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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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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법연구회에 덧씌운 질 나쁜 주홍글씨

보수언론·정치권, 논리적 근거 없이 집중 비방…
소속 판사들이 같은 사안에 내린 유무죄 판결 중 무죄만 문제 삼아
등록 2009-11-26 14:47 수정 2020-05-03 04:25

최근 법원 내 우리법연구회를 둘러싸고 정치권과 언론이 시끄러웠다. 계기는 지난 11월6일 서울남부지법에서 내려진 한 판결이었다. 이 법원의 마은혁 판사가 지난해 말 국회에서 농성을 벌인 혐의로 기소된 민주노동당 의원 보좌진 12명에게 공소기각 판결을 내린 것이다. 공소기각이란 기소가 잘못됐다는 이유로 검찰 기소 내용에 대해 실체적 심리를 하지 않고 재판을 끝내는 것을 말한다.(상자기사 참조)

<조선일보>는 “같은 사안인데 판사에 따라 180도 다른 판단이 나온다”며, 민주노동당 의원 보좌진에게 공소기각 판결을 내린 마은혁 판사와 우리법연구회를 비난했다. 하지만 같은 사안에 유죄판결을 내린 판사도 우리법연구회 소속이었다.

<조선일보>는 “같은 사안인데 판사에 따라 180도 다른 판단이 나온다”며, 민주노동당 의원 보좌진에게 공소기각 판결을 내린 마은혁 판사와 우리법연구회를 비난했다. 하지만 같은 사안에 유죄판결을 내린 판사도 우리법연구회 소속이었다.

서울대 75학번 ‘친목모임’이 뿌리

검찰은 “납득할 수 없다”며 즉각 반발했고 와 도 발끈하고 나섰다. 는 11월7일 ‘황당한 공소기각 판결’이라는 제목의 사회면 머리기사에서 “같은 사안인데 판사에 따라 180도 다른 판단이 나온 것이다. (중략) 법원 내 이른바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의 멤버인 마 판사는…”이라고 보도했다. 공격은 11월9일에도 이어졌다. 이번엔 사설로 “지난 7월 같은 혐의로 기소된 민노당 당직자에게 같은 법원 다른 재판부가 벌금 70만원을 선고한 판결과도 180도 다르다”고 훈계했다. 이튿날에는 “마은혁 판사가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의 후원회 모임에 나가 후원금을 냈다”고 보도했다. 또한 마 판사의 과거 전력을 파헤쳐 소개했다.

검찰과 보수 언론이 나섰으니 다음은 정치권 차례.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11월11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이번 판결은 도대체 말이 안 된다”며 “많은 국민이 우리법연구회가 사법의 정치화를 가져오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하고 있다. 과거 군에서 사조직인 하나회의 폐해를 경험한 바 있는데 이것을 거울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듯 우리 사회에서 힘깨나 쓰는 집단인 검찰·언론·정치권의 공조 결과, 우리법연구회에는 ‘불온한 조직’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우리법연구회는 대체 어떤 모임이기에 그런 공격의 표적이 되는 것일까?

우리법연구회의 출발은 2차 사법 파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7년 6·29 선언을 거쳐 탄생한 노태우 정권이 과거 협조적 관계를 유지했던 대법원장을 유임시키려 하자, 전국 법관의 절반 가까이가 이를 규탄하는 연판장을 돌리고 나섰다. 결국 김용철 당시 대법원장의 유임이 좌절되고, 후임으로 지명된 정기승 대법원장마저 국회 인준이 부결되면서 이일규 대법원장이 취임했다. 이를 계기로 서명을 주도한 이들이 주축이 된 우리법연구회가 출범했다. 1988년의 일이었다.

우리법연구회의 뿌리는 더 거슬러 올라간다. 1984년께 당시 판사였던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과 강신섭 변호사(법무법인 세종) 등 서울대 법대 75학번들의 친목모임이 그 시발점이었다고 한다. 이들에 더해 얼마 전까지 대법원장 비서실장을 지낸 김종훈 변호사, 오진환 변호사, 유남석·이광범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이 창립 멤버였다. 당시 모임의 성격을 알게 해주는 것이 ‘우리법’이란 말이었다. 모임 초기부터 참여했던 한 변호사는 “우리 법을 연구해보자는 취지로 몇 명이 모였던 것이고, 공부하고 함께 놀러가기도 했다. 휴일·야근 근무수당을 제대로 계산해 지급해달라는 근로자들의 집단소송 문제와 당시 민법 체계와 큰 충돌을 빚었던 임대차보호법을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토론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암울하던 군사독재 시절 외국법이 아닌 우리 법을 연구해보자며 모였고, 2차 사법 파동이 직접적 결성 계기가 된 만큼 우리법연구회의 구성원들은 심정적으로 사법부와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염원하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그 활동이나 생각은 철저히 체제내적이었다. 법관이라는 직업의 보수적인 특성상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그러던 우리법연구회는 참여정부 시절 법원 안팎에서 주목 대상으로 떠올랐다. 회원이던 강금실·김종훈 변호사 등이 법무부 장관과 대법원장 비서실장 등 요직에 올랐다며 보수 언론의 조명을 받은 것이다. 물론 우리법연구회는 이런 평 자체를 억울해한다. 몇몇 사람이 그런 자리에 오르긴 했지만, 우리법연구회와는 무관한 개인들의 활동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 출범 뒤 ‘불편한 시선’은 더욱 심해졌다. 권력을 쥔 이들은 마음에 안 드는 판결이 내려질 때마다 우리법연구회에 대한 시선이 험악해졌다. 의혹의 눈길과 덧씌우기는 신영철 대법관의 서울중앙지법원장 재임 시절 재판 개입 논란을 거치면서 더욱 커졌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는 우리법연구회 회원 명단 파악에 나서기도 했다. 법조계 사정에 밝은 한 법조인은 “정권 초기엔 청와대 쪽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명단을 찾더니, 얼마 뒤엔 우리법연구회 소속 판사들 리스트를 구하고 다녔다”며 “그때 왜 그런 게 필요한지 궁금해했는데 지금 보니 뭔가 좀 알겠다”고 말했다.

