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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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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인상과 집값 하락의 잘못된 만남

집값 떨어지는 시기에 금리까지 인상되며 서민 부담 커지는 시너지 효과…
대출받아 집 마련한 서민은 탈출구 찾기 어려워
등록 2010-07-23 15:04 수정 2020-05-03 04:26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7월9일 한국은행 기자실에서 기준금리 인상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이날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역대 최저 수준인 2%에서 0.25%포인트 올렸다. 한겨레 김봉규 기자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7월9일 한국은행 기자실에서 기준금리 인상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이날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역대 최저 수준인 2%에서 0.25%포인트 올렸다. 한겨레 김봉규 기자

“꾸역꾸역 빚 얻어서 집 산 사람들만 × 되겠지.” “저금리 끝나고 고금리 시대가 오면 담보대출로 집 산 사람들 죽어나겠네. …스페인이나 그리스 꼴 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 7월9일 기준금리를 연 2%에서 2.25%로 0.25%포인트 인상한 뒤 트위터에 쏟아진 아우성들이다.

“기준금리 0.5%포인트 올리면 아파트값 연 4.1% 떨어져”

이번 금리 인상은 경제위기 극복 과정에서 지나치게 많이 풀린 유동성이 경기회복세와 맞물려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위험성을 감안한 선제 조처다. 상반기까지 2% 후반대에 머물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하반기에는 한국은행 목표치인 3%를 넘어설 전망이다.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도 지난 7월14일 “하반기에는 전기·가스 요금의 단계적 현실화가 불가피하다”며 공공요금 인상을 기정사실화했다.

하지만 문제는 대출받아 집을 산 서민·중산층이다. 집값 하락에 이어 이자 부담까지 늘어나면서 엎친 데 덮친 격이 돼버린 것이다. 이자 부담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은 집값을 내려 급매물을 내놓을 것이고, 이는 다시 다른 집값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쳐 전체 주택 가격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114의 김규정 리서치센터 부장은 “금리 상승 이후 부동산 시장의 불안 심리가 커지면서 거래 문의는 사실상 끊긴 상태”라면서 “앞으로 주택 구매 심리가 더욱 위축되면서 가격도 하향 곡선을 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 금리 인상 이후 부동산 시장은 재건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가격이 더 떨어지고 있다. 부동산 정보업체 스피드뱅크의 조민이 리서치팀장은 “재건축 대상인 서울 잠실 주공 5단지는 (지난 6월 말 안전진단 통과 뒤 강세를 보이다가) 금리 인상 이후 34평의 호가가 11억원으로 1천만~2천만원 정도 떨어졌다”고 말했다. 최근 ’금리 변화가 주택 가격에 미치는 파급효과’ 보고서를 발표한 주택산업연구원의 서옥순 책임연구원도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리면 아파트값은 1년 만에 4.1% 떨어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내림폭이 커진다”며 “출구전략에 따른 금리 인상이 주택시장 침체에 미치는 영향이 장기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직은 절대적인 금리 수준이 낮고 인상폭도 0.25%포인트로 크지 않기 때문에 이자 부담 증가가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문제는 이번 금리 인상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내년 초까지 금리가 3% 가까이 추가로 인상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삼성증권의 채권분석파트 관계자는 “향후 경기 상황에 따라 금리 인상의 완급 조절이 있겠지만 내년 1분기까지는 1%포인트 정도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렇게 되면 대출을 받아 집 한 채 겨우 장만한 서민들은 직격탄을 맞게 된다. 대출금리 상승 부담을 피하려면 집을 처분해야 한다. 하지만 이미 집값이 살 때보다 떨어진 상태에서 손해를 자초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설령 이자 부담을 감내하기로 하고 대출을 재갱신하려 해도 주택담보인정비율(LTV·집값 대비 담보대출금 비율) 기준을 맞추기 위해 금융기관으로부터 담보 보강, 차액 상환 등의 요구가 거세질 수 있다.

