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의원 난투극을 계기로 돌아본 폭탄주의 세계…1986년 ‘국방위 회식 사건’으로 대중화
▣ 김학민/음식칼럼니스트 hakmin8@hanmail.net
지난 4월16일 인천에서 ‘폭탄주 사건’이 일어났다. 이날 인천대공원 벚꽃축제 개막식에 참석했던 시의원들은 안상수 인천시장의 제의로 인근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저녁식사를 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안 시장과 함께 폭탄주를 마신 한나라당 신아무개 의원과 최아무개 의원이 말다툼 끝에 밥상을 뒤집어엎고 맥주병을 ‘폭탄’처럼 던지는 등 격렬한 난투극을 벌인 것이다.
동료 의원들의 만류로 식당에서의 난투극은 잠시 뒤 일단락됐으나, 그것으로 모두 끝난 게 아니었다. 신 의원이 이날 밤 최 의원의 아파트를 찾아가 재삼 말싸움을 벌인 끝에 ‘폭탄’ 대신 ‘뾰족한 물건’으로 최 의원의 손을 찔러 수술을 요하는 상처를 입힌 것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사건은 일파만파로 커져 경찰의 수사에까지 이른 것이다.
“똥별들만 먼저 모였구먼…”
‘사고’는 평시에 있지 아니하는 뜻밖의 일을 의미한다. 이에 비해 ‘사건’은 뜻밖의 일 또는 시행의 결과 일어나는 일을 말한다. 그러므로 군에서의 ‘폭탄 사고’는 사고이고, 음주시의 ‘폭탄주 사건’은 사건이다. 또 말장난 같지만 술집에서 폭탄주를 마시는 데 폭탄 테러가 있었다면, 그것은 당연히 ‘폭탄 사건’이다.
‘폭탄주 사건’은 주로 우리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에게서 일어난다. 그것은 폭탄주가 군, 검찰 등 권력기관에서 탄생해 정치, 관료, 대기업 임원 등으로 내려가 이들 상류층이 주로 애용한 데서 비롯됐다. 그러나 이제는 평범한 장사꾼, 월급쟁이들에까지 폭탄주가 대유행이 되어, 오늘 밤도 전국 어디에선가 네가 잘났느니 내가 잘났느니 장삼이사들의 티격태격 ‘폭탄주 사건’이 일어나겠지만, 사회적 파장이 그리 크지 않다는 점에서 이건 ‘사고’로 쳐도 무방할 것이다.
‘폭탄 사고’도 아니고 ‘폭탄주 사고’도 아닌, 우리 사회에 ‘폭탄주 대중화 시대’를 있게 한 아주 유명한 ‘폭탄주 사건’이 하나 있다. 지금으로부터 19년 전 벌어졌던 이른바 ‘국방위 회식 사건’이다. 1986년 3월21일, 제129회 임시국회 개회를 마치고 국회 국방위 소속 여야 의원 10여명과 육군 수뇌부 8명이 중구 회현동의 요정 ‘회림’에 모여 질탕하게 양주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육군쪽 참석자는 1979년 12·12사태 때 정승화 참모총장을 체포하는 데 1등공신이었던 박희도 참모총장(대장), 5공 초기 현역으로 전두환의 경호실장을 지냈던 정동호 참모차장(중장), 정통 TK로서 하나회의 핵심이었던 이대희 인사참모부장(소장), 12·12 때 전방 노태우 장군의 9사단 병력을 이끌고 서울로 쳐들어왔던 구창회 총장비서실장(준장) 등 전두환의 최측근 수하들이었다.
국방위에서는 공군 소장 출신인 천영성 위원장을 비롯해 김동영 신민당 원내총무, 이세기 민정당 원내총무, 김용채 국민당 원내총무, 남재희 의원 등 소속 의원들이 자리를 같이했다. 저녁 7시30분이 조금 넘어 김동영 신민당 총무가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했음에도 여유만만한 태도로 들어서며 한마디 했다.
“허, 힘있는 거물은 안 오고 똥별들만 먼저 모였구먼….”
순간 분위기가 확 변했다. 첫인사치고는 너무 돌출적이고 도발적이어서 육군쪽 참석자들은 모두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에 아랑곳없이 자리에 앉자마자 양주 10여잔을 거푸 마셔 취기가 진해진 김동영 총무가 박희도 육군참모총장에게 소리쳤다.
“여보 박총장, 여당 총무는 안 오기로 했나? 어떻게 된 거야! 이세기를 불러와!”
