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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사직동팀’을 우려한다

등록 2004-06-24 00:00 수정 2020-05-03 04:23

검찰은 왜 대통령 직속 ‘고위공직자 비리조사처’ 신설에 반대하나

강희철 기자/ 한겨레 사회부 hckang@hani.co.kr

제2의 ‘사직동팀’이 생기는 것인가.

검찰의 우려가 현실화하는 듯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천정배 열린우리당 대표는 지난 6월18일 “고위공직자 비리조사처(공비처)에 기소권까지 줘야 한다”고 말해, 이 논의의 인화성을 한 계단 끌어올렸다. 발언에 실린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기소(독점)권’을 정면으로 건드리지 않는 한 침묵하기로 한 검찰의 가장 예민한 감각대를 건드린 셈이 됐다.

“얼마나 청와대에 휘둘리려 하는가”

그렇다고 검찰이 당장 직접적인 반응을 보일 것 같지는 않다. 천 대표도 기소권을 주지 않기로 한 대통령의 애초 방침과는 다른 의견을 낸 터라, 양쪽 모두 당분간 서로의 진의를 파악하는 탐색전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검찰은, 공비처가 궁극적으로 기소권을 갖든 아니든, 이를 공론에 부친 대통령의 의도가 부패 척결보다는 검찰권 견제쪽에 치우쳐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과거의 사직동팀(경찰청 조사과)처럼 대통령 직속의 수사기관이 생긴다는 점에서, 검찰 안팎에선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높다. 단순히 검찰이 갖고 있던 권한(사법경찰 지휘권)의 일부를 빼앗기거나 제한받게 되므로 불쾌하다는, 1차원적 반응만은 아니다.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의 말이다. “‘기소권은 검찰이 갖되 수사 지휘는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은 곧 검찰을 불신한다는 말이다. (검찰의 신뢰 여부는)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 핵심이다. 총장의 임기를 보장해주고, 소신껏 하도록 맡겨두어야 한다.”

현직 ‘특수통’ 검사의 우려는 좀더 본질적인 문제의식에 접근해 있다. “과거에 사직동팀은 수사권 없이 정보수집 기능만 있었는데도 온갖 폐해를 낳았는데, 공비처는 수사권을 갖게 돼 있다. 부방위 산하에 만든다지만, 대통령 직속인 공비처장이 누구의 의중을 살피겠나. 똑같이 대통령한테서 임명장을 받지만 검찰총장은 그나마 완충장치가 여러 개다. 그래도 청와대에 휘둘린 게 검찰의 역사인데, 공비처는 그런 장치마저 없다.”

검찰은 법무부의 일개 외청에 불과하지만, 국가형벌권을 독점하고 있는 독특한 지위를 감안해 정치권, 특히 대통령의 입김을 차단하는 여러 장치를 갖추고 있다. 검찰청법에서 법무부 장관의 권한을 “구체적 사건에 대해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제8조)하도록 제한한 것부터가 정무직인 장관의 사건 개입 여지를 차단한 것이다. 검찰총장이 국회에 출석하지 않도록 하고, 대검의 청와대 직보라인(핫라인)을 없애고, 현직 검사의 청와대 근무제도를 폐지한 것 등도 다 같은 맥락에서 이뤄진 조처다.

반면, 무소불위 권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던 대통령 직속 사직동팀은 1999년 ‘옷로비 사건’을 계기로 폐지됐다. 이 기관의 문제가 온전하게, 단적으로 드러난 것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신한국당이 폭로한 이른바 ‘DJ(김대중) 비자금 사건’을 통해서였다. 검찰 수사 결과, 당시 배재욱 청와대 사정비서관은 사직동팀을 주축으로 국세청·금감원 등의 직원들을 대거 동원해 법관의 영장도 받지 않은 채 DJ 본인은 물론 친·인척의 계좌 등 각종 금융거래 내역을 샅샅이 뒤져 ‘원자료’를 생산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사직동팀은 검찰의 지휘권 바깥에 있었다. 대통령 직속이라는 이유로 치외법권적인 지위를 누린 것이다.

