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과 부유층에 치우친 정책으로 비판받던 이명박 정부가 친서민 정책을 편다고 했을 때 국민은 어리둥절해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등록금 후불제, 보금자리주택, 미소금융 등 친서민 정책을 속속 내놓았다. 케인스주의자였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국무총리에 내정하기도 했다. 지난해 촛불집회 당시 10% 근처에서 맴돌던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친서민 행보를 보이면서 일부 조사에선 50%대까지 치솟았다.
이런 와중에서 지난 10·28 재보선은 ‘여당의 친서민론 대 야당의 정권 심판론’이 맞붙은 성격이 강했다. 장광근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재보선 사흘 전에 “재보선 패배시 서민정책 추동력이 급격히 하락할 것”이라며 국민을 ‘협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은 ‘이명박표 친서민 정책’에 심판을 가했다. 경쟁과 자율의 MB노믹스에서 친서민 정책은 제대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국민은 왼쪽 깜빡이를 켜고 오른쪽으로 가는 차를 보듯 불안해한다. 두 차례에 걸쳐 이명박 정부가 추진 중인 핵심적인 친서민 정책이 진정 서민을 위한 것인지 집중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편집자 1. 보금자리 주택: 경기부양이 서민정책으로 둔갑?
보금자리주택은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인 서민 브랜드 상품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8·15 경축사에서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한 획기적인 주택정책’을 밝힌 지 10여 일 만인 8월27일 국토해양부는 ‘서민주택 공급 확대 방안’을 발표했다.
보금자리주택은 2018년까지 전국에 150만 가구가 세워진다. 이 가운데 수도권에는 이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2012년까지 60만 가구를 조기에 지을 예정이다. 이 중 32만 가구는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풀어 짓는다. 분양가는 주변 시세의 50~70% 수준이다. 무주택 서민의 내 집 마련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정부는 서울 강남 세곡과 서초 우면, 경기 고양 원흥과 하남 미사 등 4개 시범지구에 대해 사전예약을 받았다. 앞으로도 매년 두 차례 사전예약 방식으로 보금자리주택을 공급하기로 했다.
보금자리주택의 문제는 서민 정책으로 포장했지만 전혀 서민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서민들의 ‘수요’를 고려하지 않은 채 정부의 아파트 ‘공급’만을 강조한 정책이란 비판이다. 서초 우면지구의 분양가는 시세의 50%선인 3.3㎡당 1150만원이다. 80㎡ 아파트의 분양가는 약 2억7879억원이 된다. 청약 당첨자가 10년 만기 금리 5%에 2억원을 대출받으면, 매달 은행에 갚아야 할 원금과 이자가 170만원이 넘는다. 서민들로선 큰 부담이다.
진짜 친서민은 국민임대·장기전세주택이명박 대통령은 8월27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27차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보금자리주택과 관련해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서민들에게 주택을 마련해주는 정책일 뿐 아니라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서민 경기부양 대책의 의미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순수한 친서민 정책이라기보다 경기부양을 위한 의도가 있음을 스스로 밝힌 셈이다.
단기간에 그린벨트를 풀어 동시다발로 개발이 이뤄지면 투기 확산 등의 문제가 불거지게 된다. 보금자리주택 조기 공급을 위해 그린벨트 7880만㎡가 풀리게 된다. 분당 신도시(1950만㎡)의 4배 규모다. 해당 지역의 땅값 상승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서울 남쪽의 과천이나 동쪽의 구리·남양주·하남, 서쪽의 광명 등 그린벨트 해제 유력 지역에선 이미 땅값이 오르고 있다.
막대한 그린벨트를 풀려면 천문학적 비용이 투입돼야 한다. 보상비가 최대 5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재원은 국민의 혈세로 마련하고 실속은 땅주인들이 챙긴다. 보상비를 받은 땅주인들이 다시 주변 땅을 사들일 경우 도미노처럼 땅값을 끌어올릴 수 있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도시지역계획학)는 “정부와 부동산 투기자들이 한 몸이 돼 거주민을 쫓아내고 돈 잔치를 벌인 기존의 신도시 개발과 다를 게 없다”고 꼬집었다.
보금자리주택 때문에 서민들은 벌써부터 고통을 받고 있다. 보금자리주택이 주변 지역 전세금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정보업체 닥터아파트가 보금자리주택 조기 공급 계획이 발표된 8월27일 이후 두 달 동안 수도권 전세금 변동률을 조사한 결과, 수도권 평균 상승률 1.94%에 견줘 보금자리주택 시범지구가 들어 있는 시·구의 평균 상승률은 2.02∼4.34%로 높게 나타났다.
