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아넷의 바그다드 제2신… 화난 군중들에 둘러싸이는 순간을 넘기며 팔레스타인을 떠올리다
“바그다드는 제2의 가자지구인가?”
지난 4월9일 나는 흥분한 미군과 이라크 사람들이 파라다이스 광장에 세워진 사담 후세인의 동상을 끌어내리는 광경을 보고 있었다. 이는 바트당 정권의 종말을 상징하는 순간이었다. 열띤 승전 축제가 뒤따라 열렸고, 이는 근처 팔레스타인 호텔 옥상에서 돌아가는 세계 언론의 카메라로 생중계되었다. 기뻐하는 이라크 군중들이 나를 에워싸고 있었다.

다리 걷어차이는 아찔한 순간…
거의 여섯달이 지난 지금, 환호보다는 야유가 파라다이스 광장을 메우고 있다. 이 기사를 쓰기 불과 몇 시간 전, 팔레스타인 호텔에서 나오던 나는 화난 폭도들에 둘러싸였다. 그들은 낮에 경찰에서 운영하는 구직센터에서 일자리를 얻으려 했으나 실패한 수십명의 젊은 실업자들이었다. 그들이 흥분한 상태로 사둔가를 걸어 내려오다 발견한 첫 미국인이 나였던 것이다. 청년들은 나에게 주먹을 내보이고 다리를 걷어차며 그들의 분노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내 운전사 겸 통역사가 재빨리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고, 그 무리는 나를 지나 거리에 세워진 두대의 차에 불을 질렀다. 성난 무리는 미군과 함께 온 이라크 경찰이 그들에게 실탄을 발사해 두명에게 상처를 입히고 나서야 진정을 되찾았다. 화난 아랍인들과 중무장한 냉정한 서양 군인이라는 위험한 조합은 나에게 위기에 처한 다른 지역, 팔레스타인을 상기시켰다.
“이곳은 점점 더 가자지구를 닮아가고 있다”고 런던의 기자이자 나의 친구인 로버트 피스크가 말했다. 피스크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팔레스타인 정책에 대한 신랄한 비판자다. “이라크에 주둔한 미국은 심지어 이스라엘 방위군으로부터 대중 소요 진압 방식에 대한 조언을 얻고 있다”고 그는 귀띔했다.
가자지구에 여러 번 가본 사람으로서 나는 바그다드의 상황을 지중해에 위치한 문제투성이의 팔레스타인 거주지와 쉽게 비교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언론인을 위협하지 않는다. 그러나 올해 미국이 가진 정치적 기대치 측면에서 보면 유사한 점이 있기도 하다. 팔레스타인 독립에 대한 부시 정권의 중동 로드맵이 평화를 가져오는 데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 돼버린 것과 마찬가지로, 이라크의 안정을 가져오겠다는 미국의 낙관적 희망도 보잘것없는 것이 돼버렸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중동 지역의 혼란을 염려하면서 미국의 잘못된 팔레스타인·이라크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비판하는 지점은 두 나라에서 매우 다르다.
일단 공통점으로 미국이 불과 몇달 사이에 팔레스타인과 이라크에서 도덕적 우월성을 상실한 점을 들 수 있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위신이 추락하는 이유로 9·11 세계무역센터와 국방부에 대한 테러 공격 이후 개시된 테러와의 전쟁을 들 수 있다.

부시의 실수, 후세인의 실수
아프가니스탄 공격 자체가 옳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탈레반 정권이 오사마 빈 라덴의 알카에다 테러 조직을 옹호하고 있다는 사실은 자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팔레스타인의 정당한 민족투쟁을 미국이 벌이고 있는 알카에다와 그 조직이 저지르는 테러와의 전 세계적인 전쟁과 연결시키는 잘못을 저질렀다. 결과적으로 이는 미국이 팔레스타인 정권 수립을 지지하는 것은 테러조직을 지원하는 것이라는 이스라엘의 주장을 지지하는 것을 의미했다. 많은 미국인들, 그리고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스라엘에 대처하는 부시 정권의 소극성이 평화의 마지막 희망까지 앗아가버렸다고 믿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은 미국의 대이라크 전쟁의 명분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이 전쟁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었음이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이른바 ‘즉시 사용 가능한 대량살상무기’의 존재는 워싱턴이 국제사회에 전쟁 동참을 호소한 주요 근거였다. 그럼에도 미국 사찰팀은 몇달이 지나도록 대량살상무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미국과 애초부터 회의적이던 다른 나라들과의 간극을 더욱 벌려놓고 있으며, 사담 후세인을 반대하긴 했으나 그가 유지한 이라크의 안정이 지금의 혼란보다 더 낫다고 느끼는 이라크인들을 분노하게 하고 있다.
