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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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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선운동과 민주노동당의 충돌?

등록 2004-04-15 00:00 수정 2020-05-03 04:23

탄핵안 찬성 의원 포함하자 ‘우리당 지원’ 비난… 총선연대쪽 “헌정질서 파괴는 낙선 사유”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이 시민사회단체 진영에 ‘당파성’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총선시민연대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찬성표를 던진 현역 출마 의원 전원을 낙선대상에 포함시킨 것을 놓고,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한 진보 진영이 낙선운동의 중립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총선시민연대는 지난 4월6일 17대 총선후보 중 최종 낙선대상자 208명을 발표했다. 이 명단에는 기존 1·2차 낙천대상자 중 공천을 받아 출마한 108명 외에 탄핵안에 찬성표를 던진 이유만으로 낙선대상으로 선정된 100명이 포함돼 있다. 이에 따라 이번 총선에 출마한 16대 현역 의원 중 한나라당과 민주당, 자민련 등 야당 의원들은 전원 낙선대상자로 선정됐다. 정당별로 보면 한나라당이 100명(46%)으로 가장 많고, 새천년민주당 57명(26%), 자유민주연합 24명(11%), 열린우리당 10명(5%), 무소속 23명(11%), 민주노동당 1명, 국민통합21 1명이다.

‘철새’에 대한 이중잣대?

야당은 일제히 반발했다. 한나라당 등은 “총선시민연대가 중립성을 내던지고 열린우리당 산하 직능단체로 전락했다”며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이는 지난 2000년 낙선운동 당시 야당 내부에서 일부나마 자숙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과는 완전히 다른 태도다.

그러나 총선시민연대를 당황하게 만든 것은 보수야당들의 이런 태도가 아니다. 총선시민연대는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등 진보 진영의 거센 비난에 매우 당황해하고 있다. 총선시민연대의 낙선명단 발표 이후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인터넷홈페이지에는 낙선운동을 비난하는 글들이 쇄도했다. 일부 민주노동당 당원들은 총선시민연대를 “열린우리당의 2중대”로 비하하기도 했다. 민주노동당 김종철 대변인은 “낙선대상자 선정 기준이 잘못됐다는 게 민주노동당의 공식 입장”이라고 밝혔다.

진보 진영의 비판은 낙선대상 선정 기준에 집중된다. 특히 탄핵안 찬성을 낙선 기준으로 삼은 것을 “정략적인 발상”이라고 비난한다. 민주노동당의 김종철 대변인은 “탄핵안 찬성이 헌정질서를 문란하게 했다는 이유로 낙선 사유가 된다면, 이라크 파병과 집시법 개악에 찬성한 의원들도 낙선대상자가 돼야 한다”며 “파병과 집시법 개악도 탄핵 못지않게 헌법을 파괴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라크 파병과 집시법 찬성이 낙선 기준이 되면 낙선대상자로 선정되지 않은 열린우리당 의원들 중 상당수가 여기에 포함된다. 이라크 파병에는 김근태·정동영·천정배·신기남·김원기·이부영·김부겸·안영근 등 열린우리당을 대표하는 인사들 상당수가 찬성했고, 집시법 개악에도 정동영·김원기·정세균 의원 등이 찬성표를 던졌다. 진보 진영은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이 결과적으로 ‘열린우리당 밀어주기’로 변질된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진보 진영이 낙선운동을 정략적인 것으로 비난하는 또 하나의 근거는 ‘철새 정치인’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다. 당적 변경은 낙선대상자 선정의 주요 사유 중 하나인데, 열린우리당 후보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느슨하게 적용됐다는 것이다. 각각 한나라당과 자민련에서 열린우리당으로 당적을 바꾼 김혁규(비례대표 4번) 전 경남지사와 정해주(경남 통영 고성) 전 국무조정실장은 물론 한나라당의 ‘독수리 5형제’로 불렸던 이부영·안영근·김부겸·김영춘 의원이 배제된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민주노동당 김종철 대변인은 “특히 김 전 지사와 정 전 장관은 권력의 ‘양지’를 쫓아갔다는 점에서 비난받아 마땅한데 낙선대상에서 빠졌다”며 “1차 낙천대상자 발표 때 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진보 진영은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이 결과적으로 열린우리당을 지원하는 효과를 가져오게 됐다고 비판한다. 민노당 관계자는 “이번 총선은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반개혁성을 심판하는 측면도 있는데, 시민단체들의 정략적인 태도가 이를 가로막고 있다”고 비난했다. 김종철 대변인은 “대통령 탄핵은 노무현 정권이 반개혁적으로 돌아서서 지지세력이 이탈한 측면도 있는데, 총선시민연대가 이런 점을 고려하지 못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진보 진영 비판은 오해에서 비롯”

