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배신과 배신, 삼역모의 1년

등록 2008-04-11 00:00 수정 2020-05-03 04:25

희망퇴직 대상 관리자 중심으로 모였다가 회유책에 유야무야된 ‘삼성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사람들의 모임’의 지난 봄부터 올 봄까지

지난해 봄 삼성SDI 과장급 직원들을 중심으로 ‘삼성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사람들의 모임’(이하 삼역모)이 결성됐다. 삼성에 노조를 결성하려는 ‘또 하나’의 시도였던 이 모임은 얼마 전 ‘1년 천하’를 마감했다. 그 과정을 지속적으로 취재해온 하어영 24시팀 기자가 삼역모의 전말을 기록했다. 영웅도, 노동운동가도 아닌 평범한 삼성맨들이 회사에 맞섰다가 무너지는 과정은 브레이크 없는 삼성 ‘무노조 경영’의 현실을 다시 성찰하게 한다. 편집자

▣ 하어영 기자 한겨레 24시팀 haha@hani.co.kr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삼성SDI 부산공장에 근무했던 것도 남들이 그랬다고 하니 그런 줄 알고 있다. 지난 1년이 머리 속에서 사라졌다. ‘삼역모’라는 조직도 머리에서 지워졌다. 최아무개 과장은 지금도 자신이 삼역모를 통해 다시 노조를 만들겠다고 나섰다는 누군가의 말이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삼역모의 핵심 구성원이었다. 최 과장은 7년 전 삼성SDI에서 노조를 세우겠다고 나섰다가 동료에 의해 2주 동안 감금된 뒤 노조를 포기하고 가족과 함께 멕시코로 쫓겨나다시피 출국한 경력이 있는 이른바 ‘MJ’(문제사원)였다. 그는 삼역모 활동이 한창이던 지난해 11월 부서 회식 뒤 집으로 돌아오다 계단에서 쓰러졌고 뇌졸중이 덮쳤다. 세 차례 수술을 반복했지만 2007년의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사이 삼역모도 사라졌다. ‘무노조 경영’의 삼성에 노조를 설립하겠다며 화려하게 출발했던 삼역모는 지난 2월 공식적인 해체를 선언했다. 1년 만이었다.

바둑실에서 만난 ‘4인회’로 시작

삼성SDI 천안공장의 ㄱ과장은 지난해 설 연휴 이틀 전 ‘희망퇴직 대상자’라는 통보를 받았다. ㄱ과장이 연휴 뒤 출근했을 때 자신의 책상은 치워져 있었다. 그는 20여 명의 부하직원을 거느리고 있던 간부였다. “갑자기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더라고요.” 근무시간에 바둑실을 찾은 것은 입사 20여 년 만에 처음이었다. 바둑실에는 이미 몇 명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무 말도 없었지만 한나절도 가기 전에 모두가 퇴직 대상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ㅅ과장) 이들 네 명은 자신들을 ‘4인회’라고 부르기로 했다. 삼역모의 시작이었다.

4인회는 평일에는 바둑을, 주말에는 등산을 했다. 4~5월 경기 수원 광교산, 경북 구미 금오산 등지에서 모임을 열면서 삼성SDI 수원공장과 삼성전자 동료들도 구조조정 대상자가 된 사실을 알았다. 삼성코닝정밀유리, 삼성전기 등의 동료들이 합류했다. 모임은 ‘16인회’로 커지고 ‘삼역모’라는 이름을 지었다. 이름을 지은 ㅈ과장이 대표가 됐다. 그는 생산현장 출신인 다른 동료들과 달리 20여 년 동안 서울의 해외사업 부문에서 근무한 화이트칼라였다.

삼역모라는 이름이 밖에 알려진 것은 지난해 10월6일 금오산 등산모임. 처음으로 공개 활동을 선언하는 자리였다. 애초 9월부터 공개 활동을 하려 했지만, 갑자기 회사 쪽에서 삼역모 회원들이 속한 부서에 토요 근무 지시를 내리면서 모임이 늦춰졌다. 또 부서 인사담당자들은 개인별로 가정방문을 해 모임 참가를 막았다. 모임 탈퇴를 위한 개별면담도 시작됐다.

