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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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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백한 국회법 위반” VS “의사 진행권의 행사”

국회서 날치기 통과된 언론 관련법 첫 헌재 공개변론…
또다시 기득권층 입맛에 맞는 결정 나올지 주목
등록 2009-09-18 11:40 수정 2020-05-03 04:25

언론 관련법을 둘러싼 법리 공방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7월22일 국회에서 날치기 처리된 언론 관련법에 대해 민주당 등 야당이 제기한 권한쟁의 심판사건의 첫 공개변론이 9월10일 오전 헌법재판소에서 열렸다.
공개변론 시작과 함께 먼저 불을 뿜은 사람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출신 박재승 변호사였다. 박 변호사는 2008년 18대 총선 때 민주당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아 엄격한 공천 칼날을 휘두른 바 있다. 그때 얻은 별명이 ‘저승사자’였다.

민주당 등 야당이 제기한 언론 관련법 권한쟁의 심판사건의 첫 공개변론이 9월10일 오전 헌법재판소에서 열렸다. 헌재는 지난해 종합부동산세에 대해 위헌 결정을, 한국방송광고공사의 지상파 방송광고 판매독점을 내용으로 하는 방송법 규정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보수화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민주당 등 야당이 제기한 언론 관련법 권한쟁의 심판사건의 첫 공개변론이 9월10일 오전 헌법재판소에서 열렸다. 헌재는 지난해 종합부동산세에 대해 위헌 결정을, 한국방송광고공사의 지상파 방송광고 판매독점을 내용으로 하는 방송법 규정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보수화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재투표 선언의 적법성 두고 날선 대립

청구인인 민주당 쪽 첫 번째 변론을 맡은 박재승 변호사는 방송법 재투표가 일사부재의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피청구인(김형오 국회의장)은 표결 불성립을 주장하지만 현행법상 표결 불성립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꼬집은 뒤 “일단 표결에 들어간 이상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 찬성이면 가결되는 것이고, 총족되지 못하면 부결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또 “백번을 양보해서 표결 불성립과 부결을 따로 떼어 그런 제도가 있다고 치더라도 국회법 110조를 보면 의장이 법안 이름을 대고 표결을 하라고 해야 투표가 가능한데, 그 전에 이미 투표가 돼 있었다”며 “재투표 선고 전 (이뤄진 사전투표)와 후를 합해서 계산한 모양인데, 이는 시험이 끝난 뒤 자기가 예뻐하는 학생에게 시간을 더 준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반면 피청구인인 김형오 국회의장과 이윤성 부의장의 대리인 쪽에서는 일사부재의 원칙이 소수파의 필리버스터를 막기 위한 제도일 뿐, 국회의장의 최종적 판단권을 막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필리버스터란 국회에서 소수파 의원들이 다수파의 독주를 막기 위해 합법적인 수단을 활용해 의사 진행을 고의로 방해하는 행위를 말한다.

피청구인 쪽 김연호 변호사는 “의결정족수 미달 후 재투표는 판례도 인정한 국회 운영의 자율권, 국회의장의 의사진행권에 해당하는 것”이라며 “청구인들은 투표 종료 선언에 큰 의미를 두지만 종료 선언은 전자투표 스크린에서 투표 결과를 변경 못하도록 하는 기술적인 성격이지 법적인 개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회의장이 착오로 투표 종료 선언을 했다면 언제든지 번복이 가능하다는 주장이었다.

대리투표 여부도 이날의 핵심 쟁점이었다. 박재승 변호사는 “국회 본회의장의 표결 당시 상황은 자신의 자리에서 투표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됐다”며 “누가 남의 자리 주인이 대신하라고 해서 (투표)했든 안 했든, 법률상 무효”라고 말했다.

