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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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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뉴딜은 물길 아닌 삶의 길

병원 전산망·학교 시설 확충 등 사회복지에 초점… 녹색경제로 일자리 창출
등록 2008-12-18 15:45 수정 2020-05-03 04:25

“어제, 미국 경제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는 점을 새삼 뼈아프게 확인했다. 11월에만 모두 53만3천여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월별 기록으로는 30여 년 만에 최악의 상황이다. 올 들어 경기 침체가 시작된 이래 모두 20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지난 12월6일 오전(미국 시각)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자가 주례연설에 나섰다. 정권인수위 홈페이지(change.gov)에 올라온 4분55초 분량의 동영상을 보면, 그는 전날 발표된 11월 고용시장 통계로 말문을 연 뒤, 곧바로 야심찬 경기부양책을 제시했다. 뼈대는 크게 다섯 가지였다.

‘경기부양책으로 삶의 길 열어갈 수 있을까?’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자(오른쪽 두 번째)가 지난 11월24일 시카고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차기 행정부의 경제팀 인선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REUTERS/ JOHN GRESS

‘경기부양책으로 삶의 길 열어갈 수 있을까?’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자(오른쪽 두 번째)가 지난 11월24일 시카고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차기 행정부의 경제팀 인선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REUTERS/ JOHN GRESS

공공기관 건물 에너지 효율 혁신

먼저 “공공기관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이겠다”고 했다. 연방정부 청사 건물의 냉난방 장치를 교체하고, 전구까지 바꾸는 등 에너지 낭비를 최소화하겠다고도 했다. 이를 통해 “매년 수십억달러의 예산을 줄이는 한편, 고용 안정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게다. 미 전역의 각급 학교 시설을 대대적으로 개보수·확충하고, ‘세계 15위권’에 머무르고 있는 미국의 인터넷망을 대폭 확충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또 학교와 도서관은 물론 각급 병원을 인터넷으로 연결해, 의료진이 어디서나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오바마 당선자는 “병원 간 전산망 연결은 일자리를 지키는 일이자 목숨을 지키는 일”이라며 “미국의 모든 의사와 병원이 의료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의료사고도 줄이고 의료비용도 해마다 수십억달러씩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대대적인 사회기반시설(SOC) 확충 사업이다. 오바마 당선자는 “1950년대 연방 고속도로 시스템 건설 이후 최대 규모의 전국 단위 인프라 구축사업을 통해 수백만 개의 신규 일자리를 만들어내겠다”고 밝혔다. 금융위기가 촉발한 경제위기를 막대한 재정 지출을 통한 사회기반시설 확충사업으로 이겨내겠다는 얘기다. 그는 이날 연설을 이렇게 마감했다. “오는 1월 의회가 개원하면 이같은 계획안이 즉각 승인을 받을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 200만~25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내기 위해선 긴박하게 움직여야 할 시점이다. 그동안 일자리를 잃은 200만 미국인들이 자신에게도 미래가 있음을 알게 해줘야 한다.”

오바마 당선자의 경기부양책을 두고 세계 각국의 언론은 “새로운 뉴딜 시대를 선언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튿날인 7일 오바마 당선자는 〈NBC방송〉의 간판 시사 프로그램 에 출연해 다시 한번 경기부양을 위한 과감한 재정투자를 강조했다. 그는 “취임 이후 사상 최대의 인프라 건설사업에 투자할 계획”이라며 “이런 식의 재정 지출이 응급처방이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장기적인 성장을 위한 일종의 할부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오바마노믹스’의 핵심을 흔히 ‘녹색 경제’라고 말한다. 차세대 친환경 경제의 기반이 될 부문에 집중 투자해 대규모 신규 고용을 창출해낸다는 게다. 오마바 당선자 쪽도 인수위 홈페이지를 통해 이와 관련한 정책 목표를 비교적 소상히 밝혀뒀다. 이를테면 “청정 에너지 분야에서 일자리 500만 개 창출을 위해 향후 10년 동안 모두 150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거나, “오는 2025년까지는 미국 전력량의 25%를 재생 가능 에너지에서 끌어올 수 있도록 함으로써 수십만 개의 추가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주장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문제는 미국 경제가 처한 상황이 위중하다는 점이다. 우선 발등의 불부터 꺼야 한다. 무엇보다 일자리가 문제다. 11월 고용통계 수치에 대해 인터넷 매체 는 “한 달에 53만여 명이 일자리를 잃은 건, 34년 만에 최악의 기록”이라고 썼을 정도다. 오바마 당선자가 주례연설에서 지적한 것처럼 실업은 “숫자 이상의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그 수치에 해당하는 이들의 가정마다”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 “아이들 대학은 보낼 수 있을까?” “더럭 아프기라도 하면 어쩌지?” “정년퇴직한 뒤에 생활은 할 수 있을까?” “우리 가족, 남편·부인·딸·아들이 조만간 일자리를 잃게 되지는 않을까?” 미 전역의 평범한 가정이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여 있는 상황이다.

