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부터 유행한 ‘아저씨돌’(아저씨+아이돌)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2009년 연예 프로그램 최고의 다크호스로 떠오른 김태원을 비롯해, 왕년의 스타 최양락, 김국진, 윤종신 등 40대 아저씨들의 활약이 아이돌 스타 부럽지 않을 정도다.
TV에서 ‘아저씨돌’이 성가를 올리고 있다면 TV 밖의 대세는 ‘초식남’이다. 초식남이란 육식성, 그러니까 공격성이나 적극성 같은 고전적인 ‘남성성’이 거세된 남자를 가리키는 신조어다. ESC 섹션 상담란에 문을 두드리는 고민 가운데 상당수가 가깝게 지내면서도 도통 적극적으로 나오지 않는 초식남 때문에 속 타는 여성들의 하소연이다. 물론 초식남의 99%는 20~30대다.
따지고 보면 아저씨돌의 유행과 초식남 현상은 무관하지 않다. 아저씨돌은 아이돌처럼 멋지지 않다. 말 그대로 ‘아저씨스러운’ 외모를 숨기지 않으며 ‘아저씨 같은’ 이야기들을 한다. 초식남들은 여성 시청자와 함께 이 아저씨들을 보면서 웃는다. 이들에게서 자신의 10년 뒤, 20년 뒤를 본다면 편하게 웃을 수 없을 것이다. 자신과 다른 인종 같은, 나이가 들더라도 결코 닮을 것 같지 않은 모습이기 때문에, 타자화할 수 있기 때문에 맘 편히 웃는다. 결국 40대 남성들은 여성이나 어린아이뿐 아니라 자신보다 고작 몇 년 젊은 남성들에게도 놀림받는 측은한 종족인 셈이다.
하여 지금의 아저씨가 가장 불쌍한 존재로 전락했는가 하면, 그렇게 볼 수는 없다. 언제 아저씨가 생활에 찌든 불쌍한 가장이 아닌 적 있나.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연공서열과 정년제가 사라지면서 이미 아저씨는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충분히 불쌍한 존재가 됐다. 흥미로운 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저씨의 자리는 똑같이 위태롭고 측은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아저씨들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외면받는 것이 아니라 놀림받는 ‘아저씨돌’은 변하는 아저씨상을 보여주는 대중문화의 지표다.
대표적인 아저씨 예능 프로인 한국방송의 에 출연하는 이경규와 김태원이 좋은 예다. 이경규가 사사건건 군림해야 직성이 풀리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버럭’ 하는 가부장 스타일이라면 김태원은 게으르며 능력도 의욕도 없는, 밀려난 40대의 이미지다. 판이한 성격이지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한민국 40대 가장의 전형적인 면모다. 물론 설정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성격상 상당 부분은 두 사람의 솔직한 모습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만한 건 솔직한 모습 그 자체가 아니라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들의 태도, 또는 제작진의 의도다. 가부장적 태도는 가부장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한마디로 ‘비호감’이다. 그런데 이경규는 이런 걸 태연히 보여준다. 시청자들을 짜증나게 하기 위해서? 물론 아니다. 이제는 이런 게 웃음거리가 된다는 걸 스스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부장적 태도보다 본인에게는 더 창피스러울, 실패자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김태원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강압적으로 명령하거나 그저 자기 모습을 숨김으로서 존재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다는 걸, 그래서 외면받는 것보다는 놀림받는 것이 덜 외로운 일이라는 걸 아저씨들이 체득한 것이다. 이제는 ‘귀여운 아저씨’라는 부조화한 단어의 조합조차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그러니 40대 남성이여, 소외감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솔직해지기를 두려워 말길. 솔직한 아저씨는 고전 영화 주인공처럼 멋있지는 않지만 피하고 싶은 존재는 결코 아니니까 말이다.
김은형 한겨레 ESC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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