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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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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비의 쌍곡선, 그들을 기억하리

등록 2006-07-13 00:00 수정 2020-05-03 04:24

축구팬들에게 웃음과 눈물을 선사한 2006 독일 월드컵의 세 커플… 루니-호날두, 지단-피구, 베컴-나카타에 관한 이야기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2006 독일 월드컵이 저물었다. 월드컵은 가도 기억은 남는다. 2006 월드컵을 통해 오래 기억될 세 쌍의 커플, 여섯 명의 인물을 꼽아보았다.

루니와 호날두, 악연은 계속될까?

웨인 루니는 월드컵 그라운드에서 퇴장을 당했지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잉글랜드 리그에서 퇴장을 당할지 모른다. 잉글랜드와 포르투갈의 8강전, 그들의 악연은 시작됐다. 호날두는 같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인 루니가 퇴장을 당할 때, 심판에게 달려가 항의성 몸짓을 했다. 잉글랜드 타블로이드 신문들은 경기 다음날 루니가 “호날두의 머리를 두 쪽 내버리겠다”며 흥분했다고 전했다.

다행히 루니의 말은 타블로이드의 소설로 밝혀졌다. 루니는 호날두에게 “악감정이 없다”고 했고, 호날두는 루니가 “행운을 빌어주었다”고 전했지만, 팬들의 악감정은 풀리지 않았다. 호날두가 무려 40m를 달려와 항의를 하고, 루니가 레드카드를 받자 포르투갈 벤치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는 ‘괘씸죄’는 풀리지 않았다.

더구나 호날두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떠나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고 싶어한다, 아니다, 오락가락하면서 더욱 이미지를 ‘구겼다’. 호날두는 동료를 ‘고자질’하고 감독의 은혜를 저버린 이중의 ‘배신자’로 찍힌 것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호날두가 뤼트 판 니스텔루이와 다투었을 때, 호날두를 옹호했다. 잉글랜드, 아니 지구촌에서 ‘안티 호날두’ 사이트가 인기를 끌었다. 배신자로 찍힌 호날두는 프랑스와의 4강전에서 끈질긴 팬들의 야유에 시달렸다. 드리블의 마술사로 떠오른 포르투갈의 ‘느끼남’은 과연 잉글랜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한편으로 빅리그가 없는 나라에서 태어난 호날두가 불쌍하기도 하다. 21살 동갑내기, 루니와 호날두의 인연 혹은 악연은 이어질까.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도?

스콜라리와 페케르만, 명장과 졸장?

포르투갈의 루이스 펠리프 스콜라리는 최고의 감독으로 꼽힐 만했고, 아르헨티나의 호세 페케르만 감독은 최악의 용병술로 낙인찍혔다. 스콜라리 감독은 2002 월드컵의 브라질, 2006 월드컵의 포르투갈을 이끌며 12연승을 질주했다. 다혈질의 스콜라리는 포르투갈을 ‘근성의 팀’으로 바꾸며 40년 만에 4강으로 이끌었다. 비록 프랑스에 패해 결승에 오르지 못했지만, 스콜라리의 마술은 2006 월드컵의 또 다른 볼거리였다. 스콜라리는 잉글랜드와 8강전에서 냉정한 승부사의 면모도 보였다. 후반 종반 0 대 0 무승부 상황에서 포르투갈 선수가 골을 넣었지만, 조금도 흥분하지 않았다. 선심이 오프사이드 깃발을 드는 모습을 명백히 보았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골이라고 믿고 싶을 상황에서 단 한 번의 제스처도 취하지 않고 다시 경기에 집중하는 스콜라리의 ‘냉정과 열정 사이’가 빛났다.

반면 페케르만 감독은 아르헨티나를 탈락시킨 주범으로 낙인찍혔다. 독일과 8강전에서 1 대 0으로 앞서자 후반 27분 일찌감치 공격력이 좋은 후안 로만 리켈메 대신 수비가 뛰어난 에스테반 캄비아소를 기용하며 지키기 작전에 나섰다. 하지만 독일의 동점골이 터졌다. 또 마지막 선수교체 기회에서 리오넬 메시 대신 훌리오 크루스를 투입해 팬들의 원성을 샀다. 마라도나를 비롯한 아르헨티나 팬들은 메시의 선발 기용을 요구해온 터였다. 결국 조타수를 잃어버리고, 천재를 놓쳐버린 아르헨티나는 승부차기 끝에 독일에 졌다. 더구나 승부차기에서 실패한 아르헨티나의 마지막 키커는 리켈메 대신 교체해 들어간 캄비아소였다. 아르헨티나는 예선에서 위협적이면서 아름다운 축구를 선보이면서 강력한 우승후보로 떠올랐기에 팬들의 아쉬움은 더욱 컸다. 결국 페케르만은 월드컵 뒤에 “모든 게 끝났다. 내가 (대표팀을) 계속 맡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확실하다”며 사임 의사를 밝혔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그라운드에서 페케르만은 보기 힘들겠지만, 월드컵 전문 청부 감독 스콜라리와 히딩크는 다시 볼 수 있을까?

