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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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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사람들’ 신당이냐 복당이냐

신당 추진 세력 “촛불의 집단지성 모을 것”
한명숙·김두관·유시민, 재보선과 지방선거 놓고 저울질
등록 2009-07-09 14:31 수정 2020-05-03 04:25

‘친노’는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할 존재였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집중 견제의 대상이었고, 정권이 바뀐 뒤에는 쓰임새를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대선 직후 ‘폐족’이라는 표현을 썼다. “친노라고 표현돼온 우리는 폐족입니다. 죄짓고 엎드려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들과 같은 처지입니다. 민주개혁 세력이라 칭해져왔던 우리 세력이 우리 대에 이르러 사실상 사분오열, 지리멸렬의 결말을 보게 했으니 우리가 어찌 이 책임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2007년 12월26일 자신의 홈페이지) 폐족이란 조상이 큰 죄를 지어 벼슬을 할 수 없게 된 자손을 일컫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친노 정치인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그동안 당 밖의 친노 그룹과 거리를 두고 있던 민주당에서도 복당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2008년 8월30일 김해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한겨레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친노 정치인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그동안 당 밖의 친노 그룹과 거리를 두고 있던 민주당에서도 복당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2008년 8월30일 김해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한겨레

‘폐족’ 고해 뒤 탈당·은퇴 이어져

안 최고위원의 폐족 발언 이후, 많은 친노가 자의 반 타의 반 정치적 유배를 택했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민주당을 탈당했다. ‘노무현 색깔 빼기’에 바빴던 민주당이 2008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서 건너온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새 대표로 선택하자 두 사람은 민주당을 나왔다. 이 전 총리는 새로운 진보의 길을 찾겠다며 재단법인 ‘광장’을 만들었고, 유 전 장관은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과 함께 무소속 후보로 총선에 나섰다. 결과는 낙선이었다. 민주당 간판으로 출마한 한명숙 전 총리도 마찬가지였다. 김형주·유기홍·유인태·이화영 전 의원도 총선 패배의 쓴맛을 본 뒤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

2007년 대선, 그리고 18대 총선 이후에도 친노의 위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우선 민주당의 텃밭 호남에서도 친노는 찬밥 신세였다. 외부의 공격은 둘째 문제였다. 4월29일 치러진 전북 전주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그랬다. 김근식·이광철 후보는 민주당 공천을 받아 출마했지만, 선거 기간 내내 ‘친노 386’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소속 후보의 공격을 받았다. 이광철 전 의원은 “18대 총선 때는 친노라는 이유로 공천을 받지 못했고, 이번 재선거에서는 ‘친노 대 반노’의 정치적 구도 때문에 낙선했다”고 말했다.

친노의 운명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극적으로 바뀌었다. 친노를 대하는 민주당의 태도부터 달라졌다. 정세균 대표는 7월2일 당 외곽에 있는 친노의 복당에 대해 “아무리 늦어도 지방선거 전에는 힘을 모아야 할 것이고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고 말했다. 지난 4·29 재보선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정동영 의원의 복당에 대해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는 것과 상반되는 태도였다.

민주당 지방선거 친노 도움 절실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공동장의위원장을 맡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노 전 대통령 영정을 든 채 조문객을 받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실시된 일부 여론조사 결과, 한 전 총리는 2010년 서울시장 선거 가상대결에서 오세훈 현 시장을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한겨레 김경호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공동장의위원장을 맡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노 전 대통령 영정을 든 채 조문객을 받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실시된 일부 여론조사 결과, 한 전 총리는 2010년 서울시장 선거 가상대결에서 오세훈 현 시장을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한겨레 김경호 기자

민주당의 전반적 분위기도 우호적이다. 무엇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직간접적으로 친노 복당과 역할론을 독려하고 나선 상황이어서 누구도 쉽게 토를 달지 못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의 측근인 박지원 의원이 최근 이해찬 전 총리와 유시민 전 장관의 민주당 입당 및 문재인 전 비서실장의 부산시장 선거 출마를 공개적으로 촉구한 것도 김 전 대통령의 의중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민주당이 달라진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 노 전 대통령과 친노의 위상이 재정립될 조짐을 봤다. 한명숙 전 총리와 유시민 전 장관이 대선 후보 반열에 올라섰다. 현실 정치와 거리를 뒀던 문재인 전 비서실장이 여당 소속 현역 부산시장과 경합을 벌일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노 전 대통령 서거 국면에서 확인된 500만 조문객의 민심도 무시할 수 없었다.

