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기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는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의 행사, 기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해서는 아니 된다.’(공직선거법 9조)
3월18일 민주당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이명박 대통령을 고발하면서 선거법 9조가 다시 주목을 끌고 있다. 이 대통령이 지난 2월5일 경기도 업무보고를 시작으로 다섯 차례에 걸쳐 진행된 지방자치단체 업무보고를 통해 “지역의 숙원사업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라고 지시하는 방식으로 공무원의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 민주당의 고발 이유다.
박선규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이 지역을 방문해 업무보고를 받고 지역 발전 방안을 논의한다고 선거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국민들의 수준을 낮게 보는 기우”라고 반박했다.
사실 대통령의 선거 개입 논란은 전국 단위 선거 때마다 불거진 여야 간의 해묵은 논쟁거리다. 공무원의 중립 의무를 규정한 선거법 9조가 단골 메뉴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태의 출발점도 이 조항이었다. 총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의 예상 의석수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바란다”고 답한 것이 문제였다. 한나라당 고발 → 중앙선관위 공무원 중립 의무 위반 결정 → 국회 탄핵소추 의결 → 헌법재판소 기각 결정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나라 전체가 크게 술렁이는 갈등과 혼란을 겪었으면, ‘정무직 공무원’인 대통령의 특정 정당 지지 발언 혹은 선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정치적 행위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 일정한 정치적 합의와 그에 따른 법 개정을 논의할 법도 하다. 총선이든 지방선거든 여당 후보들은 “힘있는 여당을 밀어줘야 예산을 따와서 지역개발을 할 수 있다”고 공약을 하는데,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이 해당 지역 개발을 언급하면 여당 후보들에게 큰 힘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마다 연초에 진행하는 업무보고에서 대통령이 공무원의 중립 의무를 의식해 입을 다물고 보고를 듣기만 한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선관위 “무상급식 운동 안 돼” 결정에 중립성 시비“선심성 공약 남발”이라는 민주당·민주노동당과 “통상적인 업무”라는 청와대· 한나라당 사이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졌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지방선거의 최대 이슈로 떠오른 무상급식 운동에 대해 선거법 93조(탈법방법에 의한 문서·도화의 배부·게시 등 금지) 위반 결정을 내리면서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고발 사건을 어정쩡하게 처리했다가는 다시 중립성 시비에 휘말리면서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를 수 있다.
중앙선관위는 3월19일 에 “고발 내용을 검토한 뒤 선관위가 조사할 사안인지 결정할 것”이라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검토 뒤 조사 여부를 결정하고, 조사 뒤 선거법 위반 의혹이 있다면 전체 선관위원회의로 넘겨진다. 언제 어느 단위에서 어떤 결정이 내려질지 모른다.
문제는 공무원 중립 의무(9조) 조항을 포함해, 사전선거운동 논란의 근거가 되고 있는 93조, 표현의 자유 논란 대상인 251조(후보자 비방죄) 등은 해석에 따라 결과가 판이해지는 모호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해석은 선관위가 한다.
참고로 미국 연방공무원법(Hatch Act)은 ‘선거에 개입할 목적 또는 선거 결과에 영향을 끼칠 목적으로 자기의 권한 또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하고 있으나, 대통령과 부통령을 적용 대상에서 제외해 해석의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해석에 따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우리나라 선거법을 개정할 권한은, 미국처럼 의회가 가지고 있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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