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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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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출수록 뜨거운 그 놈의 매력

등록 2007-06-29 00:00 수정 2020-05-03 04:25

‘모범 마을’에 간 모범 형사가 만난 연쇄살인 사건, 영국 영화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말하자면, 그는 경찰 5종 경기 우승자나 마찬가지다. 시위 진압, 운전, 달리기 등 경찰에게 필요한 갖가지 능력을 골고루 갖췄다. 게다가 일중독이니 런던 경시청에서 가장 탁월한 형사로 손색이 없다. 그리하여 범인 검거율이 400%로 남들의 4배에 달하는 실적을 올렸다. 그러나 세상은 그의 능력을 칭송하기보다는 시기해 그를 시골로 좌천시킨다. 지나치게 잘나서 팀플레이를 해친다는 이유다. 그리하여 니콜라스 엔젤(사이먼 페그)은 조직의 명을 받아 범죄가 들끓는 런던에서 범죄율 제로에 가까운 시골마을 샌포드로 가게 된다.

살인율은 낮지만 사고율은 높은 마을

영국 영화 (Hot Fuzz)은 그렇게 시작한다. 샌포드에는 엔젤의 파트너가 기다린다. 대니 버터맨(닉 프로스트)은 액션영화광이지만, 범인을 잡아본 경험은 적은 시골 경찰이다. 그는 범인을 쫓으면서 총 쏘기도 마다하지 않은 엔젤에게서 자신이 그려온 이상적인 경찰상을 발견한다. 그들은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파트너로 우정도 나눈다. 그러나 문제는 ‘모범 마을’인 샌포드다. 겉으로 보기에 샌포드는 한없이 평화로운 마을이지만, 무언가 심상찮은 기운이 감돈다. 냉정한 경찰관 엔젤은 범죄의 냄새를 맡지만, 그에게 맡겨지는 일이란 주민이 잃어버린 백조를 찾는 정도다. 주민은 모범마을의 명예가 훼손될까봐 범죄를 추적하는 엔젤의 행동을 반기지 않고, 다른 경찰들도 한없이 나태에 빠져 그의 행동을 돌출행동으로 여긴다. 결국엔 마을의 변호사와 그의 숨겨둔 애인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자, 엔젤은 살인의 냄새를 맡지만 누구도 그의 추적을 반기지 않는다. 오히려 경찰서장을 비롯한 동료들은 “또 일을 만드는군!” 하면서 엔젤을 조롱한다. 하지만 살인율은 낮지만 사고율은 높은 마을에는 비밀이 있었다. 샌포드는 사실 범죄가 없는 마을이 아니라 범죄를 없게 만드는 마을이었던 것이다.

은 영국산 액션영화로, 할리우드 장르영화와 확실히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일단 주인공부터 근육질의 액션영웅이 아니다. 사이먼 페그는 코미디 배우 출신으로 평범한 외모이고, 그의 파트너 버터맨으로 나오는 닉 프로스트의 몸은 낮은 장애물도 넘지 못할 정도로 무겁다. 은 패러디로 뜨거운 영화다. 은 의 제작진이 다시 모여서 만들었다. 는 인디영화로 만들어졌지만, 전세계에서 4천만파운드의 흥행수익을 올린 작품이다. 는 장르영화를 비틀어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에드거 라이트 감독은 자신의 작품인 를 로맨틱 좀비 코미디(romzomcom)라고 불렀다. 이렇게 섞이기 힘든 장르들이 뒤섞인 영화라는 의미다.

도 처럼 패러디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장르 비틀기에서는 한 걸음 나아간다. 에드거 라이트 감독과 주연배우 사이만 페그의 파트너십은 에서도 유지됐다. 사이먼 페그는 에서도 주연배우를 맡았고, 시나리오를 썼다. 은 영화에서도 등장하는 할리우드 액션영화인 등을 노골적으로 패러디한다. 에드거 라이트 감독은 자신의 성장기에 좋아했던 영화들을 기꺼이 비틀면서 오마주를 바친다. 저 멀리 이 패러디되고 같은 작품들이 인용된다. 때때로 같은 작품의 대사도 적절히 인용하면서 은 영화의 재미를 더한다. 그러니까, 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작품이지만, 액션영화 관람 경험이 쌓인 관객에게는 더욱 재미있는 영화가 된다. 은 아는 만큼 보이는 작품이다.

그렇지만 패러디의 대상을 잘 모른다고 영화를 즐기지 못할 바는 아니다. 패러디의 원작을 몰라도 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경찰영화 혹은 액션영화의 관습을 비틀어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수준에 이르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났다 싶을 때, 은 본격적인 반전에 돌입한다. 다른 영화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이야기 구조로 모범마을의 악마성, 노인의 잔혹성이 폭발한다.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선보이는 나름대로 스펙터클한 액션은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그저 웃자고 만든 영화 같지만, 영국 사회에 대한 뼈 있는 비판도 놓치지 않는다. ‘모범마을’ 샌포드는 어디나 폐쇄회로 카메라로 감시 가능한 시스템을 자랑한다. 웃으며 넘기는 샌포드의 치밀한 감시 시스템은, 영국이 세계에서 거리에 폐쇄회로 카메라가 가장 많이 설치된 나라라는 사실과 겹치며 단순한 웃음을 넘어서는 의미를 가진다. 에는 ‘공공선’(Greater Good)이라는 말이 적잖이 등장하는데, 영화는 결국에 공공선의 이름으로 약자들을 배제하고 제거하는 현실을 비판한다. 은 한없이 조용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영국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시골 사람의 웃는 얼굴 뒤에 가려진 잔인한 본성을 드러낸다.

노인들이 몸 날려 총 쏘는 액션신이란

주인공 엔젤은 마을의 연쇄살인 사건을 추적하던 중에 살해당한 인물들이 비밀스럽게 진행되던 마을의 부동산 개발과 연루됐음을 알게 된다. 엔젤은 이렇게 정황을 추리하고 용의자로 보이는 슈퍼마켓 사장 사이먼 스키너를 추궁한다. 하지만 스키너의 알리바이가 증명되면서 엔젤의 추리는 벽에 부딪힌다. 여기부터 새로운 반전이 시작된다. 부동산 개발을 둘러싼 음모처럼 보였던 살인사건은 실제로 “아무 이유 없어~”에 가까운 단순한 이유에서 시작됐음이 밝혀진다. 은 아주 단순한 것이 아주 근본적이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우면서 관객의 뒤통수를 치고 웃음을 머금게 한다. 그리고 노인들이 몸을 날리며 총을 쏘는 색다른 액션신이 시작된다.

의 또 다른 재미는 조연들의 연기다. 슈퍼마켓 사장 사이먼 스키너 역을 맡은 티모시 돌턴은 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 역할을 맡았던 배우다. 역대 제임스 본드 중에서 가장 과묵한 본드를 연기했던 돌턴은 에서 야비해 보이는 스키너 역할로 새로운 인상을 남긴다. 여기에 에서 크리스마스에 1위를 차지하는 노장가수 역할로 깊은 인상을 남긴 빌 나이가 엔젤을 시골로 쫓아버리는 경감 역할로 스치듯 등장하고, 스타배우 케이트 블란쳇이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엔젤의 헤어진 여자친구 재닌으로 깜짝 출연했다. 이렇게 숨은 재미가 찾을수록 보이는 은 6월21일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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