민주당이 친노를 새롭게 인식할 수밖에 없는 두 번째 이유는 1년도 채 남지 않은 2010년 지방선거 때문이다. 특히 영남권에서 승패를 떠나 후보라도 제대로 내려면 친노의 도움이 절실한 것이 지금의 민주당 사정이다. 실제로 민주당은 2008년 총선 때 영남 68개 선거구 가운데 41곳에 후보조차 내지 못했다. 그나마 부산과 경남 김해에서 각각 조경태, 최철국 의원이 재선에 성공하며 간신히 체면치레를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과거에 대한 평가와 입장의 차이 때문에 지난 대선과 총선 때 민주당이 친노와 비노 등으로 나뉘어 선거를 치르는 바람에 상대편만 이롭게 했다”며 “내년 지방선거에서 영남에 일정한 교두보를 확보해야 한다는 데 친노 진영과 민주당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만큼 어떤 방식으로든 전략적 고려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민주당과 친노가 ‘어떤 방식으로든’ 영남에서 만날 수만 있다면 연대의 의미는 작지 않다. 우선 이는 정세균 대표가 주장해왔던 전국정당화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을 거치며 민주당의 당세는 크게 약화됐다. 의석수도 줄었지만 영남에서의 득표력이 크게 떨어졌다. 2002년 대선 때만 해도 당시 노무현 후보는 영남권에서 29%의 표를 얻었다. 하지만 2007년 정동영 후보는 대구에서 6.0%, 경북에서 6.8%의 득표에 그쳤다. 부산(13.5%)과 울산(13.6%)에서도 두 자릿수를 넘기는 데 그쳤다.

친노 신당, 유시민과 무관하게 추진

영남 개혁세력의 표를 일정 정도 모을 수 있는 친노와의 연대는 정세균 대표나 민주당에 시급한 과제지만, 칼자루는 이제 친노 쪽이 쥐고 있는 형국이다. 친노 내부에서는 이른바 ‘친노 신당’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민주당 복귀와 선거 출마를 선택해야 한다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사실 친노 신당론은 오래전 예고된 뉴스였다. 이해찬 전 총리와 유시민 전 장관이 2007년 초 대통합민주신당을 탈당할 때 신당 창당론은 급격히 힘을 얻었다. 특히 이 전 총리는 유 전 장관의 총선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해서 “총선이 끝나면 유연한 진보 노선을 가진 좋은 정당을 만드는 일에 함께해나가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친노 신당 움직임에 제동을 건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당시 신당 창당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회의에서 “당 바깥으로 나가서 새로운 당을 만드는 시도는 명분도 없고 조직적 기반이나 세력적 기반을 고려할 때 성공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한 것으로 전해졌다.

친노 신당 논의는 그 이후 더 이상 크게 불거지지 않았다. 유시민 전 장관도 2008년 5월 과의 인터뷰에서 “좋은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필요한 과제지만 하나의 정당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일정 역량을 가진 많은 사람이 하나의 정책적 비전과 철학적 토대 위에 모여야 하고, 이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많은 분을 만나본 결과, 아직은 그렇게 할 때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공개된 친노 신당 움직임은 유 전 장관과는 별개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 전 장관의 핵심 측근은 “(지난해 말) 신당 창당을 주도하는 분들이 논의를 제안해온 것은 맞지만, 생각이 맞지 않아 함께하지 않았다”며 “그때 이후 8개월간 우리에게 창당 진행 과정을 알려온 바가 없고, (친노 신당은) 우리와 전혀 무관하게 진행된 일”이라고 말했다.

친노 신당을 추진하는 쪽 이야기도 비슷하다. 신당이 ‘친노 신당’ 혹은 ‘유시민 신당’이 될 것이라는 관측은 신당의 창당 취지에 대한 오해와 무지에서 비롯된 억측이라는 것이다. 신당 창당에 깊숙이 개입하는 주요 인사로는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고위직을 거친 ㅇ·ㅊ 인사가 거론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정당 활동 경험은 많지 않다. 이 밖에도 문태룡 전 참여정부평가포럼 기획위원장과 권태홍 전 참여정치연구회 사무처장 등이 창당 작업을 함께하고 있다. 신당 창당 움직임이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은 2008년 가을, 그러니까 촛불 정국 직후였다.