 

0.25% 금리 인상=2조4천억원 이자 부담 증가

국내 가계 부채(자영업자 포함)는 2009년 말 현재 913조원으로, 2003년에 비해 1.7배로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가계 부채 증가의 주된 요인을 주택담보대출에서 찾는다. 2000년 이후 저금리 기조 속에서 주택 가격 상승에 편승해 주택담보대출이 빠르게 늘어났다는 것이다. 실제 가계 부채의 46% 정도가 각종 부동산 관련 대출이다. 총자산 대비 가계 부채 비율도 2003년 13.4%에서 지난해에는 16.4%로 빠르게 높아졌다. 빚이 많아도 소득이 많으면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지난해 말 현재 153%로, 주요 선진국 중에서 영국(170%대) 다음으로 높은 편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박덕배 전문연구위원은 “국내 주택 가격이 급락하거나 금리가 상승하면 가계의 재무 상태와 손익이 급격히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즉 주택 가격이 5%포인트·10%포인트·20%포인트 하락하면 총자산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이 지난해 말 기준으로 1.6%포인트·2.3%포인트·4%포인트 상승하고, 대출금리가 1%포인트·2%포인트·3%포인트 상승하면 가처분 대비 이자 지급 비율은 1.2%포인트·2.4%포인트·3.5%포인트 상승한다는 것이다.

중소기업 대출의 상당 부분도 부동산 관련 대출이어서 금리 상승에 따른 이자 부담 증가는 중소기업 구조조정, 부동산 시장 침체와 함께 삼중고로 이어질 공산이 높다. 예정된 은행권의 중소기업 구조조정 작업(신용위험 평가)이 시작되고 금융위기 이후 중소기업에 대한 한시 지원 방안으로 도입된 100% 보증부대출 역시 7월부터 회수에 들어간데다, 금리마저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벌써 중소기업계에서는 올여름이 금융위기 이후 가장 위험한 시기가 될 것 같다고 걱정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번 금리 인상으로 인한 가계나 기업들의 추가 이자 부담은 연간 2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은행권의 6월 말 기준 가계 대출 잔액은 417조8667억원이다. 이 중에서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90%인 점을 감안할 때 금리가 0.25%포인트 오르면 연간 약 9402억원의 이자 부담이 추가로 생긴다. 기업 대출 잔액은 517조9916억원으로, 변동금리 대출 비중 70%를 반영하면 연간 964억원의 추가 이자가 발생한다. 여기에 제2금융권의 가계 및 산업 대출 잔액인 310조원의 추가 이자 부담 6166억원까지 포함하면 이번 금리 인상으로 더해지는 총이자비용은 2조4천억원대로 불어난다.

특히 부동산 붐에 편승해 무리하게 사업을 펼쳐오다 줄도산 위기를 맞고 있는 건설업계가 시한폭탄이다. 금융 당국이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이 심각한 저축은행에 대해 공적자금을 투입해 PF 대출 3조8천억원어치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를 통해 사들이기로 한 것은 사태의 심각성을 반영한다. 가계나 중소기업의 부실은 금융회사의 건전성 악화는 물론 소비 위축으로 이어져 경제 전체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미 지난 5월 말 국내 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은 전월보다 0.10%포인트 상승한 1.20%를 기록해 지난해 8월 말의 1.37% 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 6월 말 기준 연체율도 기업 구조조정 등의 여파로 전달보다 더 상승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 역시 부동산 시장이 회복되지 않는 한 시간 연장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서민이 출구전략 희생자 될 우려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한 조찬강연회에서 “앞으로 걱정되는 부분은 어차피 금리가 오를 가능성이 많은데 가계 부채와 부동산 관련 대출은 잘 관리해야 할 부분”이라며 “역시 영세 서민이 많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부와 한은은 이번 금리 인상으로 당장 가계 부채 등에서 부실이 발생할 가능성은 작다고 말하지만, 이번 출구전략의 가장 큰 희생자가 영세 서민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정부나 전문가들은 출구전략을 더 늦추거나 참여정부 시절 집값 폭등을 잡기 위해 도입한 주택담보인정비율이나 총부채상환비율(DTI·연간 소득 대비 주택담보대출의 원리금 상환액 비율)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크다는 지적이 많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출구전략을 늦추면 향후 물가 급등으로 인해 서민에게 더 큰 고통이 올 수 있다. 부동산 관련 금융 규제를 완화하기보다는 미국처럼 고정금리이고 만기가 30년 이상인 주택담보대출을 활성화해 서민이 금리 변동 위험에 노출되지 않으면서 최소한의 원리금 상환 부담으로 내 집을 마련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곽정수 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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