하지만 총선시민연대는 진보 진영의 이런 비난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총선시민연대 관계자는 “낙선운동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낙선 기준에 대한 비판은 있을 수 있겠지만, 특정 정당 밀어주기라는 비난은 악의적인 음해”라고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총선시민연대는 진보 진영의 비판이 낙선운동의 잘못된 이해에서 나온 것이라고 지적한다. 총선시민연대는 탄핵안 찬성 논란에 대해 “탄핵은 헌정 질서를 파괴한 행위라는 점에서, 정책의 성격이 강한 이라크 파병이나 집시법과는 구분돼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라크 파병과 집시법 개악을 낙선대상 기준으로 삼는다면, 자유무역협정(FTA)이나 호주제폐지 등 다른 정책적인 사안들도 모두 낙선대상에 포함시킬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총선시민연대 관계자는 “탄핵은 민주주의를 파괴했다는 점에서 모든 정파와 계층을 초월해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사건”이라며 “모든 정파가 지향하는 가치가 민주주의 수호라는 점에서 탄핵은 낙선 사유가 될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총선시민연대는 철새 정치인 기준에 대한 비판도 “악의적인 음해”라고 비난한다. 총선시민연대는 당적 변경의 경우 현역의원이 아닐 때 이뤄지거나 당이 분당·합당·소멸된 때, 그리고 한 차례만 당적을 변경했을 때는 낙선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총선시민연대 참가단체인 참여연대의 안진걸 간사는 “당을 한번 옮긴 것은 정치에 대한 소신의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철새로 보기 어렵다는 게 총선시민연대에 참가한 400개 단체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며 “지역구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은 적이 없는 비현역의원까지 (당적 변경을) 문제 삼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 기준을 적용하면 이부영 등 한나라당 탈당 의원들은 물론 김혁규 전 지사와 정해주 전 실장도 ‘구제’된다. 총선시민연대는 ‘열린우리당 밀어주기’라는 비난에 대해서는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총선시민연대 관계자는 “탄핵 사태로 열린우리당뿐 아니라 민주노동당도 지지율이 상승하는 등 큰 이득을 보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탄핵안 찬성을 낙선 사유로 선정한 것을 진보 진영이 ‘열린우리당 밀어주기’로 비난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라고 반문했다.

“민주노동당도 감시대상”


민주노동당과 총선시민연대가 한 낙선대상 후보를 놓고 대립하고 있다. 총선시민연대가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에 출마한 민주노동당 이재남 후보를 낙선대상자로 선정했는데, 민주노동당은 이를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잘못된 선정”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 후보는 지난 1994년 기아자동차 노조 집행부로 활동할 무렵 한 술집에서 발생한 폭행사건에 연루돼 형사처벌을 받은 사유로 낙선대상자로 선정됐다. 총선시민연대는 “이 후보가 폭행사건에 연루된 것도 불미스러운 일이지만, 노동운동을 하는 신분으로 호화 룸살롱에서 술을 마신 것도 도덕성 논란을 일으켰다”며 “최종 회의 때 치열한 찬반 논쟁이 있었는데, 결국 낙선대상에 포함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은 “터무니없는 결정”이라고 반발했다. 민주노동당 김종철 대변인은 “당시 사건은 기아자동차의 임단협을 앞두고 노조의 발목을 잡기 위해 경찰이 무리하게 공권력을 행사한 노동운동 탄압 사건이었다”며 “노동계에서 유명한 이 사건을 단순한 폭행 사건으로 보는 시각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민주노동당은 물갈이연대가 발표한 당선대상 명단에 대해서도 “선정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고 비난했다. 민주노동당은 특히 경남 거제에 출마한 장상훈 후보가 당선대상으로 선정되지 않은 것은 부당하다며, 민주노동당의 12명 후보가 당선대상으로 선정된 것을 거절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시민단체들은 민주노동당의 이런 태도를 우려의 시선으로 보고 있다. 물갈이연대의 정대화 상지대 교수는 “민주노동당도 이제는 운동단체가 아니라 유력한 정당으로서 시민단체의 감시대상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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