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재혼가정의 구성원이 된 중학생 지현이는 무엇을 고민하나… 모두들 잘해주려 하지만 점점 멀게 느껴지고 방에서 나가기도 싫은데…
▣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내 이름은 강지현, 중학교 2학년이다. 외동딸이었던 나는 1년 반 전부터 삼남매 중 둘째가 됐다. 엄마와 아빠가 성격 차이로 이혼한 것은 4년 전. 그때부터 나는 아빠와 단둘이 살았다. 엄마가 너무 보고 싶을 때마다 엄마 집으로 달려가 아빠한테 혼나기도 했지만, 아빠와 둘이 사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내가 중학교 1학년에 올라가던 어느 날, 아빠는 친구의 소개로 만난 아줌마가 있는데 같이 살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아빠는 재혼을 결심했다.
소리 지르며 싸운 적은 없지만
남편과 사별한 새엄마에게는 아들과 딸 남매가 있다. 재혼하기 전에 서로 얼굴을 익힌다고 두어 번 함께 저녁을 먹은 적이 있는데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새오빠는 말수가 적은 듯 보였고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새여동생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인사도 잘하고 살갑게 대했다. 새엄마 가족이 아파트로 들어왔다. 아빠는 오빠가 공부를 해야 하니까 오빠 방을 따로 주고 나는 여동생과 2층 침대를 놓고 같이 방을 쓰는 게 좋겠다고 했다. 평생 혼자 방을 썼는데 누군과 함께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싫기도 했지만 심심하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처음 몇 주는 한집에서 서로 어색하기도 했고 화장실 쓰는 버릇부터 모두 달라서 불편하기도 했다.
새엄마와 새오빠, 새여동생은 모두 나를 배려해주는 편이고 잘해주려고 노력하지만 진짜 싫은 점도 있다. 나는 지금까지 모든 일을 내 위주로 해왔다. 외식을 가도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었고 여름 휴가를 가도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갔다. 그런데 오빠가 생기자 아빠는 오빠에게 뭐든 먼저 물어본다. 아빠는 오빠가 나보다 공부를 더 잘해서 오빠와 얘기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오빠가 남자라서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또 오빠와 동생은 딱 봐도 남매 같은데 나만 남 같다. 둘은 자기네끼리 얘기하다가도 나만 끼면 분위기가 조금 썰렁해진다. 나는 아빠를 빼앗긴 것 같기도 하고 자기들끼리만 친한 오빠와 여동생 속에서 왠지 소외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재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내가 다니던 피아노 학원에 동생이 다니게 됐다. 새엄마는 부업을 하느라 오후에 시간이 없어서 여동생을 나와 함께 피아노 학원에 보냈다. 동생을 데리고 피아노 학원에 간 첫날, 학원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동생을 가리키며 누구냐고 물었다. “누구야? 너랑 잘 아는 애야?”라고 묻는데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아는 동생이고 친척이야”라고 얼버무렸다. 나는 강씨고 새여동생은 김씨라서 성도 다른데, 어떻게 가족이라고 설명해야 하는지 깜깜했다. 아빠가 재혼했다는 사실도 친한 친구에게만 비밀로 해달라고 말했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은 그걸 몰랐다. 그때부턴 동생과 함께 피아노 학원에 가지 않는다. 동생에게 먼저 가라고 하는 식으로 피했다. 3개월 만에 피아노 학원도 그만뒀다.
오빠, 동생과 소리 지르며 싸운 적은 없다. 그렇다고 서로 속얘기를 하는 사이도 아니다. 나는 방에서 나가기가 싫고 집 밖으로도 나가기도 싫다. 방 밖에 나가면 오빠만 좋아하는 아빠와 새엄마가 있고, 집 밖으로 나가면 자꾸 동생보고 누구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점점 집에서 말하기도 싫어진다. 책상에서 공부하면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아서 그냥 공부하는 척만 한다. 앞으로도 계속 얼굴 마주 보고 살아야 하는 가족인데, 이렇게 점점 더 멀게만 느껴져서 어떻게 하지? 아빠도 새엄마도 오빠도 동생도 아무도 모른다. 내 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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