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몇 등급이세요?”
지난 2006년 학생상담 직무연수에서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선배 교사(43)가 나에게 물었다. 이 말은 그해 여름에 성과상여금(성과금)을 얼마나 받았느냐고 돌려 묻는 것이다. 차등 지급된 성과금도 문제지만, ‘교원인사자문위원회’에서 자신을 낮은 등급으로 분류한 데 따른 반발과 서운함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적어도 선배는 교장 선생님의 보여주기식 행사나 과도한 회식 문화에 문제 제기를 할 줄 아는 용기 있는 교사였고, 나이 어린 후배에게 존대어를 써주는 그리 많지 않은 선배 중 하나였다. 그나마 받은 성과금도 전교조에서 실시하는 성과금 반납투쟁에 참여해 사회로 환원했다. 신기하게도 선배는 교총은 물론 전교조 회원도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반납한 성과금을 나중에 돌려받기도 원치 않았다. 그저 자신이 기부한 얼마 안 되는 돈이 비정규직 노동자나 소년소녀 가장 등 사회적 약자에게 골고루 돌아가기를 희망했다.
중학교 1학년 딸과 고등학교 1학년 아들을 둔 선배는 지극히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었고, 환경미화 심사 때 학급 게시판을 담임은 전혀 관여하지 않고 학생들의 힘만으로 완성하게 한 다소 ‘뻔뻔한’ 교사였다. 후하게 표현해도 소박하고 단순한, 급훈과 어딘지 엉성하게만 보이는 만화 작품들로 장식된 그 학급의 게시판은 교내에서 가장 특별하고 ‘눈에 띄는’ 것으로 교사들 입에 오르내렸다.
2006년 7월26일 교원평가에 반대하는 전교조 소속 교사들이 서울 광화문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규탄대회를 열어 차등 성과급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성과금은 지역마다 다르긴 하지만, 법적으로는 지난해의 교육과정 평가에 기준한 것으로 매년 2월에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교육청별로 5월 스승의 날이나 추석 연휴에 맞춰 지급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해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에서 교원단체와 합의 없이 교원평가제도를 일방적으로 강행하고 성과금의 차등 지급 폭을 30%로 제시하자 교총과 전교조 등 교원단체에서 반발하면서 그 지급이 늦어졌다. 특히 전교조가 상경투쟁 등으로 싸움의 수위를 높여가자 성과금을 지급하지 못하다가, 교사들이 조금 무관심해진 여름방학을 틈타 도교육청에서 ‘기습적으로’ 지급하는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성과금을 지급하는 기준은 전적으로 교원 평가를 담당하는 교장, 교감 등 관리자의 몫이긴 하지만, 교내 교사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대표를 뽑아 교원인사자문위원회를 구성해 기준의 객관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다 같이 고생했다며 학교별로 지급된 성과금을 교원 수대로 동등하게 나누거나, 어차피 차등 지급해야 한다면 장유유서에 맞게 교육 경력, 즉 호봉 순서대로 차등해 지급하거나, 심지어 후배들이 실질적으로 일을 더 많이 한다고 판단되면 선배 교사들이 후배 격려 차원에서 역호봉순으로 지급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많은 수의 사립 및 국공립 학교가 동등 지급, 호봉순 또는 역호봉순 지급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교과부가 각 학교에 요구하는 방침은 이런 소박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다. 학교별로 성과금의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하고 그에 맞는 차등 지급을 원칙으로 하라는 것이다. 또 차등 지급의 폭도 가능한 한 넓게 해야 바람직하다고 한다.
문제는 객관적인 기준이다. 부장과 담임을 맡으면 열심히 일하는 것이니 높은 등급을 줄 수 있을까? 아니면 담당 수업 시간이 가장 많고, 수업을 가장 잘하는 교사에게 높은 점수를 주어야 할까? 아니면 생활지도 능력이 탁월하고 학생들에게 인기 높은 교사에게 A등급을 주어야 할까? 사람을 상대로 인성과 지식을 가르치고 거기에 행정 업무까지 골고루 수행하는 교사의 능력을 몇 가지 기준으로 계량화·수치화하는 게 가능하기는 할까?