참여정부 시절 이미 국민임대주택 보급지로 지정된 강남 세곡2지구의 경우, 환경부의 반발로 두 번이나 사업이 좌초된 곳이어서 환경문제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경기도는 곧바로 반발했다. 대부분 경기도에 위치한 그린벨트를 해제해야 하는데도 정부가 전혀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해제 계획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보금자리주택 공급 방식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김용희 서울사이버대 교수(부동산학)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의 평균 임대주택 비율이 전체 주택의 20~30%인 반면 우리나라는 4%에 그친다”며 “현재 70만 가구 정도인 임대주택을 약 300만 가구까지 확대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그렇게 본다면 앞으로 공급할 150만 가구의 보금자리주택은 전량을 국민임대나 장기전세주택으로 공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부동산 거품을 먼저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보금자리주택 분양가가 높은 원인은 인근 아파트 시세가 높기 때문이다. 결국 강남 집값을 연착륙시키는 게 더 서민들에게 다가서는 정책이라는 얘기다. 이벤트식 주택정책보다 근본적인 집값 안정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2. 미소금융: 정치판으로 변질될라미소금융은 이명박 정부가 친서민 금융정책으로 추진하는 무담보 소액대출 사업(마이크로크레디트)이다. 단순히 돈을 빌려주는 게 아니라 창업자금을 지원해 자활을 돕는 것이 이 사업의 목표다. 대기업(1조원)과 금융권(3천억원)의 기부금, 휴면예금(7천억원) 등 2조원을 재원으로 마련해 10년 동안 25만 가구를 지원한다. 신용등급이 낮은 빈민층에게 담보 없이 500만~1억원을 대출해준다. 지난 9월30일 설립된 미소금융중앙재단(이사장 김승유)이 각 지역별 사업자를 선정해 대출 업무를 수행한다.
미소금융, 친정부 네트워크 활용 가능성이명박 대통령은 9월17일 서울 종로구 청진동 소액서민금융재단에서 제31차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열고 “현대사 60년 역사상 처음으로 민간에서 직접 서민금융을 한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재정을 투입하지 않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미소금융은 출범하자마자 관치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재원 마련과 관련해 재계와 금융권에선 ‘반강제’ ‘준조세’라는 비판이 흘러나온다. 결국 기업의 팔을 비틀어 생색내기용 친서민 정책을 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미소금융이 정치적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점이다.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은 담보를 잡고 돈만 내주면 되는 금융기관들과 다르다. 지원 대상자들의 어려움을 살피고 사업이 잘될 때까지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을 쏟아야 한다. 이 때문에 사업 경험이 중요하다.
하지만 미소금융 사업자로 사업 경험이 전혀 없는 단체들이 줄줄이 선정됐는데, 뉴라이트 계열의 친정부적 성향을 가진 기독교·보수단체였다. 미소재단 사업자로 선정된 민생경제정책연구소(이하 민생연)는 2008년 10월 ‘사단법인 뉴라이트’에서 이름을 바꾼 단체다. 김진홍 전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두레교회 목사)이 이사장, 오광성 전 씨앤앰 부회장이 소장을 맡고 있다. 또 민생포럼은 한나라당 부설 여의도연구소 출신의 김오연씨와 문융식 전 한나라당 부대변인이 대표를 지낸 친정부 성향의 단체다. 2007년 8월 열린 민생포럼 창립대회에 당시 대선 후보이던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했다. 종교적 편향성 논란도 뒤따른다. 민생연과 함께 사업자로 뽑힌 해피월드복지재단, 열매나눔재단 등은 모두 기독교 관련 단체다.
미소금융은 올 12월부터 전국에 200~300개 지부를 설립하고 지점 대표자를 모집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막대한 자금과 대출 권한을 틀어쥐고 전국적인 친정부 네트워크를 구축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국정감사에서도 이같은 문제가 지적됐다. 10월12일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석현 민주당 의원은 “소액금융재단이 지원 대상을 선정한 것을 보니 뉴라이트 계열이 상당수 선정됐다”고 따졌다. 여당인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도 “(미소금융은) 금융인이 해야지 정치인이 끼어들면 어떻게 하느냐”면서 “미소재단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정치적 입김이 난무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미소재단 1인당 평균 연봉 7300만원미소금융은 헤픈 씀씀이로 서민에게 위화감마저 조성하고 있다. 미소금융중앙재단의 1인당 평균 연봉은 7300만원에 이르렀다. 이는 2분기 도시근로자 가구당 평균소득 3900만원의 두배에 가까운 액수일 뿐 아니라 일반 복지재단 직원 연봉에 견줘도 훨씬 높은 수준이다. 신학용 민주당 의원은 “재단 이사장인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을 포함한 이사들은 이사회 참석 때마다 1인당 40만~50만원씩 수당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같은 문제로 미소금융이 정치권이나 정부의 금고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제도적 장치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3. SSM: 공치사의 향연
지난 6월 서울 이문동 재래시장을 찾아간 이명박 대통령의 서민 행보가 YTN의 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한 상인이 “(대형마트가) 저희들을 아주 몰살시키려고 합니다”라며 절박함을 토로하자, 이 대통령은 “법률적으로 정부가 못 들어오게 하더라도 헌법재판소에 헌소를 내면 정부가 패소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내가 재래시장 노점상 할 때는 이렇게 만나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대형마트의 무차별 진출과 함께 최근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것이 바로 기업형 슈퍼마켓(SSM)이다. 유통 대기업들은 2000년대 들어 대형마트 시장이 한계에 부딪히자 대형마트와 동네 슈퍼마켓 사이의 틈새시장인 SSM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SSM이 골목까지 무차별적으로 파고드는 형국이다. 2000년 26개였던 SSM은 올해 7월 428개로 16배 정도 늘어났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롯데슈퍼, GS슈퍼마켓에 이어 대형마트 1위 업체인 신세계까지 가세해 점포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시민단체는 지역 상권에 미치는 영향 등을 조사해 규제 당국이 허가를 내주는 방식인 ‘허가제’를 요구한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SSM을 개설하려면 지역 협력 사업계획을 세워 지자체에 등록만 하면 되는 ‘등록제’를 정부 안으로 만들어 국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허가제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서비스협정 규정을 위반한다는 이유다. 이명박 대통령이 시장 상인들 앞에서 “재판을 해도 패소해 어쩔 수 없다”고 말한 것과 비슷한 논리다.
