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 헐값 매각을 이슈로 만든 투기자본감시센터 장화식 정책위원장…“외국자본과 재벌이 함께 챙겨먹는 구조, 한국은 투기자본의 즐거운 놀이터”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 사건을 석 달간 감사한 감사원 보고서는 수백 쪽에 달할 정도로 방대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데 이미 수백 쪽에 달하는 론스타 파일을 2년6개월 동안 혼자 수집해온 투기펀드 추적자가 있다. 장화식(44) 투기자본감시센터 정책위원장 겸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 부위원장이다.
어떤 의미에서 장 위원장은 외환은행 헐값 매각을 온 국민의 이목이 쏠린 사회적 이슈로 끌어낸 당사자라고 할 수 있다. 2003년 6월16일자 외환은행 BIS 비율 점검 결과보고서, 외환은행 이사회 간담회 회의록, 2003년 7월15일 관계기관 비밀 대책회의 발언록, 2003년 7월25일 금융감독위원회 회의자료…. 그의 책상 서랍에는 수백 쪽에 달하는 ‘론스타 I 파일’을 비롯해 외환은행 매각과 론스타를 둘러싼 온갖 자료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그의 머릿속에는 2003년 외환은행 매각일지가 날짜까지 또렷이 정리돼 있다.
“론스타는 미국에서도 쓰레기 펀드”
대학 시절부터 노동 현장에 들어갔던 그는 외환카드에 입사하고 곧바로 노조 간부로 일했다. 사무금융노련 부위원장으로 있던 2003년 가을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했고, 당시 그가 론스타의 외환카드 합병을 둘러싸고 경영진과 사활을 걸고 담판을 벌인 일화는 지금도 노동계에 유명하다. “2004년 1월12일 아침이었죠. 외환카드 노동자 54%를 자르겠다고 팩스로 통보가 왔어요. 사장실에 항의 방문을 갔죠. 협상 테이블에서 오랫동안 항의하다가 다른 동료한테 칼을 가져오라고 해서 사장 손에 시퍼런 칼을 쥐어주고 ‘그럼 내 목부터 쳐라’고 했죠. 그런데 사장 책상에 70% 정리해고 방침 문건이 보여서 다시 더 큰 칼을 갖고 오라고 해서 또 ‘내 목부터 쳐라’라고 했어요. 사장이 협박당했다고 나를 기소했죠.”
감사원 발표와 재정경제부·금융감독위원회의 반박에 대해 장 위원장은 과 만나 “외환은행에서만 1천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해고됐다. 이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론스타가 4조5천억원을 먹고 튀려고 하는데 금융감독 당국은 여전히 ‘우리는 잘못한 거 없다’고 한다. 자산 70조원대의 대형 은행을 재경부 국장 등 몇 명이 판단 실수로 자격 없는 일개 투기펀드에 매각했다고는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론스타 펀드 투자자 중에 ‘검은 머리 한국인들’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들의 신분과 자금 출처를 밝혀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감사원 발표를 어떻게 보나?
=외환위기 이후 잘못된 금융 구조조정의 결과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론스타와 외환은행 불법 매각 사태다. 론스타의 조직적 불법 행위가 있었느냐 여부도 중요하지만, 사실은 우리나라 정부와 외환은행의 불법 행위가 사태의 핵심이다. 론스타의 조직적 개입이나 금융 경제관료들이 론스타로부터 돈을 받지 않았다 해도, 통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헐값에 매각함으로써 매각 대금 회수를 극대화하지 않은 것만 해도 업무상 배임이다.
그동안 추적해본 결과 론스타는 어떤 펀드인가
=론스타는 미국에서도 은행업을 할 수 없는 쓰레기 펀드에 불과하다. 칼라일 펀드도 론스타는 부실 채권만을 뜯어먹는 3류 벌처펀드라고 말했을 정도다. 미국 변호사들도 론스타 펀드는 잘 알지 못한다고 하더라. 미국에서는 그런 펀드가 대형 은행을 먹는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다고 한다. 미국에서 펀드가 은행을 소유하면 펀드 출자자의 신분과 자금 출처를 공개해야 한다. 그래서 론스타는 이 규정을 피하려고 외환은행 미국 지점들을 아예 폐쇄해버렸다. 단기간 모였다가 이익을 챙기고 나서 해산하는 이런 펀드는 미국 내에 수천 개가 있다. 2004년 초에는 론스타가 1조4천억원 정도 차익을 남길 것으로 봤는데, 무려 4조5천억원나 됐다.
론스타 펀드와 처음부터 연결돼 있던 한국인이 있다고 보는가?
