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진나라 병사 20만 명이 초나라 항우에게 투항했다. 그러나 항우는 그들을 계곡에 밀어뜨려 생매장했다. 진나라 백성 가운데는 항우에게 성문을 열어주는 이도 있었지만 일단 성을 점령한 항우는 항복한 백성까지 모두 죽였다. 맞서도 죽이고 무릎을 꿇어도 죽이는 항우에게 진나라 백성은 원한과 공포를 품었다. 포한이 쌓인 백성은 그를 두려워했으나 섬기지 않았다. 항우는 끝내 고립되어 죽었다.
지난 8월13일 오전, 83일 만에 공장을 재가동한 경기 평택시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완성차 ‘체어맨 W’가 나오자 직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그러나 파업 참가 노조원들 대부분은 재가동된 공장에 아직 투입되지 않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명진 기자
노사 합의 정신을 믿었던 쌍용차 노조원들의 상당수는 지금 진나라 병사의 처지에 놓였다. 생매장의 위기에 처해 포한을 키우고 있다. 지난 8월6일 쌍용차 노사는 극적으로 합의했다. 정리해고자 974명 가운데 640여 명이 자발적으로 무급휴직·영업전직·희망퇴직 등을 선택한다는 내용이었다. 결과적으론 370여 명만 구제하는 방안이었다.
항복한 백성까지 모두 죽인 항우
다만 노조의 형사상 책임에 대해선 회사 쪽이 당국에 최대한 선처를 요청하고 민사상 책임은 취하하기로 약속했다. ‘얻은 것이 없다’는 노조 내부의 비판이 있었지만, 다른 선택이 마땅치 않았다. 합의하지 않으면 도장 공장에서 페인트와 함께 불타 죽을 처지였다. 중재를 이끌었던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조차 “결과적으로 노조의 항복”이라고 나중에 통탄했다. 당시 쌍용차 노조원들은 합의 이후 벌어질 일을 알지 못했다. 지금 알게 된 일을 그때 알았다면, 그들은 도장 공장 농성장에서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노사 합의 직후 경찰은 한상균 쌍용차 노조위원장 등 66명의 노조 관련자를 구속했다. 그들은 공장에 돌아가지 못하고 감옥으로 끌려갔다.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감옥에 가두기는 1997년 이후 처음이다. 당시 한총련 출범식 사건으로 195명이 구속됐다. 10여 년 만에 발생한 대량 구속 사태다.
감옥에 가지 않은 이들도 안심할 수 없다. 경찰은 지난 8월9일 쌍용차 노조와 민주노총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경찰이 요구한 배상액은 치료비 1300만원, 파손 피해액 3500만원, 위자료 5억원 등이다. 8월12일엔 박영렬 수원지검장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수원지검장에 막 부임한 그의 일성은 ‘쌍용차 노조 엄단’이었다.
“회사 업무를 2개월 이상 마비시켜 3천억원 넘는 손실을 초래하고, 경찰관과 근로자 등 100명 이상이 부상했으며, 쌍용차와 협력사 근로자와 가족 등 20만여 명을 실직 위기에 빠뜨린 사건이다. 노조 간부 등 폭력사태 주도자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엄벌이 이뤄질 것이다.” 지검장이 직접 엄벌을 공언했으니 경찰의 수사는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다.
검경의 압박에 떠밀린 쌍용차 노조는 8월13일에 한발 더 물러났다. 농성이 끝난 지 일주일 만이었다. 회사의 회생 절차에 적극 협조하고 불법 쟁의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동의서를 회사와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제출했다. 명예퇴직금 및 위로금 비용 1300억원을 산업은행이 대출해주는 ‘반대급부’가 있었지만, 쌍용차 노조의 ‘뇌관’은 사실상 제거 단계에 들어갔다.
같은 날 쌍용차는 완성차 생산을 재개했다. 70여 대의 체어맨이 조립 라인을 거쳐 햇빛을 보게 됐다고 언론은 대서특필했다. 파업에 참가했던 조철희(가명)씨는 그 체어맨을 만지지 못했다. 원래 그는 조립 라인에서도 핵심 파트를 맡았다. 그러나 지금은 대기발령 상태다.