청와대, 지난해부터 명단 파악 나서

정권 쪽의 집중적인 미움을 사고 있지만, 우리법연구회를 공격하는 이들도 구체적인 잘못에 대해서는 논리적인 이야기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보수 언론은 신영철 대법관 사태의 배후에 우리법연구회가 있는 것처럼 거론했지만, 당시 재판 개입 논란의 촉발제가 된 집시법 위헌 제청을 한 판사는 우리법연구회 소속이 아니었다. 신 대법관이 법관들에게 보낸 전자우편의 유출과 관련된 판사도 우리법연구회와는 거리가 멀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서울남부지법 판결만 봐도 우리법연구회에 대한 마녀사냥의 증거는 또렷하다. 는 기사와 사설에서 ‘같은 사안에 대해 벌금 70만원을 내린 판결’을 들어 마 판사와 우리법연구회를 공격했는데, 이 70만원 유죄판결을 내린 판사도 우리법연구회 소속이었다. 무죄판결을 내린 판사가 우리법연구회 소속임을 애써 부각시키면서 유죄판결을 내린 판사가 우리법연구회 소속인 사실에는 눈감은 것이다. 주홍글씨 가운데서도 매우 질 나쁜 주홍글씨인 셈이다.



마은혁 판사 판결 내용은
도 넘은 자의적 선별 기소에 경종


최근 우리법연구회를 둘러싼 논란의 빌미가 된 마은혁 판사의 판결은 법리적인 면에서도 큰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대부분 언론에서는 판결문 자체에 주목하기보다는 사후 논란만을 주되게 다뤘다. 판결 자체로 들어가보자.
지난해 말 정부·여당이 미디어법과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을 직권상정할 움직임을 보이자 민주당 소속 의원들과 보좌진 120여 명은 12월26일부터 국회 로텐더홀 앞에서 연좌농성에 들어갔다. 12월30일에는 민주노동당 의원 보좌진 10여 명이 농성에 합류했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같은 날 저녁 8시40분 국회 내 질서유지권을 발동했고 2009년 1월3일과 4일 강제퇴거를 시도하기도 했다. 국회의장은 결국 1월4일 밤 11시께 미디어법 등을 직권상정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민주당은 1월5일 새벽 1시 농성을 해산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 보좌진은 농성을 계속했고 같은 날 새벽 3시15분께 국회 경위들에 의해 강제 해산됐다.
‘직권상정 포기와 농성 해산’이라는 정치적 타협 속에 사건은 마무리됐지만 검찰은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던 민주노동당 보좌진들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의 공동퇴거 불응 혐의로 기소했다.
마은혁 판사는 이에 대해 “동일 사건의 피의자들을 차별 취급하고 (중략) 검사가 소추재량권을 현저히 일탈하여 공소권을 행사한 공소권 남용에 해당”된다며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국회의장이 질서유지권을 발동한 12월30일부터 엿새 동안 민주당·민주노동당 보좌진과 당직자들이 함께 ‘퇴거 불응 상태’에 있었는데, 맨 마지막 2시간 동안의 ‘퇴거 불응’만 따로 떼어내 민주노동당 보좌진만 기소한 것은 사회적 신분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 헌법 제11조 1항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차별 기소는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이영렬 서울남부지검 차장검사는 “데모를 한창 하고 있으면 경찰이 해산을 권고한다. 그러면 부화뇌동해 거리로 나온 이들은 돌아가지만 강성은 자리를 지키지 않겠느냐. 결국 이들만 경찰에 연행된다”며 “집에 돌아가라고 했을 때 돌아간 이들은 집시법 위반 행동이 있었음에도 불입건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냐”고 말했다.
여기에 마 판사가 지적한 선별 기소는 공소권 남용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례도 있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마 판사의 판결이) 2심에서 뒤집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양심적 병역거부 판결 등에서 보듯이 시대가 변하면서 누군가 먼저 새로운 논리의 판결을 내리고, 이 판결이 2심에서 깨지고, 또 다른 재판부에서 새로운 판결을 내리는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판례가 바뀌어가는 법이다.
이번 사안을 봐도 점거자 대부분이 빠지면서 어차피 해산되는 수순이었고, 끝까지 남은 이들이 새로운 폭력을 행사한 것도 아니었다. 사안이 정치적으로 해결돼 국회 사무처장도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밝힌 상황이었다.
검찰의 선별 기소는 과잉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 고위 법관은 “마 판사의 판결이 너무 나간 것이긴 하다”면서도 “검찰이 양식이 있는 조직이라면 반발에 앞서 (차별이) 얼마나 심했으면 그런 판결까지 나왔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는 게 우선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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