은 이명박 대통령이 “‘인권’이란 단어를 공식 석상에서 꺼낸 게 서울 양천경찰서 고문사건 때가 유일하지 않나”라고 되물었다.)

글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