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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 먹을거리’ 소비자의 손으로

정부 대책은 ‘불량 종합세트’… 이동거리 최소화 로컬푸드 운동 주목
등록 2008-10-24 11:27 수정 2020-05-03 04:25

‘사람이 먹을 수 있도록 만든, 밥이나 국 따위의 물건.’
국립국어원이 제공하는 표준국어대사전은 ‘음식’을 이렇게 정의한다. 멜라민 과자, 기생충 김치, 말라카이트그린 생선…. 음식 갖고 장난치지 말라는 건 어른들의 오랜 가르침인데, ‘장난’은 그치지 않는다. 심지어 갈수록 ‘엽기적’이고 ‘글로벌’하게 변하고 있다. 1980년대까지 발생했던 ‘롱가리트 사건’(신장질환·피부 염증 등을 일으키는 포름알데히드설폭실산나트륨을 알사탕 제조에 사용한 사건), ‘풀 찌꺼기 간장 사건’(방직공장에서 나오는 풀 찌꺼기를 간장 원료로 사용한 사건) 등이 ‘불량식품’ 수준이었다면, 조류 인플루엔자·광우병·브루셀라병·구제역 등 최근 발생하는 문제들은 전세계에 걸쳐 발생하며 피해 정도를 짐작조차 할 수 없다는 점에서 가히 ‘재앙’에 가깝다.

국제소비자연맹이 정한 ‘화학조미료 안 먹는 날’을 하루 앞둔 지난 10월15일 서울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서울 명동에서 천연조미료 먹기 캠페인을 열고 있다. 연합

국제소비자연맹이 정한 ‘화학조미료 안 먹는 날’을 하루 앞둔 지난 10월15일 서울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서울 명동에서 천연조미료 먹기 캠페인을 열고 있다. 연합

사고 터질 때마다 재탕·삼탕 우려먹어

하지만 국민의 식품안전과 건강을 책임져야 할 정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멜라민 파동 후속 대책으로 당정은 △식품안전 행정체계 일원화 △집단소송제 도입 △원산지 표시제 강화 △식품사범 처벌 강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당정 합동 식품안전+7’을 내놨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먹을거리 사고가 날 때마다 정부가 추진하겠다고 밝혔던 내용을 모아놓은 것에 불과하다.

행정체계 일원화만 해도 그동안 농림수산식품부와 보건복지가족부의 해묵은 ‘부처 이기주의’ 논쟁 탓에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2006년엔 국무총리 산하에 차관급 식품안전처를 신설하고, 식품의약품안전청은 복지부에 통폐합하는 방향으로 정부조직법 개정을 추진했다. 하지만 복지부와 당시 농림부가 서로 관리·감독 기능을 맡겠다며 갈등을 빚었고, 때마침 불거진 이해찬 전 총리의 ‘3·1절 골프 파문’으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앞서 2004년 ‘불량만두 사건’ 땐 식품안전정책위원회를 만들어 먹을거리 안전을 책임지겠다고 했지만, 위원회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소집되지 않았다. 집단소송제 도입도 불량만두 사건 때부터 사고가 날 때마다 꺼내든 카드였지만,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실행되지 못했다. 강은주 진보신당 정책연구원은 “정책은 국민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발표’보다 ‘실현’하는 것이 중요한데, 정부가 바뀌어도 지금까지 제대로 실행되지 않던 내용을 ‘종합대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만 하고 있다”며 “부처 간 갈등을 해결하고 관련 이해집단의 반발을 누그러뜨리는 등 정부가 의지를 갖고 실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막상 제도가 도입됐어도 정부의 안이한 태도 때문에 유명무실한 경우도 있다. “수출국 식품업체 현지 실사를 강화하겠다는 취지로 2003년 도입된 ‘수입식품 사전확인제도’는 올해까지 이탈리아와 말레이시아 업체 2곳만이 등록됐을 뿐”이라고 윤석용 한나라당 의원은 지적했다. 올 초 ‘생쥐머리 과자’ 파동 직후 식약청이 중국 제조업소의 위생관리 실태를 점검하겠다며 현지에 식약관을 파견하겠다고 청와대에 건의했으나 이명박 대통령의 반대로 무산된 사실이 국정감사에서 최영희 민주당 의원의 ‘폭로’로 드러나기도 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티오(TO) 하나 더 만들어 직원들이 교대로 돌아가면서 나가는 것으로, 직원들이 서로 나가려 하는지 몰라도 연간 수입되는 중국 식품의 종류와 규모를 고려할 때 의미 없는 행위”라고 말한 것으로 밝혀졌다.

‘농장에서 식탁까지’ 위험 제어해야

강은주 연구원은 “식품안전 대책은 ‘안전+안심 대책’으로 바뀌어야 하며,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소비자 중심과 사전 예방 원칙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 연구원은 “정부가 지금까지 내놓은 대책에 더해 농·축·수산물 생산이력제 도입, 국내 식품안전 기준 강화 등을 통해 ‘농장에서 식탁까지’, 즉 식품의 생산·가공·유통·소비 단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위험을 최소화해야 한다. 식품첨가물도 이미 알려진 위험성을 소비자에게 충분히 알릴 뿐만 아니라 위해성 논란과 관련한 깊이 있는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먹을거리의 이동 거리를 최소화해 식품 생산·유통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자는 로컬푸드 운동은 안전한 먹을거리 대책으로 주목받는다.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생산된 안전한 식품을 직거래로 구입해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신뢰를 높이면, 식품안전도 자연히 따라온다는 것이다. 초국적 농식품복합체가 먹을거리의 생산부터 소비까지 모든 단계에 개입해 이윤을 취하는 한편, 지리적·단계적으로 복잡한 유통망을 거치면서 자신이 먹는 음식을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불안감과 위협을 느껴야 하는 상황에 소비자 스스로 맞서보자는 얘기다. 로컬푸드 운동은 단체급식소를 중심으로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 경북 의성농민회는 지난해 2월부터 대구 지역 초등학교에 급식에 쓸 친환경 농산물을 직접 판매하고 있고, 상지대 대학생협이 운영하는 구내식당은 2005년부터 원주생협 등에서 공급받은 친환경 쌀과 유기농 김치 등으로 식단을 꾸리고 있다.

기업은 소비자 트렌드 따라갈 수밖에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소비자 운동을 통해 기업과 사회 문화를 바꾸는 일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지현 서울환경연합 벌레먹은사과팀 처장은 “시민사회에서 조미료에 들어가는 MSG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꾸준히 사용 금지를 촉구하자 식품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은 자연 조미료 시장이 열렸다. 일부 대기업에선 식품 원재료에 유전자변형식품(GMO)을 쓰지 않겠다고 자발적으로 선언했는데, 소비자가 그런 제품을 구입해주면 이런 움직임이 다른 기업으로까지 확산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업은 소비자의 트렌드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실제 서울환경연합은 지난 2006년부터 해마다 시판되는 식용유·장류·두부·두유 등에 GMO 원료가 섞였는지를 조사해 공개하고 있는데, 장류를 생산하는 한 기업은 이 자료가 공개된 뒤 대부분의 제품에 GMO 원료 사용을 중단했다. 이 처장은 “먹을거리는 소비자의 선택으로 바꿀 수 있다. 먹을거리 파동이 날 때마다 홈베이킹 제품이 반짝 특수를 누리는 식으로 그칠 게 아니라, 꼼꼼히 따져보고 좋은 제품을 구입하고 또 그런 제품을 만들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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