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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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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운구’ 정부 반대로 청와대 못 들렀다

이희호씨 간절한 소망 좌절… 노제에 민감한 정부, 서울광장 문화제 지원도 거부
등록 2009-09-03 16:35 수정 2020-05-03 04:25

운구 행렬은 빨랐다. “선상님” “대통령님”을 외치며 오열하는 이들 앞에서 머물 듯 머물지 않고 길을 재촉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영면할 서울 동작동 국립 현충원에 이른 것은 8월23일 오후 4시50분이었다. 예상보다 1시간10분이나 이른 도착이었다. 텔레비전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한 조문객은 “뭐 저리 마음이 급하나”라고 했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만난 조문객은 “만장(輓章) 하나도 걸리지 않은 장례식이 무슨 국장이냐”고 아쉬워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당시 서울시청 앞부터 서울역까지 길을 가득 메웠던 만장과 길가를 까맣게 물들인 리본과 걸개를 기억했기 때문일까. 만장만 해도 그렇다. 가는 이를 애도하며 깃발에 글을 적는 것이 만장이다. 만장은 애도의 뜻도 있지만, 떠나는 이가 생전에 한 일을 하늘에 고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만장을 쓰는 일이 고인의 생애를 회고하는 일이고, 만장을 드는 일이 그 기한일을 알리는 일이다. 여든다섯 평생에 사형수부터 대통령까지 살았던 이에 대해 쓸 말이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운구 행렬이 8월23일 오후 서울광장을 들르는 동안 김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씨가 시민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있다. 왼쪽에 김 전 대통령의 영정을 들고 선 이가 김 전 대통령의 손자 종대씨이고, 훈장을 든 이는 셋째아들 홍걸씨다. 사진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운구 행렬이 8월23일 오후 서울광장을 들르는 동안 김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씨가 시민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있다. 왼쪽에 김 전 대통령의 영정을 들고 선 이가 김 전 대통령의 손자 종대씨이고, 훈장을 든 이는 셋째아들 홍걸씨다. 사진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유족과 정부, 장례일 새벽까지 이견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는 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국장으로 치러졌다. 정부는 물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족과 동교동계 인사도 국장에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

김 전 대통령의 국장 이튿날인 8월24일 이명박 대통령은 라디오 주례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개인적으로도 의견이 다를 수 있고, 또 누구에게나 공과 과가 있다. 공과는 역사가들이 평가하겠지만, 공에 대해선 충분히 인정하는 사회를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전임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고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의 일부로 기억해야 한다. 전직 대통령들을 예우하고 존중하는 것은 대한민국 역사의 권위를 세우는 일이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식을 국장으로 치른 것에 반발하는 보수층을 향한 메시지”라고 설명했다. 다음날인 8월25일 김 전 대통령의 둘째아들 김홍업 전 의원은 삼우제 자리에서 “국장이 엄숙히 치러질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이명박 대통령 내외와 국민들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 장의위원회에서 활동했던 한 장의위원은 “국민의 참여가 구조적으로 배제된, ‘형식만 살고 진심은 죽은’ 국장이었다”고 평했다. 다른 장의위원은 “말만 국장이지, 고인과 유족의 뜻을 받들겠다는 정성이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왜 이런 불만들이 나왔을까?

김대중 전 대통령 유족 대표들과 청와대, 그리고 정부를 대표한 행정안전부는 장례식 당일 새벽까지 장례의 성격부터 절차, 행사 내용에 이르기까지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한 장의위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 운구 행렬의 방문지와 서울시청 앞 광장 행사의 성격과 주체를 두고 대립이 가장 강했다”며 “문제가 된 방문지는 바로 청와대였다”고 전했다.

행정안전부와 실제 협상을 진행했던 유족 대표의 증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의 영정이 청와대를 들를 수 있기를 진심으로 원하셨다. 최초로 수평적 정권 교체가 이뤄진 곳이고, 현직 당시 대통령께서 열심히 일하신 곳이었기 때문에, 무엇보다 김 전 대통령도 하늘에서 이를 원하셨을 것이라며 대통령 영정과 함께 들르고 싶어하셨다.”

유족 대표들은 김 전 대통령의 서거 다음날인 8월19일 이런 뜻을 처음 정부에 전했다. 제안을 받은 행정안전부는 청와대와 협의한 뒤 “곤란하다”는 뜻을 밝혔다. 청와대 경호실의 반대를 이유로 들었다. 청와대 일대는 특별경계지역이고, 20여 대의 차량이 이어지는 대형 운구 행렬을 따라 시민들이 몰려들 경우 안전사고는 물론,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논리였다.

협상안 제안에도 “경호상 문제” 정부 완강

“대통령과 청와대 경호의 중요성을 생각해서 저희도 운구 행렬 전체가 가는 것은 힘들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래서 본대는 광화문 광장이나 광화문 밖에서 대기를 하고, 영정과 운구 차량 그리고 여사님 차량만 청와대 앞을 둘러보는 것으로 하자고 다시 제안했다. 정부에서는 ‘국장 행렬에서 영정과 운구 차량 등만 분리돼 움직이는 것도 경호상의 문제가 있다’며 반대했다. 우리가 계속 협상안을 냈지만, 정부의 대답은 늘 같았다.”(실무 협상에 참여한 유족 대표)

청와대 방문 협상은 8월22일 낮에 끝났다. 이날 오후 6시 브리핑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경환 비서관은 “운구 경로에서 청와대는 왜 빠졌나”라는 질문에 “소요 시간 문제 등 여러 가지 때문”이라고만 답했다. 1시간10분이나 빨리 끝난 운구 시간은 이 대답에 ‘밝힐 수 없는 사실’이 숨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결국 앞으로도 전직 대통령은 죽어서는 자신이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곳을 방문할 수 없게 되는 전례가 이렇게 만들어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헌화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내외.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김대중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헌화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내외.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유족이 요구한 서울시청 앞 추모행사에 대한 정부의 태도도 같았다. 계속되는 증언이다.