=론스타 매각이 확정되기 1년 전인 2002년 9월에 최초로 외환은행이 론스타로부터 약 1조5천억원까지 투자 의사가 있음을 간접 전달받았다. 이때부터 이미 누군가 론스타와 외환은행을 연결한 선이 있었을 것이다. 딜이 사전이 확정돼 있었으므로 론스타가 어떤 요구를 해도 오케이 됐을 것이다. 실제로 누군가 딜을 중개하고 콜옵션까지 정부가 챙겨줬는데, 2003년 7월15일 관계기관 비밀대책회의 자리에서 재경부 변양호 금융정책국장이 ‘도장값’이라는 말까지 했다. 이런 것들이 모두 한 고리로 연계돼 있을 것이다. 외환은행 전용준 부장이 론스타와 협상할 때 ‘펀드라서 은행법에 저촉되는 문제가 있다’고 질문하자 론스타 쪽에서 “그건 당신이 참견할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고 한다. 뭔가 사전에 딜이 약속돼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토종 사모펀드’도 다를 바 없어
론스타 펀드에 검은 머리 한국인 투자자들이 있다고 보는가?
=투자한 돈 주인들이 누구인지 안 밝히는 것이 펀드의 생명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론스타 펀드3호와 론스타 펀드4호의 투자자가 일부 겹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분명히 한국인들도 론스타 펀드 투자자 명단에 들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세청이 론스타코리아를 압수수색했을 때 미처 숨기지 못한 돈 주인들의 이름이 나왔을 것이다. 국세청과 감사원은 론스타 투자자 명단을 일부 알고 있을 것이다.
이헌재 펀드나 변양호 펀드가 ‘토종 사모펀드’를 내세웠는데 어떻게 보나?
=변양호 보고펀드는 이헌재 펀드를 이어받은 후손이다. 국내 사모펀드도 행태가 외국 사모펀드와 다를 것이 전혀 없다. 오히려 외국 펀드를 배워서 똑같이 한다. 국적만 다를 뿐 철저하게 돈 주인을 위해 봉사하는 건 마찬가지다. ‘토종 사모펀드 육성론’은 외국 투기자본도 훔치고 약탈하는데 나도 똑같이 훔치도록 해달라는 요구에 불과하다. 하도 많이 외국 투기자본에 당하다 보니 토종이니 된장이니 좋아하는데, 겉으로 토종이지만 속으로는 외국 투기자본과 손잡고 똑같은 행태를 할 뿐이다. 한국 정부는 외국 자본이라면 무조건 오케이 하는데, 국내 재벌도 그런 외국 자본에 붙어서 하위 파트너 기능을 하고 있다. 이 땅은 투기자본의 즐거운 놀이터로 변했다. 외국 자본이 크게 한판 챙겨먹고 재벌도 손잡고 같이 챙겨먹는 구조가 돼버렸다.
투기자본감시센터는 어떤 곳인가?
=2004년 8월에 창립됐고 상근자는 2명뿐이다. 센터에는 이찬근 교수(인천대), 이대순 변호사, 허영구 민주노총 부위원장 등이 참여하고 있는데 각자 전문성을 갖고 사안이 있을 때 서로 토론하고 문제 제기하는 네트워크 조직이다. 그동안 론스타뿐 아니라 오리온전기, 만도기계, 하나로통신, 브릿지증권의 투기자본 문제도 센터가 제기했다. 지난해 9월 센터가 외환은행 불법 매각과 관련해 관련자 20명을 검찰에 고발했는데 이때는 언론에 단 한 줄로 처리되고 말았다. 올해 3월 국회가 감사를 청구하고 검찰에 고발하면서 파장이 커졌다.
자료를 모아야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나
=2003년 11월 외환카드 합병 당시 두 달간 싸우면서 투쟁 무기로서 론스타의 ‘외환은행 주식취득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은행법을 뒤져보니 투기펀드는 은행을 인수할 자격이 없는 것으로 돼 있었다. 나를 포함해 2명이 외환카드 해고자로서 소송을 제기했는데, 나중에 이렇게 한두 명이 할 것이 아니다고 생각했다. 6개월간 준비해서 2004년 10월 5천 명 이름으로 법원에 또다시 외환은행 주식취득승인 무효확인소송을 제기했다.
여야 의원들의 도움으로 자료 수집
이런 자료들을 혼자서 수집할 수 있었나?
그 뒤 금감위 등에 사무금융연맹 부위원장 이름으로 외환은행 매각 관련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물론 모두 거부당했다. 그래서 열린우리당 신학용 의원,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 열린우리당 이상경 의원, 한나라당 최경환 의원 등을 찾아가 ‘의원 자료 요구’ 형태로 간접적으로 문건들을 받았다. 물론 내가 직접 그 자료를 볼 수는 없고, 의원들이 정책자료집으로 발간하면 그것을 가져다가 철저하게 따져보고 종합적으로 재구성했다. 여러 자료들을 모아놓고 보니 헐값·불법 매각 증거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그때그때 론스타 문제를 이슈화하면서 문제 제기해줬다. 고비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도와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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