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이 2026년 10월20일 아리셀 대표이사 박순관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한 2심 판결을 확정하자 참사 희생자 유족들이 대법원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한겨레 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대법원은 23명의 목숨을 빼앗은 리튬전지 생산업체 아리셀의 대표이사 박순관의 형량을 징역 15년에서 징역 4년으로 줄여 가볍게 한 2심 판결이 합당하다고 봤다. 이 판결은 아리셀 참사로 희생된 노동자의 유족, 그리고 피해 생존자 9명에게 또다시 절망을 안겼다. 이들은 사법부가 끝내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지 못했다며 헌법재판소에 재판소원을 청구하기로 했다._편집자
박순관, 그리고 아리셀에서 운영총괄본부장을 지낸 그의 아들 박중언 두 사람은 전지의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는 용액인 전해질이 주입된 이후의 리튬전지가 단락(리튬전지 내부에서 음극과 양극이 직접 연결돼 전류가 흐르는 현상) 때문에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안전보건관리책임자이기도 했던 박중언은 전지의 발열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열감지기를 공장에 설치하지 않았고, 화재 발생에 대비한 소방 훈련도 하지 않았다. 참사 발생 이틀 전인 2024년 6월22일 리튬전지 폭발 사고가 있었는데도 후속 공정을 멈추지 않았다. 같은 날 만들어진 전지 여러 개가 이틀 뒤에 폭발해 대규모 참사를 초래했다. 대표인 박순관은 박중언의 보고 등을 통해 이런 사정을 모두 알면서도 재해 예방을 위한 예산 편성도, 사업장 내 위험 요인 제거 같은 대응조치 매뉴얼 마련도 하지 않았다.(제1612호 특집 참조)
공소 제기 당시 박순관의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죄는 2단계 인과관계 구조로 구성됐다. 박순관이 안전보건관리체계(일터 내 위험 요인을 파악해 제거·대체·통제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고 이를 지속해서 개선하는 일련의 활동)를 구축·이행하지 않은 점이 박중언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를 야기하고(1단계), 이것이 노동자 23명이 사망하는 중대산업재해로 이어졌다(2단계)는 구성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박중언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란 참사가 발생한 공장 3동에서 해야 할 비상구 안전조치, 즉 법령이 정한 기준에 맞게 비상구를 설치하고 그 비상구와 비상통로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유지할 의무를 위반한 점을 가리킨다.
1심 재판부는 앞의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해 2025년 9월 박순관에게 징역 15년, 박중언에게 징역 15년과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이후 아리셀 중대재해참사 대책위원회와 아리셀 산재피해 가족협의회는 “(박순관과 같은) 경영책임자의 재해 예방 예산 미편성, 안전보건 목표 미설정 등의 경영상 결정 자체가 재해의 직접적인 원인임을 (검사가) 항소심에서 적극 주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중언 쪽이 1심에서 유죄로 인정된 비상구·비상통로 유지 의무 위반을 적극적으로 부인하는 상황에서 이것이 무죄가 된다면, 인과관계 단절로 인해 2심 재판부가 박순관에게 무죄를 선고할 우려가 있었다.(각주1)