“사담이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지난해 유엔 사찰단이 입국하도록 허락한 것이다”라고 이라크 육군기획팀의 일원이었던 쿠타이바 알 아자위 퇴역 준장이 며칠 전 내게 이야기했다. “사담이 사찰을 거부했다면, 미국은 이라크 대량살상무기의 존재 여부에 확신을 가질 길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엔 사찰단은 무기가 없다고 확인시켜줌으로써 전쟁으로 가는 장애물을 제거했다. 부시는 북한의 핵 능력이 두려워서라도 그 나라를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서 또 하나의 ‘테러와의 전쟁’ 논란은 사담과 9·11 테러 공격과의 연관성, 그리고 그의 알카에다와의 접촉 여부였다. 이 부분도 아직 밝혀진 것은 없지만, 적어도 내가 1997년 3월 아프가니스탄에서 오사마 빈 라덴을 인터뷰할 당시 그는 사담 후세인에 대한 견해를 묻는 내 질문에 후세인은 “질 낮은 아랍인”이며 미국의 추종자라고 비난했다.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의 두 번째 공통점은 아랍 세계가 미국이 지원하는 이스라엘군과 미군의 존재를 실질적인 군사 통치로 간주한다는 점이다. 자주 일어나는 군인과 민간인 사이의 유혈 충돌은 정치적 논쟁의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다. 그러나 공통점은 여기까지다. 세계의 많은 이들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국가의 존재 자체를 박멸하려는 팽창주의 정책을 펼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에서 미국은 자신들이 궁극적으로 이 나라에서 손을 뗄 것이라는 점을 명백히 하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 재건의 주도권을 다른 나라와 나누는 것을 꺼리고 있으며, 국제사회의 도움은 미국이 원하는 방식으로 이뤄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정치적 현실의 전개를 염두에 두고 판단했을 때, 미군정을 대체하는 이라크 사람들의 정권이 곧 세워져야 한다는 점은 명백히 알고 있다. 이는 급증하는 재정부담, 계속되는 미군의 사망, 그리고 무엇보다 내년으로 다가온 미국의 대선이라는 변수 등을 고려할 때 더욱 확실해진다. 부시 대통령은 내년 이맘때까지 미군이 철수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아버지 부시 대통령처럼 재선에 실패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미군이 철수하기 위해서는 다수 이라크인들의 지지를 받는 새로운 정부가 세워지고, 이와 더불어 이라크 재건 프로그램 또한 적절히 재원을 확보하여 제대로 굴러가야 한다.
바그다드 거리를 거닐다 보면 이미 많은 시간이 허비되었음을 느낄 수 있다. 실직한 수천명의 전직 군인들이 한 육군본부가 자리잡은 알자우라 공원 근처에 긴 줄을 서고, 석달에 40달러밖에 되지 않는 실직수당을 받기 위해 기다린다. “나는 새롭게 만들어진 이라크군에서 복무하고 싶지만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는다”고 옛 정권 아래서 보병으로 일했던 살만 탈립은 말했다. “이곳에서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팔레스타인 호텔에 앞에서 나를 위협했던 전직 군인들은 내게 “우리 말을 들어라. 우리는 일이 필요하다. 지도자들은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고 있고, 우리는 아무것도 없다”고 소리쳤다. 미국에 대한 조바심은 다음날 바그다드에서 또 하나의 군중 시위를 유발했다. 이번 시위를 주도한 ‘이라크 자유사회당’은 이라크 상황에 반대해 시위를 펼친 전 세계 군중들과의 연대를 표방했다.
