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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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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불확실한 2007 대선

등록 2007-05-11 00:00 수정 2020-05-03 04:24

대선 7개월 앞두고 한나라당은 ‘분(分)당’위기 ‘구여권’은 ‘산(散)당’위기

▣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이런 대선은 없었다.

7개월 남짓 뒤인 12월19일은 다음 대통령을 뽑는 날이다. 그런데 선거 포스터에 누구 얼굴이 붙을지 예측하기 힘들다. 그런 마당에 “차기 대통령은 ○○○”이라고 예측한다면 이는 정치나 과학이 아니라 ‘종교’ 혹은 ‘문학’의 범주에 가깝다. 신념이거나 소설이라는 얘기다. 현재 시점에서 확실한 것은 불확실하다는 것밖에 없다. 4월25일 재보궐선거 이후 불확실성이 더 명확해졌다.

4·25 재보선 이후 더 흐려진 정치 시계

2002년 이맘때와 비교해보면 올 대선의 ‘이상 현상’은 두드러진다.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날은 4월27일이었다.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며칠 뒤인 5월9일에 확정됐다. 이 후보는 한나라당 안에 경쟁자가 없었던 만큼 대선 후보로 확정되기 훨씬 이전부터 후보였다. 노 후보는 3월16일 광주 경선에서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올 연말 대선으로 향하는 분기점인 4·25 재보선 이후에는 ‘정치 시계’가 더 흐려졌다. 한나라당의 높은 지지율의 허약함이 드러났고 박근혜·이명박 두 대선 주자 사이의 골은 재보선 이후 더욱 깊어졌다. 강재섭 대표 체제를 인정하는 선에서 상처를 봉합하고 간다지만 경선 규칙을 놓고 밀고 당기다가 언제 다시 폭발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나마 한나라당은 현행 유지거나 분당이어서 상대적으로 명확하다. 많아야 두 조각이다.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에 맞설 수 있는 유력 후보로 꼽히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4월30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공황상태에 빠졌다. “통합”을 주장하는 사람은 많지만 통합의 구심점이 없는 상태다. 통합의 대상으로 거론되던 세력들이 조만간 산산조각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시 합칠 수 있을지, 통합의 효과가 얼마나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나라당은 강재섭 대표 체제의 현상유지로 중대 고비를 넘겼다. 하지만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 강 대표는 복귀 이후 첫 최고위원회에서 “금명간 내가 주도해 경선 규정을 확정하겠다”고 밝혔지만, 박근혜·이명박 주자 진영은 경선 규정을 놓고 곧바로 ‘장외’ 신경전에 들어갔다. 이재오 최고위원은 “‘오픈 프라이머리’(완전 국민경선제)를 도입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최소한 민심과 당심을 반반씩 반영하는 규정만이라도 지켜야 한다”며 경선 규정을 들이밀었다. 이에 박 전 대표 대리인인 김재원 의원은 “국민을 투표에 참가시킬 수 있는 국민적 공감대와 붐 조성이 중요하지, 비율을 비틀어 합의 사항을 깨려는 건 정도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양쪽은 ‘경선 선거인단 20만 명’(대의원 4만 명·책임당원 6만 명·일반국민 6만 명·여론조사 4만 명, 2:3:3:2)에는 합의한 상태다. 그런데 이 전 시장 쪽에서는 대의원과 당원의 투표 참여율에 비해 국민의 참여율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므로 실제 선거인단이 구성 비율에 비해 당심이 과도하게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경선 규정이 사소해 보이지만 이·박 양쪽 진영의 갈등은 거기가 핵심이다.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시장의 지지층은 동일하지 않다. 지역·계층·연령대별로 차이가 난다. 박 전 대표의 지지층이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한 50대 이상의 중장년층, 즉 전통적인 한나라당 지지세력으로 이뤄진 반면, 이 전 시장의 지지층에는 한나라당 비토세력도 포함돼 있다는 게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상대적으로 보면 박 전 대표는 ‘올드 라이트’ 쪽에, 이 전 시장은 ‘뉴라이트’ 쪽에 가깝다. 따라서 ‘당심’ 비율을 높이면 박 전 대표가, ‘민심’ 비율을 높이면 이 전 시장이 유리하다. 경선 일정이 가까워지면서 규정을 놓고 양쪽의 다툼 양상이 격렬해질 수밖에 없고, 분열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이유다.