“시청 광장 앞 추모행사에 대해서도, 저희는 종교상의 이유도 있고 정부의 부담감을 생각해서도 노제라는 형식을 고집하지 않겠다고 했다. 엄숙한 문화제로 만들겠다고 했다. ‘만장도 내걸지 않겠다’고 양보했다. 청와대와 정부는 만장을 든 시민과 운구 차량이 뒤엉킨, 자칫 감정이 고조되기 쉬운 상황이 만들어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당시의 서울시청 광장 앞 상황을 연상한 정부가 ‘노제’의 ‘노’자만 나와도 과민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저희는 ‘국장과 국민장은 성격이 다르다. 저희도 최대한 차분하고 엄숙하게 진행하겠다’고 했다. 민주주의와 남북 화해를 위해 애쓴 대통령의 마지막을 위령하는 합창과 관현악 연주 등 문화행사를 장엄하게 진행하겠다고 했다. 시청 광장은 특히 국장 기간 내내 가장 중심이 된 시민분향소가 있던 자리이고 민주화운동의 상징적인 지역인 만큼 운구 행렬이 거쳐가는 것은 당연하고, 이희호 여사님도 국민 앞에서 인사를 드릴 장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만 안 오면 지원” 말했다가 번복

행정안전부는 이에 대해서도 “결국 사람들이 모이게 되면 노제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게 된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고 유족 대표는 전했다. 정부가 우려한 것은 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반정부 집회가 되는 것이었으리라.

결국 유족 대표가 “이희호 여사가 국민에게 공식적으로 인사를 드릴 수 있는 기회는 줘야 하지 않느냐”고 하자, 정부 쪽에서 “민주당이나 시민단체 차원에서 이뤄지는 문화행사에 참여하는 경우는 필요한 연단이나 방송·연설 시설 등은 제공하겠다”고 약속하는 선에서 협상이 매듭지어졌다고 한다. 다른 장의위원은 “운구 행렬이 청와대만 오지 않으면 시청 앞에서 문화제를 치를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했다가, 나중에 문화제는 정부에서 지원할 수 없고, 자체적으로 진행하면 반대하지 않겠다고 말을 바꾼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문화행사를 여는 것은 반대하지 않지만, 비용 지원은 못한다는 답변이었다. 수억원의 돈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문화행사를 유족이 전적으로 부담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민주당 차원의 문화행사가 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장례식 당일 국회에서 진행된 영결식이 ‘열린 영결식’에서 ‘닫힌 영결식’이 된 과정도 비슷했다. 김 전 대통령을 마지막까지 수행했던 최경환 비서관은 8월21일 아침 8시 브리핑에서 “8월23일 영결식에는 모든 국민이 참여할 수 있다”며 “초청장이 없더라도 누구나 신분증만 지참하면 영결식장에 참석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를 ‘열린 국장, 국민과 함께하는 국장’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정부는 곧바로 이를 부인했다. 양쪽은 장례식 당일 새벽까지 이 문제를 논의했다. 김 전 대통령 쪽에서는 “비표가 없어도 원하는 이들은 다 입장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고,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하는 만큼 비표가 있어야 한다”고 고집했다. 결국 초청장을 가진 이들과 장례위원들이 입장하고 나서 남는 자리가 있으면 차례대로 입장할 수 있다는 쪽으로 협상이 이뤄졌다. 당시 상황을 잘 안다는 한 장의위원은 “정부가 계속 제한된 입장만을 이야기하니, 언론 브리핑을 통해 못을 박아버리자는 전략이었다”며 “그러나 정부가 이를 전면 거부하는 바람에 ‘닫힌 영결식’이 되고 말았다”고 했다.

국회 영결식 국민 참여도 제한

영결식 세부 과정에 대한 불만도 있었다. 한 장의위원은 “영결식 순서도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이어졌다”며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과 탕자쉬안 전 중국 외교부장 등 주요국 대표들은 따로 분향할 수 있도록 했어야 하는데, 한꺼번에 일괄 헌화를 시켜 외교적으로도 많은 결례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 장의위원은 “정부는 장의위원회가 마련한 일회용 종이모자도 ‘모자를 쓰는 것은 장례식 격식에 맞지 않는다’며 반대했다가 오후의 높은 열기에 결국 허용했다”며 “영결식에 참여한 이들 상당수가 고령자였기에 우리가 종이모자를 준비하지 않았으면 무슨 일이 났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동교동의 목표는 ‘국장 엄수’와 ‘동작동 현충원 안장’이었기 때문에, 이 조건이 수용된 이후는 정부 쪽 요구를 대부분 받아들였다는 설명도 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박지원 의원을 비롯한 권노갑·한화갑·김옥두·한광옥 전 의원 등 동교동 비서 출신 인사들이 대통령 서거 전에 ‘국장과 동작동 안장’을 정부에 공식 요구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안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이들 조건을 받아들이면서 다른 조건에서는 정부 쪽 의견을 받아들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한편, 장의위원회와 협상을 진행했던 행정안전부 의전실 관계자들은 “정부는 최선을 다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을 치렀다”면서도 “자세한 협상 내용은 실무자들은 모른다”고만 밝혔다. 실무 협상을 이끈 행정안전부 의전담당관은 휴가라는 이유로 연결이 되지 않았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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