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만큼 더운 뉴욕의 여름, 친구들과 뒷골목 맥줏집을 공략하라
▣ 서진 2007년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작가
http://3nightsonly.com
‘Everybody hates tourists.’ 모든 사람들은 관광객을 싫어한다. 이 말은 아마도 관광객이 진정 싫어서가 아니라, 판에 박힌 것들을 보러 몰려다니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여행의 묘미는 남들이 찾았던 곳을 그대로 찾아가보는 것이 아니라, 낯선 골목을 탐험하고 그곳의 보통 사람들과 잠깐이라도 어울려보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하와이의 와이키키 해변보다는 힐로에 있는 히피 마을이 기억나고,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보다는 뒷골목 맥줏집에서 만난 친구들이 더 보고 싶다.
버드와이저만 마시다 죽었다면
뉴욕의 여름은 서울의 여름만큼 덥다. 뉴요커들은 여름 동안은 뉴욕을 벗어나 좀더 시원한 곳으로 휴가를 떠나고 관광객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소설을 쓴다는 핑계로 3년 동안 여름을 뉴욕에서 보내면서 나름대로 더위 식히는 방법을 익혔는데, 그중 최고는 생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지난해 여름에는 맥주를 마시면서 미루고 미뤄왔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페이퍼백을 다 읽었다. 지금도 펴보면 책 중간중간에 노란 얼룩이 묻어 있다.
맥도날드의 햄버거가 진짜 햄버거인 줄 알고 있다가, 레스토랑에서 만들어주는 육즙이 질질 흐르는 햄버거를 먹고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 아, 햄버거에 대규모 자본이 들어가면 이렇게 되는 거구나, 라고 실감했다. 맥주도 마찬가지다. 버드와이저가 진짜 맥주라고 평생 생각하다가 죽었다면 얼마나 억울했을까! 맥주의 역사가 오래된 유럽과는 달리 1980년대부터 서서히 제조맥주의 붐이 일어난 미국에서는, 술집과 레스토랑, 바에서 제조맥주를 생맥주로 마실수 있다. 진정한 맥주는 대량생산되지 않고, 그 지역의 물과 재료를 써서, 신선하게 보관되는 소규모의 제조맥주다.
생맥주가 시원하게 넘어가기만 하면 되지 무슨 종류가 많은지 의아해하겠지만 맥주의 세계는 마실수록 깊고 오묘한 것. 와인의 종류에 버금가는 셀렉션을 보유한다. 그리고 젠체하며 발음하기 힘든 와인을 고르는 것보다, 꿀꺽꿀꺽 넘어가는 맥주를 고르는 것은 얼마나 소박한 즐거움인가. 사소한 그 어떤 것이라도 최고의 것을 가지고 있는 뉴욕에서 발품을 잘 팔면 최고의 맥주를 쉽게 접할 수 있다. 나에게 뉴욕은 곧 맥주다.
맥주 친구들이 보장하는 최고의 생맥주 바
맥주신문에 칼럼을 쓰는 워런, 집주인 칼, 그리고 은행에 다니는 케이티와 나는 맥주를 사랑하는 끈끈한 친구다. 맥주는 혼자 마시는 것보다 친구들과 마시는 것이 좋고, 그 친구들이 바에서만 만나는 맥주 애호가라면 더 이상 좋을 수 없다. 약속 없이 바에 가도 최소한 두 명 이상은 만날 수 있고, 백해무익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술값은 각자 계산하되, 안주 따위는 팔지도 않으므로 주머니 걱정도 덜하다. 주말이면 같은 바에서 맥주를 마시고, 오로지 새로운 맥주를 마시기 위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뉴욕 관광 가이드에는 소개되지 않는, 맥주 친구들이 보장하는 뉴욕 최고의 생맥주 바는 다음과 같다.