검사는 2심 재판부의 허가를 받아 공소장을 변경해 박순관의 의무 위반이 곧바로 다수의 노동자 사망을 초래했다는 구조를 띤 예비적 공소사실(각주2)을 심판 대상으로 추가했다. 기존 공소사실은 주위적 공소사실로 유지했다. 그런데 2심 재판부는 박순관의 예비적 공소사실은 일부 유죄로 인정하는 대신 그의 주위적 공소사실은 무죄로 보고 2026년 4월 박순관에게 징역 4년, 박중언에게 징역 7년과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1심과 2심 판단이 엇갈린 지점은 박중언에게 비상구 안전조치 의무가 있느냐였다. 쟁점이 된 법령 조항은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이하 안전보건규칙) 제17조 1항(이하 쟁점 조항)이었다. 쟁점 조항에 따라 사업주는 리튬과 같은 위험물질을 제조·취급하는 작업장과 그 작업장이 있는 건축물에 출입구 외에 비상구 1개 이상을 설치해야 한다. 박중언 쪽은 위험물질 취급 작업장인 리튬으로 음극을 제조하는 작업장이 있는 공장 3동 1층에 비상구가 설치돼 있었으므로 쟁점 조항에서 정한 의무를 이행했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참사 발생 장소인 3동 2층 패킹룸(배터리를 포장하는 작업장)이 리튬전지 전압 검사 또는 전지 표면에 일련번호를 기재하는 공정 등이 진행된 곳이므로 리튬을 직접 취급하는 ‘위험물질 취급 작업장’은 아니지만, ‘위험물질 취급 작업장이 있는 건축물’에는 해당한다고 봤다. 그러면서 위험물질 취급 작업장이 있는 건축물 층마다 비상구를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 쟁점 조항의 입법 취지(노동자의 대피 등의 보호)에 부합하는 해석이라고 밝혔다. 이는 박중언이 공장 3동 2층의 비상구와 비상통로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유지할 의무를 위반했다는 유죄 판단의 근간이 됐다. 2층에 비상구를 설치할 의무가 없다면 박중언이 그 비상구와 비상통로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유지하지 않아도 이를 의무 위반으로 처벌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2심 재판부가 이를 뒤집었다. 쟁점 조항을 위험물질 취급 작업장이 있는 건축물 층별로 비상구를 설치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문언의 의미를 지나치게 확장하는 해석이라며, 공장 3동 1층에 비상구가 설치된 이상 박중언에게는 3동 2층에 별도로 비상구를 설치할 의무 자체가 없다고 판단했다. 박중언의 비상구 관련 의무 위반이 무죄가 되면서, 박순관의 주위적 공소사실도 인과관계 단절로 무죄가 됐다.
이미 존재하는 법규범이 지향하는 목표나 방향 설정의 테두리 내에서 그 법규의 의미 내용을 넓혀가는 것을 확장해석이라고 한다.(각주3) 가령 특수공무방해죄나 특수폭행죄, 특수협박죄의 가중적 구성요건 요소(형을 가중하기 위해 추가로 설정된 위법행위 유형의 요소들)인 ‘위험한 물건의 휴대’에서 ‘휴대’를 소지 행위에 한정하지 않고 널리 이용한다는 뜻으로 보는 해석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래서 자동차를 운전해 타인을 들이받고 땅바닥에 넘어뜨린 경우도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폭행한 것이 될 수 있다.
다만 형벌법규의 해석은 엄격해야 하고, 문언의 가능한 의미를 넘어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지나치게 확장해석하는 것은 헌법상의 대원칙인 죄형법정주의(범죄와 형벌은 법률에 명문으로 규정돼야 한다는 원칙)에 어긋나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이 그간 유지해온 입장이다. 결국 대법원 1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2026년 10월20일 앞의 2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아리셀 참사 2주기 추모제가 2026년 6월24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공장에서 열리고 있다. 화성(경기)=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아리셀 중대재해참사 대책위원회와 아리셀 산재피해 가족협의회는 천대엽 대법관이 주심을 맡았던 과거 ‘삼성중공업 크레인 충돌 참사’ 대법원 판결에서 제시한 법리와 양립할 수 없는 판결을 선고했다고 비판했다. 이 참사는 2017년 5월1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골리앗 크레인(바닥에 깔린 주행 레일을 따라 이동하는 문(門)형 구조)이 작업하러 이동하면서 멈춰 있던 지브 크레인(팔 형태의 회전식 구조)에 강하게 부딪혀, 그 충격으로 50m 아래 바닥으로 추락한 지브 크레인 일부에 노동자들이 깔려 6명이 죽고 32명이 다친(외상후스트레스장애 진단을 받은 7명 포함) 참사다.