‘건강과 교육’ 가정의 고민 함께 풀기

어디서 시작해야 할까? 인터넷 매체 은 12월8일치 기사에서 “오바마 당선자의 최우선 과제는 지방자치단체에 충분하고도 신속하게 연방 예산을 지원해, 주 정부나 시·군 정부가 예산 적자를 이유로 공공 부문 인력을 섣불리 줄이는 것을 막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왜? 미국 정치의 특수성 탓이다. 은 “미 50개 주 대부분은 주 헌법을 통해 매년 적자 없이 예산의 균형을 맞추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경기 침체로 인해 세수가 감소하면) 주 정부 차원에서 재정 지출을 줄이고 공공 부문 인력을 감축하는 등 긴축정책을 펼 수밖에 없게 된다”고 설명했다.

경기 침체 심화로 예산 압박에 몰린 주 정부가 세금을 대폭 인상하고 공공 부문 노동자 대량 해고와 함께 각종 조달계약을 급격히 줄일 경우, 연방정부의 경기부양 대책은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같은 이유로 연방정부가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쓰더라도 주 정부가 이에 적극 호응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당장 필요한 부문에 연방정부 지원 예산을 사용하거나, 아예 연방 지출을 미룬 채 달러를 쌓아놓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오바마 당선자가 경기부양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각 주 정부가 연방정부 지원예산을 곧바로 사용하지 않으면, 아예 거둬들일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은행은 살리면서 노동자는 죽이나?’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자의 시카고 정권 인수위 사무실 건너편에 자리한 뱅크오브아메리카 앞에서 노동자들이 대량 해고 사태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REUTERS/ JEFF HAYNES

‘은행은 살리면서 노동자는 죽이나?’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자의 시카고 정권 인수위 사무실 건너편에 자리한 뱅크오브아메리카 앞에서 노동자들이 대량 해고 사태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REUTERS/ JEFF HAYNES

“역사적으로 미 연방정부는 국내총생산(GDP)의 8%가량을 장기적인 안목에서 사회기반시설에 투자해왔다. 현재 이 수치는 4%에도 못 미친다. 2차 대전 이후 호황기에 건설한 사회기반시설은 붕괴 직전이지만,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만 한탄했지 이를 보수·유지·신설하는 과정에서 생겨날 일자리에 대해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진보적 싱크탱크 ‘미국의 진보를 위한 캠페인’(CAF)은 지난 11월 내놓은 ‘미국 인프라 투자의 적자’란 보고서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오바마 당선자가 강조한 사회기반시설 투자가 실제 미국 사회의 요구와 필요에 따른 것이란 얘기다. 흥미로운 건 이 단체가 보고서에서 지적한 △도로·교량·항공 시설 △에너지 △인터넷 광대역망 △학교·교육시설 등이 오바마 당선자가 제시한 사회기반시설 투자의 뼈대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