그동안 박·이 양쪽 진영의 갈등이 표면화되지 않았던 이유는 ‘잃어버린 10년’과 ‘이인제 학습효과’ 때문이다. 한나라당 지지층은 양쪽에 ‘분열하면 진다. 먼저 판을 깬 세력에게 미래는 없다’는 경고를 끊임없이 보내왔다. 그런데 대선을 불과 7개월 앞둔 시점까지 여야의 양강 구도가 아닌, ‘1강 1중 다약’인 대선 주자 지지도는 이런 경고의 힘을 약하게 만들었다. 두 후보 가운데 한 명이 한나라당을 ‘명분 있게’ 떠나서라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서면 사정은 달라진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박·이 양쪽 캠프에 몸을 담으면서 ‘중간지대’가 엷어진 것처럼 열성 지지층도 갈라진다면 선택은 더 쉬워진다. 당내 경선이 곧 본선인 영남 지역에서 한나라당 내부 경선의 파열음이 큰 것과 같은 이치다.

지지층의 상이함 때문에 그 ‘한 명’이 존재한다면 이명박 전 시장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 YTN-글로벌리서치가 5월2일 전국의 19살 이상 1004명(95% 신뢰수준에서 ±3.1%)을 전화 조사한 결과, 응답자 10명 가운데 6명(59%)은 한나라당이 분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또 한나라당의 분당을 가정하고 탈당 가능성이 높은 대선 예비후보를 물은 결과 이 전 시장(56.2%)이 박 전 대표(21.5%)를 크게 앞질렀다.

4·25 재보선 이후 양쪽의 갈등이 표면화되는 과정에서 이 전 시장은 ‘주판알’을 튕겼고 박 전 대표는 ‘밀어내기’ 의혹을 받았다. 이명박 캠프의 좌장 격인 이재오 최고위원이 사퇴를 했더라면 박근혜 대표 쪽의 지원을 받아 당선된 강재섭 대표는 버티기 힘들었다. 이 전 시장이 임시전당대회를 열어 당 지도부를 장악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면 이재오 최고위원의 사퇴를 유도했겠지만, 혼란과 분열을 초래했다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그 카드를 접었다. 이 전 시장과 이 최고위원이 고민하는 사이 박 전 대표 쪽은 “당이 분열로 가면 이는 모두 이 전 시장의 책임”이라고 압박했다. 캠프 일각에선 “이 전 시장이 제 발로 나간다면 무슨 수로 막겠느냐”며 은근히 탈당을 방조하는 듯한 의견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표가 경선에 져 대선 가도가 막히는 것보다는 이 전 시장과 갈라서는 게 오히려 낫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한나라당 대선 주자들의 분열은 한나라당에 맞설 정치세력의 부재 때문에 가능했다. 과거처럼 여야의 유력한 대선 주자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구도였다면 지금처럼 격렬한 양상으로 진행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강하게 마주 잡았던 한쪽 손이 풀리면 나머지 손도 느슨해지는 이치와 같다.

김근태·정동영 탈당도 임박

한나라당의 위기가 ‘분당’(分黨) 수준이라면 ‘구여권’은 ‘산당’(散黨) 위기에 직면해 있다. 지지율은 낮지만 잠재력이 있고 구여권 통합의 적임자로 평가받던 정운찬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 이후 열린우리당의 분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좋은 말로 분화이지 108명의 의원들이 여러 갈래로 산산조각나기 직전이다. 심지어 김근태·정동영 전 의장의 탈당도 임박했다.

한때 개혁 대 실용 대결을 벌였던 정파의 수장이기도 한 두 사람의 정세 인식과 탈당 예고 시점은 유사하다. 한나라당이라는 냉전세력의 집권을 막기 위해서는 ‘범여권’의 대통합이 필요하고, 열린우리당의 틀을 유지한 상태에서는 이런 목표의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김 전 의장은 5월3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먼저 열린우리당을 해체하고 민주당의 담을 허물어야 한다”며 “5월 말까지 결단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 전 의장도 “열린우리당 틀을 고수하는 것보다는 민주세력 분열을 극복하는 게 대의에 맞다”며 “당적 정리가 불가피하다면 결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5월 말로 시점을 못박았다.

