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9일 사회통합위원회(위원장 고건·이하 사통위)는 대학 시간강사 처우 개선 대책을 청와대에 보고했다. 큰 주제는 ‘근로빈곤층 대책’이었다. 두 가지 의미가 읽힌다. 첫째, 시간강사 문제는 대학 교육의 질과 무관하게 논의된다. 여러 시간강사들이 뜨악해하는 대목이다. 두 번째는 대학 사회가 양산한 수많은 지식인이 ‘빈곤층’이란 사실이다. 때로 ‘가난하게 떠난 자’가 된다. 많은 시간강사들이 절망하는 대목이다. 1998년 이후 모두 8명의 시간강사가 임용 비리, 차별대우, 경제적 어려움, 미래에 대한 절망 등을 이유로 제 목숨을 끊었다.
대우 좋아도 연봉 1500만원 수준지난 5월25일 자살한 서정민(47) 조선대 강사의 유언은 말 그대로 집대성이다. “사는 것이 고난의 연속이었기에… 저는 스트레스성 자살입니다. ‘교수와 제자=종속관계=교수=개’의 관계를 세상에 알려주십시오. 제가 당신(B교수) 종입니까? 교수 한 마리(자리)가 1억5천만, 3억원이라는군요. 썩었습니다. 나의 자존심, 노예로서의 충성심도 사라진 지금 정체성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세상이 밉습니다.”
이조차도 아주 새롭진 않다. 2003년 백준희 서울대 연구교수가 세상을 등진 때도 5월이다. 그는 “유리상자에 갇혀 있다”는 말을 남겼다. 세간은 잠시 주목했다. 이듬달은 분주했다. 한국비정규교수노조는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냈다. 국가인권위는 이듬해 6월 교육인적자원부에 “시간강사에 대한 차별적 대우는 합리성을 잃은 것이어서 헌법상 기본권인 평등권의 침해 소지가 있으며 결과적으로 국민의 교육을 받을 권리도 훼손될 우려가 있어 조속히 개선되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뿐이었다. 국회도 이후 본격적으로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 수만 7개가 넘는다. 하지만 무엇도 통과되지 않았다.
대신 유서가 추가됐다. “제정신을 갖고는 결코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던, 어떤 보이지 않는 장애물을 넘으려 발버둥거리며 만 4년을 보낸 후… 그동안 겪은 이러한 부조리와 모순은 열심히 연구와 강의를 하리란 초기의 순수한 열정에서 이 사회에 대한 환멸과 더불어 애초의 희망과 비전을 접게 만들었습니다.” 한경선(당시 44살·건국대 강의전담교수)씨는 박사학위를 딴 미국에서 2008년 음독자살했다. 박사학위가 ‘덫’일 줄 몰랐던 그곳에서 “비로소 갈망하던 안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끊이지 않는 시간강사의 죽음은 이들의 실태를 보여주는 어떤 통계수치도 초라하게 만든다. 최근 5년간 대학 인건비 총액 대비 시간강사 인건비 비율은 6.5%에 불과하다는 사실, 최근 5년간 시간강사 인건비 총액(1조2467억원)은 전임교원 인건비 총액(12조2588억원)의 10분이 1에 머문다는 사실, 반면 시간강사는 전체 강의 담당자의 55%를 차지한다는 사실, 시간강사에게 국민연금·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대학은 전무하고 고용보험 또한 48%만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 주당 법정 강의시수인 9시간을 강의했을 경우 가장 대우가 좋은 대학에서도 연봉이 1500만원 수준이라는 사실….(2008년 교육과학기술부 자료)
죽음은 한국 대학의 시간강사가 숨긴 어떤 사연과 처지도 일축한다. “박사 논문 통과를 앞두고 심사 교수들을 모시고 룸살롱에 두 번은 가야 한다”거나 “인문계열의 경우 최소 500만원은 든다”는 한 강사, “체육학과 대학원생은 특히 노예의 종”이라거나 “교수의 차도 운전해야 한다”는 한 강사, “대학과 강사노조의 단협을 촉구하는 농성 뒤 6~7개이던 사회학 교양강좌가 2개로 줄었다”거나 “지난해 1천만원이 조금 안 되는 연봉을 받았다”는 임순광 강사(경북대 사회학), “시간강사의 교원화만이 대안”이라고 외치며 국회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인 지 6월 초 1천 일을 넘긴 김동애(63·전 고려대 강사)씨….
