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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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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④] 악몽 같은 자립지원법이여!

등록 2007-06-15 00:00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darkblue"> 지난해 4월부터 시행… 일본 장애인작업장 관계자들 “헛웃음밖에 안 나오네”</font>

▣ 고베·미키=글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 통역과 취재 지원 변미양

선진 장애인복지시설을 가다 ④

이시쿠라 다이조는 웬만해선 끄떡도 안 하는 사람이다. 들으면 ‘기구하다’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 빵집 ‘클라라 베이커리’에 닥친 재난을 겪으면서 강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클라라 베이커리는 1995년 문을 열었다가 6개월 만에 고베 지진으로 부서졌다. 땅을 기증하는 사람이 있어 재건을 하려고 했더니 주민들이 땅값 떨어진다고 반대를 했다. 다시 맨땅에 헤딩, 친구와 친지에게 손을 벌려 만든 것이 지금의 클라라 베이커리다. 그때 빌린 돈은 아직도 갚지 못했다. 고베시 나카타 지역의 비영리민간단체(NPO) 모임인 ‘장애인지원센터’의 회장이기도 한 그는 최근 고민거리가 생겼다. 자립지원법이다. “총회가 닥쳤는데 회장으로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장애인자립지원법’은 2005년 10월31일 국회 중위원을 통과해 2006년 4월1일부터 시행됐다. 2003년 제정된 ‘지원비제도’를 개악한 것으로 국회 중위원을 통과하던 10월의 마지막 날에는 일본 후생노동성(한국의 보건복지부) 앞에 장애인 1만5천 명이 모여서 반대집회를 벌이기도 했다. 자립지원법의 대표적 악법 조항은 △모든 서비스와 시설 이용료의 10%를 이용 당사자가 부담 △국가의 지원 상한선을 정하고 나머지는 지방자치단체로 책임 이관 △장애 지원을 마련하는 등급 위원회의 설치 등이다.

설 수도 없는 사람을 세우려는 법

‘장애인작업장’의 경우에는 ‘법 규정 시설로의 전환’이라는 문제가 겹친다. 정부는 장애인 서비스를 일원화하기 위해서 장애인 관련 시설을 유형별로 분류하고 5년 유예기간 내에 이 중 하나로 특화하라고 강요한다. ‘수산시설’(장애인작업장)은 ‘취로이행시설’ ‘생활자립시설’ 중 하나로 특화돼야 한다. 문제는 클라라 베이커리 같은 소공장은 취로이행시설 같기도 하고 생활자립시설 같기도 하다는 것이다. 물론 취로이행시설에 대한 보조금 혜택이 훨씬 많지만 규정이 엄격해 기준을 만족하기가 어렵다.

이아와세노무라(행복촌) 내의 통소수산시설(출퇴근하는 장애인작업장) ‘로쿠유’(錄友)의 하마다 아키오 주임은 “수산시설의 취업률이 1%라고 알려져 있다”고 말한다. “취로이행시설은 그야말로 취업률이 높아야 하는데, 우리로서는 요청되는 취업률 달성이 불가능하다.”

로쿠유는 18살 이상의 지적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시설로 1989년 고베시에 장애인을 위한 복지마을 ‘행복촌’이 조성될 때 입주했다. 표방하는 바는 ‘양호학교’(특수학교)를 졸업한 18살 이상의 장애인이 기술을 익히고 간단한 일로 훈련을 하여 취업전선에 뛰어들 수 있도록 만드는 ‘중간 단계’의 작업장(이것이 초기 오사카의 ‘수산시설’에 대한 정의였다)이지만, 설립 초기에 들어왔던 경증장애인이 취업이 되어 나간 뒤로는 취업은 생각할 수도 없는 중증장애인들만 남았다. 현재 30대 후반이 시설 ‘이용자’(수산시설 노동자)의 절반을 넘게 차지하는 것은 1989년 18살로 학교를 졸업하고 들어온 사람들이 거의 20년 동안 이 시설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가지 시설 중 하나로 재편되면 중증장애인이 갈 곳은 더 줄어든다. 로쿠유에 입소할 때 쓰는 ‘계약서’에는 ‘신변 처리할 수 있는 사람’(2번)이나 ‘전염병이 없는 사람’(4번), ‘단체생활이 가능한 자’(5번) 등으로 조건을 두고 있지만, 하마다 주임은 “계약서상에서만 그렇다”고 말한다. 신변 처리를 할 수 없는 사람도, 단체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장애인도 입소가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 시설 외에는 갈 데가 없는 사람들이다.