신속한 지원으로 감원 막아내도록

먼저 도로교통 기반시설의 현황이다. 보고서를 보면, 지난 1990~2006년 미국의 도로 통행량은 41% 증가한 반면, 같은 기간 신설된 도로는 고작 전체의 4%에 그쳤다. 만성적인 도로 부족은 교통 정체로 이어졌다. CAF는 지난 2007년치 ‘텍사스 도시 이동성 보고서’ 내용을 따 “미 대도시 지역 운전자들은 2005년 한 해에만 교통 정체로 인해 모두 420억 시간을 차 안에서 허비했다”며 “이는 운전자 1인당 38시간,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를 기준으로 일주일의 휴가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어 “미 교통부는 도로·교량 등 교통 인프라의 보수·신설에 1억달러의 연방예산을 투여할 경우, 약 4만7500개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고 덧붙였다.

오바마 당선자가 선거운동 기간에도 강조해온 교육 부문도 살펴보자. 한부모 가정과 맞벌이 가정이 급증하면서 ‘육아’는 이미 온 사회적 과제다. 보고서는 “지난 1950년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6살 이하 자녀를 둔 여성의 취업률은 12%를 밑돌았다”며 “2007년 현재 이 수치는 72%를 넘나든다”고 적었다. 보육시설은 태부족이고, 육아 비용은 급증했다. 보고서는 “유아·보육비로 홑벌이 가정은 전체 수입의 25%를, 맞벌이 가정은 15%를 각각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초·중등 교육도 별반 다를 게 없다. 미국 고교생의 평균 졸업률은 70%에 불과하다. 인종별로도 차이가 나지만, 지역 간 편차도 상당한 수준이다. CAF는 “중산층이 몰려 사는 교외 지역 학교의 졸업률은 빈민들이 몰린 도심 학교에 비해 평균 15%포인트 이상 높게 나타났다”고 전했다. 낙후된 학교 시설에 대해선, 이미 지난 1995년 미 회계감사원(GAO)이 “미 전체 학교의 3분의 1가량(학생 1400만여 명)이 전면 개·보수가 필요한 지경이며, 이에 소요될 예산만도 112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한 바 있다.

10년여 세월이 흘렀음에도 상황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은 듯싶다. 전미교육통계센터(NCES)가 미 교육부의 지원을 받아 2007년 1월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미 공립학교의 17%가량이 교육 공간으로 사용하기엔 물리적으로 부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전체 학교의 3분의 1이 학교 시설 미비로 교육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오바마 당선자가 경기부양책에서 학교 시설 개·보수와 신설을 강조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니 사회기반시설 투자를 뼈대로 한 경기부양책은 두 마리 토끼를 쫓고 있는 셈이다. 재정지출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는 한편 사회기반 확충으로 미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복안이다. 공연히 땅을 파헤치고 물을 끌어와 쓸모없는 ‘물길’을 만들겠다는 주장과는 애초 성격이 다른 게다.

10조달러 넘는 국가채무 부담

비용은 얼마나 들까? CAF는 미 토목기사협회의 추정치를 근거로 “향후 5년 동안 미국의 무너진 사회기반시설을 다시 세우는 데 약 1조6천억달러가 소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진보적 싱크탱크 ‘아폴로연맹’은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서 “차세대 청정 에너지 기술 개발에 약 5천억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보이며, 이를 통해 50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CAF는 여기에 “학교 시설의 개·보수 및 신설을 포함한 교육·인적자원 투자에 약 4천억달러가 추가로 필요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니 오바마 당선자의 야심찬 경기부양책의 ‘가격표’는 줄잡아 ‘2조5천억달러’에 육박한다.

미국의 국가채무는 2007년 9월28일 이후 하루 평균 37억4천만달러씩 늘고 있다. 2008년 12월12일 밤 10시30분 현재 미국의 국가채무를 표시하는 시계(USNDC)는 ‘10조6545억9607만9850달러’를 가리키고 있다. 같은 시각 미국의 인구가 3억526만746명으로 추정된다니, 미 국민 1인당 3만4903달러씩의 채무를 지고 있는 셈이다. 유례를 찾기 어려운 경제위기 속에 천문학적 채무를 안고 뛰어야 한다. 안팎으로 쉽지 않은 도전일 게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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