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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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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은 길, 참 멀기도 하다

등록 2007-07-06 00:00 수정 2020-05-03 04:25

‘김근태 효과’로 일단 대통합 틀 만든 범여권…너무 많은 후보·신당 성격 논란 등 곳곳에 난관

▣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 사진 이종찬 기자rhee@hani.co.kr

구도라는 측면에서 보면 올해 대선은 희한하다. 6월28일 분열을 걱정할 정도로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를 뽑는 경선이 후끈 달아오르던 시각, 열린우리당의 김혁규·신기남 의원은 대선 출마 기자회견을 열었다. 현재 진도대로라면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가 선출될 시점인 8월 중순께, 그 반대편은 정당의 꼴을 막 갖추기 시작했거나 경선 규칙을 다듬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대선 레이스는 먼저 달리기 시작했다고 결승선에도 먼저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이른바 ‘범여권’의 스타트가 늦어도 한참 늦은 셈이다.

반한나라당과 완전국민경선제가 출발점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비정상적인 구도가 조정될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꽉 막힌 상황에 돌파구를 뚫은 이는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었다. 김 전 의장의 일정표는 6월12일 대선 불출마 선언 이후, 대선 주자이던 때보다 더 빡빡해졌다. 범여권의 대선 주자는 물론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탈당파들을 두루 만났고, 민주화운동 시절부터 인연이 돈독한 시민사회 인사들을 만나 대통합 정당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후보자 연석회의의 틀을 만들었다.

그로부터 3주 뒤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한나라당을 탈당한 뒤 ‘범여권 후보’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었던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6월26일 “이제 범여권 대통합 논의에 정식으로 참여하겠다. 그 이름이 범여권 대통합이든, 아니면 민주개혁 세력 대통합이든 명칭이나 세세한 논리에 얽매이지 않고 허심탄회한 자세로 참여하겠다”고 선언했다. 7월4, 5일께에는 범여권 대선 주자 연석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특정 정치인, 정치세력은 통합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배제론은 전에 비해 힘을 잃고 통합의 기운이 높아지고 있다. ‘김근태 효과’에 ‘이대로 가다가는 다 함께 망한다’는 상황의 절박감이 더해지면서 일어난 변화다.

그러면서 범여권 전략과 일정표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세밀한 정책과 노선으로 들어가면 복잡해지지만, 범여권이라 지칭되는 이들이 대체로 합의하는 것은 두 가지다. 현재 지지율대로라면 가능성이 높은 한나라당 후보의 집권을 막겠다는 것, 즉 반한나라당 진영을 구축하자는 것이고, 또 하나는 반한나라당 진영의 후보를 국민이 직접 뽑도록 하자는 것이다. 반(혹은 비)한나라당과 완전국민경선제(오픈프라이머리)가 이들의 출발점이다.

이들이 그리고 있는 통합은 두 가지 경로로 진행된다. 대선 예비주자가 한자리에 모여서 국민경선 실시에 대한 큰 틀의 합의를 이뤄내면 실무 대리인들이 나서서 구체적인 경선 규칙을 마련한다. 경선은 9월 중순께 시작해 전국 순회 방식으로 진행한 뒤 10월 중순께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 확정 시점이 8월 중순인 데 비하면 두 달가량 늦은 셈이다.

문제는 대선 경선 출마를 선언했거나 선언할 예정인 예비 후보들이 이당 저당 흩어져 있고, 그 수가 많다는 점이다. 열린우리당 탈당파 의원들이 주도하는 국민경선추진협의회(국경추)가 6월28일 추린 후보군은 김두관·김영환·김원웅·김혁규·문국현·손학규·신기남·이인제·이해찬·정동영·추미애·천정배·한명숙(가나다순, 직함 생략) 등 13명이다.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 등 열린우리당 소속이 6명, 손학규 전 지사, 정동영 전 의장 등 탈당파가 3명, 추미애 전 의원 등 민주당 소속이 3명, 8월께 대선 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알려진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까지 복잡한 양상이다.

현행 선거법과 정당법은 단일 정당 아래에서 치러진 경선만을 인정하기 때문에 범여권의 예비 대선 주자들이 합의한다고 해서 국민경선이 치러지지는 않는다. 경선을 치르려면 ‘대통합신당’이든 ‘가설정당’이든 ‘큰 집’이 필요하다. 연석회의와는 별도로 정당 건설 로드맵이 필요한 이유다.

‘범여권’ 인사들이 그리고 있는 신당 그림도 대체로 비슷하다. 6월27일 민주당과 중도개혁통합신당의 합당으로 탄생한 중도통합민주당(공동대표 김한길·박상천)을 제외하곤 그렇다. 7월 초·중순께 시민사회 출신 인사들이 주축이 된 신당이 출범하면 열린우리당과 무소속 상태인 정치인들이 신당에 녹아든다는 구상이다. 열린우리당은 7월 말께 신당과 당 대 당 통합 형태로 해산하는 수순을 밟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대통합신당에서 범여권 대선 주자들이 완전국민경선 형태로 경선을 치르고 10월 중순부터 한나라당 대선 후보와 양강 구도를 만들면 해볼 만한 게임이 된다는 게 ‘범여권’ 진영의 희망 섞인 구상이다. 대통합신당의 대표로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따로 경선하겠다는 통합민주당

굳이 ‘희망’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그 구상이 실현되려면 여러 개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이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돼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변수와 난관이 많기 때문이다. 사실 대통합론자들의 범여권 대선 후보의 확정 시점은 계속 늦춰져왔다. 한두 달 전만 해도 민심이 뒤섞이는 추석 전에는 후보가 확정돼 있어야 한다고 했지만, 현재의 일정표는 대통합이 순항할 경우 추석을 끼고 경선을 하게 된다. 10월 초·중순께 확정된 범여권 대선 후보에게 대선 투표일까지 주어진 시간은 두 달 남짓이다. 여러 톱니가 맞물려 돌아가는데 하나가 고장나거나 빠져버려 수리하는 데 시간이 걸리면 그만큼 선거운동 기간은 줄어들게 된다.