‘무늬만 교원’ 대학에 퍼질 것사통위 ‘시간강사대책 소위’의 고형일 위원장이 시간강사 처우 개선안에 반발해 사퇴한 사실이 알려지자 한국비정규교수노조는 비판의 입장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 사통위 개선안이 나온 뒤 “비정규 교수가 교원 확보율에 포함될 때 전임교원처럼 1로 카운팅되는 것에 반대한다. 이 경우 무늬만 교원이 대학 전반에 퍼지게 될 것”이라고 비판하면서도 “대학강사를 교원의 범주에 포함시키겠다는 발상에는 동의한다. 사통위가 노력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난 5월28일 사통위 소위 회의 등을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국회의원이 개정안을 발의할 때도 늘 그랬다. 지역 강사들은 불원천리 서울로 달려온다. 역설적으로 죽음만이 겨우 가져다준 희망의 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통위 내분’은 시간강사를 착취하는 구조가 얼마나 견고한지 다시 한번 보여줄 뿐이다. 한국비정규교수노조는 “부족한 것은 논의와 협상으로 계속 개선 요구할 계획이었다”며 “하지만 이젠 사통위를 협상 파트너로 봐야 할지, 배척 대상으로 삼아야 할지부터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대책도 논의 중이다.
노조 사무처장도 맡고 있는 임순광 강사는 “사통위의 방향은 미래를 팔아 오늘을 잠시 살라는 것”이라며 “사통위의 역량은 물론 의지조차 의심하게 된다”고 말한다.
한국비정규교수노조는 최우선 과제로 ‘시간강사의 교원 법적 지위 회복’과 ‘교수 충원율 100% 달성’을 내걸고 있다. 강의료 인상(현재의 2배 이상), 4대 보험 보장도 요구한다. 다만 처우 개선의 경우 국공립대부터 우선 시행한다거나, 임금수준을 전임강사의 4분의 1에서 2분의 1로 형편에 따라 적용하는 등 다양한 중재안을 마련하고 있다. 추가 예산으로 7천억~1조원을 예상한다.
고 한경선 박사는 “(시간강사 문제가) 그럴듯한 구호나 정책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진정한 반성과 성찰 없이는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사항”이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 좁게는 대학 사회의 반성과 성찰은 사통위가 방향을 수정하거나 국회에서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통과되는 것보다 요원한 일처럼 보인다.
정재호 강사(조선대)는 “강의료 인상분은 물가 상승률을 못 좇아가니 실질임금은 더 줄고 학교 눈치는 더 볼 수밖에 없다”며 “게다가 사회 전반의 노동구조가 점점 더 비정규직을 옥죄는 추세라 (시간강사가 된 이후) 처우가 계속 추락한다”고 말한다.
“질 좋은 교육환경 제공 위해 투자해야”
얼마나 더 많은 절망을 봐야 할지 알 수 없다. 윤정원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위원장은 “배 고프니 빵 한 조각 달라는 게 아니라, 질 좋은 교육환경을 국민이 누릴 권리를 위해 국가가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대학에 잘못 지원되는 각종 사업 예산만 정리해도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에 사는 임순광 강사는 6월 셋쨋주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을 찾아가기로 했다. 다음엔 국회 교과위의 이상민 자유선진당 의원에게 면담을 요청할 예정이다. 다들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했던 의원이다. 임 강사는 몇달 전 큰 수술을 받고 치료 중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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