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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남북경협시대 4회] 문턱을 낮춰라, 도이모이!

등록 2004-05-28 00:00 수정 2020-05-03 04:23

[기획연재 | 지금은 남북경협시대 4회]

<font color="maroon">개혁개방의 열기로 북적대는 베트남 공단들… 투자자를 위한 ‘원스톱 서비스’가 성공 비결 </font>

▣ 호치민= 글 · 사진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 협찬/ 한국토지공사

베트남의 빠른 성장세를 보여주는 상징물은 오토바이다. 한때 호치민(옛 사이공)시 거리의 명물이었던 자전거 행렬이 오토바이로 바뀌는 데는 5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1986년부터 시작된 베트남식 개혁개방인 도이모이(쇄신) 정책이 보여주는 가시적인 결과다.

특히 2000년 이후 7%대의 지속적인 고속성장은 호치민시의 스카이라인을 바꾸고 있다. 포스코건설이 지은 시내 중심가의 다이아몬드 플라자를 비롯해 사이공 트레이드센터 등 30층 이상의 최첨단 건물이 들어섰고, 하이엇·셰러턴 등 외국 호텔들도 신축을 서두르고 있다. 사이공강 아래의 남사이공 지역은 1970년대 서울 강남 개발을 연상시킬 만한 대규모의 쾌적한 주택단지가 들어섰고 베트남 사람들과 외국인을 상대로 한 분양 열기가 뜨거웠다. 도이모이 이전엔 땅과 사람밖에 없었다던 베트남이 빠르게 바뀌고 있는 것이다.

2004년 5월에 찾은 베트남엔 외국자본이 들어오고 공장이 서고 사람들이 일터로 몰려가고 있었다. 1991년 탄투안 수출공업공단에서 시작된 공단건설 붐은 이젠 공단 사이의 과도한 외자유치 경쟁과 난개발을 우려할 정도로 사정이 바뀌었다.

외국인투자법 제정으로 가속도

베트남의 도이모이는 1987년 외국인투자법을 제정하면서부터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이 법은 올해까지 5차례 개정을 거치면서 크게 개선됐다. 외국인투자법 개정의 기본 취지는 정부의 수출몰이 정책에 부합하는 외국인 투자에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다. 초창기 투자 제한 분야가 환경과 사회질서를 해칠 수 있는 특수 분야를 제외한 모든 분야로 확대됐고, 법 제정 당시에는 합작투자만 가능했지만 이젠 단독투자까지 허용했다. 최초 이익 발생 뒤 2~4년의 면세기간과 그 이후 일정 기간 50% 조세감면 혜택도 외국 투자자들에겐 매혹적인 조치였다. 게다가 최근에는 일정한 이익이 발생할 경우 재투자 혹은 향후 발생할 손실에 대비해 이익의 일정 부분을 적립해야 하는 의무비율도 없앴다. 정부의 간섭을 줄이고 기업의 자금운용 폭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국 기업체 관계자들은 “새 법에 적응할 만하면 다시 바뀐다”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이러한 조치는 베트남의 고속성장을 이끌었다. 외국인투자법이 시행된 이후 16년 동안 4400여건 410억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한국을 포함한 외국인 투자기업은 66만5천여명을 고용했고 간접적인 고용효과까지 치면 약 100만명에 달한다. 베트남 정부 자료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외국인 투자기업도 연평균 20%가량 성장했다. 2003년 베트남 수출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베트남은 땅과 사람을 대어 나라살림을 키우고, 외국 투자기업들은 이윤을 챙긴 것이다.
특히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2001년 미국-베트남 무역협정 체결 이후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세계은행이 최근 발간한 ‘동아시아 경제동향 보고서’는 베트남이 2001년 이후 지난해까지 한해 평균 14억달러의 외국인 직접투자 실적을 기록했으며, 이는 전세계적으로 괄목할 만한 성장세라고 밝혔다. 국내총생산(GDP) 기준 순 외국인 직접투자 성장률이 4% 이상인 국가는 중국과 베트남뿐이었다. 호치민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이한철 관장은 “베트남은 문맹률이 10% 미만으로 양질이면서 저임금의 노동력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인구의 절반 정도가 25살 이하인 항아리형 인구구조를 갖추고 있다”며 “특히 2010년께 인구가 1억명에 달할 것으로 보여 외국인 투자자에게는 투자가치가 높은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탄투안 공단, 대만 수출공단 모델 도입

하지만 베트남이 개방 초기부터 이런 장밋빛 미래를 보장받은 것은 아니었다. 나라살림은 어려웠고 시장경제 경험은 일천했다. 게다가 개방을 하고 공업국으로 탈바꿈한다고 해도 외국인 투자자들이 돈을 싸들고 몰려올 리는 만무했다. 그들에게 믿음을 주는 조치가 필요했다. 외국자본의 투자만이 유일한 활로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계공장화’하고 있는 중국이 블랙홀처럼 외국 투자자들을 빨아들이고 있던 터라, 중국보다 유리한 환경을 제시하기 위해 끊임없이 문턱을 낮췄다.

현재 베트남 내 80여개 공단 가운데 ‘1호’로 개발된 탄투안 공단은 베트남 정부가 어려운 처지에서 대만 자본과 손잡고 시작해 성공했고, 그 이후 다른 공단의 전형으로 번져갔다는 점에서 북한 개성공단의 미래가 될 만하다. 개방의 여파가 베트남 사회 전반으로 번질 것을 우려한 정부는 호치민시 남쪽 사이공강 주변의 300ha(약 90만평)에 테두리를 지어 개방 실험을 했고, 여러 시행착오 끝에 베트남식 공단 개발 양식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 공단의 관리 운영을 맡고 있는 탄투안수출가공공단개발회사의 응옌 호앙 융 부사장은 “1960년대 대만을 성공으로 이끈 수출공단 모델을 도입해 공단의 건설과 관리·운영 기술 등을 빨리 배울 수 있었다”며 “시행착오를 거듭했지만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우리에게 가장 유용한 방식이었다”고 설명했다.