이라크 전역에서 느껴지는 사람들의 불쾌함과 조바심은 “이라크를 중동 지역의 민주주의와 온건의 본보기로 만들겠다”는 미국의 희망을 위협하고 있다. 불과 두달 전 미국의 이라크 통치기구인 동맹국임시정부가 임명한 25명의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에 대한 거부감이 벌써 높아지고 있다. 위원회를 구성하는 다수의 사람들은 수년간 이라크 외부에서 활동한 반체제 인사들이고, 그렇다 보니 그들의 이라크 국내 지지 기반은 미약할 수밖에 없다.

과도통치위원회에 대한 냉소
“우리는 사담 아래서 우리들처럼 고생해본 사람들이 정부에서 우리를 대표하기를 원한다”고 라미 미즈헤르는 내게 말했다. 컴퓨터 전문가인 이 청년은 주간으로 나오는 무가 광고지를 발행하며 생계를 꾸리고 있다. “그리고 통치위원회는 능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다. 대부분의 구성원들은 정치적 기회주의자들 아닌가.”
얄궂게도 과도통치위원회는 이라크 내부보다 국제사회에서 더 많이 인정받고 있다. 유엔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은 물론, 아랍연맹과 오펙에도 가입해놓은 상태다. 그리고 최근 세명의 여성위원 중 한명인 아킬라 알 하시미의 암살은 국제적인 동정을 불러일으켰다.
위원회가 국내에서 대중의 지지를 얻는 일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보안상의 문제로, 과도통치위원회가 다른 이라크 사람들과 벽을 쌓고 있다는 것이다. 위원회 본부 건물은 미군이 지키는 호화로운 빌딩이고, 이라크 언론은 그 건물에 새로 설치된 냉방 시설이나 바닥에 깔린 대리석에 대한 냉소적 보도를 하곤 한다. 보통의 이라크 사람들은 구경조차 할 수 없는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니는 건물 안의 수많은 사람들, 그 위원회 사람들과 실무진들의 높은 임금 수준과 그들이 누리는 문화생활 역시 조롱 대상이다.
위원회의 권한이 너무 적다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과도통치위원회 구성원들은 미국이 자신들에게 더 많은 재량을 주고 자주적 이라크 정부가 가능한 한 빨리 세워질 것이라는 보장을 해주기를 원한다. 위원들은 또한 석유와 천연가스를 제외한 이라크의 모든 산업 분야에 대한 해외 투자를 허용한 미국의 결정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시위군중을 달래는 길은 무엇인가
9월에 순번 의장직을 맡았던 아메드 찰라비는 통치위원회가 더 많은 권한을 가지면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 믿고 있다. 그는 “이라크에 치안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고, 이는 이라크인들 자신이 치안 유지에 주도적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한다. 미국도 이에 어느 정도는 동의하기 때문에 대규모의 이라크 경찰과 민병대를 훈련시키고 있다.
찰라비는 또한 과도통치위원회가 새 헌법이 제정되고 총선이 실시될 때까지 독립된 주권국가의 정부 역할을 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외무장관 출신인 아드난 알 파차치 같은 현실적 견해를 가진 위원들은 “우리는 과도적 정권 이양 기구 이상의 어떤 역할도 함부로 맡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미국은 조기 정권 이양이 이라크에서 진정한 민주주의가 자리잡을 기회를 파괴하면서 미국은 계속 사담 잔당들과 그들의 동조자들과 전투를 치러야 하는 부정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점령군 사령관인 폴 브레머는 헌법 초안 제정과 국민투표를 통한 이의 승인이 1년 이내에 이뤄지는 것을 포함하는 7단계 계획을 주장하고 있다. 이 안은 물론 확정된 것이 아니라 협상 가능한 것이다.
미국이 중동에서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길은 국제사회가 함께 책임지도록 설득하는 데 있다. 이는 팔레스타인의 경우 이스라엘의 집권세력인 우익 리쿠드당에 대해 지금보다 더 단호한 입장을 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라크의 경우에 미국은 덜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고 유엔을 이라크의 미래에 개입시키는 데 더욱 유연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 특히 정권 이양 과정에서 이런 자세는 더욱 필요하다.
이런 일련의 조치들만이 바그다드와 다른 세계 도시들의 시위 군중의 분노를 달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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