선진국들 SSM 규제, 정부는 왜 못 볼까하지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지난 9월22일 ‘개설 허가제에 대한 법률 검토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하며 “대형마트 및 SSM에 대한 허가제나 영업 시간의 규제를 WTO의 서비스 무역협정 위반이나 위헌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WTO의 규정은 외국 기업이 국내 기업보다 차별을 받음으로써 최혜국 대우나 내국인 대우 조항을 위반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인데, SSM 규제는 외국과 국내 기업의 차이가 없이 규제하는 것으로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은 100㎡ 이상 대규모 점포를 개설할 때 근처 상인과 주민을 대상으로 공청회를 열어야 한다. 프랑스는 인구 4만 명 이상 지역에 연면적 100㎡ 이상 규모 매장이 들어설 경우 허가를 받아야 한다. 독일은 연면적 120㎡ 이상 규모의 점포에 대해 도시계획법령과 허가제를 적용해 대형마트 난립을 통제하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는 입점 때 소매상과 지역사회에 미치는 경제적 영향 평가를 의무화하고 있다.
다윗과 골리앗 싸움으로 비유되는 SSM 논란의 본질은 대기업의 영역 침해다. 자본력을 앞세운 무리한 시장 진출 자체가 처음부터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는 거리가 먼 불공정 게임이라는 것이다.
자영업의 몰락은 한국 경제에 큰 짐이다. 590만 명에 이르는 자영업자가 벼랑 끝에 몰리면 우리나라 경제는 늪으로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올 9월 현재 자영업자 수는 573만여 명이다. 2005년보다 44만여 명 줄었다. 주가와 아파트 가격이 회복되고 있지만 밑바닥 경제는 여전히 한겨울이다.
요즘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살리기, 미디어법, 부자 감세 같은 큰 현안에 대해 입을 잘 열지 않는다. 그렇다고 정부가 이런 정책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국민 저항을 받는 현안은 물밑에서 진행하고, 대신 친서민 정책은 큰 소리로 홍보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 정책의 수혜자는 과연 누구일까?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 정책은 서민이라기보다 중산층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OECD는 중위소득(전체 가구를 소득 순서로 배열했을 때 가운데에 해당하는 소득수준)의 50~150%를 버는 계층을 중산층으로 정의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2008년 기준으로 월 354만원을 버는 계층이다. 정부는 연소득 3천만원 이하의 무주택자인 경우 ‘서민·근로자 전세 대출’을 해주고 있다. 이를 감안할 때 연소득 3천만원 이하를 서민층이라고 볼 수도 있다.
“친서민의 시선을 더 낮춰야”보금자리주택의 수혜 대상은 3억~4억원 정도의 자산이 있는 중산층 이상 사람들이다. 서민들이 내 집 마련을 하기에는 벅찬 수준이다. 미소금융도 금융채무 불이행자와 개인파산자, 기초생활수급대상자 등을 대출 대상에서 빼버렸다. 정부는 재래시장 상인들도 제대로 보듬지 못하고 있다. 여성·장애인·빈곤층 등에 대한 친서민 정책은 더더욱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그런 비판은 이런 계층에게 더 피부로 와닿는다.
권영준 경희대 교수(경영학)는 “용산 참사에서 보듯 이명박 정부의 서민정책은 진정성을 찾기 힘들다. 오히려 내년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앞두고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한 성격이 짙다”며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 정책이 돌아섰던 지지층을 되돌리려는 꼼수라면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시선을 좀더 낮게 해 보다 힘든 서민을 보듬는 데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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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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