이세기 민정당 원내총무는 그로부터 한 시간쯤 뒤에 나타났다. 그는 술이 약한데다 지역구 행사 참석과 문상을 다니며 한두 잔 마신 술로 제법 취해 있었다. 이 총무를 보자 정동호 중장이 휘청거리며 일어섰다.
“이세끼 총무, 뭐 이렇게 늦게 오고 그래! 그러니까 야당쪽에서 우릴 보고 똥별이라고 하지 않나 말이야!”
양주 귀하던 시대, 폭탄주에 호기심 증폭
그러고는 정 중장 등 장성들이 마구 폭탄주를 권하자 마침내 이 총무가 짜증을 냈고, 분위기가 이상하게 흐르는 것을 보고 천영성 위원장이 사태를 진정시키려 했으나 육군 장성들에게 공군 출신 선배의 말은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이 총무가 폭탄주 한 잔을 비우자, 정 중장은 그를 억지로 끌고 김동영 총무 옆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이 총무의 손을 끌어다 김 총무의 손 위에 얹게 하고는 훈계하듯 말했다.
“자, 여당 총무 왔는데 정치 좀 잘해야지. 둘이서 손잡고 잘 할 수 있잖아? 정치를 잘해줘야 바깥에서도 안 떠들 거 아닌가?”
이 광경을 보다 못한 남재희 의원이 벽에 유리컵 두개를 연거푸 날렸다. 그런데 이 유리컵 파편에 이대희 소장의 왼쪽 눈두덩이가 찢어져 피가 흘러버린 것이다.
“술을 먹으려면 제대로 먹어!”
피를 본 이 소장의 발길이 남 의원의 얼굴을 향해 날았고, 이를 맞고 앉은 자리에서 뒤로 벌렁 나자빠진 남 의원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술판은 장성들과 국회의원들의 몸싸움으로 변했다. 그러나 이 싸움은 처음부터 승부가 되지 않았다. ‘무력을 익힌 정치(군)인’들에게 ‘보통의 정치인’들이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
사태가 이렇게 돌아가자 이날의 초청자인 박희도 대장과 천영성 국방위원장 등 초대받은 의원들도 심각성을 깨닫고 수습에 나섰다. 폭력을 행사하고 몸싸움을 벌였던 장성들에게 사과를 하게 하고는 아래층으로 자리를 옮겨 화해술로 2차 폭탄주를 함께 하고 헤어졌다.
이날은 이렇게 어정쩡한 화해로 끝났다. 그리고 이 사건이 바깥에 알려지지 않도록 모두 함구하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날 국회에서 일어났다. 여야 총무들이 제시간에 아무도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항간에는 장성들과 의원들이 모여 폭탄주를 마시다가 군인들에게 직사하게 얻어맞았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신민당 의원들은 “회식 사건의 진상 규명이 없는 한 회의에 참석할 수 없다”는 확대간부회의의 결정에 따라 전원 본회의에 불참했다. 이후 국방위에서 이기백 국방장관과 박희도 참모총장이 사과하고, 정동호 차장은 예편, 이대희 소장은 전방으로 좌천되는 것으로 이 ‘사건’은 마무리됐다.
내가 19년이나 지난 시답잖은 ‘국방위 회식 사건’을 새삼 기리는(?) 이유는, 이 사건이 우리 사회에 눈에 보이지 않는 두 가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하나는, 그동안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해왔지만, 우리 사회 군벌의 힘이 다른 권력의 힘에 비해 무소불위할 정도로 강했음이 확인된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처리 과정에서, 군도 증대하는 민의 여론을 무시하고 군림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때부터 문민 우위의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 자리잡기 시작했다고 본다면 비약일까?
두 번째는 음주문화에 끼친 영향이다. 내가 알기로는 이때까지 우리 사회에 폭탄주 문화가 만연하지는 않았다. 양주가 워낙 비싸 서민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울진대 그 귀한 양주를 천하게 다루는 폭탄주를 생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대중들은 전두환 독재정권을 뒷받침하던 정치(군)인들끼리 치고 박고 한 난투극을 깨소금처럼 고소하게 듣고 옮기면서, 한편으로는 살며시 폭탄주에 호기심의 눈길을 돌렸다. 이때부터 군, 검찰, 정치인들만의 은밀한 행사였던 폭탄주 파티가 ‘대중화’된 것이다. 나도 그즈음에 처음 폭탄주 맛을 봤다.
폭탄주가 민주적이라고?