재계를 향해 파란불, 노동계를 향해 빨간불
감옥에 가지도 않고 퇴직당하지도 않았지만, 막상 공장에 돌아온 파업 참여자들 대다수가 대기발령 상태라고 조씨는 전했다. 그는 “파업 참여자, 그리고 회사에서 제시한 임금 등에 관한 동의서에 서명하지 않은 사람들은 짧게는 8월30일까지, 길게는 무기한으로 대기발령을 낸 상태”라고 말했다. 대기발령자들은 앞으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도 돌고 있다.
이 역시 파업 참가자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기로 한 노사 합의 사항에 반하는 것이다. 검경은 노사 합의 정신에 아랑곳하지 않고, 경영진도 노사 합의 문구에 연연하지 않는 형국이다. 그러니 직장·공장·과장 등 현장 관리자들의 태도도 뻔하다. “(일하려고) 대기하는 사람이 많으니 싫으면 언제든지 나가라면서 업무와 작업 배치를 마음대로 하고 있다”고 조씨는 증언했다.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는 요즘도 쌍용차 노동자들의 전화를 받는다. 대부분 ‘개인 문의’다. 자신이 희망퇴직 대상자로 선정되면 법적으로 대응할 방법이 없겠느냐는 내용이 많다. 노조는 더 이상 방패막이 아니니 자구책을 찾겠다는 것이다. 77일의 점거농성 끝에 무엇인가 ‘합의’를 했는데도, 그들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하 소장은 “예견된 일”이라고 말했다. 1천 명을 해고하겠다는 회사 쪽에 쌍용차 노조는 그 절감 비용만큼을 순환휴직·단축노동 등으로 대체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하 소장은 “같은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피해간 유한킴벌리의 전례도 있으니 충분히 합리적인 대안이었지만, 어떻게든 노동조합을 무력화하려는 정부와 회사 쪽이 이를 거부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부와 회사 쪽은 처음부터 노조를 무력화하려는 시나리오대로 움직였다는 게 하 소장의 판단이다.
시나리오까진 모르겠으나 적어도 정권 차원의 ‘구상’이 있다는 것을 이명박 대통령이 확인해줬다. 지난 8월11일 국무회의에서 “선진국 가운데 폭력적 노사문화가 일상화된 나라는 한 곳도 없다. 이번 사태를 일회성 사건으로 넘기지 말고 노사문화 선진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불개입 선언→ 상급단체·시민단체 개입 차단→ 공권력 투입→ 대량 구속→ 노동조합 무력화→ 구조조정 단행 등으로 이어진 ‘무개입의 적극 개입’ 전략을 앞으로도 구사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튿날인 12일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정부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고용 안정도 중요하지만, 노동시장 유연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자동차 산업의 재편이 이뤄지고 있다. 현대기아차, GM대우 등이 올 하반기 구조조정에 돌입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정부는 재계를 향해 파란불을, 노동계를 향해 빨간불을 켜고 구조조정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다.
쌍용차 노동자들을 계곡에 밀어넣으면 정부와 재계는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을까?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위협 효과’로 인해 단기적으로 파업 등이 줄어들 수 있겠지만 노사 간에는 항상 이해갈등이 벌어질 수밖에 없으니, 중장기적으로는 그 갈등이 폭발적으로 터져나오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노사 갈등 드러내놓고 풀어가는 프랑스
그는 지난해 프랑스에서 신기한 일을 구경했다. 프랑스가 노사 이해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지켜봤다. 노조가 파업을 한다. 정부도 회사 쪽도 언론도 시민도 파업을 불온시하진 않는다. 파업이 일어나면 언론 등이 여론조사를 시작한다.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면 정부건 노사건 중론에 따른다. 지난해 교원 축소에 반대하는 교원노조의 파업이 있었는데, 여론조사 결과 교원노조를 지지하는 입장이 60% 정도 나왔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정부 정책을 바로 접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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