당시 두 크레인이 소통에 실패한 원인 중 하나가 크레인 간 연락망이 부실했다는 점이다. 당시 골리앗 크레인 신호수와 지브 크레인 운전수끼리만 무전기 소통이 가능했고 신호수와 신호수, 운전수와 운전수끼리는 무전기가 지원되지 않았다. 그 결과 코앞에 다가온 골리앗 크레인을 지브 크레인 신호수가 목격하고도 무전을 못해 발만 동동 굴렀다.(각주4)
크레인 참사 2심 재판부는 삼성중공업 법인의 공소사실 중 안전조치 및 산업재해 예방 조치 의무 위반에 해당하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는 무죄로 판단한 1심 판결을 유지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안전보건규칙에는 ‘일정한 신호방법을 정해야 한다’는 규정만 있지 크레인 단독 작업이 아닌 중첩 작업 때 별도의 신호방법을 정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규정이 없고, 작업 중에 물체가 떨어지거나 날아올 위험이 있는 구역에 설정해야 하는 출입금지구역의 설치 반경 내지 범위에 관한 구체적인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으며, 사업주가 노동자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작성해야 하는 작업계획서에 중량물 추락·낙하·전도·협착 외에 충돌 위험 안전대책까지 포함해 작성해야 한다는 명시적 규정이 없으므로 무죄라는 것이다.(아래 표 참조)

디자인주 손정란 팀장
그러나 대법원은 “안전보건규칙과 관련한 일정한 조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산업 현장의 구체적 실태에 비추어 예상 가능한 산업재해를 예방할 수 있을 정도의 실질적인 안전조치에 이르지 못할 경우에는 안전보건규칙을 준수했다고 볼 수 없다”며 2021년 9월30일 앞의 2심 판결을 파기했다.
비록 안전보건규칙에 2심 재판부가 언급한 명시적 규정이 없더라도, 크레인 참사가 발생한 사업장 환경과 그곳에서 여러 차례 다양한 산업재해가 발생한 점 등을 고려하면 삼성중공업 법인에는 크레인 충돌 위험 안전대책까지 포함해 작업계획서를 작성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또 크레인 단독 작업에 따른 일정한 신호방법을 정하는 것만으로는 안전조치 의무를 이행했다고 볼 수 없고, 안전보건규칙이 출입금지구역의 설치 반경이나 범위를 구체적 수치로 정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를 설치할 의무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
이처럼 두 참사의 대법원 판결은 ‘법령에 구체적인 문언이 없다’는 사정을 대하는 태도가 정반대다. 크레인 참사 대법원 판결의 법리대로라면 아리셀 공장 3동 1층에 비상구가 설치돼 있다는 것만으로 필요한 안전조치를 다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앞의 안전보건규칙 제17조 1항에 있는 ‘위험물질을 제조·취급하는 작업장과 그 작업장이 있는 건축물’이라는 표현이 ‘각 층’을 배제하는 문언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에서 활동하는 윤성민 변호사는 “대법원은 과거에 안전보건규칙을 산업 현장의 구체적 상황을 고려해 적용해야 한다고 판단했으면서도 금번엔 이와 정반대의 판단, 즉 법 문언을 기계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스스로 자아분열을 하고 있다”며 “과연 대법원이 신뢰할 만한 법리를 만드는 기관이 맞는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아리셀 중대재해참사 대책위원회와 아리셀 산재피해 가족협의회는 헌법재판소에 재판소원을 청구해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기로 결정했다. 재판소원은 확정된 법원의 재판이 기본권을 침해했을 때 헌재에 그 재판의 취소를 구하는 제도다. 유족과 피해자의 절규에, 이제 헌재가 응답할 차례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 참고 문헌
1. 아리셀 중대재해참사 대책위원회·아리셀 산재피해 가족협의회, ‘1심 판결로 본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토론회 자료집, 2025년 12월9일
2. 주된 범죄사실인 주위적 공소사실이 인정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법원의 판단을 구하는 범죄사실을 가리킨다.
3. ‘형법총론 제17판’, 신동운 지음, 법문사 펴냄, 2025
4.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신다은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2023
□ 관련 기사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9280.html
<‘23명 목숨값 고작 4년’… 법원, ‘아리셀 참사’ 작정하고 봐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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