이후 폭탄주는 필요악처럼 우리 사회에 빼놓을 수 없는 음주문화로 자리잡았다. 혹자는 폭탄주가 ‘민주적’이라고 찬양하기도 한다. 병권(甁權 또는 兵權)은 상급자나 연장자가 쥐지만, 모두가 차례대로 공평하게 마실 수밖에 없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폭탄주는 ‘군사문화적’이다. 개인의 주량이나 선호도를 배려하지 않고 무조건 줄이어 마셔야 하니, 이게 군사문화가 아니고 무엇인가? 또 상명하복의 군사문화가 팽배한 군대와 검찰 등에 폭탄주 문화가 뿌리깊게 자리잡은 것에서도 그 인과관계를 알 수 있다.
이제 폭탄주는 이라크전에서 확인된 미국의 고성능 폭탄의 개발 속도와 같이, 맥주잔에 양주잔을 떨어뜨리는 전통적 제조방식에서 진일보해 ‘신제품’의 개발 속도가 빛의 속도만큼이나 빠르다.
최근에는 술 자체로서의 폭탄주를 넘어 회오리주, 타이타닉주, 피타고라스주, 화주, 충성주, 폭포주, 수소폭탄주, 금테주, 쌍끌이주, 삐딱주 등 술 마시는 방법과 행위의 독특성에 촛첨을 맞춰 그 유행을 이어가고 있고, 막걸리에 양주잔을 떨어뜨려 마시는 ‘민속폭탄주’까지 등장했다니 주당들의 ‘창의력’은 끝이 어디인가.
몇년 전 국회 청문회에 나온 한 증인은 양주를 그냥 마시면 너무 독해 맥주에 넣어 마신다고 말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폭탄주는 정말 양주를 순하게 해주는 것일까?
폭탄주의 알코올 도수는 혼합 비율에 따라 다르지만, 70% 정도 채운 맥주컵에 양주 한잔을 떨어뜨리는 ‘정품’ 폭탄주라면 알코올 도수가 10도 내외인 순한 술이 된다. 대부분의 양주 알코올 도수는 40도, 맥주는 4.5도고, 맥주잔은 225cc, 양주잔은 25cc이니 2차방정식으로 풀면 대충 폭탄주의 도수가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의사들도 폭탄주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양주 스트레이트에 비해 식도와 위점막에 미치는 자극의 영향은 적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폭탄주가 간에 끼치는 영향은 다른 독주를 마실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술이 간에 미치는 악영향은 마신 절대량에 비례하기 때문에 폭탄주로 마시나 그냥 스트레이트로 마시나 간독성은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다.
오죽하면 요즈음 인터넷에 이러한 유머까지 뜬다. 폭탄주가 암을 방지한다는 학설이 있다는 것이다. 술 이야기를 쓰고 있는 판에 관심이 있어 클릭해보았더니, 폭탄주를 즐겨 애용하는 사람들은 암에 걸려 죽기 전에 모두 간경화로 죽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암을 예방하게 된다는 것이다.
왜 빨리 취하게 되는 걸까
폭탄주를 자주 마시면 술이 는다. 이는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다. 의사들은 술을 2주 정도 매일 마시면 간의 알코올 분해 능력이 30% 정도 증가한다고 한다. 곧 간은 인체를 지탱하기 위해 유입되는 알코올 양만큼 분해효소를 더 많이 만들고, 주당은 알코올 분해효소가 늘어나 덜 취하게 되어 더 마시게 된다는 것이다.
폭탄주는 왜 빨리 취하는 것일까? 의사들은 맥주에 들어 있는 탄산가스가 알코올의 흡수를 촉진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 폭탄주를 순한 술이라고 생각해 많이 마시게 되고, 줄이어 마시게 ‘압박하는’ 습관 때문에 ‘원샷’이 강요돼 빨리 취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형식의 변화가 어떠하든 폭탄주는 폭탄처럼 파괴적이다. 거듭된 폭탄주는 알코올의 과다 흡수로 몸이든 정신이든, 도덕성이든 의식이든 결국 파괴하고 마는 것이다.
폭탄주의 파괴력을 몸소 겪어보아서 그랬을까? 1986년 ‘국방위 회식 사건’의 주역 박희도 참모총장은 1987년, 술에 대한 기본상식과 예절, 술과 병영생활의 관계, 선진 군인의 음주자세(?) 등을 내용으로 하는 <술과 병영생활>이라는 책자를 펴냈다. 나는 이 책을 헌책방에서 발견하고는 혼자 속으로 되뇌었다. ‘에구, 저나 잘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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