# 블라인드 타이거 에일하우스 Blind Tiger Ale House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맥줏집. 최근 우여곡절을 겪었다. 웨스트 빌리지의 한 모퉁이에서 맥주를 사랑하던 젊은이들과 회사원들의 발길을 잡던 이 오아시스는 계약이 완료돼 스타벅스에 자리를 빼앗겼다. 새로운 가게를 오픈할 때까지 주류 판매 등록 문제로 1년이 넘게 걸렸다. 드디어 올봄, 재개장한 블라인드 타이거는 깨끗한 목조 인테리어에 28개의 각기 다른 맥주를 제공한다. 이제는 주방이 생겨서 간단한 스프와 샌드위치도 제공한다. 매주 수요일은 스페셜 맥주가 소개되며 시즌별로 다양하게 맥주가 바뀌니 지루할 틈이 없다. 주인과 스태프 모두 광적인 맥주 애호가라서 분위기가 일단 뜨면 근처 펜실베이니아주와 뉴욕주의 거의 모든 소규모 제조맥주를 맛볼 수 있다. 여기서 버드와이저를 주문하면 모든 사람들이 쳐다볼 테니 주의하시길. blindtigeralehouse.com, 281 Bleeker Street
#홉데빌 그릴 Hop Devil Grill
웨스트 빌리지에 블라인드 타이거가 있다면 이스트 빌리지에는 홉데빌이 있다. 톰슨 스퀘어 파크 바로 옆에 위치한 이곳에서는 햄버거와 감자튀김 등 간단한 식사를 할 수도 있다. 분위기 있는 바를 기대한다면 실망하겠지만 그만큼 편안한 동네 분위기에서 30여 종류의 생맥주를 마실 수 있다. 연결된 또 다른 바, 벨기언 룸에서는 벨기에 스타일의 맥주를 마실 수도 있다. www.hopdevil.com, 129 St. Marks Place
# 진저맨 Ginger Man
실링팬이 달린 높은 천장, 50개가 넘는 맥주 탭, 100개가 넘는 병맥주와 와인, 칵테일을 모두 마셔볼 수 있는 이곳은 미드타운 근처의 회사원들이 주로 찾는다. 고로, 주중 저녁 시간은 매우 혼란해 바로 앞사람의 말도 듣기 힘드니 주말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www.gingerman-ny.com, 11 East 36th St.
# 바케이드 Barcade
모든 게 북적북적한 뉴욕이 갑갑했다면 브루클린으로 자리를 옮겨보자. 젊은 예술가들의 새로운 메카인 윌리엄스버그에 큰 빈 공장을 개조해 만든 바케이드에서는 추억의 슈퍼마리오, 1942, 갤러그를 하면서 25개의 다른 생맥주를 마실 수 있다. www.barcadebrooklyn.com, 388 Union Ave. Brooklyn
뉴욕에서 몇 개 없는 제조맥주 공장 겸 레스토랑 첼시 브루잉 컴퍼니(Chelsea Brewing Company(Chelsea Piers, Peir 59)), 1854년 문을 연 가장 오래된 영국식 맥주 바 맥솔리스 올드 에일하우스(McSorley’s Old Ale House(15 East 7th Street))도 내가 사랑하던 ‘뉴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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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마시자, 스타일대로
물·보리·호프의 비율과 발효방식 따라 세 종류로 나눠지는 생맥주
50가지 다른 생맥주를 이름만 보고서는 판단할 수 없다. 물, 보리, 호프 세 가지를 어떻게 섞고, 어떻게 발효하느냐에 따라 맥주의 스타일은 달라진다. 크게 보면 다음과 같은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라거(Larger)
일반적인 황금색의 투명한 맥주. 알코올 도수 5% 안팎이라 식사 전이나 갈증 해소에 좋다. 호프의 종류에 따라 마시고 나서 입 안에 남는 향취가 다르니 몇 가지를 시음해보고 선택하자.
에일(Ale)
우리나라에서 제조맥주집에 가면 나오는 탁한 빛깔의 맥주. 실온에 가까운 온도에서 발효했기 때문에 라거보다 달고 쓰며 향기도 진하다. 알콜 도수는 5~7%. 산딸기나 블루베리가 들어간 향긋한 에일도 있다.
포터(Porter)
흑맥주로 발효도와 호프 사용량이 가장 높다. 알코올 도수 10% 안팎으로 이보다 더 높은 것도 있으니 신중히 고를 것.
이 밖에도 과실탄산주 사이다(주로 사과로 만든다), 보리와인(아주 진한 맥주지만 달다) 등이 있고, 계절에 따라 특별히 제작한 맥주가 있다.
●맥주 바에서는 한 잔마다 팁을
맥주를 주문할 때 팁을 잊지 말자. 레스토랑에서는 나중에 계산을 하면서 팁을 더해 주지만, 맥주 바에서는 한 잔씩 주문하고 그때마다 계산한다. 고로, 바에 가서 직접 주문해야 한다(굉장히 소란할 때는 주저하지 말고 고함을 지르자). 3~5달러 안팎의 1파인트(약 500cc) 맥주를 주문할 때 1달러 정도의 팁이 룰이다. 그러나 계속 두 잔씩 주문한다면 2회부터는 두 잔에 1달러면 충분하다. 단골일 경우 모조리 마신 뒤에 한꺼번에 계산하기도 한다. 그러면 멋진 바텐더들은 몇 잔을 서비스로 빼고 계산해준다. 이럴 때엔 팁을 넉넉히 주는 게 훗날을 기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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