탄투안 공단은 1986년 6차 공산당대회에서 대외개방을 통한 외국과의 경제협력 확대, 시장경제적 요소 도입을 표방한 도이모이 정책을 채택한 이후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1988년 외국인투자법 시행 이후 외국 투자자들의 입질이 시작됐지만, 경험이 없던 베트남 정부는 어떻게 외자를 유치해야 하는지, 이 돈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는지 우왕좌왕했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수출공업단지 조성을 위한 연구진은 대만과 인도 등 후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발전한 여러 나라의 사례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이 연구진의 성과를 바탕으로 1991년 탄투안 공단이 만들어졌다.

자본이 부족한 베트남 정부는 대만의 CT&D그룹을 파트너로 끌어들였다. CT&D가 6320만달러를 투자해 지분의 70%를 소유하고, 호치민시가 50년 임대 조건으로 토지(2670만달러 상당)를 내놓아 30%의 지분을 소유하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해서 설립된 합작회사인 탄투안 수출가공공단 개발회사는 공단 내 발전소와 도로·관개·하수처리 시설을 포함해 300ha의 공단 터 조성을 맡았다. 호치민시는 이를 행정적으로 지원했다.

탄투안 공단 개발 방식은 당시 베트남 사회의 치명적 약점을 보완할 수 있었다. 베트남 정부는 세 가지를 우려했다. 도로·철도·전기·용수 등 인프라가 취약했고, 외자 유치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행정절차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었다. 또 개방의 여파가 전 사회로 번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일정한 울타리를 칠 필요가 있었다. 그런 점에서 탄투안 공단은 ‘베트남 내의 외국’을 만들기에 최적의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물류 수송이 편한 사이공 강변이어서 원자재 도입과 수출에 유리했고, 수출공단이라는 방식은 경쟁력이 낮은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개방의 여파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아마타 공단, 보름 안에 투자허가

하지만 인프라나 지형 등은 외부 조건에 불과했다. 핵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여러 가지 법과 제도가 미흡한 혼란 속에서도 투자자들을 안심시킬 수 있었던 것은 정부의 일관된 기조였다. 지금 시행하는 정책이 변할 순 있지만 외국 투자자들에게 불리한 환경으로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것이 중요했다. 안정적인 투자환경이 확인되자 외국 투자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융 부사장의 말이다.

운영 방식도 획기적이었다. 현재 가동 중인 106개의 업체 가운데 7번째로 입주한 세모의 조석근 지사장은 “우리가 입주할 때만 해도 투자서류를 제출한 뒤 여러 곳에서 반복적으로 투자 의사를 확인하는 바람에 허가까지 짧아도 3개월, 길게는 1년까지 걸렸다”며 “지금은 투자 허가에서 공장 건설과 가동까지의 시간이 짧아진데다 매년 연말 호치민시 관리와 공단쪽에서 사업을 하는 데 불편한 점이 없는지 점검해 여러 공장의 공통적인 문제인 경우에는 바로 개선될 정도로 서비스가 좋아졌다”고 말했다.

‘원스톱 서비스’로 불리는 투자환경 개선작업은 최근 조성된 공단일수록 더욱 두드러졌다. 호치민시에서 북동쪽으로 30km 떨어진 동나이성 비엔호아시에 있는 아마타 공단은 이를 장점으로 내세운다. 이 공단개발회사의 이사오 야마자키 마케팅 담당 국장은 “투자허가를 받기까지 40여 가지 서류가 필요한데 이를 제출한 뒤 15일, 짧게는 1주일 이내에 모든 것이 결정되고 실제 공장이 굴러가기까지 6~10개월이면 충분하다”며 “동나이성은 외국인 투자와 관련한 업무를 한곳에서 처리할 수 있는 기구(DIZA·Dongnai Industrial Zone Authority)를 만들어 지원하고 공단쪽은 투자자를 도와 낯선 곳에서 초기에 사업을 안착시키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돕는다”고 설명했다.

투자 유치해놓고 규제 들이밀면…

지퍼생산업체인 YKK, 여성속옷업체인 와코루 등 세계적인 다국적기업 50여개가 입주해 있는 아마타 공단은 앞으로 공단 주변에 생활주거단지를 만들어 ‘아마타 시티’로 발전시키려는 복안을 가지고 있다. 호치민시에서 1시간가량 떨어진 점 등 입지조건도 개성공단과 비슷해, 개성공단 조성사업의 한 주체인 현대아산쪽 관계자는 물론 북한쪽에서도 관심 있게 살펴봤다고 한다.

현재 탄투안과 아마타 공단에는 한국 중소업체 10여개가 진출해 있다. 업체 관계자들은 “탄투안이 외국자본과 공동 개발한 공단 1호라는 점에서, 아마타는 배후도시 건설 전망을 갖춘 최근 공단이라는 점에서 개성공단이 참조할 만하다”고 말했다. 특히 원스톱 서비스처럼 사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적극적으로 투자 유치를 해놓고 막상 공장이 굴러갈 즈음 까다로운 규제와 제도를 들이밀면 투자자들 사이에 금방 입소문이 나게 된다는 충고를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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