김·정 전 의장의 탈당은, 당 의장을 지내던 시절보다는 못하지만 이들을 지지하는 당내 세력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통합신당모임(강봉균·김한길 의원 등 25명)이나 민생정치모임(천정배·최재천 의원 등 6명 안팎)과는 파급력이 다를 것으로 전망된다. 김근태 전 의장이 탈당할 경우에는 그와 가까운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소속 의원 상당수가 탈당 행렬에 동참할 것으로 점쳐진다. 민평련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나 남북·교육·주택 문제 등에서 정책적 색채가 비슷한 민생정치모임과 연대를 모색해왔다. 정 전 의장이 탈당할 경우 이후 행보는 상대적으로 윤곽을 그리기가 쉽지 않다. 정 전 의장과 가까운 의원들이 많은 통합신당모임으로 갈 것인지, 특정 정당에 몸담지 않고 여러 정치세력을 묶어세우는 통합운동을 할 것인지 결정된 것이 없다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노 대통령 “각자 살길 찾자는 속셈인가”

김근태·정동영 전 의장이 5월 말 탈당할 경우, 열린우리당에는 정세균 의장 등 당 지도부,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와 유시민 장관 등 잠재적인 대선 주자, 김원기·배기선·원혜영·유인태 의원 등 중진 그룹과 이광재·이화영 등 친노 초선그룹, 비례대표 의원들이 남을 것으로 점쳐진다. 현재의 108석이 70석 안팎으로 줄어들 수 있다. 여기에 민주당과의 통합 논의가 무산된 뒤 독자신당 창당(5월7일 전당대회)으로 방향을 튼 통합신당 내부의 복잡한 움직임, 민주당 의원들의 탈당 움직임까지 고려하면 ‘구여권’만도 대여섯 가닥의 기류가 형성된다. ‘통합론자’들의 주장은, 열린우리당을 해체해 민주당, 통합신당모임, 민생정치모임과 정동영 그룹, 김근태 그룹 등으로 일단 분화한 뒤 세력 간 협상을 거쳐 다시 융합을 추진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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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통합론에 대해 정당의 생명인 노선을 포기한 원칙 없는 통합, 지역주의로의 회귀라고 비판해왔다. 김근태·정동영 전 의장의 탈당은 통합론에 몸을 싣는 것이고 이는 곧 노 대통령과의 충돌을 의미한다. 노 대통령은 김 전 의장의 ‘열린우리당 해체 주장’에 대해 ‘청와대 브리핑’ 기고를 통해 이같이 비판했다. “말로는 통합을 내세웠으나 실은 당을 깨고 정치구도를 지역으로 재편하여 살길을 찾자는 주장이었습니다. 대선 승리를 위한 것이라고 내세웠으나 대선이 목적이라면 당을 합치지 않고도 후보 간 연대가 가능한 일이니 굳이 당을 깨자고 할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통합에 대한 아무런 전망도 없이 당부터 깨자고 한 것을 보면 각자 살길을 찾자는 속셈이 아니었는가 싶습니다.” 사실상 비(혹은 반)한나라당 연합 전선을 구축하자는 통합파와, 지역 대결 정치 극복이라는 창당 정신을 지키자는 열린우리당 사수파의 대선 전망도 간극이 크다. 사수파는 “원칙과 가치를 지키는 정치가 현실에서도 승리한다”며 △5공화국 당시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원칙을 지켰던 신민당의 승리 △1990년 3당 야합에 반대한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당선 등을 예로 든다. 하지만 원칙을 지키다 보면 승리한다는 말은, 어떤 경로를 거쳐 누구를 통해 승리한다는 내용이 비어 있는 탓에 공허하게 들린다. 그래서 통합파는 “‘2002년 노무현’의 재현은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한다. 특별한 시기에 독특하게 발현했던 특이한 현상 정도로 보는 것이다. 2002년 대선 당시 민주당에서 논란이 됐던 ‘덧셈의 정치’ ‘뺄셈의 정치’의 재판인 셈이다. 구여권의 통합론이 세를 얻는다 해도 열린우리당의 주요 세력까지 포괄하지 못한다면 구여권도 분열된 상태에서 연말 대선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고원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민주개혁 세력이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있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한나라당이 분열하더라도 전통적 보수 대 새로운 보수의 싸움 구도로 발전하면서 민주개혁 세력은 대선판의 아웃사이더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그럼에도 1997년과 2002년 두 차례의 대선에서는 대세론이 기적에 밀린 바 있고, 특히 이번 대선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경로로 가고 있으니 예측하지 않는 편이 안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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