민주노총 결합하자 불만 터져나와

그러나 회사 쪽의 이런 노력은 효과를 보지 못했다. 한 과장은 “우리가 과거에 실제로 그런 일을 했던 사람들이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방해를 하는지 다 알고 있다”고 말했다. 상당수의 삼역모 회원들이 공장에서 관리자급이어서, 부하직원들의 동향을 파악하는 일은 기본이고 노사협의회 선거가 가까워지면 부하들의 성향 파악에 나서고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활동도 한 경력이 있었다. 그중에는 7년 전 노조 결성을 시도하던 직원을 납치해본 과장도 있었고, 인사팀 소속으로 그 납치를 종용했던 과장도 있었다. 과장들이 말하는 납치를 피하는 방법 몇 가지. △상관의 차를 함부로 타지 않는다 △집으로 찾아온 회사 사람을 집 안에 들이지 않는다 △술을 마시되 만취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미리 경고한다 “납치하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ㅅ과장은 “9월을 겪으며 누군가에게 보호받고 싶었다”고 말했다. 10월 초 그는 모임 참가를 막으려고 자신의 집에 찾아온 부서장과 인사담당자를 따돌리기 위해 “담배 사러 간다”며 슬리퍼에 반바지 차림으로 집을 나와 모임 장소인 금오산으로 향했다.

40여 명이 모인 금오산 모임에서는 “20년 근무한 직장에서 퇴직금 4천만원은 작다. 더 주면 (모임을) 그만두겠다”(ㅂ과장)는 말부터 “노조 결성을 위해 일하고 싶다. 구조조정으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ㄱ과장)는 말까지 가지각색의 의견이 쏟아져나왔다. 이때 내부적으로는 ‘노조를 설립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들과 접촉한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사흘 뒤 ‘1년 내에 삼성에 민주노조의 깃발을 꽂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10월13일 ‘삼성과 포스코에서 노조 건설을 준비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워크숍’을 경기 이천의 한국노총수련원에서 열었다.

이후 회사 쪽에서는 “모임을 탈퇴하라”며 회원들에 대한 전면적인 면담을 시작했다. 40여 명이 동시에 부서장에게 불려가 오전 10~11시부터 점심시간이 지난 낮 12시 반께까지 면담을 했다. 동료들과 점심을 같이 먹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당근도 있었다. 모임에 적극적이지 않은 단순 가담자들에게는 다시 일을 줬다. “일을 주니 고맙기는 했지만, 누구는 일을 주고 누구는 안 주니 나만 뭔가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삼성SDI 천안공장 ㅅ과장)

결국 11월 초 등산모임은 국외 출장을 간 모임 대표와 부대표 등이 귀국하지 못해 무산됐다. 모임 대표 ㅈ과장은 “갑자기 없던 일을 하라면서 귀국 일정을 늦춰 어쩔 수 없었다”며 “명백한 탄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노총과 연대가 시작된 뒤 내부의 갈등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11월 중순 경기 수원 광교산에서 재개된 등산모임에 민주노총 경기지부와 금속노조 충남지부 관계자들이 참석하자, 천안공장 ㅇ과장은 “왜 민주노총이 앞에 나서냐. 우리는 순수한 모임이다”라며 산행을 거부했다. 이날 등산을 하지 않은 사람은 10여 명에 달했다. 일부 회원들 사이에선 “삼역모가 노조 결성을 위한 빨갱이 단체였냐”는 말도 나왔다. 반면 10여명은 개별적으로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이들은 “우리를 보호해준다기에 보험 드는 셈치고 가입했다”고 말했다.