“무슨 복지가 경쟁이냐”

행복촌 내의 또 다른 수산시설인 ‘메이유’(明友)는 신체장애인을 위한 시설이다. 이마이 가즈오 시설장은 법이 요구하는 대로 시설을 정비해 내년 4월 전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직원 사이에 이야기가 되고 있지만 이용자 여러분의 의견을 들어서 결정할 계획이다”라고 말문을 연 뒤 “장애 종류가 다르고 이용자의 처지가 모두 다른데 두 가지로 강요하는 것은 문제다. 학교 졸업 뒤 진로의 길이 있었다면 이런 시설은 원래부터 필요 없었을 것이다. 장애인 시설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것이므로 돈으로 안 되는 면이 있다”라고 덧붙였다. 그가 시정부에 섭섭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20년 동안 일하면서 일거리를 찾는 게 가장 힘들었다”는 그는 최근 시정부의 시책에 따라 일거리를 잃었다. 기계 5대를 투입해 만드는 쓰레기봉투가 메이유의 가장 큰 사업이었는데, 고베시에서 지정 쓰레기봉투제를 도입하고 제작 공장을 경쟁체제로 2곳을 선정하면서 일감이 떨어졌다. 정부와 밀접한 관련을 맺어야 하는 곳에서 시책의 변화로 편의가 사라진다는 것이 이해할 수 없다고 하자 “쓰레기봉투는 환경국 관할이고, 복지시설은 복지국 관할이다. ‘다테와리’(종적 행정 시스템)라고 자기들 것만 챙기는 것의 폐해다”라고 답했다.

그래서 메이유 이용자의 공임(共賃·수입을 직원 수대로 나누어 받는 임금)도 현재 한 달 1만7천엔 수준으로 낮아졌다. 기숙사 시설을 이용하는 경우, ‘이용자 부담 원칙’에 따라 6만엔 정도를 내야 한다. 장애연금 8만엔을 받더라도 빡빡한 생활이다.

장애인자립법은 기업체의 장애인을 위한 시설 설립을 독려하기 위해 ‘복지공장 지원책’을 마련했다. 법 시행 뒤 산요전기가 장애인을 고용하는 부품공장을 만들고 고베시의 클리닝 전문 업체가 자회사를 만드는 등 장애인 공장 설립이 일면 활기를 띠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 기업의 장애인 고용 촉진책이라는 면에서 긍정적이다.

미키시의 빵공장 ‘마호로바’의 시설장 몬구치는 자립지원법 제정 뒤 곳곳의 기업으로부터 ‘경영 컨설턴트’ 의뢰를 받았다. 문의를 해왔던 기업 중 한 곳은 20명의 장애인을 고용한 복지공장을 최근 설립했다. 그는 “장애인 고용률을 만족할 수 있고, 모기업이 있으므로 일 따오기도 쉽고, 정부가 설비비의 3분의 2를 지원하므로 투자를 별로 안 해도 된다. 지도원을 두는 것도 국가가 보조금으로 지원하는 엄청난 혜택”이라고 전제한 뒤 “하지만 그것은 대기업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당장 몬구치 시설장에게 닥친 문제는 일 잘하던 이용자가 빠져나가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마호로바의 숙련된 직원을 유혹하려 새 기업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어서다. 전국적으로도 드문 마호로바의 ‘최저임금 보장’도 별 소용이 없는 듯하다. “현재 옮겼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지만 몇 명 그만둔 사람은 있다. 기업들이 주목하는 노동자는 경증장애인이다. 장애인이지만 맡은 일을 비장애인만큼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을 고용한다. 중증장애인을 고용하려는 기업은 없다.” 그는 계속해서 “단지 장애인의 일이 돈의 흐름으로 이해되고 있다”며 “무슨 복지가 경쟁이냐. 웃음밖에 안 나온다”고 말했다.

중증장애인이 갈 곳은 어디인가

방문한 날, 클라라 베이커리에는 유달리 빵이 많이 남았다. 오후 4시가 되자 고니시 도오루가 각 가정에 전화를 건다. 전화 통화는 짧다. “여기 클라라 베이커리인데요. …네, 알겠습니다.” 남은 빵을 ‘방판’하기 위해서 평소에 도움을 주는 가정에 건 전화다. 오전에 빵을 주문한 한 곳이 있긴 하지만 그것으로도 빵이 남을 것 같아 전화를 걸었는데 필요 없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일어나서 걸어나오는 고니시의 걸음은 아주 느리다. 그는 양쪽 발이 소아마비로 걷는 것이 불편하다. 그는 앉아서 일할 수 있는 회계를 맡고 있는데 계산이 간단하도록 빵들은 모두 110엔이다. 야마모토 쇼지는 전동 휠체어를 탄다. 이제 자립생활이 4년에 들어서서 시설장 이시무라는 대견해한다. 환갑이 넘은 스카다 고이치는 ‘직진’밖에 몰라서 길을 잃으면 큰일이다. 얼마 전 행적이 묘연해져 모두 동원돼 찾고 라디오 방송까지 내보냈는데, 간신히 찾은 그는 “나 오늘 경찰 차 타고 왔다”며 자랑을 했다. 묵묵한 히라야마 미치히로는 빵을 굴리는 한쪽 손이 불편해 속도가 늦다. 후쿠오카 신지는 동작도 날래고 항상 웃음을 준다. 빵을 만드는 동안 “버터, 버터”를 외치며 신나게 일한다. 이들은 모두 지적장애와 신체장애가 함께 있는 중증장애인이다. 클라라 베이커리 같은 시설이 없어진다면 이들을 받아줄 ‘영리기업’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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