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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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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즈워스 방북, 북-미 협상 돌파구 열까

안전보장과 비핵화 신호 서로 기다리며 마주 앉는 평양 테이블
등록 2009-11-26 18:45 수정 2020-05-03 04:25

“북한에 대해 말씀을 드리자면, (한-미) 두 나라 정부는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6자회담 프로세스 내에서 협력하면서 포괄적인 북핵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지를 재확인했습니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12월8일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북한에 보내 (북-미) 양자대화를 시작할 겁니다.”

‘여기까지 오는 데 1년이 걸렸다.’ 11월19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미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북 시기를 공식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여기까지 오는 데 1년이 걸렸다.’ 11월19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미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북 시기를 공식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한-미 정상회담서 분위기 조성

11월19일 이명박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뒤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보즈워스 특별대표의 방북은 이미 결정돼 있었다. 정확한 시점을 서울에서 발표한 것은 ‘동맹국에 대한 배려’였을 터다.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이 구체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 조처를 통해 (이미 약속한) 의무를 준수하고 또 핵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한다면, 미국은 경제적 지원과 함께 북한이 국제사회에 완전히 통합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통령에 당선된 지 1년여 만에, 마침내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본궤도에 올랐다.

“그들은 기회를 날려버릴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는다.”

제프리 베이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국장은 지난 11월6일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과 관련해 브루킹스연구소가 주최한 토론회 기조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바 에반 전 이스라엘 외교장관이 1973년 제네바 평화협상이 수포로 돌아간 뒤 팔레스타인 쪽을 겨냥해 퍼부은 냉소를 따온 게다. 베이더 국장은 “오바마 대통령은 당선되기 전부터 북한을 포함해 어떤 적대국과도 직접 대화를 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밝혔다”며 “그럼에도 오바마 대통령 취임 뒤 지난 9개월여 동안 북한은 협상 기회를 날려버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조지 부시 행정부 임기 막바지던 지난해 12월 열린 6자회담은 아무런 소득 없이 막을 내렸다. 북핵 검증의정서, 특히 시료 채취 문제를 두고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공방만 벌이다 차기 회담 날짜도 잡지 못했다. 한 달여 뒤인 올 1월20일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식을 한 직후 북한이 심상찮은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로 보이는 물체를 이동시키고 있다는 징후를 미 첩보위성이 포착한 게다. 미국의 만류에도 북한은 2월24일 ‘위성’ 광명성 2호를 ‘우주발사체’ 은하 2호에 장착해 4월 초에 쏘아올리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실행에 옮겼다. 4월5일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에서 광명성 2호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미국은 유엔 안보리를 긴급 소집했고, 북한의 탄도미사일 관련 활동을 금지한 안보리 결의 제1718호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중국의 중재로 법적 구속력이 없는 안보리 의장 성명을 내는 데 그쳤지만, 미국의 강경한 태도는 분명해 보였다. 북한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유엔 차원의 사과를 요구하는 한편, 6자회담에서 ‘영구히’ 퇴장한다고 선언한 게다. 그러곤 “핵 억지력을 강화해 자위력을 높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5월25일 북한은 다시 말을 행동으로 옮겼다. 2차 핵실험이었다. 안보리가 다시 소집됐고, 18일에 걸친 논란 끝에 마침내 강력한 대북제재안을 담은 결의안 제1874호가 통과됐다. 여기에 김정일 국방위원장 위중설까지 퍼지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환경은 꽁꽁 얼어붙기 시작했다. 계절은 여름으로 향하고 있었다.

돌파구는 우연한 기회에 찾아왔다. 조-중 국경지대를 취재하다 불법 월경 혐의로 북한에 억류된 미국 여기자 2명의 신병을 넘겨받기 위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8월 초 평양을 방문했다. 김정일 위원장이 클린턴 전 대통령을 전격 면담하면서 위중설은 ‘오보’로 굳어졌다. 10월4일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에게서 ‘조건부 6자회담 복귀’ 발언을 이끌어내면서 북-미 대화 분위기는 한층 무르익었다. 10월 말엔 리근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이 미 국무부의 입국사증(비자) 발행으로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등지를 방문했다. 보즈워스 특별대표의 방문 계획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1년 남짓 먼 길을 돌아 북과 미가 다시 마주 앉게 된 게다.

오바마, 필터 없이 직접 듣길 원해

“북한과 직접 대화를 할 준비가 돼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적대국의 목소리도 간접적으로 필터를 통하기보다는 직접적으로 듣는 게 좋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대화를 위한 대화를 원하진 않는다. 미국은 영변 핵시설을 세 번째 사들이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대화의 분명한 목표는 2005년 9·19 공동성명에서 합의한 것처럼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다시 브루킹스연구소 주최 토론회에서 베이더 국장이 한 말이다. 그는 “보즈워스 특별대표의 방북이 대화 재개를 위한 대화냐, 실질적인 내용을 이끌어내기 위한 대화냐”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미국은 대화의 과정보다는 그 결과에 관심이 많다. 6자회담이 올바른 수단이라는 점을 북한이 이해했다는 ‘분명한 신호’를 보기를 원한다. 곧 한반도 비핵화가 회담의 의제이며, 9·19 공동성명은 북한을 포함한 회담 참가국 모두에게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 말이다.”

미국만큼, 북한도 ‘분명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 10월30일 전미외교정책위원회(NCAFP)와 코리아소사이어티 초청 비공식 간담회에서 리근 국장 등 북쪽 방미단 일행은 “북-미 대화를 통해 체제 안전보장 약속을 미리 받아야만 6자회담에 진전이 있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도널드 자고리아 미 헌터대 교수는 이날 회의 내용을 정리한 자료에서 한 미국 쪽 참석자의 말을 따 “북쪽 참가자들은 허세를 부리면서도 간간이 깊은 안보 불안감을 내비쳤다”고 적었다. 북쪽 방미단을 여러 차례 만났던 리언 시걸 미 사회과학원(SSRC) 동북아안보협력 프로젝트국장도 11월19일 인터넷 매체 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리근 국장 일행은) 북한은 협상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남한과 미국, 일본이 북한을 적으로 대하지 말고, 대북 적대시 정책을 버렸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무도 상대방을 믿지 않고 있다. ‘북이 약속을 지킬까?’ 의심은 당연하다.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먼저 어느 한쪽이 약속을 충실히 지켜나가면서 상대의 행동을 지켜보는 것뿐이다. 북한도 미국도 이제껏 그렇게 하지 않았다.”

평양 체류 기간이 길어진다면… 

보즈워스 특별대표의 방북 일정은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드러난 게 없다. 이언 켈리 미 국무부 대변인은 11월19일(현지시각) 정례브리핑에서 “보즈워스 특별대표가 12월8일 소규모 대표단을 이끌고 평양을 방문한다는 점을 빼고는 현재로선 세세한 일정을 밝힐 게 없다”며 “평양 방문을 마친 뒤에는 곧바로 한국·일본·중국·러시아를 돌며 방북 성과를 설명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방북 목적이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할 의사가 있다는 ‘신호’를 확인하는 데서 그친다면, 보즈워스 특별대표의 평양 체류 기간은 예상보다 훨씬 짧아질 게다. 하지만 회담의 ‘실체적 진전’을 위한 논의에까지 이어진다면, 체류 기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우여곡절의 1년을 보낸 뒤에야 어렵사리 다시 만났다. ‘신호’나 주고받을 때가 아니다. 보즈워스 특별대표가 평양에 얼마나 오래 머무느냐에 북-미 관계의 향배가 걸린 듯싶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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