또 그것을 평가하는 교사들은 객관적일까? 큰 학교의 경우 교원 수만 70명이 넘어, 평가하는 교사들이 평가할 동료 교사의 얼굴이나 이름도 제대로 모르고 그 사람이 수업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적이 없는데, 제대로 된 평가를 할 수 있을까? 판단은 여러분의 몫이다.
그러면 나는 몇 등급을 받았을까? 물론 나는 그해 여름 가장 낮은 등급의 성과금을 받았고, 그 성과금마저 휴가 때 일어난 자동차 접촉 사고 보험료로 고스란히 반납했다.
“선생님은 몇 등급이세요?”
올해 처음으로 학교에 발령받은 신규 교사(23)가 진지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무슨 의도로 묻는지 알기 위해 한동안 후배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아야만 했다.
“선생님이나 저나 우리 학교 교원 중에서 호봉으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가장 낮은 축에 속하니 가장 낮은 등급이거나 좀 낫다면 그 바로 위 등급 아니겠어? 선생님의 노력과 능력을 감안한다면 당연히 A등급을 줘야 마땅하겠지. 어느 학교든 누구든 A등급이 아닌 교사가 있을까? 선생님은 교원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단순히 생각해봐도 열심히 일한 교사에게 성과금이나 승진 점수를 주는 게 당연해요. 일반 공무원도 평가받는데, 교사도 공무원이니 교원 평가는 어쩔 수 없는 거 같아요. 다만 동료 교사가 나를 평가한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살벌하고 비인간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저는 평가위원으로 선정된 선생님들을 믿으니까 상관없어요.”
2007년 11월 시범적으로 실시한 교사다면평가 직후의 일이다. 같은 동네에 살고 있어서 평소 퇴근 뒤에 함께 맥주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후배는, 아이들을 참으로 좋아하는 교사다. 이른바 ‘SKY’는 아니지만, 지역에서는 꽤 알아주는 교원 양성 대학을 나온 인재였고, 그 어렵다는 임용고시를 졸업하는 해에 합격한 ‘수재’였다. 처음 발령받은 사람답지 않게 말과 행동이 당차고, 늘 대화의 중심엔 맡은 반 아이들이 있을 정도로 열정이 넘치는 그녀는 누구보다 교원 평가의 필요성과 객관성을 의심 없이 신뢰하고 있었다.
교사다면평가 제도는 교사의 근무 성적을 교장과 교감 등 관리자들이 100% 평가하던 것을 70%로 줄이고, 30%를 동료 교사가 평가하는 것이다. 정부는 그 도입의 배경에 대해 교장과 교감 등 관리자 중심의 현행 근무평점(근평) 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근무평점의 객관성과 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즉, 정부조차 현행 근무평점 제도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음을 시인한 것이다.
사실 교사는 관리자와 학생, 학부모로부터 늘 평가를 받아왔다. 내부적으로는 승진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근무평점이 그렇고, 밖으로는 교장실이나 교무실로 결려오는 신원을 밝히지 않는 학부모의 욕설 전화가 그렇고, 교육청 게시판이나 포털 게시판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교내 동영상이 그렇고, 자신을 괴롭힌다며 경찰을 부르는 무시무시한 학생들이 그렇다. 거기에 더해 인간적인 실수도 교사라는 이유로 면죄부를 주지 않는 냉혹한 사회의 감시도 존재한다.
이제 전국의 고등학교 3학년들을 수능 점수로 줄 세우기하는 것도 모자라, 가르치는 교사도 1년에 한 번씩 1등부터 꼴찌까지 줄 세우는 교사다면평가를 해야만 교육이 바로 서고 교원 경쟁력이 생긴다니 체질상 ‘줄서기’를 잘 못하는 나로서는 가슴이 답답하다.