“대통령은 검찰이 ‘통제받지 않는 권력’이라고 자주 말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건국 이래 검찰은 법원에 의해 ‘사법적 통제’를 받아왔고, 지금도 받고 있다. 영장도 법관이 내어주는 것이다. 유·무죄나 양형도 모두 법원의 몫이다. 우리가 한 수사는 법원에서 심판받는다. 검찰을 통제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면, 법원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하면 된다.”(한 검사장)

공비처 신설에 공감하는 목소리도

공비처의 모델이 되고 있는 말레이시아 등은 우리와 정치·사법 체계가 달라, 그만큼 현실 적합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내각책임제(홍콩은 제외)에다, 대규모 검찰조직도 없다. 검사가 있긴 하지만, 송치받은 사건의 공소제기(기소)와 공소유지(공판)만 담당할 정도로 소수에 불과하다. 한 변호사는 “경찰은 수사력의 한계가 뻔하고, 소규모인 검찰은 수사력이 거의 없다”며 “이런 ‘구멍’을 메우려고 반부패청 같은 조직을 만든 것”이라고 전했다.

물론 공비처 신설에 공감하는 목소리도 있다. “사직동팀이 왜 무리수를 두었을까. 직접적인 이유는, 공무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인사 때문이다. 경찰은 1년에 한번 정기 인사에 특진까지 걸려 있으니 부당한 지시라도 수행할 수밖에. 그러나 (공비처가) 신분 보장만 확실히 한다면 사직동팀과는 다를 수 있다. ‘물먹고 지방 가면 어쩌나…’ ‘이번에는 꼭 승진해야 하는데…’ 이런 걱정 안 하게 되면 부당한 지시에 휘둘릴 개연성은 그만큼 낮아진다. 공정하다는 인상을 심어주면, 첩보는 저절로 들어오게 돼 있다. (검찰) 하나보다는 여럿이 수사하면 그만큼 부패 척결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나.”(대검의 한 간부)

그래도 대통령 직속 수사기관의 한계, 즉 대통령의 ‘의중’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노 대통령의 선의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 후임자들이 이 기관을 악용할 소지는 얼마든지 열려 있다는 지적이 있다. 검찰 출신의 한 중견 변호사는 “노 대통령은 자기 임기와 자신의 의도만 생각해선 안 된다. 한번 생기면 없애기 힘든 것이 정부 조직이다. 막말로 공비처를 자신의 ‘정치공학’을 위해 악용하는 대통령이 안 나오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최선은 공비처를 별도로 두지 않고, 공정한 인사를 통해 검찰의 수사력을 높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한 기구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통상적인 조직을 강화하는 쪽이 낫다는 조언이다. 한국 검찰이 콤플렉스를 느낄 정도로 자주 거론되는 ‘도쿄지검 특수부’의 경우, 능력이 검증된 검사는 평균 7~8년 이상 머문다고 한다. 일본에서 연수를 한 한 부장검사의 말이다. “10년차 안팎으로 수사 능력이 검증된 검사는 ‘도쿄지검 특수부-법무성 형사국’을 오가는 엘리트 코스를 달려도 조직 안에서 누구 하나 시비를 걸지 않는다. 승복하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는 특혜 시비가 나올까봐 뺑뺑이를 돌린다. 과도한 평균주의 때문에 수사력은 자연히 하향 평준화되는 것이다. 강금실 장관이 오면서 이런 경향은 더 심해졌다.”

검찰 수사력 후퇴는 과도한 뺑뺑이 탓?

공비처 추진의 실무 핵심으로 떠오른 김성호 부방위 사무처장도, 지난해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에서는 지금과 전혀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검찰이 부패범죄 수사를 주도하고 있으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받지 못해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되려면) 검찰 인사의 독립이 보장되어야 하며, 검찰총장 임명 문제는 부패 수사의 처음이자 마지막일 정도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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