회사 쪽의 움직임도 더해졌다. 평소 “10억원을 줘도 그만두지 않겠다”고 공언하던 삼성전자의 한 과장이 갑자기 사표를 냈다. 그는 사표를 내기 전 모임과 금속노조를 동시에 탈퇴했다. 금오산에서 퇴직금 4천만원을 언급했던 ㅂ과장도 해를 넘기기 전 원하던 액수를 받아 모임을 탈퇴한 뒤 회사를 떠났다. 원래 모임 자체보다 퇴직금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들은 이렇게 하나둘 떨어져나갔다. 삼역모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던 ㅇ대리도 마찬가지였다. 최 과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것도 이즈음이다.

구조조정 중단 발표되자 등산모임 취소

이 시기 이건희 삼성 회장 일가의 비자금 의혹에 대한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이 있었다. 11월 말, 동료의 식당 개업식을 이유로 한자리에 모인 삼역모 회원들은 “김 변호사를 본받자”며 7년 전 노조 결성을 방해하려고 동료 감금에 관여했던 과장, 노사협의회 선거를 회사 쪽에 유리하게 만들려고 회사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는 과장, 진보 성향을 가진 후임자들의 근태를 보고하는 일을 맡았다는 과장 등이 ‘고백’을 쏟아냈다.

하지만 모임 내부엔 이미 균열이 나 있었다. 서로의 고백 뒤로 “저런 사람이 노조를 만든다는 게 말이 되냐” “우리를 얼마나 괴롭히던 사람인데” 등 뒷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심지어 한 과장은 동석한 기자에게 뭔가를 열심히 적는 한 과장을 가리키며 “저 과장이 삼성 인사팀 프락치”라고 귀띔하기도 했다(동료에게 의심의 눈길을 던지던 그 과장은 누구보다 먼저 모임과 금속노조를 탈퇴했고, 의심을 받던 과장은 삼역모가 해체된 지금까지 금속노조를 탈퇴하지 않았다).

김 변호사의 양심선언이 검찰 수사로 이어지면서 삼역모에 대한 회사 쪽의 면담이 중단됐고, 삼성에서는 ‘(천안·수원 지역 정규직 직원들에 대한) 구조조정은 당분간 없다’는 내부 방침이 전해졌다. 그리고 10개월째 이어오던 등산모임이 갑자기 취소됐다. 모임 대표 ㅈ과장은 기자에게 “날이 추워서”라고 설명했다. 내부에서는 “이런 때일수록 상징적인 등산모임을 계속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그런 목소리는 “구조조정이 중단된 것은 삼성그룹이 삼역모에 백기를 든 것”(삼역모 핵심 관계자)이라는 자화자찬에 묻혔다.

지난 2월15일 금오산 ㄱ식당. 모임 대표 ㅈ과장의 낯빛이 어두웠다. “오늘 등산은 없는 것으로 합시다. 우리가 행동을 하지 않은 것을 회사 쪽에 알립시다.” 그사이 삼역모 회원 4명이 고소를 당한 상태였다. 삼성SDI와 삼성전자의 임원 두 사람이 ‘삼역모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글이 포털에 퍼져 개인의 명예가 실추됐다’며 글을 올린 이들을 고소한 것이다. 고소 대상자는 부대표 2명과 핵심 간부 1명, 30대 사원 1명 등 삼역모의 핵심 구성원들이었다. 고소 직후 삼역모 대표를 만난 것은 고소 당사자가 아니라 삼성SDI 인사팀이었다. 이틀 전 인사팀을 만났다는 ㅈ과장은 “회사 쪽에서 삼역모가 양보를 하면 고소를 취하한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그는 ‘양보의 내용이 뭐냐’는 질문에 시원스럽게 답변하지 못했다. 대신 “가장 중요한 것은 한 사람도 상처를 입지 않고 근무하는 것”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비정규직, 함께 노조 결성 나섰는데…

삼역모의 한 핵심 간부는 대표와 삼성 사이의 협상안 내용을 전했다. 삼성 쪽이 △삼역모 해체 선언과 함께 인터넷 카페를 폐쇄할 것 △언론과 접촉하지 말 것 △삼역모 회원끼리 두 명 이상 모이지 말 것 △금속노조를 탈퇴할 것 등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 대가로 고소 취하와 함께 ‘삼역모 회원만큼은 하반기에 있을 대규모 구조조정에서 제외해준다’는 약속을 받아냈다”고 말했다.