지단과 피구, 전설의 퇴장

그리고 한 시대가 저물었다. 프랑스와 포르투갈의 4강전이 프랑스의 1 대 0 승리로 끝나자 지네딘 지단은 루이스 피구를 찾아가 포옹했다. 34살 동갑의 영웅들은 유니폼을 바꿔입었고, 그라운드에서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마르세유에서 태어난 이주노동자의 아들과 리스본의 노동자 거주지에서 자란 영웅의 마지막 작별에 팬들도 눈물을 훔쳤다.

이렇게 피구는 메이저 타이틀 없는 무관의 제왕으로 남았다. 클럽에서는 따낼 수 있는 모든 우승컵을 따냈던 피구지만, 포르투갈 유니폼을 입고는 끝끝내 우승컵을 안아보지 못했다. 만약 피구가 브라질은 아니어도 프랑스, 이탈리아, 잉글랜드 선수만 됐어도 그는 빈손으로 현역을 물러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럽 축구의 1류가 아니라 1.5류 국가에서 태어난 설움을 피구는 온몸으로 겪어야 했다. 질풍 같은 발놀림, 냉철한 판단력, 정확한 슈팅력, 헌신하는 자세까지 겸비했던 포르투갈의 ‘캡틴’ 피구는 결국 소원이었던 메이저 타이틀을 거머쥐지 못하고 그라운드에 눈물을 뿌려야 했다. 피구에 견줘 지단은 운이 좋은 편이다. 레블뢰 유니폼을 입고 월드컵과 유럽선수권대회, 양대 메이저 타이틀을 거머쥐었으니. 게다가 지단은 독일에서 여전한 클래스를 보여주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지단의 아름다운 퇴장은 피구의 안타까운 퇴장에 가슴 아파하던 팬들에게 위안이 되었다. 언제 다시 이런 스타를 만날 수 있을까, 스타를 보내는 팬들의 마음은 언제나 불안하다.

베컴의 눈물, 나카타의 은퇴

베컴은 포르투갈전에서 발목 부상으로 교체된 뒤, 벤치에서 눈물을 보였다. 나중에 베컴은 “주장으로 마지막 경기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대표팀 주장 자리를 내놓은 베컴은 대표팀 주전 자리마저 장담하지 못한다. 벌써 잉글랜드 신임 감독인 매클래런이 오른쪽 미드필더로 베컴 대신에 레넌을 중용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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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1살인 베컴은 2010년 월드컵 출전은 물론 유로2008 출전도 장담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베컴뿐만이 아니다. 독일에서 월드컵 무대와 작별하는 스타들이 유난히 많다. 이탈리아의 델 피에로와 프란체스코 토티, 스페인의 라울 곤살레스, 아르헨티나의 에르난 크레스포, 브라질의 호베르투 카를루스, 네덜란드의 판데르 사르…. 독일 땅에 수많은 별들이 떨어졌다.

그리고 나카타 히데토시가 홀연히 그라운드를 떠났다.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인생이란 여행이며 여행이란 인생이다”라는 ‘노마드의 변’을 남겼다. 29살의 노마드는 “프로 축구라는 여행을 끝내고 ‘새로운 나’를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밝혔다. 진정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자 했던 그는 “프로가 된 뒤, ‘축구를 좋아하나요?’라는 질문에 ‘좋아요’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던 나의 모습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홀연히 새로운 여행을 떠났다. 그의 말은 오래 기억될 가치가 있다. “앞으로, 프로 선수로서 그라운드에 설 일은 없겠지만 축구를 그만두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여행지의 골목에서, 풀숲에서, 작은 그라운드에서, 누군가와 말을 주고받는 대신에 공을 찰 것이다. 어릴 적 그 신선하고 아름다웠던 마음으로.” 우리도 언젠가 어딘가에서 누군가와 말을 나눌 것이다. 2006 독일 월드컵,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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