그런데 첫 단추라고 할 수 있는 예비후보 연석회의 구성부터 녹록지 않다. 오픈프라이머리의 본래 취지대로라면 원하는 ‘선수’들이 모두 뛰다가 경선이 진행되는 동안 가능성이 낮은 후보들이 떨어져나가고 막판에는 후보 추대대회 형식으로 치러지는 것이 통상적이지만, 그것은 시간이 많을 때 얘기다. 13명은 너무 많다는 게 중론이다. 그렇다고 해서 특정 예비주자는 오지 말라고 할 기준이 없다. 3강 구도니 4강 구도니 하는 얘기들은 있지만, 한나라당까지 포함한 전체 대선 주자들을 놓고 보면 범여권 주자들의 지지율은 모두 오차범위 이내에 있다. 그러다 보니 새로 출마 선언을 할 정치인은 있어도, 범여권 예비후보로 꼽히는 13명 가운데 “나는 ‘깜’이 안 되니 물러나겠다”고 할 이는 없다.

게다가 국경추가 추린 후보 가운데 통합민주당 소속 예비주자 3명은 참여에 부정적이다. 박상천 통합민주당 공동대표는 6월27일 합당대회 연설에서 “대선 승리를 위해 빠른 시일 내에 ‘대선기획단’을 설치해 대선 후보 경선규칙을 만들고 ‘대선후보 경선위원회’를 발족해 9월 추석 연휴 이전에 통합민주당 대선 후보를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통합민주당 자체 경선을 통해 대선 후보를 선출한 뒤 통합민주당 바깥 정치세력의 대선 후보와 단일화를 이룬 뒤 본선에 임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이다.

국경추를 주도하는 이목희 의원은 “유수한 후보들의 합의가 이뤄지면 힘이 한쪽으로 쏠리게 되고 이쪽(연석회의)이 메이저리그라면 저쪽(통합민주당 자체 경선)은 마이너리그인데 구태여 마이너리그에서 하겠다는 주자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통합민주당 쪽은 “범여권 대선 주자 경선은 친노 주자들이 대거 참여하는 열린우리당 중심의 마이너리그와 참여정부 국정 실패로부터 자유롭고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통합민주당 중심의 빅리그가 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국민경선, 흥행과 폭발력 있을까

대선주자 연석회의가 순항한다고 해도 대통합신당으로 가는 과정이 순탄치 않을 수 있다. 7월 초·중순 시민사회세력과의 신당 창당→ 7월 말 열린우리당 해산 뒤 통합→ 8월 통합민주당 합류라는 통합론자들의 구상의 각 단계마다 변수가 있다. 일단 시민사회 쪽이 ‘독자 신당’을 고집하지 않는다지만 통합의 절차와 방식에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또 열린우리당 해산 절차가 깔끔하지 않을 수 있다. 열린우리당 고수를 고집하면 문제가 복잡하게 꼬인다. 대통합이 대세가 되면 호남을 주요 지지기반으로 하는 통합민주당이 ‘독자 생존’을 고집하기 힘들 것이라고는 하지만 결과는 알 수 없다.

우여곡절 끝에 대통합신당의 꼴을 갖춘다고 하더라도 신당의 성격을 놓고 논란이 불가피하다. 당장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나 이라크 파병 문제에서 찬성과 반대 양극단이 공존하는 정당이 된다. “미국 민주당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며 경선을 통해 헤게모니 경쟁을 벌이고 민주적인 의사결정에 승복하면 된다”(김근태 전 의장 인터뷰에서)거나 “우리는 평화·민주·개혁·복지·경제 민주화·양극화 극복이라는 유전자를 갖고 있다. 그게 반한나라당 깃발의 콘텐츠다”(이름 밝히기를 꺼린 열린우리당 인사)라고는 하지만, 정체성이 반한나라당인 대선용 급조 정당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우여곡절 끝에 국민경선을 치른다고 하더라도 통합론자들이 기대하는 흥행과 폭발력이 있을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힘들다. 대통합신당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완전국민경선제도는 알파이자 오메가다. 범여권 주자들 지지율 총합이 한나라당 주요 대선 주자 한 명의 지지율을 뛰어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당의 대선 주자를 정당인이 아닌 국민이 뽑는 게 바람직하냐는 논란은 제쳐두더라도 국민경선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고 나면 경쟁력이 치솟을 것으로 보는 경향이 짙다. 이런 낙관은 2002년 국민참여경선의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당시엔 당원 : 국민의 비율이 5 : 5였는데 참여하겠다고 신청한 국민의 수가 190만 명이었고 이 가운데 6만 명이 국민선거인단으로 뽑혔다. 참여를 원하는 모든 국민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인터넷 투표는 물론 ‘모바일 투표’(인증 절차를 거친 뒤 휴대전화로 투표하는 방식)까지 가능하게 하면, 최소 100만 명 이상이 참여하게 되고 이들은 모두 대통합신당 대선 후보의 적극적인 지지층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기다려주는 적극적 지지층 두텁지 않아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고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새로운 제도여서 흥행 여부와 폭발력을 속단하기는 힘들지만 분명한 것은 있다. 당신들 왜 이제야 대통합을 했냐고, 후보 뽑아주려고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느냐고 할 적극적인 지지층이 그다지 두텁지 않다는 점이다. 그마저도 단계마다 감춰진 변수와 복병들을 다 헤치고 살아나왔을 때의 얘기다. 그동안 한나라당이 놀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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