“촛불시민, 민주당 대안으로 보지 않아”
이해찬 전 총리가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에서 헌화하고 있다. 2008년 초 대통합민주신당을 탈당할 때만 해도 이 전 총리는 친노 신당 창당에 무게를 뒀지만, 노 전 대통령 서거 직후 “민주당을 중심으로 잘 합쳐나가야 한다”며 태도를 바꾼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공동취재단

이해찬 전 총리가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에서 헌화하고 있다. 2008년 초 대통합민주신당을 탈당할 때만 해도 이 전 총리는 친노 신당 창당에 무게를 뒀지만, 노 전 대통령 서거 직후 “민주당을 중심으로 잘 합쳐나가야 한다”며 태도를 바꾼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공동취재단

신당 창당을 준비하고 있는 관계자는 “신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을 중심으로 모이기는 했지만 굳이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유산을 담보로 ‘친노 신당’을 할 생각은 없다”며 “일부 지도자나 명명가를 중심으로 모이는 기존 형태의 정당이 아니라 지난해 촛불 정국 때 확인된 집단지성의 힘을 내년 지방선거 이전에 모아보자는 취지로 모인 것”이라고 말했다.

신당 창당 세력에게도 고민은 있다. 무엇보다 창당의 명분이다. 신당 추진 관계자는 “촛불 정국 때 확인된 것처럼 상당수 대중은 민주당을 대안으로 느끼지 않고 있다”며 “민주당이 품지 못하는 대중의 정치 참여 열망을 바라보며 새로운 정당을 건설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신당 창당이 본격화됐을 때, 민주당 안팎에서 이를 방관하기는 어렵다. 친노 신당에 대해 ‘분열 세력’이라는 비판이 쏟아지면, 신당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은 “현재 민주당에 안희정 최고위원과 이광재·서갑원·백원우 의원 등 친노 세력이 이미 존재하는 만큼 친노 신당에 대한 여론이 우호적이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당 추진 세력이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유산을 담보로 ’친노 신당’을 할 생각이 없다”라며, 친노와 일정 부분 선을 긋고 있는 것도 이런 고민이 깃든 결과로 보인다. 단순히 친노 인사들끼리 모여 참여정부의 정책을 계승하자는 취지의 창당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적 가치와 비전을 분명히 제시하겠다는 주장이다.

신당의 행로가 아직 불투명한 만큼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나 유시민·김두관 전 장관의 정치 행보도 여전히 열려 있다.

민주당 상임고문으로 있는 한 전 총리의 경우 10월 재·보궐 선거와 2010년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을 두루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일부 여론조사 결과 한 전 총리가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할 경우 오세훈 현 시장을 이기는 것으로 나오기는 했지만, 민주당 일각에서는 서울시장 선거보다 10월 재·보궐 선거를 통해 원내에 진입한 뒤 당 대표를 맡는 것이 당과 개인에게 더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영남에선 ‘반MB 무소속 연대’ 제안도

김두관·유시민 전 장관의 경우는 한 전 총리와 조금 다르다. 두 사람은 모두 당적이 없고 영남에 뿌리를 내렸다는 점에서 고민의 폭과 깊이가 다르다. 김 전 장관은 오는 10월 경남 양산 재선거와 2010년 경남지사 후보로 거론되고 있고, 유 전 장관은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대구시장 물망에 오르고 있다. 문제는 이들 지역에서 민주당 간판이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2008년 4월 총선에서 두 사람이 무소속 후보로 출마한 이유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친노 핵심 관계자는 “선거를 채 1년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당을 새로 꾸려 출마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영남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다는 것도 쉬운 선택이 아니다”라며 “영남 가운데 그나마 분위기가 괜찮은 부산·경남에서는 아예 모든 반MB 후보가 정당 간판을 떼고 무소속 연대로 해보자는 이야기도 있다”고 전했다.

친노의 정치 행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 49재가 끝나는 7월10일 이후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친노의 행보에 실리는 무게는 과거와 다를 수밖에 없다. 그게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유산인지도 모른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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