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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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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에 김비서, 한나라당에 딴나라당을 지어주셨으니

예스맨 이전 한국의 명의 보정자들
세상의 이름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한 예스맨이 있었네
등록 2010-03-18 15:50 수정 2020-05-03 04:26
친박연대여, 그대들은 왜 모호한 이름 속으로 자신을 숨기는가. 2008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친박 의원들이 대구 달성군 사무소에서 박근혜 전 대표와 만나고 있다. 연합

친박연대여, 그대들은 왜 모호한 이름 속으로 자신을 숨기는가. 2008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친박 의원들이 대구 달성군 사무소에서 박근혜 전 대표와 만나고 있다. 연합

예스맨 이전에 예스맨 있었다. 일찍이 이 땅에는 숱한 예스맨들이 지난 세기부터 모니터 뒤쪽에 자신의 신분을 은폐하시고, 키보드 워리어로 암약해오셨다. 일찍이 이분들은 미아리 김도령도 울고 갈 예지력으로 영어 이니셜에 교묘하게 감춰진 조직의 미래를 예언하셨다.

‘봉봉택’의 시절이 있었다. KBS는 고봉순, MBC는 마봉춘, YTN은 윤택남, 방송 3사의 이름을 따서 ‘봉봉택’이라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하수상하던 시절은 진실로 수상해졌다. 이명박 정권의 KBS 장악이 어두운 실체를 드러내자, 이 땅의 예스맨들은 KBS에 깃든 ‘김비서’란 암호를 해독하셨다. 역으로 한글 이름에 감춰진 영어적 진실의 실체도 밝혀내신 혁혁한 전과를 쌓으셨는데, 걸작으로는 현직 대통령의 행태를 전자 언어로 직역한 ‘2MB’가 있다.

예스맨의 오지랖은 전통의 신문에도 뻗쳤다. 역시 지난 세기에 1등 신문 에 ‘×선일보’라는 야릇한 애칭을 붙여주신 적이 있지 않은가.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 되는” 사연처럼 이름에 지읒 하나 붙였을 뿐인데…. 항간에는 창간 90년을 맞은 이 신문이 유구한 로고를 리뉴얼한 것도 실은 애칭 때문에 ‘쪽팔려서’라는 설이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처럼 이름으로 실체를 가리려는 얄팍한 음모를 분연히 일어나 혁파하신 분들도 계시다. 선거철만 되면 나라를 사분오열로 나누시고 선거철이 아니라도 전체의 이해보다는 개인의 영달을 우선하시는 한나라당에 ‘딴나라당’이란 진실된 애칭을 붙여주신 지도 어언 오륙 년이 흘렀다. 딴나라당은 가끔씩 소속 의원이나 도지사가 성희롱 사건에 연루될 때면 ‘성나라당’이란 민망한 이름으로 커밍아웃당하기도 했다. 한나라당은 잃어버린 10년 간난고초의 시절을 끝내고 집권한 이후엔 친이계·친박계로 선명히 나누어져 ‘두나라당’으로서 진실된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민주당, 민주당” 하지만 사실 이 정당의 ‘풀네임’은 ‘통합 민주당’. 꼬마 민주당, 노란 민주당, 그냥 민주당, 한국 정치에서 민주당의 실명은 생각보다 다양했다. 한나라당과 함께 한반도를 동서로 양분해온 이 정당에 지금 가장 긴급히 필요한 작업의 기술은 통합의 마술이다. 코앞으로 닥쳐온 지방선거에서 ‘5+4=1’이란 고도의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민주당이 역사상 유례없는 양보와 통합의 미덕을 정말로 발휘할까. 사실 민주당에 어색한 수식어 ‘통합’이 붙은 것은 이 당의 역사가 통합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냥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합당을 하면서 대통합민주신당이 됐다가, 대선 이후에 이미지 쇄신 차원에서 통합 민주당으로 개명했다. 민주당은 정말로 하던 버릇을 남 줄 수 있을까?

한국의 보수 정당 가운데 유일하게 진실한 이름을 가졌던 정당이 얼마 전에 당명을 예명 같은 이름으로 바꾸는 불상사가 있었다. 임 향한 단심을 이름에 흠뻑 담았던 ‘친박연대’가 ‘미래희망연대’라는 모호한 이름 속으로 자신의 정체를 숨긴 것이다. 이름만 보면 ‘희망제작소’ 혹은 ‘희망과대안’ 같은 사회단체와 친구가 아닐까 의심될 정도다. 한국의 보수여, 아니 극우여, 자신이 부끄러운가? 모호한 이름에 실체를 숨기지 마시라. 그대들은 벌거숭이 임금님이 아니지 않은가.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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