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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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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로 줄게, 완전 비핵화해다오

등록 2007-07-26 00:00 수정 2020-05-02 04:25

북한의 전략적 결단을 위한 반대급부…고농축 우라늄 논란과 북한의 경수로 집착을 한꺼번에 풀 수 있어

▣ 워싱턴=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조지워싱턴대 객원연구원

북한은 핵무기 포기라는 전략적 결단을 내릴 것인가?

한국의 중유 제공 개시, 영변 핵시설 폐쇄·봉인 및 이를 검증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방북이 숨가쁘게 이어지고 있다. 2·13 베이징 합의 1단계 이행 조치가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고, 북한의 핵 프로그램 신고 및 불능화 조치 등 2단계 이행 조치에 대한 전망도 밝아 보인다. 이제 관심의 초점은 북한 지도부의 최후의 결단, 즉 핵무기와 핵물질의 포기 여부에 모아지고 있다.

반대급부 통해 체제 위기를 극복한다면…

많은 전문가들이 핵시설의 폐쇄와 봉인이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었다면, 불능화 및 핵무기 폐기는 이보다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선군정치를 표방해온 북한이 그 표상이자 대미 억제력의 핵심으로 삼아온 핵무기를 폐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그러나 이는 결국 협상에 달려 있다. 북한에 핵무기가 아닌 ‘다른 수단에 의한 생존’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준다면,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는 것도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선군정치는 북한이 제네바 합의를 성실히 이행하고 있던 1990년대 중·후반에 나온 것이고, ‘고난의 행군’으로 상징되는 체제 위기에 대한 돌파구적 성격을 갖고 있다. 북한 지도부가 핵포기의 반대급부를 통해 체제 위기를 극복하고, 또 다른 정당화의 기제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판단하면, 핵포기도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북한이 완전 핵포기라는 전략적 결단을 내리게 하는 데 핵심적인 반대급부는 무엇일까? 최근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대체, 테러지원국 및 경제제재 해제, 북-미·북-일 관계 정상화 등은 이미 많이 거론돼온 것들이다. 그런데 이들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경수로이다. 북한의 경수로에 대한 ‘일관된 집착’과 방코텔타아시아(BDA) 문제가 주는 교훈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또다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프로세스가 총체적인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는 점일 게다. 이는 반대로 경수로 사업의 조속한 재개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프로세스를 가속화하는 유력한 카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 북한 체제에 끼치는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김 주석의 유훈인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또 다른 유훈사업인 경수로 사업이 보장될 때에만 비로소 달성될 수 있다. 일견 모순돼 보이는 한반도 비핵화와 선군정치 사이의 딜레마를 풀 수 있는 열쇠도 여기에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핵포기의 대가로 아버지도 이루지 못한 “조-미 적대관계 종식 및 조선반도의 평화체제 구축”과 더불어 경수로까지 확보한다면, 김 위원장은 이를 선군정치의 공으로 돌리면서 새로운 체제 정당화의 근거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장비 구매시 일어날 역풍

실제로 발상을 전환해보면, 경수로 문제를 조기에 해결하면 상당한 이점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북한의 결단을 유도할 수 있는 확실한 지렛대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북-미 양쪽이 체면과 실리를 챙기면서 고농축 우라늄(HEU)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향후 최대 난제 가운데 하나는 2차 핵위기의 발단이 되었던 고농축 우라늄 문제가 될 것이다. “있다”는 부시 행정부와 “없다”는 김정일 정권 사이의 지루한 공방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이런 갈등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 신고 대상에 우라늄 농축이 포함되지 않을 경우 얼마든지 재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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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 두 가지 주목할 만한 상황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첫째는 북-미 양쪽이 2·13 합의 이후 우라늄 농축 문제를 둘러싼 제로섬 게임에서 벗어나 상호 만족할 수 있는 방식으로의 해법을 모색하기로 했다는 점이다. 둘째는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우라늄 농축 장비를 구매하거나 핵 연료 제공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현금을 주고 우라늄 농축 장비를 구매하려고 할 경우, 그 역풍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다. 미국이 북한의 속임수 게임에 넘어갔다는 비난은 물론이고, “악행을 현금으로 보상했다”는 미국 내부의 반발이 거세게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다른 대안으로 북한이 우라늄 농축 문제를 말끔히 해결하는 것을 전제로, 경수로 공사를 조기에 재개하고 핵 연료를 6자회담 참가국들로 구성되는 국제컨소시엄에서 제공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이 방안은 북핵 문제 해결의 가장 큰 걸림돌인 고농축 우라늄 논란과 경수로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있다. 미국이 고려하고 있다는 현금 제공은 북한에는 매력적일 수 있으나, 미국 내에서는 수용되기 힘든 방안이다. 반면 핵연료는 경수로가 완공된 이후에나 쓸모가 있어 경수로가 완공되기 전까지 북한에는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이 두 가지 딜레마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경수로 조기 완공에 있다.

KEDO 확대·개편해 새로운 협력기구를

또 하나의 문제는 경수로 제공 시점이다. 이 문제에 대한 접근법 역시 ‘동시 행동’의 원칙과 신뢰 구축 조치를 바탕으로 단계적으로 추진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향후 경수로 사업 일정을 ‘논의 개시→공사 재개 합의→공사 재개→북-미 원자력 협정→1호기 완공→2호기 완공’으로 정리한다면, 이러한 사업 일정과 북한의 핵포기 단계를 연계해나가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최대한 빨리 경수로 논의를 시작하고 불능화 단계에 돌입할 때 공사를 재개하며, 북한이 핵비확산조약(NPT)과 IAEA에 복귀할 때 북-미 원자력 협정을 체결하는 순서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다. 이 프로세스에서 핵심은 북한의 핵폐기가 완료되기 전에 북한이 NPT에 복귀하는 것이고, NPT 복귀와 북-미 원자력 협정 체결을 맞교환하는 것이다.

더 큰 틀에서 경수로 문제를 포함해 북한의 에너지난을 해소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할 기구의 창설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북핵 문제 해결의 틀이 6자회담으로 짜인 만큼 새로운 기구가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제네바 합의의 산물이었던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를 확대·개편해 ‘동북아 에너지 협력기구’ 창설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중유를 비롯한 대북 에너지 제공 주체이면서도 KEDO 회원국이 아닌 중국과 러시아도 포함해야 한다. 이는 향후 KEDO를 대체할 새로운 기구가 필요해질 것이며, 2·13 합의에서 경제 및 에너지 문제를 논의하는 실무그룹이 구성됐다는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이다. 향후 에너지 협력 문제가 동북아에서 중요한 현안으로 대두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동북아 차원의 에너지 협력기구 창설은 필요한 일이다.

동북아에너지협력기구는 대북 중유 제공의 실행 주체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논란이 되고 있는 경수로 문제의 합리적인 해결 틀이 될 수 있다. 에너지협력기구가 북한의 우라늄 광산을 이용해 경수로의 발전용 원료를 제공하고 운영권을 갖는다면, 경수로는 IAEA 감시와 함께 에너지협력기구의 통제하에 놓이게 됨에 따라 핵무기 제조용으로 전용되는 소지를 완전히 없앨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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