9월29일 2차 변론 뒤 10월29일 결정 내릴 듯

김형오 의장 쪽 김치중 변호사는 “국회가 제출한 영상자료를 보면 찬성 및 반대의 의사표시 행위를 확인할 수 없다”며 “청구인들은 (대리투표에 대한) 추측만 할 뿐 그에 대한 입증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히려 김 변호사는 “한나라당이 추가로 제출한 영상을 보면 야당 의원들이 한나라당 의원의 접근을 막고 먼저 터치스크린에 손을 대는 행위를 하고 있다”며 “야당이 대리투표를 주장하는 정황은 투표방해 행위의 흔적”이라고 맞섰다.

언론 관련법 권한쟁의 심판 공개변론에서 다뤄진 마지막 쟁점은 표결의 절차적 하자에 대한 논란이었다. 박재승 변호사는 “국회의장 스스로 회의를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심사보고와 제안설명도 없이 단말기로 대체했고, 질의토론 기회도 주지 않았다”며 “국회법 93조에 따르면 위원회 심사를 거치지 않은 안건은 의결에 앞서 질의토론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무시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형오 의장 쪽이 내놓은 논리는 역시 의장의 포괄적 의사진행권이었다. 김치중 변호사는 “당시 이윤성 국회부의장은 법안을 상정하고 제안자에게 설명을 하도록 요구했지만 본회의장이 난장판이었기 때문에 제안 설명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그런 절차를 생략한 것은 당시 국회의 상황을 정확히 판단해서 내린 합리적 결정이었다”라고 주장했다.

이날 첫 번째 공개변론을 마친 헌법재판소는 여야가 추가로 제출할 영상물 등 증거자료를 검증하기 위해 9월29일 오전 10시 공개변론을 다시 한번 열겠다고 밝혔다. 따라서 헌재 결정은 빨라야 10월29일께 나올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헌재가 정치적 고려 없이 공정한 결정을 내릴 것이냐 하는 우려다.

9월10일 공개변론 방청을 마치고 나온 민주당 관계자는 “공개변론만 들어봐도 의장의 포괄적 의사진행권만 주장하는 한나라당 쪽보다 우리 쪽 주장이 훨씬 논리적이지 않았느냐”며 “헌법재판소가 정치적 논리에 휘둘리지만 않는다면 승산은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헌재가 애초 예정에 없던 2차 공개변론까지 열기로 하면서 영상물 검증을 꼼꼼히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도 희망적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헌재 구성원의 면면과 최근 헌재 결정을 볼 때 민주당 등 야당의 청구가 받아들여질 것으로 낙관하기 어렵다. 이강국 소장이 이끄는 지금의 헌재 재판부는 민변 출신의 송두환 재판관을 포함한 9명의 재판관 모두가 참여정부 시절 임명됐다. 이강국 소장과 이번 사건 주심을 맡은 김희옥·송두환 재판관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명했다. 이 가운데 이강국 소장과 검찰 출신의 김희옥 재판관은 보수로 분류된다. 한나라당 추천으로 임명된 이동흡 재판관의 성향도 보수다. 대법원장 지명으로 임명된 이공현·민형기 재판관과 여야 합의로 임명된 목영준 재판관은 임명 당시 중도로 분류됐지만, 지금은 보수 쪽에 가깝다는 평가다. 진보 혹은 개혁 성향으로 분류되는 인물은 조대현·김종대·송두환 재판관 정도다.

이들 9명의 헌법 재판관은 2008년 11월13일 종합부동산세에 대해 일부 위헌 결정을 내려 종부세를 사실상 무력화시켰다. 심지어 진보성향으로 분류됐던 송두환 재판관도 종부세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2차 변론은 졸속 결정 피하려는 수단” 지적도

며칠 뒤인 11월27일 한국방송광고공사의 지상파 방송광고 판매독점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방송법 규정에 대해서도 헌재는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당시 헌재 결정이 나오자 언론노조는 “헌재마저 정권에 코드를 맞추는 것 같아 서글프다”라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헌재가 ‘공교롭게도’ 정권의 입맛에 맞는 결정을 잇달아 내린 셈이다. 이 때문에 민주당과 언론계에서는 “2차 공개변론을 열겠다는 것도 졸속 결정이라는 비판을 피해가기 위한 수단일 수 있다”며 경계하고 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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