결국 이날 금오산 등산모임이 취소되면서 삼역모를 기다리던 또 다른 30여 명은 허탈하게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이들은 바로 삼역모와 함께 노조를 만들겠다고 나선 삼성SDI 협력업체 하이비트 등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최근 희망퇴직 대상자가 된 부산 지역 삼성 직원 모임, 민주노총 금속노조 관계자 등이었다. 감옥에서 나온 지 한 달이 되지 않은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도 함께 있었다.

이틀 뒤 모임 대표 ㅈ과장은 “삼역모가 해체됐다. 고소 사건은 취하됐다”는 문자 메시지를 기자에게 남겼다(하지만 삼성전자의 한 과장에 대한 고소는 여지껏 취하되지 않았고 사건은 검찰로 넘어갔다). 인터넷의 삼역모 카페는 폐쇄됐다.

연락이 닿은 일반 회원들의 불만은 적지 않았다. 심지어 모임 해체 사실을 모르는 회원도 있었다. ㅈ과장은 “내가 희생하겠다. 나한테 돌을 던지라”는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남겼다. “전체 모임을 하자. 그 자리에서 다시 결정하자”는 회원들의 요구에는 침묵했다. 일부 회원들은 기자와 만나 “일단 구조조정은 피한데다 회사에서 대표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해고하겠다고 하니 겁을 먹고 해체 결정을 한 것 아니겠냐”며 “자기 마음대로 해체라니 말이 되냐”고 울분을 토했다. 하지만 이미 대표는 중국으로 출장을 가버린 뒤였다.

삼역모 회원이었던 한 과장은 “일반 직원들의 기대가 컸던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정작 구조조정을 피하고 나서 아무런 대안 없이 해체하니 ‘결국은 그럴 줄 알았다’는 게 삼역모를 보는 일반 직원들의 분위기”라고 말했다. 1년 동안 삼역모를 거쳐 거액의 퇴직금을 챙겨 떠나간 회원들도 20명이 넘는다. 핵심 간부로 활동했던 한 과장은 “‘모임 해체할 때 한몫 챙겼냐’며 농담을 건네는 동료에게는 솔직히 화가 나지만, 중간에 회사를 그만둔 삼역모 출신들이 ‘뭐하러 고생하냐, 한몫 챙겨서 나오라’는 말을 할 때면 그런 오해를 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정확한 수치를 밝힐 수는 없지만, 한 과장은 원래 희망퇴직 당시 퇴직금 4천만원을 제안받았다가 삼역모에 가입한 뒤 세 배 이상을 챙겼다는 게 정설”이라고 말했다.

“모임은 계속하고 있음. 안전하세요.”

삼역모의 노조화를 주장했던 한 과장은 “오히려 일반 직원들에게 패배의식이나 배신감만 안겨준 게 아닌가 반성하는 동료들이 꽤 많다”며 “삼성특검 국면처럼 우리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있는 상황에서 조직의 안위만 돌보다 자멸했다는 대목에서는 1년 동안 고생한 게 떠올라 헛헛해진다”고 말했다.

토요일인 지난 3월22일 새벽 5시59분,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신호음이 울렸다. “모임은 계속하고 있음. 안전하세요.” 삼역모 핵심 회원이던 ㅇ과장의 문자 메시지였다. ‘안녕’이 아닌 ‘안전’을 묻는 건 삼성그룹 내 구사대였다는 그의 20년 된 버릇이다. 기자가 전화를 걸자 받지 않더니 오후 3시께 전화가 왔다. “몇 명이 모였는지는 말할 수 없지만 다시 (모임을) 시작합니다.” 이 모인에는 삼역모가 아닌 다른 이름을 붙일 것이라고 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