교사다면평가위원회의 구성은 전체 교사 가운데 담당 학년, 연령, 부장 교사 여부, 평가참여 희망 등을 따져 10명 정도로 구성하되, 학교 자율에 맡기고 있다. 그러나 위원회를 구성할 때부터 전체 교사가 다면평가를 거부하기도 하고, 참가 희망 교사가 너무 많아 갈등이 생기는 학교도 있다.
평가 방식을 소개하면, 자신을 제외한 소속 학교의 모든 선생님을 다섯 가지 기준으로 평가하되, 등급이 아닌 서열로 점수를 매겨야 한다. 동점은 허용되지 않는다. 첫째 교육자로서의 품성(10점), 둘째 공직자로서의 자세(10점), 셋째 학습지도(40점), 넷째 생활지도(20점), 다섯째 교육연구 및 담당업무(20점)가 평가 항목이다.
이제 교사들은 서로 협력하고 상의하던 옆 반이나 같은 학년 선생님도 경계해야 한다. 어려움을 솔직히 이야기해서도 안 되며, 항상 잘하는 모습만 보여주는 이미지 관리도 해야 한다.
“선생님은 몇 등급이세요?”
1학년 말썽쟁이 창규가 물었다. 교사들 사이에서 혹시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가 아닐까 의심을 할 정도로 장난이 심하고 수업에 집중을 못하는 녀석이다.
“아직 1학년이지만 중간·기말고사를 잘 봐서 내신등급도 잘 받아놓고, 3학년 가면 수능시험을 잘 봐서 높은 등급을 받아야만 원하는 대학교에 갈 수 있으니 평소에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내 말이 떨어지기도 무섭게 녀석이 오히려 내게 따지듯 반문했다.
순간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말 그대로 나는 4등급 혹은 3등급으로 나누는 교원평가에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S등급(상위 10%)이나 A등급(상위 30%)에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교육 경력도 짧고, 인문계 고등학교에 근무한 기간도 얼마 되지 않아 학습지도의 전문성을 자신할 수도 없다. 게다가 많은 동료 교사들이 교원인사자문위원으로 뽑아줄 만큼 신뢰와 인정을 받고 있지만, 이 역시 교육자가 지녀야 할 품성이나 공직자의 자세라는 양심의 거울에 비춰보면 오히려 부끄럽기까지 하다.
“맞다, 창규야. 선생님도 그리 높은 등급은 아니구나. 그래도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심하게 나쁜 수준은 아닌 것 같은데, 창규 네 생각은 어떠니? 선생님도 너희에게 욕먹지 않으려고 나름 노력하고 있는데, 너희가 선생님에게 높은 점수를 주면 안 될까?”
“선생님, 피자 세 판만 우리 반에 쏘세요! 그러면 100점 드릴게요!”
이번엔 재치 넘치는 깍쟁이, 혜민이의 말이다. 피자로 학생들의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면야 어느 선생님이 피자 값을 아까워할까. 그러나….
8월25일치 1면에 “성과금 9월 지급 어렵다”라는 기사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교원 성과금의 추석 전후 지급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교과부는 올해 성과금 차등 지급률을 30%로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해 전교조 등 교원단체와 두 차례 협의를 가졌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차등 지급률 확대는 이미 지난해 예고된 것으로 교원단체가 반발한다고 해서 바꿀 수는 없다”는 입장을 지키고 있다.
사실 교원평가를 반대하는 교사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평가제도 자체가 아니다. 정말 두려운 것은 이 평가의 결과가 성과금이나 승진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퇴출 등 구조조정의 근거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 동료 교사로부터 영국에서는 교직이 기피 직종인데다 이직률 1위 업종이기 때문에 교원 부족으로 주 4일 수업을 했으며, 외국에서 교사를 영입하기 위해 캠페인까지 한다고 들었다. 나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지만 늘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교사에게 제 자식을 맡기는 것, 그것만큼 두려운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교원다면평가를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바로 학생들, 아니 내 아이에게 있다. 교사이기 이전에 두 아이의 엄마로서 내 아이들이 행복한 교사에게 행복하게 사는 법을 배우게 하고 싶은 아주 소박한 소망, 그것 때문이다.
최민희 교사
*한겨레21 르포상 기획을 이번호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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